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75)
항해
* * *
얼굴이 하얗게 질린 루브릭 선장이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잠잠하던 바다에 짙은 그림자가 넘실거렸다.
“뭔가 있긴 하군. 근데 저게 크라켄인지 다른 몬스터인지 어떻게 아는 것이오.”
“뱃밥 먹은 세월이 있는데 척보면 척 아니겠소! 그리고 크라켄이 아니라도, 크라켄만큼 커다란 놈이라는 건 확실하니, 우린 좆된 것이오! 배가 박살날 거라고!”
선원들은 모두 혼란에 빠져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루브릭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조타수! 배를 우현으로 돌려!”
“작살 준비해!”
“자, 작살로 크라켄을 뭘 어쩌려고요.”
“그럼 가만히 서 있으려고 병신아!!”
그러는 사이에도 그림자는 점점 배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크라켄이 범선을 슬쩍 보고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부서졌다.
녀석은 명백히 이쪽을 향해 적의를 가지고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바닷속 그림자가 수면 위로 떠오르더니, 그 거체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놈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수면이 넘실거리며 파도를 만들어냈다.
무식하게 커다란 문어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빨판이 다닥다닥 붙은 거대한 촉수.
회색에 가까운 몸체.
그리고 그 피부 위에 달라붙은 울퉁불퉁한 따개비들.
범선보다도 족히 두 배는 더 큰 괴수의 모습은 과연 위압감이 넘쳤다.
‘저런 걸 만나면 확실히, 꼼짝없이 뒤진 목숨이었겠군. 괜히 북쪽 바다로 안 가는 게 아니었어.’
심지어 이곳은 아직 북쪽 바다도 아니었다.
“젠장! 아직 따뜻한 바다란 말이다! 왜 재수 없게 여기까지 내려온 거야!”
원래 바다는 변덕쟁이다.
바다에 익숙한 선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러려니 하는 배포를 가졌다.
하지만 이건 선을 넘지 않았는가.
다가오는 크라켄을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던 루브릭은 문득, 옆에 서 있는 흑기사가 너무나 평온한 걸 눈치챘다.
마치 남의 일인 양 구경하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루브릭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리 차분하시오!”
“아니. 그냥 저 녀석을 사냥하면 얼마나 많은 생기를 흡수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었소.”
“뭐요?”
데일은 크라켄을 살피며 판단을 마쳤다.
아무리 거대해봤자 몬스터는 몬스터. 그보다 더 크고 강력한 것도 사냥했던 데일에게 겁을 주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하지만 지금은 바다 위라는 건 잊자 말아야 한다.
‘배에서 싸우면 좋을 게 없겠군.’
저 무식하게 커다랗고 무거운 촉수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이 범선은 종잇장처럼 찢겨나갈 거다.
엘드리엄으로 수영해서 돌아가는 건 사양이다.
데일은 망토와 가방을 풀러 루브릭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맡아주시오. 귀한 물건이니 혹시라도 잃어버리면 안 되오.”
“뭐, 뭐요?”
“갔다 오겠소.”
“잠……!”
데일은 마검만을 들고 쿵쿵 달려가더니, 그대로 갑판에서 땅을 박차 바다로 뛰어들었다.
풍덩!
갑옷과 수면이 부딪혀 잠시 물보라와 물거품이 일고. 머지않아 바다 속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뭐가 많긴 하군.’
바닷속 풍경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다소 있었다.
크라켄뿐만 아니라 거대한 상어나 사이렌 등. 다종다양한 몬스터들이 오랜만의 인간 고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
그들은 데일이 바다에 뛰어들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먹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데일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음산하고 싸늘한 기운에 움직임을 멈췄다.
“!!”
“!”
뭔가 잘못됐다.
저건 먹이가 아니다.
감이 좋은 몬스터들은 곧장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늦었다.
마력이 휘몰아치며 데일의 눈동자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영혼지배.
경쟁자들보다 빠르기에, 데일과 가장 가까웠던 거대 상어의 두 눈이 흐리멍덩해졌다.
지성이 약한 몬스터의 의식을 지배하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데일은 거대 상어의 단단한 몸을 붙잡은 뒤, 명령을 내렸다.
‘저 문어 놈에게 접근해라.’
명령을 받은 거대 상어는 빠르게 수면 위로 올라온 뒤. 꼬리지느러미를 파닥이며 크라켄에게 향했다.
둘 간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선장과 선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무슨…… 상어를 조종한다고?”
“물에 뛰어들길래 자살하는 줄 알았는데…….”
크라켄도 상어를 타고 오는 기사의 접근을 알아차렸다.
우우우웅!!
