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6)
4군단
* * *
데일은 신도들을 간신히 떼어놓고서야 기도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제단. 은 촛대. 그리고 꺼져버린 양초 세 개가.
이레네의 기도실과 차이점이 없었다.
“왔습니다.”
[어서 오거라 내 아들.]촛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여신의 형상을 이루었다.
데일은 자연스레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에는 여신의 하얀 발이 보였다.
그런데. 형상이 어딘가 흐릿하다.
여신의 목소리도 어딘가 먼 곳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런 데일의 의문을 짐작한 여신이 말했다.
[이곳은 악마들의 영역과 너무 가깝구나. 그 역겨운 놈들의 악취가 내 힘을 크게 제한하고 있어.]“……이레네로 돌아가서 다시 찾아뵙는 게 낫겠습니까?”
[아니다. 조금 힘에 부친 것뿐이다. 원하는 게 있으면 얘기하려무나.]데일은 모아온 제물을 바쳤다.
여신은 이만한 상대를 데일이 혼자서 상대한 줄 알고, 크게 놀랐다.
[세상에! 그 잠깐 사이에 이 정도 양을 모아 올 줄이야! 내 아들의 실력이 이렇게 빨리 늘다니, 여신은 기쁠 따름이다!]“저. 사실 절반은 제가 죽였다기보다는…… 기사단장이 죽인 걸 조금 주워 먹었습니다.”
[기사단장? 황실 기사단장?]“예.”
[주워 먹었다는 건?]“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돈 후.
여신이 애써 밝게 말했다.
“애써 좋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기사단장이라. 대단한 자와 함께하게 되었구나.]여신은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오래전부터 국가의 지도자들은 교단의 사제들이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껄끄러워했단다. 신의 힘을 내려받는 게 아닌, 직접 마력을 이용해 신체를 단련하는 법을 개발하고, 검술을 수련했단다. 그렇게 나온 게 바로 기사라는 작자들이지.]그리고 그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노력 끝에 나온 게 바로 기사단장 미하일이다.
[기사단장의 힘은 이름을 날렸던 영웅들 개개인에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단다. 기사단장 같은 자가 몇 명만 더 있었어도, 어쩌면 악마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구나. 그와 함께하면 배울 점이 많을 테니, 이 기회를 잘 살리도록 하거라.]데일을 깊이 생각해주는 조언에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갈 때였다.
“이 정도면 승급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충분하단다. 마침내 5등급에 이르렀구나!]여신의 손바닥을 펼쳐 데일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간 모은 잔혼이 빠져나가고, 그 대신 강력한 힘이 파고들어 왔다.
심장에 어둠의 신성이 가득 들어찬다.
심장은 분명 멈춘 그대로지만, 그 안에서는 강력한 힘이 맥동했다.
동시에 데일의 모습에도 변화가 생겼다.
데일의 투구에 양옆으로 곡선형의 뿔 같은 장식이 튀어나왔다.
뿔의 표면에는 읽을 수 없는 문자가 정갈하게 새겨져 있었다.
좀 더 인간에게서 벗어난 모습에 데일은 표정을 찡그렸다.
여신이 설명했다.
[그 뿔처럼 생긴 장식품은 앞으로 네가 마력을 다룰 때 도움을 줄 것이란다. 마음에 안 들어도, 참아주거라.]“알겠습니다.”
더 강해진다는데, 그깟 외향이 무슨 소용일까. 데일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자. 이제 드디어 5등급에 이르렀구나. 설마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줄은 여신도 예상하지 못했다. 장하구나. 그리고 고맙다. 이렇게 열심히 해주어서.]“아닙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위해 노력한 것이니 감사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그간 데일 너는 여러 기술을 다루어 보았겠지. 하지만 다양한 기술을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단다. 이제 한 가지를 정해, 깊게 파고들어야 할 시간이다.]마침내 5등급에 달했다,
생기 흡수. 검은 안개. 영혼 지배. 해골마 소환.
그간 데일은 소위 말하는 ‘공용 기술’들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한 가지 계열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눈앞에 세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냉기》
《영혼》
《어둠》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각각의 계열은 서로 특징이 명확한 만큼, 장단점도 극명하게 갈린다.
우선 냉기 계열.
