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2)
침공
* * *
“혹시 자네…… 아르구르 본인인가?”
아니. 아르구르 본인도 자신에 대해 이렇게 상세히 알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귀족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악마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다니?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빅토르가 외쳤다.
“아는 척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막 지어내는군.”
“어허. 기껏 의견을 내준 경께 함부로 말하지 말게.”
기사단장이 빅토르를 제지했다. 하지만 그 역시 반신반의한 표정이었다.
“자네의 의견은 확실히 흥미롭군.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큰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조금 의아한 게…… 대체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었나.”
황실 기사단장인 자신조차 모르는 정보를 데일이 가지고 있다니,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데일도 조금 곤란해졌다.
‘뭐라 답하지.’
정보의 출처를 밝힐 수는 없다. 게임하다 알았어요. 라고 답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여기서 그럴듯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저들은 데일을 허풍쟁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건 상관없다. 하지만 이번 전투의 승산을 조금이라도 올리려면, 데일의 말을 믿어줘야 했다.
데일의 변명을 고심하고 있던 그때.
에른스트가 조심히 물었다.
“혹시. 밤의 신전에서 들은 거 아닐까요?”
“음?”
기사단장과 귀족들이 에른스트의 말에 반응했다.
“밤의 신전이라?”
“확실히. 말이 되는군. 악마들을 굳이 빛이냐 어둠이냐 따지면, 어둠에 가까우니. 밤의 신도들이 더 잘 아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지.”
“전선에는 밤의 신도들이 더 많다고 하니…….”
이들에게 밤의 신도란 꺼림칙한 존재고, 악마는 더더욱 꺼림칙한 존재다.
꺼림칙한 이들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다분히 모욕적인 생각.
하지만 데일에게는 기회였다.
‘이거다.’
데일이 곧바로 긍정했다.
“맞소. 여신께서 직접 알려주신 정보요.”
“오오 역시!”
“밤의 여신이 직접 말해주다니. 이번 싸움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군.”
“신이 말했다면 믿을 수 있다.”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데일은 이제 교의 상징과도 같은 기사였고, 그런 흑기사가 여신의 이름을 팔아먹었으리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중에 신전에 가면 자기 이름을 그런 식으로 팔아먹지 말라고 화를 내겠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기사단장도 크게 기뻐했다.
“하하! 밤의 여신께서도 이 전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니. 이거 든든하군. 무척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여신께 전해주게.”
“……기도로 잘 얘기해보겠소.”
어쨌거나 데일이 전해준 정보는 큰 가치가 있었다.
아르구르가 부리는 병력의 특성을 아는 것만으로도 여러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데일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귀족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여전히 껄끄럽긴 했지만, 무려 여신의 말씀을 직접 듣는 기사란다.
아무리 이교의 여신이라도 신은 신. 건방지던 귀족들은 데일을 정중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 빅토르였다.
그는 교단의 상징인 은 고리를 굳게 쥐고 중얼거렸다.
“신이시여. 저 이교도가 건방지게 으스대고 있습니다. 당신의 어린 양에게도 말씀을 내려주소서.”
당연하지만 아무런 말씀도 내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회의는 꼬박 하루가 진행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다음 날. 지휘관들이 이끄는 황실 기사단과 마탑의 전쟁 마법사들. 그리고 3,000의 병력이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레네를 빠져나갔다.
* * *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부대의 행군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이제 갓 징집되어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병사들이다.
봄이 오기 전 늦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낙오자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지휘를 맡은 지휘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런 병사들을 격려했다.
“여기서 혼자 낙오되면 얼어 죽거나 몬스터 밥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이 악물고 버텨!”
“조금만 더 있으면 저녁이다! 고기가 들어간 따뜻한 수프가 기다리고 있다!”
“이레네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해! 낙오자한테는 유족 보상금도 안 나온다!”
협박. 회유. 가족애까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사용했다.
그런데도 낙오자가 꾸준히 나왔다.
기사단장은 혀를 찼다.
‘생각보다 더 심하군. 이래서 겨울에 전쟁하기가 싫은 건데.’
겨울이란 혹독한 계절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겨울에 군대를 무리하게 끌고 나온 장군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만 알아도, 겨울에 전쟁하는 게 할 짓이 못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상대는 악마.
저 먼 우주에서 찾아온 이 침략자들은 항상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짓만 골라 하곤 했다.
‘두꺼운 털 외투를 전부 보급했는데도, 낙오자가 많단 말이지.’
총지휘관으로서 병사들을 살피던 기사단장은 문득.
유독 한 부대에서만은 낙오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뭐지?’
