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3)
침공
* * *
데일은 굳이 기사단장과 선봉에 서고 싶지는 않았다.
기사단이 적군 헤집어 놓으며, 뒤늦게 달려들어서 정리하는 게 훨씬 쉽고 간단하다.
하지만 지금 데일은 군에 속해있다.
명령에는 따라야 한다.
“모두 준비하게.”
기사단장의 지시에 지휘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방패병을 앞세우고, 병사들의 진형을 살폈다.
징집병들은 제대로 대열조차 못 이룰 정도로 형편없었기에 용병과 병사들을 앞에 세워야 했다.
이번 전투에서는 징집병들이 도망만 안 쳐도 다행이었다.
“악마의 군세…… 씁. 설마 다시 제 발로 전선에 돌아갈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하켄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데일이 그런 하켄에게 말했다.
“에스델을 보호하는 데에 집중해라. 하티, 너도. 자칫 난전이 되면 위험할 수도 있어.”
만약 징집병들이 겁에 질려 도망친다면 대열이 붕괴하게 된다.
진형을 갖추지 못한 군대는 더 이상 군대가 아니다.
개싸움이 벌어질 것이고, 그런 난전 때 가장 위험한 게 바로 사제나 마법사였다.
“예. 뭐. 데일 경도 조심하십쇼.”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듯한 표정과 달리 에스델은 걱정이 가득했다.
“악마의 군세가 오천…… 상대는 악마의 하수인들이에요. 부디 무리하지 마세요.”
“걱정 마라. 기사단장도 있으니까.”
에스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적이라도 걸어줄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이련만.
빛의 축복은 데일에게는 도리어 독이었다.
볼일은 마친 데일은 대열의 선두로 갔다.
기사단장과 황실 기사단원들은 마갑을 씌워놓은 군마에 올라 돌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데일이 가까이 다가가자, 군마들이 불안해하며 푸르르 투레질했다.
훈련받지 않은 말이었다면 이미 놀라서 달아났을 것이다.
기사단장이 말했다.
“음. 자네는 말이 따로 없나? 원한다면 내가 한 마리 내어줄 수 있네.”
“괜찮소.”
데일은 배낭을 열어 미리 챙겨온 뼛조각들을 바닥에 흩뿌렸다.
짐승의 뼈나 몬스터의 뼈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데일은 정신을 집중했다.
‘해골마 소환.’
마력이 빠져나가 뼛조각들에 깃들었다.
뼛조각은 두둥실 허공에 떠오르더니 이내 자기들끼리 얽히고 합쳐져 말의 형상을 이루어냈다.
―캬아아아아!
해골마가 푸른 안광을 불태우며 기괴하게 울부짖었다. 그 소름 끼치는 울음에 주위에 있던 군마가 깜짝 놀라 발광했다.
기사단장은 미묘한 얼굴을 했다.
“개성적으로 생긴 친구군. 뼈밖에 없어서 잘 달릴까 모르겠어. 하하하!”
기사단장의 농담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다시 표정을 되돌려 정색한 기사단장이 말했다.
“그럼 놈들이 슬슬 오는 것 같으니 준비하게.”
벌판 저 너머가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늘 역시 먹구름이 낀 것처럼 검다.
갑자기 비가 오는 걸까? 아니다.
박쥐처럼 날개를 펄럭이는 두 발 달린 괴수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긴장했다. 이 중에서는 악마의 군세를 처음 보는 이들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예쁘다…….”
악마의 하수인 특유의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은 저 멀리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이쪽에서 보면 검은 도화지에 수많은 별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몇몇 감성적인 이들이 악마의 군세를 ‘별의 군대’라 부르는 이유였다.
기사단장이 말했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공중 병력을 견제해주시게. 나머지 지휘관들은 우선 우리가 몇 차례 헤집을 테니, 내가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가만히 있으면 되네.”
“어. 이 정도 숫자로 저 대군에 돌격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젊은 지휘관 하나가 물었다.
이곳에 있는 황실 기사단은 그래봤자 100여 명. 반면에 상대는 5,000이 넘어가는 규모다.
아무리 황실 기사단이 위명을 떨친다지만…….
하지만 옆에 있던 지휘관이 말렸다.
“가만히 있어. 보면 알 거야.”
“하지만…….”
빙그레 웃은 기사단장은 제자인 아일라와 에른스트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주위 상황을 유심히 살피고, 혹여나 있을 상황에 대비해라.”
“알겠습니다.”
“특히 에른스트 부단장. 너는 친위대를 이끄는 몸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멍청하게 굴면 나랑 또 개인 훈육을 해야 할 거야. 알겠지?”
“예, 예…….”
돌격에 함께하지 못해 조금 불만스러워하는 아일라와 ‘개인 훈육’이라는 말에 주눅이 든 에른스트가 대답했다.
