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5)
4군단
* * *
군단장이 외벽에 서서 직접 진두지휘하다니? 까딱 잘못해서 마법이나 눈먼 화살이라도 날아오면 어쩌려고 이러는가.
심지어 군단장이 입은 갑옷은 일반 병사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기사단장이 못 알아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기사단장은 다급히 존대하며 말했다.
“아, 아니. 군단장. 대체 왜 이곳에서…… 그것보다 그 갑옷은 무엇이오. 더 제대로 된 갑옷을 입지 않고서 왜.”
“하하하! 눈에 띄는 갑옷을 입으면 그쪽에 아주 마법을 퍼부어대더군요. 이렇게 병사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게 차라리 안전합니다. 이 안쪽에 따로 챙겨 입기도 했고 말입니다.”
베른바르트는 갑옷을 살짝 젖혀, 안에 입은 천 갑옷과 셔츠를 보여주었다.
평범한 천 갑옷은 아니었다.
아마 특별히 제작한 물건일 것이다.
베르바르트가 속에 입은 갑옷을 보이자, 주위 병사들이 야유했다.
“우우우! 너무 합니다 군단장님!”
“자기만 안전하려고!”
“시끄러워 이 녀석들아! 꼬우면 너희들이 군단장 해!”
“그건 싫습니다!”
“하하하하!”
한낱 병사들이 감히 장군이 얘기하는 데에 끼어들다니?
기사단장도, 데일도 선뜻 적응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그런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베른바르트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저희 애들이 조금 버릇없더라도 이해해주시죠. 워낙 오래 함께 지내다보니까 다들 격의 없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처음 온 지휘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죠.”
“음. 흠흠. 군단의 분위기는 군단장의 재량이오. 내가 왈가왈부할 부분이 아니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성 밖을 살피던 병사가 외쳤다.
“적군이 물러갑니다!”
“우와아아! 우리가 이겼다!”
벌떼처럼 모여들던 적군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쪽에 지원군이 들어간 걸 저쪽에서도 알아차린 모양이다.
“후. 한시름 놓았군. 정말이지. 아슬아슬한 시기에 제때 와주셨습니다.”
“오히려 너무 늦어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사실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갓 징집한 병사들의 행군 속도를 생각하면 아무리 빨라도 닷새 정도는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 명성이 자자한 분답습니다.”
“흠. 흠흠. 그 부분은 나의 공이 아니오. 오히려 이쪽 덕을 보았지.”
기사단장은 데일을 가리켰다.
그때까지 멍하니 서 있던 데일에게 베른하르트가 시선을 주었다.
그 눈에 흥미가 감돌았다.
“오호. 이쪽은?”
“데일이오.”
“흑기사 데일! 맞나? 하하하! 직접 보니 더 반갑군!”
“나를 아시오?”
“당연한 말을! 경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에서도 큰 인기일세! 특히 밤의 신도들은 자네를 열렬히 따르더군. 개중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소설책까지 들고 와서 나보고 읽어달라고 하는 놈도 있었어! 자기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고 말이야! 하하하!”
악마를 토벌한 적이 있으니 이름 정도는 알려졌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소설책이라면…….
‘그 엉터리 소설을 말하는 건가.’
데일은 베른바르트가 오해할까봐 말했다.
“혹시 오해할까봐 말하지만, 그 소설책은 엉터리요. 대부분은 거짓이오.”
베른바르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게 무슨 상관인가. 재밌으면 그만인 것을! 자네도 그냥 소설 내용이 진짜인 걸로 하게.”
“…….”
“병사들에게 희망이 되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나?”
사람 좋게 말한 베른바르트는 기사단장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만 내려가서 얘기를 좀 나눕시다.”
“알겠소.”
“너희들은 적당히 뒤처리해! 부관은 피해 상황 종합하고!”
“예입!”
베른바르트와 기사단장, 데일은 성벽을 내려갔다.
빼곡히 몰려 있던 병사들이 길을 터주었다.
그제야 이 성의 현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처참하군.’
