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4)
침공
* * *
그 뒤로도 기사단장은 군세의 지휘관급 되는 개체만 골라서 죽여댔다.
데일은 그 뒤를 따라다니며 강한 하수인의 생기를 흡수했다.
너무나 빠르고 간단한 성장!
‘이게 자동사냥이라는 건가?’
지휘관을 잃은 악마의 군세는 가뜩이나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더 우왕좌왕했다.
아군은 그런 하수인들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머지않아 하수인들이 뿔뿔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사단장이 외쳤다.
“놈들을 쫓아라! 놓치면 안 된다!”
이 잔당들이 흩어져서 다른 마을을 습격하거나, 산이나 숲에 숨어들기라도 하면 귀찮아진다.
기사단은 말을 몰아 도망치는 하수인들의 목을 베었다.
한 놈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눈동자에 불타올랐다.
그렇게 꼬박 반나절 동안 이어진 싸움이 막을 내렸다.
기사단장은 말에서 내려 혀를 찼다.
“쯧. 몇 놈 놓치고 말았군. 주위 영주에게 말해 둬야겠군.”
지휘관들이 기사단장에게 모여들었다.
“정말이지! 엄청난 대승입니다!”
“적군 5,000은 사실상 전멸했습니다! 아군의 피해는 경미하고요! 이보다 더 완벽한 승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빅토르 백작도 기사단장에게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전부 기사단장이 덕이오.”
“전부 내 덕은 아닐세.”
백작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이제 기사단장이 자기를 칭찬할 차례였다.
의례적으로라도 ‘하하. 빅토르 백작이 훌륭히 군을 지휘해준 덕이네’라고 말하는 게 예의였다.
하지만 그 입에서 튀어나온 건 전혀 다른 말이었다.
“내 부하 놈들이 고생 좀 했지. 놈들이 벤 적이 못해도 1,000이 넘을 테니까. 아. 그리고, 데일 경. 자네도 수고했네! 아주 인상적이었어!”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데일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제법 사내처럼 싸우더군. 마음에 들어.”
“난 별로 한 게 없소만.”
“하하하! 이 친구 겸손도 참!”
“아니. 나는 진심인데…….”
데일이 한 거라고는 기사단장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기사단장이 강적을 베면 콩고물을 주워 먹은 것뿐이다.
‘이렇게 전투가 편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수월했다.
황실 기사단에 들어가는 게 어떨지 진심으로 고민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데일이 겸손을 떤다 생각했다.
“적진 한복판에서 홀로 날뛰며 자네가 모든 이목을 끌지 않았나. 덕분에 아군도 더 편했을 걸세.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확실히 괜찮긴 했습니다.”
황실 기사들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들은 데일의 활약을 바로 옆에서 본 사람이다.
언데드 특유의 산 자의 신경을 거스르는 소름 끼치는 기운은 적의 주목을 끄는 법이다.
데일이 우악스럽게 날뛴 덕분에 기사들이 견뎌야 하는 부담도 덜했다.
‘단장께서 저 녀석을 우대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실력은 확실하다.’
게다가 여타 다른 흑기사와 달리 아군을 공격하거나 폭주해서 날뛰는 일도 없지 않던가?
기사들은 데일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흑기사는 특별하다고.
기사단장이 데일만 칭찬하자 분위기가 조금 미묘해졌다.
슬쩍 눈치를 살핀 데일이 말했다.
“지휘관들도 모두 훌륭히 병사들을 이끌었소. 아군의 피해가 적은 건 다 그 덕분이오.”
“음? 아. 그건 맞지. 자네들도 고생 많았네. 논공은 일단 성에 들어가서 하도록 하겠네.”
“예!”
지휘관들은 자신을 언급해준 데일에게 감사를 표하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데일도 고개를 끄덕여준 뒤, 기사단장에게 물었다.
“이제 가봐도 되겠소?”
“그래.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 자네에게는 지금이 중요할 텐데 말이야.”
양해를 구한 데일은 전장으로 향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장은 온통 시체투성이였다.
피로 새빨갛게 물든 벌판에 병사들이 멍하니 서 있었다.
뒤처리를 해야 하긴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눈치였다.
데일은 그런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군의 주검만 모아 따로 뒤로 빼내라.”
“예?”
“어서.”
악마의 군세를 맞서서 용감히 싸운 이들이다. 그 죽음에 예우를 지켜야 한다.
당황하던 병사들은 이내 아군의 주검을 옮기기 시작했다.
산처럼 쌓여 있는 시체 더미를 뒤지는 건 고역이었지만, 그때 활약한 게 바로 하티다.
