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1)
침공
* * *
사실 기사단장은 당당할 만하긴 하다.
이레네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집단인 황실 기사단을 이끄는 자이기도 하고, 지금은 새로 생긴 친위대의 단장직을 역임하고 있었다.
설령 1시간이 아니라 반나절을 지각했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위치인 것이다.
“데일 경은 그간 많은 업적을 쌓아왔고, 악마랑 직접 겨뤄본 경험도 있네. 경은 이번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걸세.”
빅토르 백작은 언짢은 얼굴로 대꾸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부대를 지휘해 본 경험이 있소. 경험에서는 우리가 부족할 게 없소.”
“빅토르 백작. 직접 악마와 검을 마주댄 적이 있었나? 만약 그랬다면, 자네는 백작이 아니라 지금쯤 후작위를 달고 있었겠지.”
당연히 빅토르는 악마와 직접 혈투를 벌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악마의 군세를 상대로 부대를 지휘해본 경험뿐.
백작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전투와 전쟁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오. 그리고 내가 듣기로, 저 흑기사가 상대한 악마는 반쪽짜리라고도 하기 민망한 수준이라 들었는데? 그렇지 않나?”
백작은 동의를 구하듯, 다른 귀족들을 둘러보았다. 옆에서 지원 사격을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귀족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권력의 실세이자, 무력으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사단장이다.
검성을 상대로 당당히 의견을 낸다는 건 닳고 닳은 귀족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반쪽짜리라는 이유로 평가절하하기에는 악마란 너무 두려운 존재였다.
“쯧.”
상황이 여의치 않은 점을 알아챈 빅토르 백작이 혀를 찬 뒤.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알았으니, 이제 회의를 시작해주시오! 다음부터는 나에게 미리 언질을 해주시고. 그 정도 예의를 바라는 게 잘못은 아닐 것 같소.”
“그리하도록 하겠네.”
기사단장은 어깨를 으쓱였고, 백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은 고리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 대화에서 데일은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우선. 이 자리에 주도권은 누가 뭐라 해도 기사단장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귀족들이라고 기사단장의 말에 완전히 고분고분 따르는 건 아니라는 것.
‘특히 빅토르란 자는 권력이 강한 편인가 보군. 기사단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고.’
썩 좋은 소식은 아니다.
지휘관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으면, 자칫 위급할 때 의견이 갈리기 십상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법이니 말이다.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일단락되고.
기사단장이 데일에게 다가왔다.
“잘 와주었네. 저들이 자네에게 벌인 무례는 내가 대신 사과하지. 귀족들이란 게 원래 텃세가 심하거든. 특히 빅토르 저 자는 신앙심이 깊어도 너무 깊고.”
“괜찮소. 그리고 무례라 치면 회의시간에 가장 늦은 사람이 더 무례가 아닌가 싶긴 하오.”
데일이 지각한 걸 꼬집자 뒤에서 듣고 있던 에른스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제자가 불같이 화를 냈다.
“감히 단장님께 무슨 망발을……!”
하지만 기사단장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맞는 말이야. 늦으면 사과하는 게 당연한 상식이지. 이해해주게. 변명 같겠지만, 워낙 일이 바빠 눈코 뜰 새 없었다네.”
“알겠소.”
데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눈앞의 사내가 다른 귀족들처럼 자기 권세를 과시하고자 일부러 지각했을 것 같지는 않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하지!”
탁상을 쿵! 내리쳐 이목을 모은 기사단장이 외쳤다.
그가 신호를 보내자, 경비대원들이 커다란 지도와 그 위에 놓을 나무 모형을 가져다 놓았다.
카달이 경비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아무도 근처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해. 너희들도 문에서 떨어지고. 어기는 놈이 있다면 목을 베도 좋다.”
“예!”
보안을 철저히 하기 위한 조치.
그 모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기사단장이 카달에게 부탁했다.
“카달.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겠나? 부탁하네.”
“예! 알겠습니다!”
다른 귀족과 달리 정중하게 대해주는 기사단장을 향해 큰소리로 대답한 카달이 입을 열었다.
