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69)
하켄
* * *
결국 파브리스는 데일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는 혀를 찬 뒤 눈을 감아버렸다.
유언이 있냐는 데일의 물음에 마지막으로 짧게 답했을 뿐이다.
“그런 거 없어.”
파브리스는 데일에게 생기가 모두 빨려 죽었다.
무르하탈은 영주관을 뒤져 쓸만한 물자를 찾아다녔다.
“주인님. 무기고를 발견했습니다. 각종 방어구와 무기는 물론, 화약까지 있습니다.”
“화약은 다룰 줄 아나?”
“제 언데드들은 다룰 줄 모릅니다. 도마뱀들도 마찬가지겠지만요.”
“그러면 일단 내버려 둬. 괜히 건드렸다가 폭발에 휘말리면 웃기지도 않는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데일은 굳이 영주관을 나설 생각이 없었다. 성벽에 남아있는 병사들을 향해 공격을 나설 생각도 없었다.
이곳을 굳건히 지키면 이길 수 있으리라 믿었다.
‘더 인내심 있는 놈이 이기는 거지.’
그런 데일의 전략은 정확히 먹혀들었다.
알브헤임의 잔존 병력은 여전히 성벽 위를 삼엄히 지키고 있었다.
비록 바깥에는 도적떼가. 안쪽에는 언데드들이 도사려 안팎으로 포위당하는 처지지만, 성벽만 끼고 있으면 능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데일이 공격해오지 않자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게 무슨 일이오! 당장 오늘밤에 공격해 올 거라 했지 않소!”
“비축된 물자는? 식량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언제까지 이 위에서 버텨야지?”
언제 언데드가 공격해올지 몰라 밤에는 잠도 못 자고.
식량이 조금씩 떨어져가니 불안은 커지고.
모두의 피로가 점점 쌓여가기 시작했다.
결국. 닷새 뒤.
지휘를 맡은 수비대장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대로 알브헤임을 탈출한다.”
“예? 하, 하지만 성주님이.”
“파브리스 경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 아직 북쪽이 비어있으니, 그쪽으로 후퇴하면 돼. 우리가 여기서 전부 죽어버린다면,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누가 황혼께 알리겠는가!”
그럴듯한 말에 지휘관과 병사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명분은 상관없다.
은근히 누군가 등을 떠밀어주기를 바랐던 그들이다.
병사들은 최소한의 짐만 챙겨 북문을 열고 도주를 시작했다.
그 소식은 곧장 데일에게 들어왔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허공에 검을 붕붕 휘두르며 수련하던 데일에게 무르하탈이 보고했다.
“주인님의 예상대로, 놈들이 북문으로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라고 일부러 북쪽을 비워둔 거다. 너무 궁지에 몰아버리면 발악을 해버리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추격대를 꾸려라. 하급 언데드가 아니라, 최소 구울급 이상으로.”
데일은 마력을 뿜어냈다.
그러자 한쪽에 쌓여 있던 뼛조각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이내 자기들끼리 달라붙으며 말의 형상을 이루었다.
―샤아아아!
해골마가 음산하게 울며 땅을 굴렀다.
데일은 해골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 태워서 추격시켜. 하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전부 죽일 수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무르하탈은 데일이 소환한 해골마를 끌고 나갔다.
이제 도시가 비었으니 밖으로 나갈 시간이다.
데일은 노움 남매를 데리고 우선 남문으로 향했다.
남문을 나서자 저 멀리서 서성이던 도적단이 보였다.
데일이 차분히 말했다.
“이쪽으로 오도록.”
리마는 얼른 바람을 조종해 데일의 목소리를 실어 날랐다.
나직이 중얼거린 목소리가 바람을 타니 평원을 쩌렁쩌렁 울렸다.
도적 수백 명이 황급히 다가왔다.
그런 도적의 감시역이었던 언데드도 함께 왔다.
“그래. 다행히 이탈자는 없는 모양이군. 얌전하게 잘 기다려주었어.”
그야 도적들에게는 무기도 들려주지 않았고.
도망갈 낌새를 보이면 언데드 병사가 곧장 칼을 휘두를 것처럼 으르렁댔으니.
게다가 도적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실로 간단한 것이었다.
남문 쪽에서 멀찍이 서성이는 것.
만약 도시를 공격해라 같은 터무니 없는 명령이 내려졌다면 이들은 살기 위해 도망쳤을 것이다.
“자. 도시로 따라 들어와라.”
“야, 약탈인가요?”
한 눈치 없는 도적이 기대하는 얼굴로 물어보았다.
데일은 그런 도적을 뒤돌아보았다.
싸늘한 눈빛에 도적이 얼어버렸다.
“내 명령 없이 재물이나 사람들에게 함부로 손을 대는 녀석은 죽어서도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해했나?”
“예, 옙!”
도적 떼를 이끈 데일은 우선 도시 곳곳에 세워져 있는 황혼의 석상을 부수는 일에 착수했다.
“망치랑 정 가져와!”