하티는 뛰어난 후각으로 아군의 주검이 있는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그렇게 머지않아 아군의 주검을 모두 모을 수 있었다. 벌판에 남은 건 하수인들의 시체뿐이다.
데일은 그 한복판으로 들어가 검은 안개를 전개했다.
사아아아!
안개가 지면을 얇게 덮으며 퍼져나갔다.
이제 데일은 안개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았다.
선배 흑기사인 케인에게 배운 요령이다.
평소보다 얇게 퍼져나간 안개는 더 넓은 범위를 덮었다.
이윽고, 안개에 덮인 시체에서 생기가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데일은 생기를 가득 머금은 안개를 거두었다.
어마어마한 생기와 잔혼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하수인들의 기억도 머리에 파고들었다.
“!”
악마의 하수인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불안정했다.
그들이 가진 혼란스러운 기억과 끔찍한 광경들이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정신이 오염되는 기분.
데일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느낄 리 없는 두통이 이는 기분이다.
“…….”
데일이 한동안 가만히 서 있자, 누군가 그런 데일의 팔을 잡았다.
“경. 괜찮으세요? 어디 편찮으신 건가요?”
데일이 고개를 내렸다. 에스델이었다.
맑은 눈동자에는 데일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옆에 있던 하켄이 그런 에스델에게 핀잔을 주었다.
“편찮기는 무슨. 이 중에서 튼튼함만으로 따지면 한 손에 꼽겠구만…… 진짜 아픈 건 아니죠?”
둔한 하켄의 눈에도 데일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낀 걸까?
둘이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자 데일은 손을 저었다.
“별거 아니다.”
“진짜 별거 아닌 거 맞죠?”
“그래.”
딱히 신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생기를 흡수하는 건 이 정도로만 해야겠군.’
저번 가니아고스 때에도 느낀 거지만, 이 이상 흡수해서는 안 된다고 본능이 경고했다.
머릿속 또 다른 본능은 어서 먹어치워서 강해지라고 외쳐대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이 흡수하면 감당할 수 없는 걸까? 시간이 필요해.’
과욕은 화를 부르는 법이다.
데일이 흡수를 그만두자 기사단장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음? 더 흡수 안 하나?”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소.”
“뭐, 배가 부르고 그런 건가? 하하하!”
“…….”
“좀 웃어주게.”
뒤처리를 마친 부대는 그날 벌판에서 하루 숙영했다.
완벽한 승리에 대한 보상으로 기사단장은 병사들에게 술과 고기를 베풀었다.
기사들은 기사들끼리.
지휘관들은 지휘관들끼리 모여 서로의 무용을 칭찬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빅토르 백작도 여러 귀족들에게 둘러싸여 포도주를 홀짝였다.
“그때 제가 위험에 처했는데, 나탈 남작께서 부대를 이끌고 도와주셔서 살았습니다.”
“아닙니다. 모두 빅토르 백작 덕분이죠.”
“하하. 그건 그렇죠.”
“…….”
“백작님? 듣고 계십니까?”
골몰히 생각에 잠겨있던 백작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음? 아아. 듣고 있었네.”
그렇게 말한 백작은 꾸며낸 미소를 지어낸 뒤, 은 고리를 손에 꾹 쥐었다.
그가 연회 동안 다시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 * *
이미 별동대를 완벽하게 분쇄한 이상, 더 이상 거리낄 건 없었다.
적들도 이곳에 강력한 전력이 있다는 걸 파악했을 터. 부대는 행군 속도를 올렸다.
벌판을 지나, 카엘름 성을 경유해, 이리스 성으로 빠르게 전진했다.
그런 와중에도 전선에서 급보가 시시각각 날아왔다.
“놈들이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그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현재 성벽을 막아내고 있지만, 아군의 피해 상황이 만만치 않습니다!”
“아르구르가 직접 등장해 외벽을 무너트렸습니다! 마법사와 기사들이 목숨을 바쳐 막아내 아르구르에게 타격을 입히고 저지해냈습니다! 외벽을 가까스로 수복했지만, 이쪽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이삼일에 한 번씩 전령들이 다급히 달려와 기사단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럴 때마다 기사단장은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가고 있으니 조금만 더 버텨달라 전해주게.”
이미 부대의 행군 속도는 한계였다. 여기서 더 속도를 내봤자 낙오자만 무더기로 생길 것이다.
기사단장의 말에 전령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기사단장은 지그시 눈을 감은 뒤, 지휘관들에게 말했다.
“상황이 급하다고 마음까지 급해서는 안 된다네. 전선의 상황이 어렵다는 건 병사들에게 말하지 말게. 괜스레 겁을 먹어봤자 좋을 게 없으니.”