“현재 4군단의 잔존 병력은 후방으로 후퇴해, 이리스 성에서 농성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악마의 공세는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머지않아 다시 공세가 시작될 겁니다.”
“그들이 얼마나 버텨줄 거라 생각하는가.”
“군단장은 유능한 인물입니다만…… 지금은 큰 부상을 입어 제대로 된 지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가뜩이나 병력도 줄어든 4군단만으로는 막아내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이리스 성이 무너지면…….”
그다음부터는 대륙으로 통하는 길이 훤히 뚫리고 만다.
그 바로 뒤에 있는 카엘름 성은 물론, 다른 성과 도시들도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덤덤히 보고를 들었다.
“우리 쪽 준비는 어떻게 다시 가고 있는가?”
“우선 용병을 팔백. 귀족들과 평의원이 거느린 사병을 합쳐서 300. 나머지 인원은 빈민가와 외곽구역에서 징병했습니다.”
“반대가 심했을 텐데 이리 빨리 사람을 모으다니. 대단하군.”
“아닙니다. 군대에 가면 굶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자원한 사람들이 많아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1차 지원군은 이미 준비가 끝났으며, 2차 지원군은 또다시 사람들을 징병해 2개월 내에 보내겠다고 카달은 말했다.
기사단장이 물었다.
“병력의 상태는 어떤가?”
“용병과 사병은 평균적으로 수준이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징집병 중에는 이제 처음 창을 쥐어본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쯧. 어쩔 수 없군.”
열흘 만에 모은 병사다.
당연히 기초적인 훈련을 할 시각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최대한 빨리 이리스 성으로 가는 것이겠군. 안 그렇나?”
“예. 이미 카엘름과 중부의 영주들이 지원 병력을 보냈지만, 역부족일 겁니다.”
“골치 아프게 됐어.”
빠른 속도로 행군한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숙련된 병사들도 중간에서 나자빠지기 십상인데, 하물며 이제 갓 병사가 된 이들이라면 더더욱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게다가 상대도 문제였다.
“아르구르는 악마 중에서도 특히 비열하고 잔인한 놈이야. 심지어 교활하기도 하지. 우리가 순순히 이리스 성에 가는 걸 보고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으음. 확실히 그 부분은 저희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빅토르가 끼어들었다.
“듣다 보니 이거. 기사단장께서는 너무 걱정만 많으신 것 같소.”
“음?”
“행군 도중 낙오자가 걱정된다면, 그냥 몇 놈을 채찍질하면 다 해결될 문제요. 대부분은 근성이 부족하거나 엄살을 피우느라 뒤처지는 것뿐이니 호된 꼴을 보면 이를 악물고서라도 걸을 것이오.”
기사단장이 한숨을 삼키며 물었다.
“……그리하면 사기가 땅에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안 하나?”
“어차피 병력의 주력은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정예병들이오. 그들은 그저 숫자 채우기에 불과한데, 사기가 떨어지든 말든 무슨 상관이오?”
빅토르가 이어 말했다.
“게다가 악마가 수작을 부린다? 그렇다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오? 놈이 병력을 보내 방해해온다면 우리 용맹한 병사들로 분쇄해버리면 될 뿐이오.”
“…….”
“내 가만 보니, 기사단장께서는 걱정이 너무 많은 게 문제요.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으면, 사내답게 마음을 크게 먹으시는 게 어떻겠소.”
“하아. 조언 고맙네.”
기사단장이 마지못해 대답하자, 뒤에 있던 에른스트에게 데일이 물었다.
“군대 지휘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것치고는 말하는 게 엉성한데.”
에른스트 대신 옆에 있던 기사단장의 제자가 답했다.
“몬스터 토벌 두어 번. 산적 토벌 서너 번. 3군단에서 병력을 지휘한 경험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였고, 그마저도 2년을 못 채워서 이레네로 돌아왔어. 듣기로는 3군단장이 제발 돌려보내라고 황제 폐하께 직접 부탁했다는데.”
“그럼 왜 이런 중요한 전투에 저런 자를 보낸 거지?”
