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7)
4군단
* * *
황당해진 데일이 물었다.
“혹시 집회라는 게 패싸움을 의미하는 거였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전이라면 몰라도, 요즘은 패싸움 같은 거 안 합니다.”
‘예전에는 했구나.’
아레짐은 상황을 설명했다.
의외로 전선에서는 빛의 교도든 밤의 신도든 차별 없이 바라본다고 했다.
위험한 전장에서 같이 부대끼는 동료이기도 했고, 당장 강력한 힘이 되어주는 밤의 신도들을 배척할 이유는 없었다.
두 종교의 세가 비등한 만큼 양측에서도 포교에 필사적으로 열을 올려야 했다.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서 개종시키는 것.
“그게 바로 매주 열리는 집회입니다! 상대보다 더 즐겁고, 더 놀랍고, 더 유익한 집회로 신도들을 포섭하는 것! 아주아주 중요한 행사인 겁니다!”
아레짐은 눈동자에 불꽃을 불태우며 말했다.
“이번 집회에서, 저놈들은 아주 특별한 손님을 초청했다고 합니다.”
“손님?”
“예. 교단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라는 듯합니다. 만약 놈들의 집회가 우리보다 훨씬 알차다면…… 우리 신도들을 모두 빼앗기고 말 겁니다!!!”
‘겨우 집회 한 번에 빼앗길 신도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낫지 않나?’
하지만 아레짐과 다른 신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은 간절한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부디, 데일 경께서 참석해주십시오! 그러면 분명 저희가 이번 집회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제발요!”
“부탁입니다!!”
“제발요!”
이 곤란한 종교쟁이들은 데일이 허락할 때까지 안 비켜줄 기세였다.
데일은 썩 꺼지라고 말하려다가, 문득. 여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를 좋아하는 이들이니, 너무 밀어내지 말아달라라…….’
여신이 직접 부탁한 일이다. 아주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데일 개인적으도 이 ‘집회’가 당최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호기심이 조금 일기도 했다.
결국.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어디로 가면 되나.”
“우와아아아!”
“경께서 허락하셨다! 우리가 이겼다!”
“빛의 신도들을 쳐부수자!!”
환호성이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
승낙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데일은 곧바로 후회했다.
* * *
데일은 기운이 쏙 빠지는 기분으로 막사로 돌아왔다.
일반 병사와 다르게 데일에게는 제법 괜찮은 방이 내어졌는데, 하켄이 무구를 닦고 있었다.
“오. 볼일은 다 보셨습니까?”
“그래. 웬일로 무기를 손질하고 있군. 바로 술 마시러 나갔을 줄 알았는데.”
“하하. 여기는 전선이지 않습니까. 미리 손질 안 해뒀다가 전투라도 벌어지면, 큰 곤욕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켄은 전선에서 복무한 적이 있는 용병이다.
비록 운 좋게 안전한 데서 복무했다고 해도, 전선은 전선이다.
데일이 궁금했던 걸 물었다.
“전선 병사들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좋더군. 다들 가족같이 지내는 것 같고. 원래 전선은 다 이런가?”
“음. 그건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복무했던 곳은 영 살 곳이 못 되었죠.”
하켄은 그때가 생각나는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로 칼부림은 일수에, 도둑질은 예사였고, 하여간 개판이었어요. 밤에 제대로 자려면 불침번을 따로 서야 했다니까요? 그때 퀼이랑 번갈아가며 불침번을 했는데…… 예.”
죽은 친우에 대해 떠올랐는지 퀼의 얼굴이 흐려졌다.
데일이 물었다.
“이번에 고향에 내려가서 그 가족들한테 말했나? 퀼이 죽었다고.”
“……아직요. 도저히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런가.”
사실, 이미 그 가족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하켄만 모를 뿐. 데일은 그 사실을 알았다.
지금까지는 당사자들끼리 언젠가 해결할 문제라 생각했지만…….
“마음을 빨리 먹는 게 좋을 거다.”
“예?”
“어쩌면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으니까.”
이번 4군단을 향한 침공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동안 잠잠했던 악마가 어째선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태롭게 유지되던 평화에 금이 간 것이다.
과연 제국이 버텨낼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예에…… 그렇죠.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하아.”
하켄이 우울하게 중얼거리자, 데일은 주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에스델은 어디 있나?”
“교단 사제들에게 끌려가던데요. 뭐 중요한 행사가 있나봐요.”
“중요한 행사?”