“예!”
그렇게 부대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리고 이레네를 떠난 지 20일째. 마침내 이리스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개판이군.”
높은 언덕에 위치한 이리스 성으로 악마의 군세가 새까맣게 들이치고 있었다.
성벽 주위에 깊게 파놓은 해자에는 이미 시체들로 가득 차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성벽은 군데군데 무너졌고, 성문도 수 차례 부서졌다 보강되었는지 너덜너덜했다.
“아무래도 기마 돌격으로는 재미를 보기 힘들겠군. 마법사들. 부탁하네. 가장 강한 걸로 갈겨주게.”
언덕 지형인데다가, 지난 싸움의 흔적으로 구덩이나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이런 지형에서는 기마 돌격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기사단장의 명을 받은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웠다.
마스터 급은 아니어도 하나같이 뛰어난 전쟁 마법사들이다.
이들이 길고 복잡한 주문을 입으로 외자, 마력이 휘몰아쳤다.
데일은 생각했다.
‘정말 큰 놈으로 준비하나 보군.’
다음 순간.
마법이 완성되었다.
화아아아!
불꽃의 파도가 넘실거리며 하수인들을 휩쓸었다.
하수인들이 고통 어린 비명을 내지르며 재가 되었다.
적들이 바글바글하던 전장에 순식간에 공백지대가 생겼다.
‘역시 마법사가 좋아.’
불꽃놀이로 이쪽의 등장을 화려하게 알렸다.
이제 이목이 쏠릴 것이다.
지금 움직여야 한다.
“돌격!”
기사단장이 가장 앞서서 검을 휘둘렀다. 그 뒤에 잽싸게 따라붙은 데일도 마검을 들었다.
기사단장 뒤가 가장 안전하기도 하고, 주워 먹을 것도 많기에 나온 약삭빠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그 모습을 다르게 해석했다.
‘늘 선두에 서서 검을 휘두르는군. 실로 기사답도다.’
설마 이 흑기사가 콩고물이나 주워먹으려고 따라붙는 거라고는 생각 못 했기에 나온 오해다.
마법으로 한차례 얻어맞은 적을 기사들이 헤집어 놓자, 완전히 길이 뚫렸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다.
머지않아 다시 적이 몰려들 것이다.
지금 당장 통과해야 했다.
마침 이쪽을 알아차린 성 내의 아군이 성문을 열고 있었다.
“어서 성으로 움직여라! 빨리!”
아군 부대는 허겁지겁 성문을 향해 이동했다.
성안의 아군은 이쪽이 더 수월하게 움직이게끔 화살과 마법 세례를 퍼부었다.
가장 앞서서 돌격한 기사단장은 아군이 모두 들어갈 때까지 뒤에 남아 지킬 요량이었다.
그 옆에 데일이 섰다.
“먼저 들어가게. 뒤는 내가 지킬 테니.”
“함께하겠소.”
“암! 기사라면 그래야지!”
“?”
기사단장이 왜 이렇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지는 의아했지만, 데일은 끝까지 기사단장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편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마지막 아군이 성안으로 들어가고. 성문이 다시 닫힐 때까지 둘은 적을 베었고, 성벽에서 내려오는 밧줄을 타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벽에 오르자, 병사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병사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아아아! 지원군이다!”
“황실 기사단이야! 우린 살았어!”
그런 뜨거운 반응이 익숙한 듯. 기사단장은 무덤덤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때. 평범한 병사의 복장을 한 노인이 기사단장에게 말을 걸었다.
“4군단에 온 걸 환영합니다.”
“음?”
기사단장은 상대를 살피고 표정을 찌푸렸다.
앞에 있는 서 있는 건 장대한 체격의 노인이었는데, 오른팔이 없었고, 상의에는 붕대를 칭칭 감아놓았다.
피를 어찌나 흘렸는지 붕대가 시뻘겋다. 그에 대비되게 얼굴은 너무 창백해서 시체라고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기사단장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맙소사. 이런 중상자가 직접 전선에 서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단 말인가! 아니면 4군단의 장군은 이런 부상자를 싸우게 시킬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자란 말인가. 자네는 우선 가서 휴식을 취하게.”
노인이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선 걱정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4군단장은 그렇게 무자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말이죠.”
그러자 주위 병사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노인은 의아해하며 주위를 쳐다봤다. 병사들이 왜 웃는지 이해가 안 됐다.
노인은 그런 기사단장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다시 한번 4군단에 온 걸 환영합니다 기사단장 미하일 경. 이곳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군단장, 베른바르트라고 합니다. 베르나르의 아들, 베른바르트.”
군단장의 소개에 기사단장이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