기사단장은 즉시 그 부대의 지휘관을 확인했다. 평범한 귀족으로, 딱히 지휘관으로서 두각을 드러냈던 적이 없는 사내였다.
더더욱 의문이 든 기사단장은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그 부대로 말을 몰아갔다.
부대를 인솔하던 젊은 지휘관이 화들짝 놀라 예를 표하려 하자, 기사단장이 손을 휘저었다.
“아아. 괜찮네. 그냥 편하게 있게.”
“무,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자네 부대는 낙오자가 한 명도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뭔가 비결이 있나?”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하하. 겸손을 떨지 않아도 괜찮네.”
“아뇨. 정말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지휘관이 정색하며 말하자, 기사단장도 그제야 겸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 대체 왜 자네 부대만 낙오자가 없다는 건가?”
“그건…….”
지휘관이 뒤쪽을 힐끔 쳐다봤다.
대열의 최후미에는 흑기사와 그의 충실한 친구인 커다란 늑대가 걸어오고 있었다.
병사들은 그 흑기사를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조,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저 흑기사한테 잡아먹힐 거야.”
“흑기사한테 잡히면 영혼이 사로잡혀서 영원토록 고통받는데……!”
“영혼이 빼앗긴 시체는 저 늑대가 뜯어먹는다는구만!”
두려움.
저 흑기사의 주위에 흐르는 기운은 겨울바람 못지않게 소름 끼치는 구석이 있었다.
다가가고 싶지 않다는 그 두려움에 병사들은 힘든 것도 잊었다.
기사단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영혼이 사로잡힌다느니 시체를 늑대가 뜯어먹는다느니. 두 여신이 화해한 지가 언제건만. 여전히 저런 터무니 없는 소문이 퍼진단 말인가.”
사실. 아주 터무니없는 소문은 아니었다.
데일은 시체에서 잔혼을 거두었고, 하티는 남은 시체를 뜯어먹었으니까.
그때 퍼진 소문에 살이 붙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같은 사실을 모르는 기사단장은 무지렁이들이 헛소문 때문에 열심히 걸음을 옮긴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으으. 도저히 못 걷겠어.”
“얌마. 빠, 빨리 일어나. 멈춰서면 죽는다고.”
“하지만 다리가 안 움직이는데…….”
한 병사가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추운 날 다리를 혹사했더니, 근육에 무리가 간 모양이다.
근성이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병사의 얼굴에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돌리니 데일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리가 아픈가?”
“히, 히익! 죄송합니다! 바로 일어날 테니 목숨만은…….”
데일은 그런 병사를 번쩍 들어 올려서 어깨에 올렸다.
순간 자기를 잡아먹나 싶어서 버둥거리던 병사도 이내 진정하며 말했다.
“저. 저기.”
“다리가 괜찮아질 때까지만 업혀라.”
“괘, 괜찮습니다! 그러니 내려주셔도 됩니다!”
“아니. 너는 안 괜찮다.”
“괜찮으니까…….”
“늑대한테 잡아먹히기 싫으면 얌전히 있어라.”
데일 나름대로 병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농을 던졌다.
옆에서 걷던 하티도 크릉, 낮게 울며 맞장구쳤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데일의 의도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창백하게 질린 병사는 움직임을 멈췄다. 숨소리조차 작게 쉬었다.
데일이 요구한 ‘얌전함’을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다.
그 모습에 병사들은 두려워했고 더욱 이를 악물며 행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낙오자가 한 명씩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데일은 낙오자를 훌쩍 들어 올렸다.
그렇게 양팔에 두 명씩을 집어 들고도 낙오자가 더 나오자, 데일은 말했다.
“하켄. 너도 업어라.”
“겍. 제가요?”
“하티. 너도 한 명 정도는 업을 수 있지?”
하켄은 대놓고 싫은 기색을 내비쳤고, 하티도 불만스레 울었다.
하지만 데일이 한번 노려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순순히 낙오자들을 등에 업었다.
그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한 기사단장이 다가왔다.
“훌륭하군. 정말 훌륭해.”
“뭐가 말이오.”
“굳이 고생하는 이유가 뭔가. 꽤나 번거로울 것 같은데.”
“별로. 힘이야 남아도니 사람 서넛 업는 건 어려울 것도 없소.”
기사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세. 왜 이렇게까지 하냐 이거야.”
힘만으로는 황실 기사단의 기사들도 데일에게 못지않다.
하지만 그중에서 낙오자들을 직접 업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행군조차 제대로 못 해 뒤처지는 자들이다.