그간 데일의 주위에 서는 사람은 으스스한 한기를 느끼곤 했는데, 그 힘을 더욱 극대화하는 계열이다.
냉기 계열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그 공격성에 있을 거다.
다수의 상대로도 강력하며, 1대1의 싸움에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
검을 맞댈 때마다 피부에 서리가 내리고, 뼈가 얼어붙는데 맨정신을 유지할 상대가 얼마나 될까?
‘성장 방향에 따라 완전히 방어적으로 갈 수도 있어.’
얼음 방패나 냉기 갑옷과 같은 방어 위주 기술을 배우면, 단단함만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능을 보이기도 한다.
게임식으로 말하면, 최상의 탱커인 것이다.
데일은 선배 흑기사인 케인에 대해 떠올렸다.
케인은 냉기 계열을 택한 흑기사였다. 냉기를 흩뿌리며 전장을 누비던 그 모습은 아군의 악몽과도 같았다.
‘우선 냉기는 보류.’
다음은 영혼 계열이다.
영혼 계열 흑기사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다재다능.’
언데드를 부리거나 저주를 걸고, 영혼을 다루는 등 다채로운 기술을 사용에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기사보다는 흑마법사 쪽에 더 가까워진다고 해야 할까.
‘마검사 같은 느낌이지.’
다만, 영혼 계열은 상대적으로 근접 전투에서 약점을 보인다.
여전히 데일의 힘은 그대로이니 강력함 힘을 발휘하지만 다른 계열에 비교해서는 손색이 있다.
‘근접전투에서 약해지는 건 별로 달갑지 않아.’
근접전투에서 약해진다면 다른 기사나 전사를 호위로 두어야 한다. 즉, 필연적으로 남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건 데일이 원하는 게 아니다.
데일은 혼자서라도 적을 분쇄할 수 있는 힘을 원한다.
데일은 영혼 계열을 선택지에서 제거했다.
마지막 남은 건 어둠 계열.
‘어둠 계열이라…….’
어둠.
밤의 힘을 다루고, 주위에 공포와 두려움을 흩뿌리는 식으로 싸우는 흑기사.
그림자는 곧 흑기사의 검이자 방패가 될지니.
‘이쪽도 나쁘지 않지.’
어둠은 냉기와 영혼 계열의 사이쯤의 위치해 있는 계열이다.
근접 전투에서 여전히 강하지만, 나름대로 범용성도 있다.
특히 공포를 흩뿌리는 능력은 언제 어디서나 제값을 해준다. 여유를 잃은 적만큼 손쉬운 상대는 없으니 말이다.
데일은 깊은 고심에 빠졌다.
냉기와 어둠.
욕심 같아서는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어리광은 허락되지 않는다.
한참을 고민하던 데일은 두 선택지의 장단점을 간단히 요약했다.
‘당장 강해지는 데에는 냉기가 좋아. 어둠은 당장은 냉기보다 떨어지지만, 고점이 높지.’
당장의 강함이냐, 미래의 강함이냐.
이렇게 정리하니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데일은 긴 시간을 기다려준 여신에게 말했다.
“어둠을 선택하겠습니다.”
[어둠을 택하면 암흑기사로 전직하게 될 거란다. 한 번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어. 네 선택에 확신하느냐?]데일은 주저 없이 답했다.
“예.”
[알았다. 네게 힘을 내리도록 하마!]화악!
여신의 모습이 다시 연기의 형상으로 흩어진 뒤, 데일에게로 몰려들었다.
새로운 힘이 깃들었다.
투구에 난 뿔 장식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눈에서 빛나는 안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주춤하게 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 빛이 번뜩였다.
‘변했다.’
데일은 변화를 느꼈다. 심장에 흐르던 밤의 신성도 무언가 변했다.
말로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더 깊어졌다 해야 할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그림자였다.
이곳은 빛 한점 들지 않은 어두운 공간이다. 하지만 데일의 아래에는 그림자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꾸물거리고 있었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그림자.
그런 게 데일의 발아래에 넓게 퍼져 있었다.
[암흑기사로 전직하면서 여러 기술이 강화되었단다. ‘생기 흡수’는 ‘생기 강탈’로. ‘검은 안개’는 ‘새벽 안개’로. ‘부정한 감각’은 ‘어둠의 감각’으로. 그 부분을 확인해 보거라.]“알겠습니다.”
