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32)
아르구르
* * *
데일은 기사단장을 찾았다.
기사단장은 여전히 휘하 기사단과 함께 성벽 위에서 버티고 있었다.
아르구르가 다가올 때를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단신으로 악마를 상대할 수 있는 건 기사단장 혼자뿐이니까.
기사단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아르구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휘하 기사들이 기사단장에게 말했다.
“단장. 이만 돌아가셔야 합니다.”
“다른 병력들은 이미 성벽에서 물러나, 내성으로 갔습니다. 저희도 가야 합니다.”
“쯧. 이대로 물러나야만 하나.”
그때. 기사단장을 찾은 데일이 성벽을 올랐다.
기사단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 자네 왔나?”
“후퇴할 생각이오?”
“그래야지. 준비한 게 수포로 돌아가서 아쉽지만, 어쩔 수 있나?”
그간. 아군은 아르구르를 상대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그 준비를 하는 데에 데일이 지닌 지식이 큰 역할을 해주었다.
‘우선 아르구르를 떨어트리는 것부터 시작이야.’
강력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지 않다면, 붕붕 날아다니는 저 악마를 쓰러트릴 수 없다.
하여. 우선 지상으로 떨어트리는 게 아르구르를 상대하는 핵심이다.
그에 대비해 아군은 성벽 곳곳에 특수 제작한 발리스타를 설치했다.
발리스타에 장전된 대형 화살에는 밧줄을 연결해, 일단 아르구르를 꿰뚫으면 줄을 잡아당겨 땅으로 떨어트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르구르는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다가오지 않고, 그저 성 주위를 빙빙 돌 뿐이었다.
이쪽의 생각 같은 건 뻔하다는 듯이.
“내성에는 발리스타가 몇 대 없는 걸로 기억하오. 지금 있는 마법사들만으로는 저 아르구르를 떨어트릴 수 없고. 만약 이쪽에서 저놈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그때부터 저 악마 놈도 적극적으로 싸울 것이오. 놈은 교활하니까.”
내성으로 후퇴하면 잠깐이나마 더 버틸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의미 없는 시간 벌기일 뿐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기사단장도 끝까지 이곳 성벽에서 버티려 했던 거고.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일단 놈을 떨어트려야겠소.”
“하지만 어떻게? 이 거리에서 발리스타는 닿지 않네. 닿아도 저 단단한 피부를 못 뚫을 것이고.”
“흠.”
데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 괜찮은 방법이 없을까?
‘발리스타는 안 되고. 비행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는…… 전부 황궁에 있고.’
그러다 데일의 눈에 뜨인 게 있다. 성벽에 파고든 바위.
미처 부수지 못한 투석기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
머릿속에 한 줄기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아군도 투석기가 있소?”
“그야 있네만. 혹시 투석기로 아르구르를 맞출 생각이라면 포기하게. 숙련된 병사라도 날아다니는 걸 맞추려면 운이 필요하다네.”
“괜찮소. 일단 투석기로 안내해주시오. 투석기를 사용할 줄 아는 병사도.”
잠자코 있던 기사단장의 제자가 벌컥 화를 냈다.
“이 건방진 놈! 제대로 설명해라!”
“그만. 일단 따라보자꾸나.”
“스승님!”
“달리 뾰족한 수도 없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제자와 기사들은 영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지만, 기사단장만큼은 데일에게 신뢰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그의 말마따나 다른 뾰족한 수도 없기도 했고.
이대로 후퇴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해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기사단은 투석기를 찾아다녔다.
다행히 멀쩡한 투석기가 하나 남아 있었다.
어디선가 숙련병도 구해온 기사단장이 물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나? 투석할 바위라도 구해오면 되나?”
데일은 대답 대신, 투석기 위에 올라탔다.
무릎을 쭈그려 앉고, 팔로 무릎을 둘러 몸을 둥글게 말았다.
사람들은 순간 말을 잃었다.
“뭐 하나 자네?”
“보면 모르시오?”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나? 제발 아니라고 해주게.”
“아마 맞을 거요.”
데일의 의도가 명확해지자 사람들이 극렬하게 반응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이네!”
“죽고 싶어 환장했나!!”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떨어지면 무조건 죽는다…… 아닌가. 안 죽나?”
왠지 이 흑기사는 저 멀리 날아올랐다가 떨어져도 살아남을지도…… 하지만 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계획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데일이 물었다.
“그러면. 이대로 성에 틀어박혀서 패배를 기다릴 생각이오?”
“…….”
