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74)
항해
* * *
도시는 여전히 들뜬 분위기에 감싸여 있었지만, 데일은 차분하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우선 에리얼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나 살아있다.’ 로 시작해, 지금의 상황과 황혼을 향해 진군해야 하는 이유 따위가 담긴 내용을 종이에 가득 눌러 담았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는데,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워낙 오랜만이기도 했거니와, 이제는 너무 강력해진 근력에 자꾸만 깃펜이 부러져 버린 탓이다.
어쨌건. 우여곡절 끝에 편지를 적은 데일은 그 편지를 여러 장으로 베껴 쓰게 시킨 후, 전령에게 건네주었다.
“위험하지만 중요한 일이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편지를 전달하겠습니다!”
열 명이 넘는 전령이 흩어졌다.
저들의 목적지는 같았지만, 모두 다른 길을 사용했다.
한 명이라도 카엘름에 다다르는 데에 성공해도 목적은 이룬 셈이다.
‘할 수 있을까?’
저들이 황혼의 영역을 지나 카엘름까지 다다를 수 있을까?
썩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행운이 따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시간 내에 카엘름과 4군단의 도움을 받으려면, 이들이 성공하는 수밖에 없다.
‘다음은…… 황제인가?’
또 하나의 세력.
하늘을 날아다니는 황제.
그 권위는 이전만 못하다 하나, 그는 여전히 황실 기사단과 마탑의 마법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고급 병력의 숫자는 다른 세력보다 훨씬 크다.
게다가 3군단은 여전히 황제를 따르고 있다 한다.
그 협조를 받을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이나…….
‘연락할 수단이 없군.’
데일에게는 황제와 접촉할 방법이 없다.
데일이 직접 하늘을 날아, 성으로 기어 올라가지 않는 한 말이다.
게다가 황제라는 인물은 데일에게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다.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지금 황혼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알고 있을까?
싸울 의지는?
데일은 황제에 대해 아는 게 적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황제가 그다지 신뢰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아래 사람들까지 똑같지는 않을 거야.’
데일은 황실 기사단과 함께한 적이 있다.
기사단장이 이끄는 기사단원들은 분명 오만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래도 명예롭고 강대한 기사들이었다.
백성들을 모두 버려두고 도망이나 다니는 황제에게 불만을 품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건 좀 더 생각해봐야겠군.’
당장 하늘에 날아다니는 이레네와 접촉할 방법이 없다면, 고민해봤자 시간 낭비일 뿐이다.
지금 당면한 문제는 엘드리엄에 대한 건이다.
데일이 직접 엘드리엄으로 가겠다 선언했고, 하켄은 그의 참모진과 데일의 회의를 주선해주었다.
참모진은 데일에게 무한한 호의와 존경을 보냈다.
“정말이지 대단하십니다.”
“알브헤임을 단신으로 점령해 이곳까지 오시다니.”
“과연 사령관님의 친우답습니다.”
어느새 데일과 하켄은 둘도 없는 친우가 되어 있었지만, 데일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하켄도 그냥 근엄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고.
하지만 엘드리엄에 가서 도움을 청하겠다는 데일의 계획에 참모진의 얼굴이 흐려졌다.
“으음. 확실히. 황혼을 직접 쳐야 한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황혼이 신들을 떨어트린다니. 이건 거룩한 성전이 될 것입니다. 병사들도 기꺼이 참전할 테죠.”
“하지만…… 엘드리엄에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켄의 부관이 지도를 펼쳐 보였다. 대륙의 지도를 전부 보여주는 큼직한 지도였다.
“보시다시피 이곳 알드군트와 엘드리엄의 거리 자체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북부에 갈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이레네를 거칩니다. 왜 그러는지 아십니까?”
“산맥 때문이군.”
“예.”
대륙의 가장 커다란 산맥인 용뼈 산맥의 줄기가 뻗어 나와, 서부와 북부를 가르고 있었다.
문제는 그 험난함이다.
좁고 험한 산길과 굴러떨어지면 시체도 못 찾는 ‘절망의 절벽’.
싸늘한 칼바람에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날아가 버리는 ‘회오리 계곡’.
낙석이 유성처럼 쏟아져 여행자를 노리는 ‘별의 길’.
이런 악의 가득 찬 지형이 곳곳에 깔려 있다.
“옛날. 라발 장군은 한 무리의 병사를 이끌고 저 모든 곳을 뚫고 가, 적의 뒤를 치고 전설이 되었죠.”
“하지만 그때랑 지금이랑 다른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황혼 놈들의 주둔지가 산맥 곳곳에 있다는 점이죠. 그 숫자는 많지 않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단순히 피해도 피해지만, 시간이 문제다.
그 모든 어려움을 뚫고 엘드리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겨울이 되어 있으리라.
“차라리 이레네를 향해 진격해 황혼 세력을 일소하고, 그곳에서 다시 북상하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 이레네 주위에는 뭐가 있소?”
