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0)
침공
* * *
4군단이 무너졌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에리얼이 신도를 다그쳤다.
“무너졌다니요! 더 자세히 설명하세요! 악마가 침공했다는 건가요?”
“그게. 저도 자세히는…….”
“일단 정보는 확실한 거죠?”
“예. 안 그래도 지금 그 얘기 때문에 도시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입술을 지그시 깨문 에리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당장 평의원을 소집해야겠네요.”
에리얼은 급하게 걸음을 옮기기 전. 데일을 보며 물었다.
“잠시 신전을 지켜주시겠어요?”
“알겠다.”
데일도 이 갑작스러운 소식에는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소문에는 과장이나 거짓이 많이 섞이기 마련이다.
에리얼이 평의원들과 회의를 가진 뒤 돌아오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고마워요. 그럼 다녀올게요.”
에리얼은 호위 몇 명과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잠시 동작을 멈췄던 데일은 다시 검을 쥐었다.
옆에서는 여전히 스켈레톤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주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한 태도다.
데일이 툭 물었다.
“나는 데일이오. 그쪽은 이름이 뭐요.”
그래도 가르침을 청하는 입장인데, 조금 늦은 것 같지만 예의도 좀 차리고, 통성명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에리얼을 통해 이 스켈레톤이 루드비히라는 이름을 지녔다는 건 알았지만, 그걸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백만 백 이십일. 백만 백 이십이.”
“……별로 말할 생각이 없나 보군.”
데일은 대화를 포기했다.
그리고 루드비히와 똑같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백만 번을 채우려면 어지간히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물론. 체력에는 문제가 없다.
데일에게는 언데드 특유의 무한한 체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긴 시간을 한 가지 동작에만 집중한다는 건, 여러모로 정신력을 잡아먹는 짓이었다.
‘어쨌든 따라보는 수밖에.’
데일은 이 스켈레톤에게서 특별함을 느꼈다.
실력이 올라 보는 눈이 생긴 데일이 느끼기에 이 스켈레톤은 예사롭지 않았다.
에리얼이 부르는 칭호도 무려 마스터가 아닌가.
데일은 차분히.
그리고 정확한 동작으로 한 번 한 번 검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렀다.
회의가 상당히 길어지는 모양이었다.
가끔 신전에 신도들이 찾아왔지만, 검을 휘두르는 스켈레톤과 흑기사를 보고는 흠칫 놀라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렇게 반나절이 흘렀다.
데일이 검을 휘두른 횟수가 만 단위에 접어들었을 즘.
에리얼이 돌아왔다.
그녀는 몹시 피로한 기색이었다.
“회의는 끝났나?”
“예. 오늘은요. 앞으로 매일같이 회의해야 할 판이지만요.”
데일은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에리얼을 쳐다보았다.
에리얼이 말했다.
“4군단이 무너졌어요. 악마 아르구르가 군세를 이끌고 기습했다는군요. 얼핏 보기에도 1만이 넘는 숫자였다고 해요.”
“기습이라…… 잘 이해가 안 가는군.”
전선의 장군들은 유능하다.
그들은 수십 년간 악마의 군세를 막아온 역전의 지휘관이다.
혹자는 그들이야말로 제국의 멸망을 막아온 진정한 영웅들이라고 했다.
그런 장군이 겨우 기습 따위에 무너졌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의문에 에리얼이 착잡한 얼굴로 답했다.
“배신……이 있었대요.”
“배신? 악마의 추종자를 말하는 건가?”
“아마도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군단에 소속된 지휘관 절반이 배신했다고 하더군요.”
“……절반이라니.”
터무니없는 숫자였다.
전선의 군인들이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인 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더 썩어있었다.
“군단장 휘하 작전 참모가 반란을 주동했다고 합니다. 군단장은 습격을 받고 중상에 잃었지만, 남은 병사들을 수습해 가까스로 퇴각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요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후퇴한 병사들은 다시 후방으로 이동해 전열을 재정비했다지만, 요새를 잃은 건 큰 피해다.
이제 4군단은 더 허술한 성벽과 적은 병력으로 악마의 군세를 막아내야 한다.
폭풍 앞의 촛불.
그리고 4군단이 무너진다는 건 지금의 아슬아슬한 평화가 깨진다는 의미다.
악마의 군세가 대륙을 휘젓기 시작하면 이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상부에서 평의원 측으로 명령이 하달되었어요. 지금 당장 3천의 병력과 보급품을 보내 4군단 쪽으로 보내라고.”
“황실 기사단이랑 마탑은?”
“이미 준비하고 있어요. 무려 기사단장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나섰다는군요.”
황제로서는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당장 3천의 병력을 어떻게 모을 생각인가?”
“그게 곤란한 부분이에요. 당장 이레네에 있는 용병을 모두 끌어모은다 해도 천 오백 명이 될까요? 평의원들이 각각 거느린 사람들을 다 합쳐도 당장은 힘들겠죠. 결국…….”
“징집해야겠군.”