몸이 성한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시체가 이곳저곳 굴러다닌다.
병사들은 무덤덤한 얼굴로 시체를 옮겼다. 그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일상이라는 뜻이었다.
‘이게 현실이다.’
이레네의 그 평화로운 분위기. 상위구역에서의 화려한 풍경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래. 이런 분위기였다.
데일이 게임을 할 적에 느꼈던 게임 속 분위기는 늘 이랬다.
세상이 당장 내일이라도 멸망할 것 같은 암울함. 그 안에서 발버둥 치는 사람들.
비로소 데일이 있어야 할 곳에 온 기분이었다.
“후우. 나이를 먹으니 걷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기사단장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베른바르트는 절뚝거리며 말했다.
기사단장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소. 아침에 일어나면 무릎이 시리더군.”
“참. 세월이란…… 가끔 젊고 강인할 때 끝을 맞이한 전우들이 부럽습니다.”
“그들에게는 배부른 소리겠지만 말이오.”
“하하. 그건 그렇죠.”
잡다한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길 잠시.
병사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걸어가자, 베른바르트는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다.
“요새를 떠날 때 병력을 크게 잃었습니다. 4천의 병력만을 겨우 이끌고 가까스로 이곳에 도착했죠. 최근의 공세 동안 1,500명이 넘는 병사가 전사했습니다. 특히 마법사와 기사들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아르구르 그 교활한 자식은 이쪽의 주력만을 계속 깎아먹더군요.”
기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와 마법사를 잃은 건 뼈아픈 점이다.
하지만 베른바르트를 탓할 수는 없다.
내부 반란이 벌어지고 군단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병력을 이끌고 이곳까지 도달한 것만으로 대단한 역량이었다.
베른바르트가 수십 년간 전선을 수비 해온 건 절대 운이나 요행이 따라서가 아니었다.
“적의 숫자는 어림짐작해도 2만이 넘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죠. 다행히 아르구르외에 다른 악마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기사단장이 말을 받았다.
“상황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지만, 내 예상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소. 우두머리인 아르구르만 어떻게 처리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소.”
“하하. 기사단장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저는 안심이…….”
“다만.”
기사단장이 말을 끊었다.
여태껏 호의적이었던 표정을 지우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군단장께서 계속 뭔가를 숨기는 것 같소.”
“…….”
“군단 내에 배신자가 절반이나 나왔다고 들었소. 그들이 누구인지.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군단장 같은 유능한 사람이 반란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 부분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소.”
기사단장과 베른바르트의 시선이 얽혔다.
평생을 전쟁에 바쳐온 두 노장은 서로를 담담히 응시했다.
베른바르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찌나 깊이 한숨을 쉬는지, 입에서 흘러나온 하얀 입김이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베른바르트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얘기했다.
“반란을 일으킨 우두머리의 이름은 알베른입니다. 최고 참모이자, 군단장 대리. 그리고…….”
베른바르트는 한 호흡 주저하다가 말했다.
“내 손자 되는 놈입니다.”
* * *
이리스 성은 전선이 무너졌을 때를 대비해 만들어놓은 요새였다.
식량과 전쟁 물자가 비축되어 있었고, 방어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4군단은 진작 전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다.
이 넓은 성에는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성의 일을 돕는 주민들이 사는 지역이 있었고, 주점이나 도박장 등등 군인들이 욕구를 해소할 환락가가 있었으며, 종교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신전은 필수였다.
데일은 그중에서 밤의 신전으로 향했다.
이번에 기사단장을 따라다니며 주워 먹은 게 많다.
제물을 바치면 5등급에 이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인가.’
데일은 하티와 함께 밤의 신전 앞에 섰다.
이레네의 신전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더 깔끔한 인상이었다.
‘왜지? 이레네의 신전이 본당 같은 개념이 아니었나.’
의아해하던 데일은 하티와 함께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이레네에서 봐 왔던 것과 똑같이 어둡기만 한 실내.