제자는 경멸 어린 눈으로 빅토르를 쳐다보며 답했다.
“귀족들 사이에서도 힘이 세고. 헌금을 많이 내서 교단의 지지도 받고 있고. 이번 원정에도 많은 자금을 대었으니까. 이번 전쟁에서 공을 올리고 작위를 올려 받으려는 속셈이겠지.”
권력을 위해 참여했다는 걸까?
좋지 않은 소식이다.
데일이 보기에 저 빅토르란 작자는 군대를 말아먹을 상이었다.
다만 부대의 주도권이 어디까지나 기사단장에게 있다는 건 안심이었다.
기사단장이 귀찮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잡소리는 그만하고. 세부적인 사항을 논의하겠네.”
“자, 잡소리?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요?”
“쉿.”
기사단장은 검지를 들어 입에 댄 뒤,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순간적으로 뿜어진 살벌한 기운에 빅토르는 뱀 앞에 마주 선 생쥐처럼 굳어버렸다.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기사단장이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했다.
“자 그럼 각자 좋은 의견이 있다면 가감 없이 말해주게. 이번에 활약한다면, 내 직접 황제 폐하께 말씀드릴 테니. 부디 열심히 해주게.”
황제를 들먹이자, 빅토르의 눈치를 살피던 귀족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어. 그럼 저부터 의견을 내보겠습니다. 우선 병력을 분리해서, 정예병부터 빠르게 이리스 성으로…….”
“기습에 대한 문제는 실력 있는 척후를 둔다면…….”
다른 귀족들은 나름대로 경험이 있는 듯. 각자의 생각을 내놓았다.
그 모든 의견을 집중해 듣던 기사단장이 데일에게 물었다.
“자네는 뭐 괜찮은 생각 없나.”
데일은 잠시 고민했다.
군 지휘에 대해 경험이 풍부한 건 아니다. 하지만 데일에게는 정보가 있다.
바로 악마인 아르구르에 대한 정보.
‘이번 전쟁은 꼭 이겨야 해. 미리 정보를 풀어두는 게 낫겠군.’
데일이 입을 열었다.
“아르구르에 대해 말하고 싶소.”
“오오. 악마에 대한 이야기라. 어디 말해주게.”
“알겠소.”
다른 귀족들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너한테 악마에 대한 정보가 있다 해봤자 얼마나 있겠어.’
‘기사단장한테 잘 보이려고 용을 쓰는군.’
‘이교도 놈이 조용히나 있을 것이지.’
악마에 대한 정보는 귀하다. 악마와의 싸움은 주로 전선에서 벌어지기에, 교단이나 귀족들이 아니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도 힘들다.
기사단장도 말해달라고 얘기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정보가 있을 리가.’
있을 리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기사단장도 그저 데일의 체면을 생각해 그에게 설명을 부탁한 것뿐이다.
그런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데일이 입을 열었다.
“조금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소.”
“걱정 말고 마음껏 해보게.”
고개를 끄덕인 데일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설명을 시작했다.
데일은 아르구르의 생김새부터 그가 사용하는 기술 목록.
놈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 놈의 하수인이 지닌 힘. 아르구르의 군세의 병종. 계급표.
아르구르가 지닌 까다로운 점. 약점. 숨겨진 약점. 더욱 깊숙이 숨겨진 약점.
게임 속에서 숱하게 상대해오며 쌓아온 정보를 아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하나부터 끝까지 전부 털어놓았다.
어디 해볼 테면 해봐.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던 귀족들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설명한 데일은 뒤늦게 아차했다.
‘이런. 너무 설명에만 열중했군.’
사람은 자기 지식을 뽐내는 걸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데일도 사람이었다.
한때 깊게 빠져들었던 분야였던 만큼, 데일은 자기도 모르게 너무 설명을 길게. 그리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까지 말했다는 걸 깨달았다.
뒤늦게 데일을 말을 멈추고, 주위에 사과했다.
“미안하오. 너무 내 얘기만…….”
데일은 뒤늦게 주위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귀족들이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사단장이 그런 데일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혹시 자네…… 아르구르 본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