당장 숫자를 맞추려면 시민들을 강제로 징병하는 수밖에 없다.
농부 나부랭이들에게 창 한 자루 들려준다고 무슨 효과가 있냐 물을 수 있지만, 숫자는 그 자체로 힘이다.
적어도 아군의 사기를 올려줄 수는 있다.
게다가 일단 전투를 몇 번 치르고 살아남다 보면, 어중이떠중이도 베테랑 전사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은 죽어서 시체가 되겠지만…….
“시민들을 징집하는 임무는 경비대장 카달이 맡기로 했어요. 저희 신도들도 많이 참전할 테고요. 그러니…….”
“함께해달란 말인가?”
에리얼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데일은 소식을 듣자마자 참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이 적당한 때인 것 같군.’
전선은 성장을 이루기 가장 좋은 곳이다.
언제나 강력한 적이 우글거리는 곳이니만큼, 살아만 남는다면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데일은 그간 전선에 가는 걸 꺼려했다.
‘너무 위험하지.’
언제 악마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이니만큼, 운이 나쁘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
데일은 여러모로 부족하기에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는 없다.
영웅들에 대한 흔적을 찾기 위해서라도, 데일은 언젠가는 전선으로 가야 했다.
데일은 이제 충분히 강하다.
실력자들과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
어쩌면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가장 좋은 시기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 기사단장도 참전한다.’
기사단장은 대륙에서 가장 강한 실력자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그가 이끄는 황실 기사단도 개개인이 강력한 힘을 지닌 기사다.
설령 악마랑 싸우게 되더라도, 충분히 해볼 만했다.
“신도들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못 하겠다. 그렇게 호락호락한 전장은 아니니까.”
“예.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곳이니까요. 그래도…… 감사해요.”
“별로 감사할 필요는 없다.”
그럴 필요가 있고, 능력이 되니 싸우러 갈 뿐이다.
4군단이 완전히 무너져 대륙이 엉망이 되어버린다면 데일도 여러모로 곤란했다.
“필요하면 다시 불러라.”
“데일 경은 뭘 하시려고요?”
데일은 검을 들며 말했다.
“아직 백만 번. 못 채웠다.”
그러고는 루드비히 옆에서 우직하게 검을 휘둘렀다.
* * *
열흘.
3,000명을 징집하고, 자금을 마련하고, 보급품을 준비하는 데에 주어진 시간이다.
평의원들은 가진 모든 역량을 끌어내 시간 내에 그 모든 일들을 완수해내 그 능력을 입증해보였다.
그 시간 동안 데일은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천천히 집중해 휘둘러야 했던 검도, 어느 순간부터는 빠르게 휘둘러도 그 궤적에 흔들림이 없었다.
당장 그게 검술에 큰 영향을 주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데일은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췄다.
“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 그리고 백만.”
후욱!
데일은 마지막으로 검을 내리긋고, 검을 내려놓았다.
솔직히. 열흘 내내 밤낮없이 검만 휘두르는 건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었다.
중간에 때려치우고 옆에 있는 스켈레톤의 턱을 후려치고 싶었던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데일은 끈기와 정신력으로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그는 잠시 만족감을 느끼다, 루드비히에게 물었다.
“백만. 채웠소. 이제 뭘 해야 하오?”
“삼백만 이천이십이. 삼백만 이천이십삼.”
“이봐. 백만 채웠다고.”
“…….”
검을 휘두르는 걸 방해하기 위해 데일이 앞으로 가서 서자, 그제야 루드비히가 고개를 들었다.
그 타오르는 안광으로 데일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건가?’
당최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는 상대다. 아니. 애초에 감정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그때. 루드비히가 옆으로 슬쩍 비켜서더니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후웅!
특별한 부분도. 무언가 숨은 비밀도 없는 평범하고 정석적인 횡베기였다.
루드비히가 툭 내뱉었다.
“이백만.”
“……혹시 숫자밖에 말할 줄 모르시오?”
그러거나 말거나 루드비히는 다시 돌아서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잠깐 사이에 숫자를 까먹었는지, 검을 휘두르며 다시 1부터 셌다.
‘혹시 잘못 생각했나?’
데일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반쯤 감에 의지해 이 스켈레톤에게 가르침을 구했지만, 이게 시간낭비일지 아닐지. 솔직히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데일은 상념을 털어냈다.
조부는 데일에게 그렇게 쉽게 포기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일단 전쟁에 갔다 온 뒤 다시 휘두르겠소.”
루드비히는 대꾸 없이 검만 휘둘렀다.
데일은 그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뒤, 신전을 나섰다.
도시는 전쟁 탓에 난리였다.
“이곳 이레네도 머지않았다! 멸망이 오고 있다!”
“괜찮아. 여긴 난공불락이야. 황제 폐하께서 이미 제도가 악마에게 무너지는 걸 겪었는데, 설마 또 무너지게 놔두겠어? 그냥 술이나 마셔.”