그사이에도 적은 빠르게 전진해왔다.
대열을 갖춘 것도. 발을 맞추는 것도 아닌 그저 우르르 몰려올 뿐인 질서 없는 군대.
개중에는 발에 걸려 넘어지고, 그 위에 동료들이 마구 밟고 지나가 목숨을 잃는 녀석들도 많았다.
하지만 놈들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 몰려 있는 인간을 죽여 먹어치울 생각에 흥분된다는 듯. 침을 뚝뚝 흘리며 속도를 올렸다.
“자. 우리도 슬슬 준비하자.”
기사단장이 투구를 눌러썼다.
눈구멍 주위에 금을 칠해 장식한 꽤나 화려한 투구였다.
다른 기사단원들도 황금 투구를 눌러썼다. 한 손으로는 검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았다.
데일이 물었다.
“말 위에서는 창이 더 편하지 않소?”
“여러 놈 죽일 때는 검이 더 편하네. 뭐. 보면 알 걸세. 가자!!”
기사단장의 외침이 평원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가 박차를 가했다. 군마가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데일도 해골마를 몰았다.
마력으로 움직이는 해골마는 무거운 데일을 태우고도 다른 군마 못지않은 속도를 냈다.
뒤이어 기사단원들도 말을 박찼다.
예상보다 기사단의 진형은 서로 간의 거리가 넓어 데일도 어렵지 않게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얼마나 서로 떨어져 있냐면, 여러 기사가 한 몸으로 뭉쳐서 돌격한다기보다는 각자 따로따로 돌격하는 데 우연히 방향이 겹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가장 선두에 달리던 기사단장이 옆에 나란히 있던 데일에게 외쳤다.
“먼저 가겠네!”
기사단장이 검을 뽑았다.
가장 앞에서 몰려오는 오는 적의 전열을 응시했다. 생긴 것도 제각각인 무질서한 군세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다음 순간. 기사단장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마치 나뭇가지를 자르듯. 편안하고 가벼운 휘두름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파악!
기사단장의 주위로 다섯 걸음 반경 내의 적이 모조리 반 토막이 났다.
어찌나 깔끔하게 베었는지, 본인이 잘렸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해 버둥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일격.
단 일격 만에 적군 수십이 쓸려나갔다.
데일은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과연.’
기사단장은 검에 닿지 않은 적까지 모조리 베어냈다.
마력을 이용한 기술이다.
최정점에 선 기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검날’ 기술.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기술답게 그 파괴력은 발군이다.
기사단장은 마치 마실 나온 늙은이처럼 가볍게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핏물이 튀고 살점이 널브러졌다.
악마의 하수인들은 어떻게든 기사단장에게 접근하려 했지만 마치 기사단장의 주위에 무형의 장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무도 감히 가까이하지 못했다.
‘이게 황제의 검.’
그 자신감에 걸맞은 압도적인 실력이다. 괜히 귀족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게 아니었다.
기사단장 혼자서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데일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시간만 충분하면 혼자서 전부 벨 수 있겠는데.’
기사단장 혼자서 저 5,000의 군세를 충분히 도륙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기사단장의 뒤로 황실 기사단원들도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기사단장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도 한 번 검을 휘두르면 적군 네다섯이 우습게 죽어 나갔다.
데일은 이제야 돌격 진형이 왜 이렇게 넓었는지 이해가 갔다.
이 기사들의 검이 위력을 미칠 수 있는 거리를 생각하면, 이게 가장 밀집할 수 있는 진형이었던 것이다.
기사단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군마는 적을 짓밟았으며, 달려드는 괴물들에게 건틀릿을 쥐어박았다.
기사단이 한번 지나가면 그 자리에는 마치 수확 후의 밀밭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저항은 무의미하다.
전투가 아닌 무차별적인 학살이 펼쳐졌다.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며, 데일은 왜 기사단장이 자신을 이 대열에 끼워 넣었는지 이해했다.
‘실력 테스트인가.’
아무래도 기사단장은 진지하게 데일을 기사단으로 영입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대열에 함께 달리며 적을 벨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데일은 기사단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혼자서 남들이 적을 베는 걸 멍청히 구경할 생각은 없다.
데일은 허벅지만으로 해골마의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마검을 들어 크게 휘둘렀다.
촤악악!
괴수 여럿이 투박하게 썰려 나갔다. 기사들이 날카로운 검술과 뛰어난 기량을 가졌다면, 데일은 무식한 싸움에 능했다.
데일은 홀로 해골마를 박차 빠르게 달렸다.
“잠깐…… 대열을.”
뒤에 있던 기사가 말리려 했지만, 데일은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놈들의 군세 사이로 깊이 파고들었다.
마검을 창처럼 앞으로 세워, 하수인 여럿을 꿰어버렸다.
