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361)
361
1960년 5월 16일
포르투갈 나자레
대서양에 접한 포르투갈의 휴양도시 나자레는 4세기,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어릴 적 고향으로 알려진 나사렛에서 온 성직자가 나무로 만든 성모마리아 상을 들여온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 아름답고 조용한 도시가 미독 정상회담 장소로 선정된 것은 독일 측의 요구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었다.
본래 미국은 회담 장소로 아이슬란드를 원했지만, 독일이 거부하고 포르투갈과 아일랜드를 후보에 올렸다.
논의 끝에 선택된 곳은 포르투갈.
포르투갈과 아일랜드 둘 다 추축국의 일원이었지만, 직접적으로 연합국과 교전한 바 있는 아일랜드와 다르게 포르투갈은 연합국과 직접적인 교전을 벌인 적이 없고, 지금도 미국, 캐나다 등 연합국과도 괜찮은 관계를 유지 중이라는 점이 고려되었다.
일찍이 듀이가 미국 대통령이던 시절에 히틀러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회담을 가진 적이 있었던 만큼 이번 회담이 역사에 길이 남을 극적인 회담이라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맥아더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돌프 히틀러. 독일의 독재자, 유럽의 정복자. 20세기에 재림한 칭기즈칸.
히틀러를 만나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히틀러는 마치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처럼 말을 한다고 하던데.
물론 맥아더 자신이 체임벌린처럼 히틀러가 하는 말에 깜빡 속아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험난한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았고 숱한 위기에도 끝끝내 백악관에 입성한 자신이 아니던가.
히틀러의 업적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일개 하사 출신 독재자가 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없으리라.
‘그래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일단 들어봐야겠지.’
“히틀러는 과연 무슨 말을 할까요?”
아이젠하워의 말에 맥아더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것을 멈추고 말했다.
“글쎄.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있나.”
아이젠하워도 기분이 싱숭생숭한 듯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과거 자신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장본인과 만난다고 하니 긴장이 되지 않을 리가.
히틀러와 만나기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마침내 주인공이 등장했다.
“먼저 와계셨군요.”
“일찍 오는 게 습관이라서 말입니다.”
“하하하하.”
미국의 대통령과 독일의 총통이 한 자리에 만났다.
백악관 회담 이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비록 미국 대통령은 다른 이였지만 독일 총통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눈을 감으면 처음으로 미국 땅에 발을 딛던 때가 떠오르는데…….”
“그렇지요. 참으로 감명깊은 날입니다.”
히틀러는 맥아더와 악수를 나눈 뒤, 일전에 만나 안면이 있는 덜레스, 아이젠하워와도 인사를 나눴다.
“오늘이 오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지요.”
“그렇지요. 참 길었습니다.”
회담을 시작한 두 정상은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그들이 처리해야 할 현안들에 대해 논의했다.
히틀러는 먼저 유럽 상공에서 격추된 U-2에 대해 언급하며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미국인들은 히틀러가 따로 사과는 요구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약간의 논의 끝에 미국과 독일은 서로 정찰기를 날려 상대를 염탐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잠정 합의했다.
조종사 게리 파워즈 중위는 미국으로 송환될 예정이었다. 미국이 독일에 약속한 막대한 금액의 대가로.
U-2 문제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회담은 쭉 이어졌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우선은 미독 사이에 전쟁이 터지는 것을 방지하는 게 급선무 아니겠습니까? 수소폭탄을 가진 두 나라가 전쟁 상태에 돌입한다면, 지구에 어마어마한 재앙이 닥칠 테니 말입니다.”
“동감합니다.”
히틀러의 말에 맥아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결코 이전의 전쟁들처럼 끝나지는 않겠지요.”
두 정상은 미국 백악관과 독일 총통관저를 직통으로 연결하는 핫라인의 설치에 동의했다. 소통의 부재가 참혹한 결과로 이어진 숱한 사례들을 고려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이것만으로도 전쟁 발발 가능성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상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지 정도는 생겼다.
군비 제한 역시 화두에 올랐다. 이미 우주 개발로 매년 천문학적인 돈이 소모되는 독일에 미국과의 군비 경쟁은 피하고 싶은 문제였고, 세계 1위의 경제력을 가진 미국 역시 군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의견의 일치를 본 두 나라는 군비 제한에 대해 논의했다.
명확하게 결론이 난 것은 아니었지만, 양측 모두에게 공통된 의견이 있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죠. 느리더라도 차차 해결해나가면 될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허허.”
그리고 서로의 나와바리 문제.
일찍이 듀이 시절부터 미국과 독일 양국은 서로 간의 영역에 대해 합의를 봤기에 해당 문제에 대한 논의는 금방 지나갔다.
유럽, 중동, 인도는 독일의 권역이고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권역이다.
독일은 아프리카에 있는 영국 식민지들을 건드리지 않을 것을 맹세했고 미국도 같은 약속을 했다.