“다리부터 부수면 돼!”
쿠구구궁.
황혼의 석상이 무너져내렸고, 그럴 때마다 석상이 있던 자리에 주황색 빛무리가 팟! 하고 튀어오르더니 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데일은 빛무리가 향하는 방향을 가늠해보았다.
‘동쪽.’
황혼이 탑을 짓고 있다는 곳.
주황색 빛무리는 황혼의 힘일 테니, 이 석상은 황혼의 힘을 전달하고 전달받는 매개체인 것일까?
‘마치 교단이나 밤의 신전의 재단처럼 말이지.’
계속해 도시를 뒤진 데일은 유독 커다랗고 넓은 건물을 발견했다.
크기로 치면 영주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그 안에 들어가자 처음으로 주민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넓은 홀의 중앙에는 웅장한 황혼의 석상이 서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황혼께 혼을 바치시오! 위대한 대업에 동참하시오! 비록 이곳에서 육신은 허물어지겠지만, 그대의 영혼은 영원불멸하게 빛날 것이오!”
중앙에서는 광기 어린 눈을 한 노인 하나가 칼을 붕붕 휘둘러대고 있었다.
피에 젖어 새빨간 칼이다.
노인의 눈동자가 번뜩일 때마다 엎드린 사람들은 더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혹여나 시선이 마주치지 않길 바라며.
노인은 혀를 찼다.
“쯧. 이렇게 소극적이어서야 어찌 대업을 이루겠나. 어쩔 수 없지. 병사! 노예들을 데려와라. 노예들의 영혼을 바치겠다! 뭣들 하나 병사?”
하지만 노인이 외쳐도 병사가 노예를 데려오는 일은 없었다.
당연하다.
이미 도시의 병력들은 전부 후퇴했으니.
노인은 자기가 버려졌다는 사실도 몰랐다.
대신 데일은 도적들에게 명했다.
“가서 석상을 부숴라.”
“예!”
“가, 갑자기 뭐야?”
“너희 뭔데!”
우르르 뛰어든 도적들이 석상을 무너트렸다.
노인을 비롯해 일부 시민들이 달려들어 도적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무장도 안 한 이들이 도적들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멍하니 있는 사람들에게 데일이 말했다.
“이제 황혼을 섬길 필요는 없소. 원래 살던 대로 살면 될 것이오.”
데일의 이 같은 선언에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반응했다.
눈물을 흘리거나. 기뻐하거나. 감격하거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에 기뻐하는 이들이 7할.
나머지 3할은…….
“이 무도한 것!”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섬기는 것일까?
아니면 세뇌라도 당한 것일까.
적지 않은 인원은 황혼을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데일은 파브리스를 떠올렸다.
‘그 녀석도 믿음만큼은 진심이었지.’
황혼이 이루려 하는 대의에 공감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투원이 아니다. 하지만 그냥 놔둘 수는 없다.
“영주관에 지하감옥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 집어넣어.”
“예!”
도적들은 여전히 저항하려는 황혼의 추종자들을 제압해 질질 끌고 갔다.
감옥에 갇힌 저들을 어찌 처리 할지는 주민들이 직접 정할 것이다.
데일은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처리해나갔다.
우선 뒷 수습을 해야 했다.
도시의 모든 걸 다스리던 파브리스와 황혼의 추종자들이 사라졌으니 그 일을 대신할 만한 이들이 필요했다.
“그, 그냥 경께서 이곳 알브헤임을 다스려주시면 안 될까요?”
“부디 이곳에 남아주세요! 제발요!”
“저희의 주군이 되어주십시오!”
주민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데일의 잔류를 애원했지만,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대로 서쪽으로 가야 하오. 여기 남아있을 수는 없소.”
어서 나머지 동료들과 합류해야 한다.
사실 이렇게 시간을 사용하는 것도 아깝지만, 그렇다고 도시민들을 그냥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당분간은 주민 중에서 학식이 있는 자들이 모여 도시를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다음으로 데일은 무르하탈을 시켜 도적들을 무장하게 했다.
알브헤임의 무기고에는 갑옷과 무기가 넉넉히 있었고, 도적 수백 명을 무장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꾀죄죄한 도적 떼가 번뜩이는 사슬 갑옷으로 무장하니, 제법 그럴싸해졌다.
데일은 래파킨에게 명령했다.
“네가 저놈들을 지휘하는 게 제일이겠지. 그래도 한때 두목이었으니.”
“알겠습니다.”
언데드 래파킨은 다시 도적들을 지휘하게 되었다.
저들은 무르하탈의 언데드 군세와 더불어 가장 위험하고 험한 위치에 내던져질 것이다.
속죄를 위해.
도시민 중에서 지원병도 받았다.
무르하탈이 보고했다.
“주인님. 지원하려는 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얼마나 되지?”
“500명을 거뜬히 넘는 숫자가 지원했습니다.”
“……정말로 많군.”
원래 도시민이 아니었던 외지인들.
피 끓는 혈기를 지닌 청년들.