“키야악!”
옆에서는 도마뱀처럼 생긴 하수인이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데일은 놈의 아가리를 붙잡은 뒤, 그대로 다른 하수인을 향해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검은 안개를 전개. 해골마에서 내려 주위의 적을 마구잡이로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포악한 괴수들이 이빨을 들이밀고, 발톱을 휘둘렀다. 개중에는 사악한 마법을 부리는 놈들도 있었다.
상관없다.
갑옷으로 막아내면 된다. 갑옷이 부서지면 생명을 흡수해 회복하면 된다.
기회가 되면 데일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하수인들을 갈아버리고 했다.
투박하고 무식한 싸움 법.
하지만 대부분의 황실 기사단원 보다 더 많은 적을 베었다.
그 우악스러운 광경에 경험 많은 기사들도 당황했다.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놈이군.”
“애초에 언데드잖아. 사람이 아니라고. 그래도…… 솔직히 제법이야.”
기사단장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래. 점잖은 기사 노릇은 못 하겠다 이건가?”
데일은 자기 실력을 증명해보이는 동시에, 기사단장에게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기는 네 아래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기사단의 체면에 지고 있을 수는 없지. 모두 더 분발해!”
“예!!”
우렁차게 대답한 기사들이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위협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악마의 군세에도 유독 강한 개체가 섞여 있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기사들은 홀로 싸우는 대신, 빠르게 모여 포위 공격한 뒤, 다시 능숙하게 흩어져 싸웠다.
개개인이 강하기도 하지만 집단 전투에 몹시 능한 이들이었다.
그렇게 100여 명의 기사가 날뛰니 우습게도 5,000의 군세가 대적하지를 못했다.
아무리 두려움을 모르는 악마의 하수인이라도 저런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군세가 흩어지고 갈리기 시작한다.
그때에 맞춰 기사단장이 붉은 깃발을 들었다.
전진 명령.
“전군! 돌격!”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즉시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혼란에 빠진 적군을 타격했다.
숙련병을 중심으로 하수인들을 베어나갔다.
양측의 군세가 벌판의 한복판에서 얽혔다.
한번 기세가 오른 아군이 악마의 하수인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우세가 유지될지 모른다.’
난전이 되다 보면 자연히 아군에도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거침없이 나아가던 데일이 기사단장에게 외쳤다.
“이놈들을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있을 거요! 그놈만 죽이면 될 것이오!”
“알았네!”
그리고 그 우두머리란 자는 머지않아 나타났다.
거대한 딱정벌레처럼 생긴 거대한 괴수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더니, 노성을 터트렸다.
“감히 우리를 가로막다니! 나는 19위의 악마, 별의 바다를 거슬러 오르는 자, 절멸의 아르구르를 섬기는 사도 라난타다!! 네놈과, 네놈의 혈육과, 네놈과 관련된 모든 인간을 산채로 씹어먹어 감히 우리 앞을 가로막은…….”
기사단장은 라난타의 말을 끊고 여유롭게 말했다.
“아. 그렇군. 만나서 반갑네 라난타. 나는 황실 기사단장 미하일이라고 하네. 레딘의 아들이자, 아르투스 가문의 미하일.”
“뭐?”
“만나서 즐거웠네 라난타. 잘 가시게.”
어느샌가 라난타의 앞으로 움직인 기사단장이 가볍게 검을 내리쳤다.
라난타는 반응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쩌억.
그 단단한 껍질도 기사단장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촤아악!
핏물이 튀고, 반토막 난 라난타가 널브러졌다. 동시에 우두머리를 잃은 악마의 군세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도와주려고 검을 들어 올린 데일은 머쓱하게 다시 팔을 내렸다.
기사단장은 상쾌하게 말했다.
“뭐 하고 있나. 그렇게 멀뚱히 서 가지고는.”
“?”
“흑기사는 시체에서 힘을 흡수해 강해진다 하지 않았나? 별 볼 일 없는 놈이지만, 식기 전에 어서 흡수하게. 나야 뭐, 시체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그러고는 라난타의 반 토막 난 시체를 데일에게 밀어주었다. 뿌듯한 얼굴을 하면서.
“!!!”
이런 몸이 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지만 이렇게 시체를 건네받은 건 또 처음이었다.
기사단장의 행동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위해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양보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수인의 시체를 건네주는 검성을 보며 이런 느낌을 받는 건 조금 어처구니가 없지만…….
무감정한 데일은 왠지.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다.
데일은 라난타의 몸에 건틀릿을 박아 넣으며 생각했다.
‘한동안 기사단장 뒤에서 따라다녀야겠군.’
기사단장이 강력한 적을 베어 넘기면, 콩고물을 주워먹을 수 있지 않을까?
데일은 이 기사단장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