회담이 끝나자 히틀러와 맥아더는 웃으며 다시 한번 악수를 나눴다. 둘이 서로의 손을 잡자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여전히 냉전은 끝나지 않았고 미국과 독일 두 거인은 서로를 향해 핵무기를 겨눈 채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보일 것이었다.
그 노력이 계속되거나, 혹은 도중에 멈출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허나 확실한 사실은, 평화에 대한 갈구와 진심이 있는 한 노력의 불길이 쉬이 꺼지지 않을 거란 점이다.
기자들이 물러나고 맥아더는 습관처럼 파이프를 꺼내려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히틀러가 지독한 비흡연자라는 사실은 미국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암만 가상적국의 독재자지만 흡연을 혐오하는 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 그것도 국가 정상들끼리의 만남에서 외교적 무례를 저지른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소만…… 괜찮으신지?”
“물론입니다. 편하게 물어보시지요.”
“솔직히 말해서, 처음엔 귀국의 제안을 불신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나오는 게 거짓말인데 어디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히틀러가 맥아더의 말을 예상했다는 듯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자 맥아더가 역으로 놀랐다.
“알고 계셨습니까?”
“모를 리 있겠습니까.”
동석한 괴링, 리벤트로프, 슈미트 모두 뜨악하는 얼굴이었지만 히틀러는 유유자적한 얼굴이었다. 그 평온한 모습에 맥아더는 호기심이 불쑥 솟아오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알고 계셨다니 더는 숨길 것도 없겠군요. 체코, 폴란드를 날름 집어삼킨 사람의 입에서 인류 평화니 같은 소리가 나오니까 여간 당혹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심경의 변화라……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뭐 대충 비슷한 게 있었다곤 말씀드리지요.”
히틀러가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예전에, 그러니까 외교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전쟁만이라고 믿던 시절과 지금은 시대가 너무 변했다고요. 예전에는 기껏해야 공습이 최대였지만 핵과 로켓이 실용화되면서 단순히, 한 나라의 패망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지요.
이런 상황에서 예전처럼 전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땐 정말로 인류가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맥아더도 히틀러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약 미국이 쿠바나 중남미의 소국들과 분쟁이 생겼고 전쟁 외에 답이 없다면 맥아더는 마땅히 전쟁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독일이라면? 혹은 독일이 아니더라도 핵무기나 그에 준하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국가라면?
그때도 전쟁을 고집한다면 세계는 멸망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히틀러의 말대로 인류의 종말을 야기할 수 있다면 그런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쟁 없는 완전한 평화를 논하기엔 너무나 멀었고, 맥아더 자신도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최악의 결과를 피하고자 최소한의 노력과 주의를 기울이자는 히틀러의 제안에는 그도 마음이 동했다.
아직 인류가 살아가야 할 기간은 차고 넘쳤으니.
***
미독 정상회담은 닷새 동안 이어졌다.
닷새간의 회담이 끝나고 발표된 회담 결과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속보! 미국, 독일. 양국 간 핫라인 설치에 합의!
-평화의 길 열리나?
-군비 제한 논의…… 아직 명확한 답은 없어. 논의는 계속 진행할 예정.
공식적으로 평화가 선포된 것도 아니고 여전히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는 미 공군 폭격기들이 여차하면 핵무기를 탑재하고 출동할 수 있도록 상시 대기 중이지만 양국 간에 평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다.
미확인된 사실이지만 히틀러가 맥아더에게 베를린 초청을 권하고 맥아더도 히틀러에게 백악관 방문-이미 히틀러는 백악관에 들린 적이 있지만-을 권했다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
정말로,
정말로,
우리 시대에 평화가 오는 것일까?
20세기는 시작부터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의화단 전쟁, 러일전쟁, 1차대전,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2차대전, 소련-중국 전쟁, 아르헨티나 전쟁…….
이렇듯 이제 좀 잠잠하다 싶으면 또 전쟁이 터지던 세상에서 살아왔기에 사람들에게 전쟁은 이제 일상이었다.
거기다 독일이 최초의 핵폭탄을 사용한 뒤로 핵무기 경쟁이 시작되며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멸망의 위협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핵전쟁이 일어나 서로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살아갔다.
그런데 이제 그 불안감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눈을 반짝이며 새 소식을 기다렸다.
모두가 바라는 새로운 소식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얻었다.
마음 편히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다는 희망. 세계가 핵의 불길에 휩싸여 사이좋게 공멸을 맞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기에 충분했다.
독일과의 문제를 마무리 지은 미국은 다시 쿠바 문제에 집중했다.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 소련, 베트남 등 같은 공산국가들의 배신,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쿠바는 말라 비틀어져 갔다.
쿠바가 충분히 약해졌다고 판단한 미국은 같은 해 10월에 쿠바를 전격적으로 침공했다.
이미 세계에 미국을 비난할 국가는 없었다.
독일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에 모든 관심을 끄기로 미국과 약조한 데다, 애초에 공산국가인 쿠바를 위해 나설 생각도 없었다.
생존을 위해 미국의 원조가 필요했던 소련도 쿠바의 처절한 비명을 외면했다.