강한 주군을 모시고 싶어 하는 용병이나 병사 출신들이 대거 지원의사를 밝혔다.
곰곰이 고민한 데일이 말했다.
“너무 많이 데려가면 이 도시를 지킬 인력이 부족하다. 당장 싸울 수 있는 병사나 유용한 기술이 있는 이들을 우선해서 300명만 받아주도록.”
“명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군단을 넷으로 나눠야겠어. 첫 번째 부대는 무르하탈네가 이끄는 언데드. 두 번째는 카리악과 리자드맨. 세 번째는 래파킨과 도적단. 네 번째는 나머지 인원들로.”
“미리 지휘체계를 만들어놓는 건 중요한 일이죠. 탁월하신 생각입니다. 하지만 네 번째는 누구에게 맡기실 겁니까?”
“일단 소마에게 맡기지.”
그렇게 편제까지 마치자, 군단의 규모는 훨씬 불어났다.
무르하탈이 이끄는 언데드가 무려 800여 기.
리자드맨이 60.
래파킨과 도적단이 약 500.
그리고 이번에 합류한 지원병과 이전에 있던 병사들을 합치니 320.
거의 2000에 달하는 규모가 되었다.
아직 군단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모자란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시할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군단은 추종자들이 사용하던 갑옷과 쇠뇌로 훌륭히 무장했다.
짐마차 5대에 식량과 화약. 생필품, 그리고 창고에 잠들어 있던 대포 3문을 실었다.
화약과 대포는 지원병 중에 다룰 줄 아는 기술자가 있어, 들고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발리스타도 실어라.”
“발리스타. 말씀이십니까?”
“어. 손에 들고 써보니까 생각보다 괜찮더군.”
“손에 들고 썼다? 발리스타를?”
무르하탈은 데일이 말하는 바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약 나흘간의 준비가 끝나자마자 데일은 출발을 명했다.
보름달이 하늘에 뜬 한밤중이었다.
“출발한다.”
언데드와 리자드맨은 묵묵히 따랐고, 도적들도 눈치를 보며 말없이 따라나섰다.
4부대의 인간 병사들만이 의문을 제기했다.
“저기 부대장님. 하루 잤다가 아침에 출발하면 되지 않나요?”
“맞아요. 밤이라 바닥도 잘 안 보이는데.”
‘부대장’이라는 감투를 써서 잔뜩 신이 나 있던 소마가 설명했다.
“크흠! 그건 이몸, 소마 부대장께서 친절히 설명해주지. 다들 알다시피 우리 군단의 이름은 밤의 군단이다. 데일 경께서 밤의 여신을 섬기는 기사여서도 있지만, 밝은 빛과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지. 언데드. 몬스터나 다름없는 리자드맨. 간악한 도적 무리까지! 그런 밤의 군단이 한낮에 배회하는 건 이상하잖아?”
“무르하탈 님은 데일 군단이라고 부르던데요?”
소마가 즉시 대답했다.
“센스 없는 뼈다귀의 말은 무시하도록. 우리는 밤의 군단이야. 알겠지?”
“……결국, 이름 때문에 밤에 다닌다는 건가요?”
시큰둥한 반응에 소마는 사실대로 말했다.
“언데드들이 강한 햇빛에 약해.”
“아…….”
“뭐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시지, 왜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세요.”
“맞아요. 말이 너무 많으세요.”
“…….”
소마가 상처받은 얼굴로 데일에게 다가가 물었다.
“경. 혹시 저 부대장 그만두면 안 돼요?”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할 때는 언제고 또 왜.”
“아니. 들어보세요. 부대원들이 제 말도 잘 안 듣는 것 같고. 제가 막 쓸데없는 내용을 빙빙 돌려서 말한다 하구. 너무 하지 않아요?”
“무슨 애도 아니고.”
찡찡거리는 소마의 말을 흘려들은 데일이 물었다.
“그것보다. 서쪽 상황을 좀 알고 싶은데? 뭐 소식 들려온 거 없나?”
칭얼거리던 표정을 싹 지워낸 소마가 말했다.
“아. 일단 지금 알드군트는 그 늑대왕 하켄 사령관이 놀라운 지휘 능력으로 적의 침공을 수차례나 막아냈다 하네요.”
늑대왕.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은 단어에 잠깐 멈칫한 데일이 물었다.
“공격하는 게 누군데.”
“라만티스라는 악마입니다. 황혼의 아래에 있는 놈으로…….”
“전승의 라만티스.”
“어? 아십니까?”
“알다마다.”
1대1 결투를 선호하며, 패한 상대의 신체 일부분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끔찍한 놈이었다.
“라만티스 그놈이 도시를 노린다 이거지?”
“예. 벌써 도시 3곳을 무너트렸고, 알드군트까지 무너지면 서부는 끝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왜지?”
“늑대왕 하켄과 라만티스의 결투가 정해졌다고 하더라고요.”
“…….”
멍하니 걸음을 옮기던 데일이 우뚝 멈춰선 뒤,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