“일단 무너진 이레네 터에서 새 도시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 근처 황혼의 세력권인 마을과 도시가 쑥쑥 들어서는 실정이고요.”
“그자들을 모두 꺾은 뒤 엘드리엄으로 향하는 게, 그냥 산맥을 통과하는 것보다는 빠르다는 소리요?”
참모진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데일은 신음을 삼켰다.
하켄을 데리고 도시를 훌륭히 방어해낸 저 참모진의 능력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들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문제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여신은 티끌과 같은 시간이 남았다 했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서두르는 게 좋다.
이레네까지 밀고 나간 뒤 다시 북상해 엘드리엄과 합류하는 것보다는, 함께 중앙을 향해 진군하는 게 낫지 않겠나?
고심하던 데일은 지도의 다른 한 부분을 발견했다.
알드군트의 서쪽. 드넓게 펼쳐진 바다.
“바다를 이용하면 어떻소.”
“바다 말씀이십니까?”
“이곳은 무역 도시로 유명하지 않소. 항구도 있지 않소?”
“맞습니다. 실제로 이레네가 무너지기 직전까지는 많은 물류가 오갔지요. 지금도 남쪽으로 항해하는 건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북쪽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참모는 지도를 척척 가리켰다.
“여기서 조금만 더 북쪽으로 가도 용뼈 산맥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기단의 영향권이죠. 해류도 남쪽을 향하는지라,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이 많습니다…… 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참모는 지도에 그려진 웬 그림을 가리켰다.
거대한 문어가 꿈틀거리거나, 반인반어 괴물이 노래를 부르거나, 해골바가지가 칼을 들고 있거나.
섬뜩한 그림들이 지도 한구석을 메우고 있었다.
“보이십니까?”
“문어랑. 스켈레톤?”
“북쪽 바다에는 얼음 조각들뿐만 아니라, 크라켄이나 세이렌 같은 몬스터들이 우글거립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건 바로 유령선입니다.”
“유령선 말이오?”
“예. 하늘을 날아다니는 선박인데, 그 안에 망자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놈들은 상선을 보면 대뜸 다가와, 살아있는 모든 선원을 죽이고 자기 동료로 삼기로 유명하죠. 뱃사람들은 그들을 바다의 공포라 부릅니다.”
“흐음.”
데일은 다시 한번 지도에 시선을 주었다.
실제로 중세 시대 지구에서도 지도에 바다 괴물을 그려 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암초를 잘못 봐서 괴물이 산다고 믿든, 적군에게 두려움을 줘 선뜻 다가오지 못하게 공갈을 치는 것이든, 일단 지도에 표시하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괴물과 미지가 정말로 살아 숨 쉬는 세계다.
괴물이 있다면 정말로 있는 거다.
돈 되는 일이라면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는 상인들이 북쪽 바다는 꺼들떠보지도 않는단다.
‘그렇다면 정말로 위험하다는 건데.’
데일은 책상을 툭툭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몬스터. 해류. 유령선…….’
곰곰이 고심을 이어가던 데일의 머릿속에 한순간. 섬광이 번뜩였다.
“잠깐. 유령선에 망자들이 타 있다고 했소?”
“예. 그렇습니다만.”
“망자라는 게 무얼 의미하는 거요. 스켈레톤? 좀비? 구울?”
“으음. 보통 스켈레톤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유령 선박에 실체가 있다는 거겠군. 무게를 가진 이들을 태우고 있는 거니.”
“그렇……죠?”
참모들은 데일이 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나 의아해 서로 시선만을 교환했다.
“그곳에 사람이 타면 어떨 것 같소.”
“?”
“예?”
“그곳에 타면 엘드리엄까지도 금방 아니겠소?”
참모진들은 어리둥절해하다, 이내 이게 저 흑기사의 농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하하하!”
“유령선에 타다니. 참 재밌으십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유머 감각이 출중하시군요 하하!”
“농담 아니오.”
데일의 한마디에 좌중이 싸늘해졌다.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참모에게 데일이 덤덤히 말했다.
“유령선이라는 게 망자들을 싣고 날아다니는 배라면, 그 유령선을 우리가 사용하면 되지 않겠소.”
“어, 음. 저. 이쪽을 공격하면 공격했지, 순순히 유령선에 타게 해줄까요?”
“문제 될 거 없소. 바다의 공포라고 해봤자 언데드 아니오? 언데드는 내가 잘 설득할 수 있소.”
“설득이라니 대체 무슨…… 아.”
그제야 참모들은 데일이 이끄는 군단을 떠올렸다.
군단 병력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 언데드 군세와 그 군세를 이끄는 미치광이 리치를.
‘음. 제법 그럴듯한 계획…… 인가?’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잘못하면 저 깊은 북쪽 바다 아래에 처박힐 텐데.’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계획에 참모들은 선뜻 이렇다저렇다 말을 올리지 못했다.
그때.