하켄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뭔 종교 행사라는데요. 하여튼 다들 신앙심이 깊어요. 저는 가끔 가서 헌금이나 내는데.”
에스델은 에스델 나름대로 바쁜 모양.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하켄은 이내 곯아떨어졌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피로가 누적된 탓이었다.
데일은 창문을 열었다. 고요하다.
밤의 이리스 성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수만 명의 주민과 병사들이 살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드르렁!
하켄이 요란하게 코 고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어주었다.
원래 같으면 거슬렸어야 하지만, 지금은 왠지 기껍게 들렸다.
홀로 적막 속에서 밤을 보내는 건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
데일은 언제나처럼 생각에 잠겨 들었다.
오늘은 생각할 거리가 아주 많았다.
4군단. 베른바르트. 5등급. 밤의 신도. 그리고…….
배낭을 열어 깃털 펜을 꺼냈다.
발랄하던 노움이 전해준 마음의 증거. 우물쭈물하다 지키지 못했던 데일의 후회.
‘레온. 그리고 나탈리.’
데일은 혹여나 깃털 펜이 부러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이 자그마한 물건을 보고 있노라면 밝게 미소 짓던 노움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동시에 그들을 죽이고 시체로 부리던 사령술사에 대한 분노도 같이 피어오른다.
그때. 데일은 그 쓰레기들을 충분히 응징했다. 직접 이 손으로 목숨을 거둠으로써 그 대가를 치르게 했다.
하지만 그걸로도 데일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때의 감정은 여전히 영혼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이 감정이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무덤덤해진 마음속에서도 계속 남아 있는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던 데일은 적당한 단어를 생각해냈다.
‘실망.’
사령술사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람으로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그때. 데일은 사람에게 조금 실망했던 것 같다.
사람이라는 게 별거 아닌 라면, 데일이 지키려는 인간성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데일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여전히 마음속에 새겨진 조부의 말을 떠올렸다.
“세상에는 개새끼들이 넘쳐나지만, 너만은 사람의 도리를 따라야 한다.”
데일은 여전히 사람을 믿는다. 그 가능성을.
그저 바랄 뿐이다. 앞으로도 이 믿음을 유지한 채, 조부의 말을 따를 수 있기를.
* * *
땡! 땡! 땡!
4군단의 아침은 요란한 종소리로 시작한다.
막사에서 일어난 병사들은 배식소로 가 아침을 해결했다.
일이 있든, 할 일이 없든. 다들 부지런히 움직였다.
병영에 마련된 막사에서는 고참병들이 이레네에서 온 신병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검 똑바로 내질러!”
“절대 방패 내리지 마! 내리면 옆에 동료들도 같이 뒤진다! 방패 내리는 새끼는 내가 직접 두들겨 패 줄 테니 그리 알아!”
“엄살 부리지 마! 실전에서는 이것보다 몇 배는 힘들다!”
상당히 혹독한 훈련이었다.
굶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순진하게 입대한 병사들은 욕설과 살벌한 분위기에 당황하고 있었다.
‘금방 알게 되겠지.’
이렇게 혹독하게 훈련하는 게 그나마 살아남을 확률을 올려줄 거라는 것을.
과연 저 중 몇이나 살아남아 고참병이 될까.
데일은 계속 걸음을 옮겼고, 하티가 그런 데일의 다리를 툭 쳤다.
“아. 방향을 잘못 들었다.”
‘네가 그럼 그렇지’라고 표정으로 말한 하티가 도도하게 앞서나갔다. 자기 뒤나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데일은 하티를 따라가면서 성을 둘러보았다.
전투가 없는 날에는 숙련병들도 다소 한가해 보였다.
나른하게 햇빛을 쬐는 이들도 있었고, 성안에서 텃밭을 가꾸는 병사도 있었다.
꽤나 자유로운 분위기.
‘하긴. 이러니까 한가하게 종교 집회에 참석하겠지.’
데일은 아레짐이 꼭 찾아와 달라며. 안 오면 울어버릴 거라고 말했던 장소로 향했다.
하얀 판석이 깔린 넓은 공터였다.
평소에는 출정식 같은 걸 할 때 쓰이는 장소일까?
그런 공터에 두 집단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쪽은 일부러 흰색 옷을 입었고(대부분은 때가 타서 누리끼리했다), 다른 한쪽은 어두운색 계열을 맞춰 입었다.
‘어디가 어느 진형인지 보기 편해서 좋군.’