“곧바로 다음 징병이 있을 거래. 이번에는 못해도 5,000명은 뽑는다는군. 연줄이 있으면 미리미리 돈을 먹여놔. 끌려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앞거리 진저네는 세 아들 중 둘이나 끌려갔대. 불쌍도 하지. 우리도 빨리 도시를 떠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종말을 외쳐대는 미치광이들.
자기 일이 아니라 여기며 애써 느긋한 척하는 한량들.
징병을 피해 보따리를 싸 들고 어디론가로 도시를 나서는 가족들까지.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었다.
데일은 그런 민감한 분위기를 살피며,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외곽구역 경비대의 건물이었다.
내일 출정이 있으니만큼, 미리 지휘관급 인물들이 모여 회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 그곳에 데일도 초청받았다.
‘나는 딱히 지휘관도 아닌데.’
솔직히 귀찮았지만, 그래도 참석하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데일이 한동안 속해있을 부대를 어떤 자들이 이끄는지를 미리 파악해둬야 운신하기 편했다.
“아. 오랜만이군.”
회의실로 데일이 들어서자 외곽구역 경비대장. 드워프 카달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이번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병사를 징집해 전선으로 보내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데일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카달과 악수했다.
그리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안 왔소?”
“그대가 첫 번째야.”
“다들 바쁜가 보오.”
“그건 아니고…… 체면 문제지.”
“체면?”
한숨을 푹 내쉰 카달이 말했다.
“보면 알 걸세.”
약속했던 시각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하나둘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카달은 정중히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칼츠 남작.”
“반갑네. 경비대장.”
“반갑습니다 론 백작.”
“음! 경비대장. 수고가 많네.”
들어오는 이들은 모두 귀족이었다.
실제로 군 지휘를 해본 경험이 있는 나름대로 실력 있는 자들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하나 같이 카달을 하대했다.
심지어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아니고 경비대장이라는 직책으로만 불렀다.
‘명백히 깔보는군.’
외곽구역의 평의원 따위와 귀족인 자신들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는 듯.
노골적으로 하대했다.
하지만 카달은 익숙한 듯. 해탈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데일은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을 알아챘다.
‘뒤쪽에 오는 자일수록 신분과 위세가 높다.’
약속에 시간에 늦는 것도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걸까?
그렇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제국의 위기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런 여유라니.
심지어 이들의 얼굴에는 별로 위기감도 없었다. 마치 이번 전쟁 따위, 별걱정이 없다는 듯이 여유롭기만 했다.
그런 귀족들이 하나둘 모이고.
제법 거물로 보이는 귀족이 한 명이 천천히 들어섰다.
무려 약속시간에서 1시간이나 늦은 시각이었다.
“반갑습니다 빅토르 백작.”
빅토르 백작이라 불린 사내는 카달의 인사에 고개만 까딱이는 걸로 대답했다.
미리 와 있던 귀족들이 그런 백작에게 개미떼처럼 다가왔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허허. 빅토르 백작께서 함께해주시면 악마고 뭐고 걱정이 없습니다.”
“애초에 백작께서 전선의 지휘를 맡아주셨다면, 4군단이 무너질 일도 없었을 텐데요. 하여튼 군단장이라는 것들이.”
자기한테 다가와 아부를 떨어대는 귀족들을 향해 빅토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그의 시선이 멀뚱히 선 데일에게서 뚝 멈췄다.
빅토르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품에 쥐고 있던 은 고리에 기도를 한차례 읊은 뒤, 다른 귀족들에게 말했다.
“왜 흑기사 따위가 이곳에 있는 거지? 저자가 지휘하는 부대가 있었나?”
다른 귀족들은 당황했다.
그들 역시 왜 데일이 이곳에 와 있는지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이상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대체 누가 저놈을 초대한 거죠? 빅토르 백작께 허락도 받지 않고 말이죠!”
“애당초 이교도란 믿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4군단 내부에 배신자들도 분명 이교도였을 겁니다.”
귀족들은 빅토르의 기분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데일을 향해 대놓고 험담했다.
빅토르 백작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는 손에 은 고리를 굳게 쥐었다.
‘신앙심이 강한 귀족이군.’
백작은 우위가 확실하다 여겼는지, 데일에게 다가와 노성을 터트렸다.
“여기는 너 같은 이교도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나도 초청을 받고 온 것뿐이오.”
감히 데일이 말대꾸하자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떤 경우 없는 자가 너 같은 놈을 불렀단 말이냐!”
“그 경우 없는 자가 나다.”
“!!”
귀족들이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출입구에는 기사단장이 제자와 에른스트를 거느리고 서 있었다.
귀족들은 얼굴에 당황스런 감정이 떠올랐다.
기사단장은 말했다.
“내가 불렀다고. 뭐. 불만 있나?”
그 당당한 기세에 빅토르 백작은 침음을 삼켰고, 다른 귀족들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모두가 기사단장에게 압도당한 모습.
하지만 데일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제일 지각했으면서 왜 이렇게 당당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