홀로 근엄히 앉아 눈을 감고 있던(반쯤 졸고 있던) 하켄이 다시 눈을 떴다.
“경의 말에 따르도록.”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대충 데일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걸로 회의는 사실상 끝이었다.
참모진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 누구도 감히 하켄의 의견에는 반론하지 않았다.
* * *
참모는 머지않아 데일과 군단을 태워줄 북쪽 바다로 태워다 줄 간 큰 선장을 수배해주었다.
“그쪽이 흑기사 데일이오? 만나서 반갑소! 이 ‘바다새’호의 선장, 루브릭이외다!”
“반갑소. 데일이오.”
“유령선을 잡으러 간다고 들었소! 으하하하! 내 살면서 이런 골 때리는 의뢰는 처음이오!”
“놈들이 있다는 북쪽 바다까지 데려다줄 수 있소?”
“물론! 돈만 넉넉히 준다면야 무슨 일이든 하는 게 내 미덕이지만…… 이번에는 최소한만 받겠소.”
“?”
“그 개같은 뼈다귀 새끼들이 죽인 내 동료가 적지 않거든.”
변덕스러운 바람과 해류에 경로를 이탈했다가, 유렁선을 맞닥뜨려 목숨을 잃은 항해사 길드원이 얼마나 많던가!
알드군트의 뱃사람은 하나 같이 ‘바다의 공포’를 두려워하고, 증오했다.
“아 물론. 이쪽 뼈다귀는 환영이오! 으하하하!”
“죽여도 됩니까. 주인님?”
“되겠나?”
안광을 흉흉히 빛낸 무르하탈은 병사들을 부려 루브릭의 범선에 필요한 짐들을 실었다.
그사이 데일은 마중 나온 하켄과 마지막으로 상의했다.
“저희는 그럼 계획대로 이레네를 향해 진군하겠습니다. 이레네에서 합류하는 걸로 하죠.”
“조심해라.”
“이미 알드군트도 무너트린 마당에 조심할 게 뭐 있겠습니까. 오히려 조심해야 할 건 경이죠.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바다에 가라앉으면 다 개죽음인데요.”
“여차하면 수영해서 엘드리엄까지 가면 된다.”
회심의 농담을 던진 데일은 곧장 하켄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하켄은 심드렁했다.
“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데일이라면 진짜 그렇게 할 것 같았다.
자기 농담을 받아주지 않는 모습에 데일은 조금 실망했다.
“이만 가보겠다.”
“예. 금방 봅시다.”
“하티. 너도 얌전히 잘 있어라.”
하티가 불만스레 크릉 울었다.
하티는 데일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늑대왕’의 권위를 생각하면 하티가 하켄 옆에 있어 주는 게 좋았다.
“이번에는 또 사라지는 거 아니죠?”
“당연하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마지막으로 카일라의 등을 두드리며 안심시켜준 데일은 배에 올랐다.
상당히 큰 규모의 범선이다.
돛이 무려 일곱 개나 달려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범선이라도 2,000에 달하는 밤의 군단을 모두 태울 수는 없었다.
데일은 북쪽 지방이 고향인 인간 병사들과 도적들 일부만을 대동했다.
도적떼나 리자드맨을 비롯한 나머지 병력들은 하켄과 함께 이레네로 진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지휘는 무르하탈이 맡았다.
“무르하탈.”
“예. 주인님.”
“내가 없는 동안 잘할 거라 믿는다.”
“맡겨만 주십시오.”
“배신하지 말고. 배신하면 죽는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이미 신께 맹세까지 않았습니까. 이 무르하탈이 그렇게 못 미덥습니까?”
“어.”
“…….”
사실. 무르하탈은 데일을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무르하탈은 데일이 보여준 여러 무위를 보고 생각했다.
데일이야말로 여신의 은총을 받는 진짜 기사라고.
적어도 데일 옆에 있으면 콩고물 떨어질 게 많다고.
이득이 되는데 왜 굳이 배신하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데일을 배신한 뒤의 뒷감당이 두려웠다.
저 흑기사라면 정말로 지옥 끝까지 쫓아와, 기어코 자신의 두개골을 부숴버릴 것 같았으니까.
해야 할 말을 모두 마친 뒤.
데일은 범선에 올랐다.
기다리고 있던 선장 루브릭이 기세 좋게 소리쳤다.
“자! 닻을 올려라!”
“예이!!”
“바람 좋고! 적당히 따습고! 구름 한 점 없고! 이번 항해는 느낌이 좋구만! 흑기사 형씨. 기대해도 좋소. 내가 감이 많이 좋은 편이거든? 이번 항해는 느낌이 좋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아!”
루브릭은 쾌활하게 외치며 싸구려 술을 벌컥 들이마셨다.
그리고 반나절이 채 지나기 전.
선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흑기사 형씨. 아무래도 우리 좆된 것 같소.”
“유령선이 나타났소?”
선장이 발작하듯이 외쳤다.
“아니. 크, 크라켄이오!”
“…….”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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