전투에도 큰 도움이 안 될 거고, 이런 하찮은 자들을 직접 업는다는 건 오만한 기사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다른 무엇보다 데일은 이런 수고를 들여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었다.
“자네는 지휘관도 아니고, 병사를 더 많이 데려간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지 않나. 굳이 수고할 이유가 있는가.”
데일은 기사단장의 말이 이해 안 되었다.
“살릴 수 있으면 살리고,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당연한 것 아니오? 이유 같은 게 왜 필요하오.”
“허. 당연하다라.”
기사단장은 주저 없는 데일의 답변에 크게 놀랐다.
이 흑기사가 여러모로 특별하고 특이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군.’
오히려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낙오자를 챙기라고 지휘관들을 타박하기나 했지, 정작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가.
기사단장은 데일에게 말했다.
“몇 개 이리 주게. 내가 같이 들겠네.”
“몇 개가 아니라 몇 명이오. 그리고 괜찮겠소? 지휘관으로서 위신이…….”
“괜찮으니 넘겨주게.”
본인이 괜찮다면야.
데일은 어깨에 메고 있던 병사 두 명을 넘겼다.
필사적으로 얌전히 있던 병사들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 이게 무슨.’
‘기사단장한테 업힌다고?’
군의 총지휘관에게 업히라니. 이건 이것대로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다.
병사들은 축 늘어져 기사단장에게 업혔다.
지켜보던 기사단장의 제자는 기겁했다.
“단장님! 뭐 하시는 겁니까!”
“아일라. 너도 좀 거들어라. 육체를 단련한 건 이럴 때 써먹으라고 한 거 아니었냐.”
“저는 검을 휘두르기 위해서 몸을 단련한 건데요?”
“그리고 우리가 검을 휘두르는 건 폐하와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지. 토 달지 말고 빨리 거들어 욘석아!”
제자인 아일라는 괜스레 데일을 흘겨보더니, 이내 낙오자 한 명을 등에 업었다.
그렇게 하니 기사단의 기사들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단장이 고생하는데, 단원인 자신들이 편하게 갈 수가 없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또 자기들만 고생할 수는 없는 법.
“너희도 좀 거들어라.”
황실 기사들이 눈치를 주자, 친위대나 용병들이 더는 가만있을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내리 갈굼.
힘이 되는 자는 낙오자를 들쳐없고, 그럴 여력이 안 되는 이는 병사들을 부축했다.
그로 인해 낙오자가 크게 줄었으니 제국 역사에 유례없는 따뜻한 행군이 되었다.
갑자기 고생하게 된 이들은 속으로 데일을 욕했지만 말이다.
‘괜히 나서 가지고는 우리까지…….’
물론. 그걸 직접 말할 정도로 간 큰 자는 없었다.
다른 일반 병사들은 내심 데일에게 감사했다. 이제 한 겨울 벌판에 버려져서 죽을 일은 없어졌으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크게 놓였다.
어쨌건, 데일이 만들어낸 작은 변화 덕분에 낙오자는 크게 줄었다.
자연히 부대의 행군 속도도 빨라졌다.
그렇게 순조롭게 목적지인 이리스 성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어느 벌판. 부대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때, 정찰을 나갔던 척후가 되돌아왔다.
척후는 당황한 얼굴로 보고했다.
“적습입니다! 아르구르의 별동대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별동대라.”
전선이 뚫린 여파로 아르구르의 부대가 대륙으로 흘러들어왔다.
대부분은 이리스 성에 집중되어 있지만, 일부 부대는 후방을 파고들어 마을을 부수고 보급부대를 습격했다.
아무래도 그 별동대가 이번에는 이쪽을 목표로 삼은 듯했다.
적습이라는 말에 병사들이 술렁거렸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
“얼마나 되는데?”
“오, 오천입니다!”
“오천?”
“예!”
“으음.”
기사단장이 몸을 풀며 말했다.
“얼마 안 되는군.”
“예?”
“식후 운동 정도밖에 안 되겠구만. 선봉대는 내가 맡겠다.”
그러고는 데일을 향해 말했다.
“아. 자네도 나랑 같이 선봉이야.”
“……나 말이오?”
“그래. 고맙다는 말은 됐네.”
아무래도 기사단장은 낙오자를 업어준 이후로 데일이 진짜로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전투의 선봉이라는 대단히 명예로운 자리를 덜컥 쥐여준 것이다.
‘기사단장이랑 함께 나란히 선봉에 설 수 있다니!’
‘왜 저런 놈에게.’
기사들이 질투의 감정을 드러냈지만, 당사자인 데일은 투구만 긁적였다.
‘별로 안 고마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