쿠바가 살아남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플로리다의 비행장에서 발진한 B-28 공격기와 B-47 폭격기들이 쿠바군의 방어시설들과 해안가에 구축된 방어선에 맹폭격을 가하고 2차로 해군의 전함과 순양함, 구축함들이 함포 사격을 가한 뒤 LVT-5에 나눠탄 지상군 병력이 해안가에 상륙했다.
“꼭 소풍 같구만.”
“공군이랑 해군 녀석들이 다 해버려서 우리가 할 게 없는뎁쇼?”
미 공군의 맹폭으로 쿠바군은 사실상 괴멸되었다.
일부 해안지역에서 살아남은 쿠바군 진지들이 해안가에 상륙하는 미 해병대를 향해 저항을 시도했지만 얼마 못 가 제압당했다.
해안가를 완전히 장악한 후 LST들이 해변에 전차를 내려놓았다.
M46 패튼보다 여러 면에서 진일보된 ‘M60 패튼’ 전차들이 무한궤도를 구르며 도로로 나아가는 동안 해안가에선 병사들이 파도를 헤치며 쿠바의 모래사장에 발을 내디뎠다.
쿠바군에도 전차와 장갑차, 전투기가 존재했지만 있으나 마나였다.
전부 프롭기인 전투기들은 이륙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모두 지상에서 파괴되었고, 전차와 장갑차는 미군이 2차대전 때 사용하던 M3 스튜어트, M4 셔먼에 M8 그레이하운드. 미제 최신형 전차의 상대도 되지 못할뿐더러 결정적으로 전차를 굴릴 기름조차 부족했다.
경제제재로 기름을 수입하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가망이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쿠바군은 줄줄이 미군에게 투항했다.
경제제재로 식량이 부족해진 탓에 쿠바 병사들은 늘 굶주림에 시달렸고 미군이 상륙했을 때는 총을 들고 뛸 여력도 없었다.
“양키들, 쏘지 마라. 항복한다, 항복.”
“항복할 테니 아무나 먹을 거 좀-”
속옷을 얼기설기 이어 만든 어설픈 백기를 흔들며 투항하는 쿠바 병사들이 두 팔을 벌려 먹을 것을 달라고 외치는 것을, 미군은 조롱과 동정이 뒤섞인 시선으로 응시했다.
성격이 고약한 병사들이 중지를 세우며 지나갔지만, 마음씨 좋은 병사들은 C-4 레이션을 배고픈 적군들에게 던져주었다.
“이건 뭐…….”
“군대라기보단 부랑자 집단이군. 총 든 부랑자 집단.”
“카스트로 이 새끼는 이런 군대를 가지고 우리에게 맞서려고 했던 거야? 나 참.”
쿠바에 상륙한 지 이틀 만에 미군은 쿠바의 수도 하바나 코앞까지 진군했다.
카스트로 정부는 미제 침략자들에 맞서 최후까지 항전할 것을 선언했지만, 오랜 굶주림에 지친 쿠바인들은 최후까지 항거해 쿠바인들의 명예를 드높이자는 공산당의 말보다 미군의 달콤한 유혹에 더 눈길이 갔다.
미군은 쿠바 전역에 저항하지 말고 미군에게 협력하면 후한 대우를 약속하겠다는 삐라를 살포했다.
못 먹고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한 삶에 지친 쿠바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1등 공신인 미국을 증오하면서도 미국의 선전에 쉽게 넘어갔다.
우선은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이 전쟁은 졌다.
국제사회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쿠바가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싸워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쿠바군도, 임시로 소집된 민병대도 미군이 다가오면 준비해둔 백기를 꺼내 들거나 총 몇 발 쏘다가 냉큼 항복했다.
하바나의 경우 아직 카스트로 정권에 충성하는 지지자들의 저항으로 공략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생뚱맞은 결과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하바나에는 성조기가 게양되었고, 정부 청사에선 뒤통수에 양손을 댄 쿠바군 병사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하바나가 함락되기 전, 카스트로는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 육체가 산산조각났기에 신원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카스트로의 동료이자 혁명의 우상 체 게바라는 쿠바 남부의 방어를 맡았기에 카스트로보다는 오래 살았다.
그러나 수도가 함락된 이상 남부 역시 점령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미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체 게바라는 아이티로의 탈출을 꾀했다.
하지만 그를 아이티까지 태워다 줄 선박은 없었다. 미군이 해안가에 연일 공습을 가해 배란 배는 죄다 파괴해버린 탓이었다.
무엇보다 아이티 역시 미국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체 게바라의 망명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체 게바라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변장하여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지만, 부하의 밀고로 생포될 위기에 처했다.
미군에게 생포되기 전, 그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지참하고 있던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었다.
11월 1일.
백악관은 ‘쿠바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역사대로라면 핵미사일 위기로 세계를 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쿠바는 미국에 이렇다 할 피해도 주지 못하고 정복되는 신세를 맞이했다.
히틀러가 만든 새로운 세상의 아이러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