데일은 나머지 제물을 능력치에 골고루 투자한 뒤,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데일]등급: 5
직업: 암흑기사
근력: 90
내구: 66
마력: 50
체력: ―
정신력: 40
[보유 기술 목록]생기 강탈
새벽의 안개
영혼 지배
해골마 소환
[특성]반인 반언데드
어둠의 감각
밤의 여신의 축복
[칭호]북부의 영웅
마침내 흑기사 계열의 상위에 속하는 ‘암흑기사’에 이르렀다.
자주 사용하던 기술들의 강화.
그리고 꾸준한 상승을 보이는 능력치.
강해졌다.
데일은 이제 명실상부 강자다.
아마 황실 기사단원을 상대로 싸워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1대1로 싸웠을 때의 얘기지만 말이다.
데일은 새로 얻은 힘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 적당한 상대가 있다.
저 성벽 밖에 빼곡히 모여든 악마의 하수인과 추종자들.
그리고.
‘아르구르.’
당장 이 힘을 시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용건을 마친 데일은 언제나처럼 매정하게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 차가운 모습에 여신이 조금 섭섭해하며 말했다.
[데일. 네가 나의 신도들. 특히 내 힘을 직접적으로 받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안단다. 아마 일전에 만났던 사령술사 탓이겠지.]“…….”
[하지만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구나. 그 사령술사도 처음부터 악했던 건 아니다. 밖에 있는 아이들도 모두 마찬가지지. 다들 나름의 사정이 있단다.]“사정이 있으면 그런 짓을 벌여도 된다는 의미입니까?”
데일의 어조는 본인도 놀랄 정도로 차갑고 뾰족하다.
여신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이 아니란다. 그저. 모두가 너처럼 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알겠습니다.”
[너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란다. 너무 밀어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데일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뒤. 미련 없이 기도실을 나섰다.
여신의 형상은 그런 데일이 안타까운 듯, 한참을 서성이다 이내 하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 * *
기도실 밖으로 나오니, 놀랍게도 아까 보았던 신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남아 있었다.
아니. 오히려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더 많은 숫자가 몰려 있었다.
그들은 바닥에 엎드린 하티를 마구 만져대며 자기들끼리 쑥덕이고 있었다.
“어쩌지? 우리가 뭔가 데일 경의 기분을 나쁘게 했나봐.”
“사죄하자.”
“사과만으로 되겠어? 사죄 연회를 여는 게 어때?”
“그거 괜찮네! 마침 나한테 아껴둔 술이 있는데!”
“나도 아껴둔 술이 있어!”
“저도 있습니다.”
“……누군가 보급창고에서 술을 자꾸 훔쳐 간다고 들었는데, 그게 여러분이었나요?”
그때. 데일이 걸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난 건 하티였다.
늘 도도하던 이 늑대는 이제껏 지은 것보다 가장 반가운 표정으로 신도들을 뿌리치며, 빠르게 걸어왔다. 어지간히도 시달린 모양이다.
뒤이어 다른 신도들도 다가왔다.
그중에서 사제장인 아레짐이 고개를 연거푸 숙이며 말했다.
“무언가 경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저 아레짐! 신도들의 대표로서 이 목숨을 끊어 그 사죄를……!”
“……제발 목소리 좀 낮춰주면 좋겠군. 그것만 아니면 별로 불편하지는 않다.”
“경께서 원하신다면!!!”
“…….”
한숨을 머금은 데일은 그런 신도들을 뚫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 데일의 등에 대고 아레짐이 말했다.
“가시는 겁니까? 연회는요?”
“사양하겠다.”
“그렇군요…….”
아레짐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궜고, 다른 신도들도 슬픈 눈으로 고개를 내렸다.
데일이 죄인이 된 듯한 기분.
그런 분위기를 무시하며, 데일은 꿋꿋하게 나가려고 했지만…….
아레짐은 포기를 모르는 사내였다.
“내, 내일 중요한 집회가 있습니다. 혹시 와주실 수 있나요? 부탁입니다! 이번 집회는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집회를 내가 왜…… 이긴다고?”
집회와 이긴다. 잘 어우러지지 않는 두 단어였다.
데일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누구를 이겨야 하는데.”
“누구긴요.”
아레짐은 사납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빛의 신도 그 개자식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