하지만 늘 검을 휘두르는 스켈레톤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사제장 대신, 제법 많은 신도들이 정겹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인기가 많나?’
데일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쇠장화가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신도들의 이목이 순간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음?”
“저분은 설마…….”
“데일 경? 설마 데일 경이십니까?”
우르르 몰려든 신도들이 설마 하는 감정을 담아 물었다.
‘또 귀찮아지겠군.’
데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 잘못 봤다. 나는 데일이 아니다.”
“세상에! 진짜 데일 경이잖아!”
“거대한 늑대를 데리고 다니는 흑기사가 데일 경 말고 또 있을까!”
“그럼 이쪽이 하티인가?”
“…….”
결국 또 귀찮은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고, 몇몇은 하티에게도 손길을 뻗쳤다. 하티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낮게 울었지만, 이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제야 데일은 이들이 이레네에서 봐 왔던 신도들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강자들이다.’
걸음걸이나 품에 찬 무기, 단련된 근육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평범한 신도들이 아니었다.
전투 직종.
데일처럼 여신에게 힘을 하사받아 싸움에 나서는 전사들이었다.
‘확실히 전선이라는 게 실감이 나는군.’
데일만은 못해도 상당히 뛰어난 실력자들이다.
이 정도의 전사들이 흔하게 돌아다니다니. 이곳이 전선이라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하지만 데일은 이들이 껄끄러웠다. 일반 신도들도 껄끄럽지만, 이들에 대한 감정은 더욱 안 좋았다.
밤의 여신이 내려주는 힘은 분명 강력하지만, 강한 만큼 부작용도 있다.
자칫 힘을 잘못 제어하다가는 마음이 뒤틀려버리는 것이다.
데일의 머릿속에는 이레네의 빈민가에 찾아왔던 사령술사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사령술사는 꿈 많던 노움 부부, 레온과 나탈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었고, 심지어 그 시체마저 병사로 되살렸다.
데일의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낸 사건이다.
데일은 여전히 나탈리가 건네준 깃털펜을 들고 다니며, 가끔 꺼내 보곤 했다.
‘레온. 그리고 나탈리.’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데일의 기분이 날카로워지려던 그때. 신도들을 헤치고 누군가 달려왔다.
“허억! 허억! 드, 드디어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대를 쓰고, 잿빛 사제복을 걸친 사내였다. 사내는 데일의 손을 굳게 잡으며 말했다.
“여신님의 기사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레짐입니다! 이곳 4군단의 밤의 사제장을 맡고 있습니다!!”
“……반갑다.”
“이리스에 있는 동안은 제가 모든 편의를 책임지겠습니다!!!”
말이 빠르고 목소리가 크다. 말소리가 투구 안을 쩌렁쩌렁 울려 조금 짜증이 났다.
데일이 보기에 아레짐이 에리얼보다 나은 점은 그 귀가 뭉특하다는 것 빼고는 없었다.
데일은 얼른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어서 기도실에나 가고 싶었다.
“그럼 난 이만…….”
“아! 이렇게 저희를 위해 신전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딱히.”
“이런 영광스러운 날에는 축하 연회를 열어야죠! 창고에 잠들어 있는 귀한 술을 내놓겠습니다!!”
“와아! 그거 좋네!”
“나도 참가하고 싶습니다!”
신도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하자, 온 신전이 시장통을 방불케 할 정도로 소란스러워졌다.
밤의 여신은 죽음을 상징하지 않던가. 그리고 죽음은 서늘하고 고요하며 고독한 법이다.
이런 소란은 전혀 밤의 신전에 어울리지 않았다…… 라고 데일은 생각했다.
‘이레네의 신전이 그리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군.’
투구 안이 시끄럽게 울렸다. 참다못한 데일은 투구를 벗었다.
밖으로 드러난 얼굴에 신도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
“헙.”
잔뜩 놀란 눈치. 특히 여신도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투구 속에 우악스러운 괴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던 걸까?
데일은 아레짐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부탁이 있다.”
“무, 무엇입니까!!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전부 들어드리겠습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데일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좀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