양 종교의 신도들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정말로 미워서 노려본다기보다는, 위협적인 경쟁자를 보며 긴장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그런 둘을 일반 병사들이 자리에 앉아 구경하며 도란도란 얘기했다.
“오늘 집회는 뭔가 특별하다는데?”
“뭐가? 맛있는 거라도 나온대?”
“몰라? 엄청 대단한 사람을 불렀나봐.”
“난 그냥 맛있는 거 먹으러 온 건데?”
데일이 다가오자 밤의 신도들이 곧장 알아챘다. 아레짐이 훌쩍 다가와 검은색 가운을 건넸다.
“잘 오셨습니다! 잠시만 이걸 쓰고 계셔주십시오! 정체를 숨겼다가 드러내는 게 더 극적이니까요!”
“…….”
여기까지 온 이상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데일은 가운을 뒤집어썼다.
덩치에 비해 가운이 조금 작아서 다리 부분이 훤히 보이지만, 굳이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런 데일을 옆에 두고 아레짐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겨야 한다. 이겨야 한다.”
이 집회를 어지간히도 진심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길 잠시. 저쪽에서도 기다리던 손님이 도착한 모양이다.
생각하는 게 이쪽이랑 똑같은지 저들도 흰 가운을 씌웠다.
그리고 이윽고 집회가 시작되었다.
처음 데일이 집회에 들었을 때 생각한 건, 따분한 설교였다.
사제가 나와서 성경을 읽고, 뜻은 좋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그런 분위기.
하지만 실제 집회는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여기 라딘 신도께서는 이번에 다크 레인저로 전직하셨습니다. 이제 한 번에 화살을 3발씩 쏠 수 있는 신기를 부릴 수 있죠!”
준비하고 있던 궁수가 곧바로 활시위를 놓았다.
그러자 불그스름한 빛에 둘러싸인 화살 3대가 동시에 쏘아졌다.
지켜보던 병사들이 환호했다.
“오오오!”
“멋진데?”
그러면 빛의 교단 측에서도 지지 않고 외쳤다.
“여기 우푼타 신도께서는 이번에 3등급 실드맨이 되셨습니다. 날아오는 화살 따위는 거뜬히 막아낼 수 있어요. 결국, 전장에서 중요한 건 생존 아니겠어요?”
타워 실드를 든 방패수가 우뚝 섰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다른 신도가 쇠뇌를 발사했고, 빠르게 날아간 볼트는 거대한 방패에 맥없이 튕겨나갔다.
“확실히. 무난하게 괜찮지.”
“오래 살려면 방패를 다루긴 해야 해.”
데일은 이 집회의 성격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건 뭐랄까, 포교라기보다는…….
‘홈쇼핑?’
서로 교의 장점을 설명하며 병사들에게 열렬히 어필하는 게 무슨 물건을 파는 쇼호스트처럼 보였다.
‘이래도 되나? 아니. 이게 오히려 맞는 건가?’
하루하루가 힘든 전선의 병사들에게 따분한 교리 따위를 설명하면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당장 도움이 되는 부분을 설명하는 게 훨씬 이해하기 쉬울 터.
병사들도 사제들의 설명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확실히 생존률을 생각하면…….”
“교단 쪽을 택하면 성수를 싸게 살 수 있다는데.”
“하지만 밤의 신전으로 가면 기본적인 무구를 지원해준다네. 매주 맛있는 스튜도 주고.”
어느 한쪽을 선뜻 선택하지 않는 분위기.
양측의 사제는 동시에 생각했다.
‘지금이다.’
‘지금 분위기를 가져와야 해.’
아레짐이 먼저 외쳤다.
“고민하시는 분들께! 우리 교가 자랑하는 영웅을 선보이겠습니다! 이 분을 본다면, 지금까지 갈등했던 게 바보처럼 느껴질 겁니다! 자! 앞으로 서 주세요!”
지지 않고 교단 측 사제도 외쳤다.
“신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증거를 보여드리죠!”
아레짐이 데일의 가운을 벗겼다.
맞은편에 있던 사제도 똑같이 행동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고.
병사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데일도 상대편으로 시선을 보냈다. 상대측은 어떤 인물을 준비해온 걸까.
“…….”
“…….”
잠깐의 침묵 후에 데일이 물었다.
“……네가 왜 거기 있는 거냐.”
“……제가 할 말입니다.”
에스델과 데일은 서로를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