“나는 그런 거 싫소. 할 수 있는 건 다 할 생각이오.”
데일은 투석기를 다룰 병사를 보며 말했다.
“준비해라. 궤도상 조만간 아르구르가 이 근처를 지날 거다. 그때가 기회야.”
“하, 하지만 저는 사람을 쏘아보낸 적이 없는걸요.”
“사람이 아니라 쇳덩어리라 생각해라.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그러다 실패하면요? 어, 어떻게 되는 거죠?”
데일은 자상하게 말해주었다.
“그럼 다 죽는 거지.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니 더 긴장되는데요.”
“자. 이제 온다. 준비해.”
데일은 자세를 잡았다.
병사는 아찔한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래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다.
“기사님들. 도와주십시오.”
커다란 투석기다.
데일이 올라가 있는 지레를 내리려면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했다.
주저하던 기사들은 이내 하나둘 힘을 보탰다. 줄을 잡아당겨, 데일이 타고 있는 지레를 아래로 내렸다.
반대편에 있는 무게추가 붕 떠올랐다.
이로써 준비는 끝.
이제 정확한 타이밍에 던지는 일만이 남았다.
“…….”
침묵.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누군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검을 쥐고 숱한 전장을 헤쳐온 기사들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기묘한 긴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녀석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
하지만 악마는 결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법이 없다.
아르구르는 얄미울 만치 여유를 부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밤하늘에 뜬 달만을 쳐다볼 때.
후웅!
거대한 날개가 공기를 밀어내는 소리가 울렸다.
‘온다.’
아르구르가 다가오고 있다.
모두 준비했다. 이윽고 달이 가려지고, 거대한 악마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병사를 쳐다봤다.
병사는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아르구르와의 그 거리와 녀석의 궤적을 읽어냈다.
기사 하나가 조급하게 물었다.
“언제쯤 쏘아보낼 생각이냐.”
“아직입니다.”
“지금 쏘아야 하지 않나?”
“아직입니다!”
“이러다가 놈이 완전히 사라져버릴 거다!”
하지만 병사는 고집스럽게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아르구르의 그림자가 성벽을 훑고, 녀석의 거체가 달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순간.
병사가 외쳤다.
“지금입니다!”
기사들이 일제히 손을 놓았다.
팅!
올라가 있던 무게추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데일이 올라타 있던 지레는 반대로 힘껏 솟아올랐다.
데일의 몸이 마치 포탄처럼 저 하늘로 날아올랐다.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지구를 벗어나는 우주 비행사가 이런 기분일까.
엄청난 가속에 데일조차도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데일은 그저 몸을 웅크려 원형을 유지했다.
혹시라도 궤적이 틀어져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릴까.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아래에서 지켜보던 기사들은 조마조마하게 그 광경을 쳐다봤다.
빠르게 날아간 데일이 점점 아르구르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 궤적을 읽어낸 기사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이대로라면!”
“성공했어! 정말로 성공했다고!”
설마 진짜 될 줄이야!
기사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으니, 아르구르가 육체파의 악마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아르구르는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날개를 펄럭여 급하게 선회했다.
회피기동.
데일과 아르구르의 사이가 다시금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아…….”
“이런!”
기사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눈을 질끈 감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하늘로 떠오른 데일은 여전히 침착했다.
몸을 밀어주던 추진력을 잃고, 다시금 낙하하기 직전의 그 정지 순간.
데일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높이도 올라왔군.’
어찌나 높이 올랐는지, 세상 모든 게 너무나 작게 보였다.
성벽도. 병영도. 개미떼처럼 조그맣게 돌아다니는 아군과 적들도.
저 한복판에 있었을 때는 그리도 치열했건만.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니, 너무나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여. 어딘가 우스울 지경이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데일은 고개를 돌려 아르구르를 보았다.
인류의 비극이 가까이에 있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던 아르구르도 이쪽을 보았다.
녀석은 이쪽을 알아보았다.
“아! 그 영혼의 형태는…… 그래! 너구나! 근데…… 이런 식으로 맞닥뜨릴 줄은 몰랐는데.”
데일의 몸이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악마조차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어떻게 해야 갈피를 못 잡는 눈치였다.
그때. 데일이 벼락처럼 갈고리를 던졌다.
휘이익!
로프가 풀려나며 빠르게 날아간 갈고리가 아르구르의 다리를 칭칭 감은 뒤, 고정되었다.
“……!”
경악하는 아르구르. 데일과 악마의 시선이 마주쳤다.
다음 순간. 둘은 동시에 움직였다.
데일은 밧줄을 힘껏 잡아당겨 아르구르와의 거리를 좁혔다.
아르구르는 날개를 펄럭여,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비행을 시작했다.
덩달아 밧줄을 붙잡은 데일도 그 움직임에 딸라나갔다.
아르구르가 공중에서 연거푸 급선회하고, 두어 번 몸을 빙글 뒤집었다.
살벌한 곡예비행.
그 움직임에 맞춰 데일도 이리저리 튕겨나갔다.
하지만 데일은 끝끝내 밧줄을 놓지 않았다. 계속해서 밧줄을 잡아끌어 거리를 좁혀갔다.
‘밧줄이 안 끊어지는 게 다행이군. 발튼이 잘해주었어.’
그리고 멀미를 하지 않는 지금의 몸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데일은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착실히 거리를 좁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르구르의 다리를 붙잡는 데에 성공했다.
“노옴! 감히!”
아르구르는 전략을 바꿨다.
위태로운 곡예 비행을 멈추고. 네 겹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날개가 푸르스름한 빛에 둘러싸이고.
다음 순간. 수천의 깃털이 뽑혀나와 데일을 향해 집중되었다.
콰득! 콰드득!
깃털이 직격할 때마다 무시할 수 없는 충격이 전해졌다. 갑옷에 크고 작은 흠집이 생긴다.
날카로우면서도 강력한 일격.
하지만 이 정도쯤은 버텨낸다.
아르구르의 다리를 꽉 붙잡은 채, 마검을 아르구르의 몸통으로 찔렀다. 워낙 피부가 질긴데다가 매달린 터라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여러 번 찔러야 겨우 상처가 났다.
후두둑.
피가 투구 위로 흘러내렸다. 데일이 곧바로 피를 흡수했다.
갑옷의 흠집이 곧바로 회복되었다.
“이 벌레 같은 놈! 당장 떨어져라!”
도저히 데일이 떨어져 나가질 않자, 아르구르의 발광이 더 심해진다.
그러는 사이에 데일은 놈의 다리를 기어올라, 기어의 몸통에까지 올라서는 데에 성공했다.
단단한 피부위로 데일이 마검을 들었다가, 아래로 내리찍었다.
‘피부가 단단하다고? 그러면.’
같은 지점을 계속 찌르면 될 뿐!
마검이 절묘하게 같은 지점을 찌를 때마다,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튀었다.
아무리 질긴 피부라도 같은 곳을 계속 타격하면 버텨낼 도리가 없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아르구르가 분노했다.
“제법 먹음직한 영혼이라고 좋게 봐주었더니…… 어디 이것도 버티나 보자!”
이미 아까 보이던 비웃는 듯한 태도와 여유는 온데간데없고.
잔뜩 열이 오른 아르구르는 바닥을 향해 머리를 내렸다.
몸을 수직으로 세웠고. 이내 빠른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아르구르를 일단 바닥으로 떨어트린다는 당초의 목적은 성공이라 볼 수 있지만…….
데일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까워져오는 지상을 보며 생각했다.
‘나부터 죽겠는데?’
* * *
지상에서는 공중에서의 사투를 보고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내 살면서 이런 싸움은 처음 봐.”
“대체 저기서 안 떨어지고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 거야.”
“허…….”
기사단장은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놈이로세. 아일라. 너도 좀 보고 배워라. 나보다 강한 놈을 상대로 이기려면, 저런 지독함이 필요한 법이다.”
“…….”
제자인 아일라는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공중에서 홀로 악마와 사투를 벌이는 데일의 모습은 기사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멋있다.’
같은 전사로서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때.
아르구르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 낙하 위치는 성 밖의 평원.
기사단장이 외쳤다.
“자! 저 녀석이 목숨을 걸고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황실 기사단은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
기사단장과 황실 기사단원들이 앞다투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마찬가지로 공중에서 펼쳐지고 있던 사투를 보던 베른바르트도 크게 외쳤다.
“아군이 저리 용감하게 싸우고 있는데 겁쟁이처럼 숨어 있을 수는 없지! 우리도 악마를 죽이는 데에 동참한다! 어차피 못 죽이면 우리는 다 죽어!”
“4군단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와아아!”
내성의 문이 열리며 잔존 병력이 쏟아져나왔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 매서운 돌진에 적군은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우수수 스러졌다.
모든 병력이 평원으로 돌진하기 시작한다. 적군과 아군. 병사와 하수인. 마법사와 기사를 가리지 않고 한곳으로 모여든다.
바야흐로 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지을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