온 바다를 울리는 기분 나쁜 외침과 함께, 촉수가 맹렬한 기세로 휘둘러졌다.
데일은 상어의 등을 밟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강한 압력에 거대 상어의 등이 움푹 내려앉고.
뒤이어 크라켄의 촉수에 얻어맞은 상어는 그대로 목숨을 잃고 저 깊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상어의 희생(?) 덕에 데일은 촉수를 피할 수 있었다.
상어를 후려치느라 힘을 잃은 촉수 위에 올라탄 데일은, 그대로 촉수를 밟고 본체를 향해 달렸다.
의도를 눈치챈 크라켄이 곧장 다른 촉수를 데일에게 내뻗으려던 그때.
싸아아아아!
데일의 몸에서 흘러나온 어둠이 온 일대를 덮었다.
평범한 어둠이 아니다.
크라켄은 갑작스레 느껴지는 싸늘함과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저 북쪽 바다의 차디찬 물도 이리 싸늘하지 못했으며, 이 끔찍한 공포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크라켄은 움츠러들었다.
몸을 움직여 어떻게든 어둠을 흩어내려 했다.
머지않아 어둠이 흩어지고.
다시 태양이 보였다.
그리고 그 태양을 등지고, 마검을 번쩍 든 흑기사가 뛰어오르고 있었다.
푸욱!
마검이 깊숙이 박혀 들어가자, 푸른 피가 튀었다.
우우우우웅!!
또다시 기괴한 울음소리를 낸 크라켄이 촉수를 뻗어 데일을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데일은 이미 녀석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신체 구조상 크라켄이 데일을 떼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데일은 요령 좋게 촉수를 피해내면서 계속해 검을 휘둘렀다.
‘워낙 맷집이 좋은 녀석이라, 죽을 생각을 안 하는군.’
부족한 건 화력.
문득. 데일은 이럴 때 시험해보기 적당한 기술이 하나 있음을 떠올렸다.
정신을 집중해 마음속에 검을 그렸다.
그러자, 데일의 그림자가 모여들더니, 대검의 형상을 이루어 데일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새로 얻은 기술 ‘그림자 검’.
그림자 검은 데일이 별도의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스스로 날아가 크라켄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슈칵!
형체화된 그림자의 날카로움은 마검에 비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크라켄의 울퉁불퉁한 피부에 상처가 빠르게 늘어났다.
이따금 촉수가 그림자 검을 후려치기도 했지만, 그림자는 흩어졌다가 다시 되돌아와 다시 검의 형상을 이루었다.
날카로움.
빠르기.
그리고 스스로 움직이는 편리함까지.
그림자 검은 공격 기술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갖춘 기술이었다.
문제가 딱 하나 있다면…….
‘마력 소모가 장난 아니군.’
맹렬하게 싸워나가던 그림자 검이 어느 순간부터 비리비리하더니, 팟! 하고 흩어져버렸다.
흑기사의 고질병인 마력 부족이 어김없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했다.
실전에서 새 기술을 시험해본 셈 치면 이 정도로도 만족스러웠다.
애초에 이미 크라켄은 빈사 상태니까.
게다가 상처 입은 짐승이 다음으로 취할 행동은 뻔하다.
도주.
크라켄은 촉수를 허우적거리며 깊은 바다 저 아래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몇몇 촉수는 데일을 꼭 붙들려 했다.
‘그대로 익사시킬 요량인가 보지?’
안타깝지만 데일은 숨을 쉬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크라켄은 복수심에 불타며 데일을 놓지 않으려 했다.
데일은 굳이 저항하지 않았다.
녀석의 상처에 손을 박아넣고, 산채로 생기를 흡수했다.
‘덩치가 크니 생기도 어마어마하군.’
데일은 별 어려움 없이 크라켄에게서 생기를 거두었다.
나름 한 바다를 주름잡는 괴물답게 그 양이 적지 않다.
실로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그리고 크라켄이 충분히 깊게 내려왔을 쯔음.
생각했다.
‘슬슬 올라가야겠군.’
데일은 자신을 부러져라 쥐고 있는 촉수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힘을 주었다.
“!!”
드드득.
크라켄의 촉수가 그대로 뜯겨나갔다. 그 압도적인 용력에 크라켄은 당황을 넘어 경악했다.
이런 자그마한 몸으로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걸 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대로 촉수를 두어 개 더 뜯어낸 데일은 녀석의 머리에 박힌 마검을 뽑아 챙긴 뒤.
유유히 수영해 수면 위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데일이 본 건 반쯤 죽음에 이르러 저 어두운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크라켄과, 그런 크라켄을 뜯어먹기 위해 몰려드는 바다 몬스터들이다.
‘당분간 몬스터 걱정은 없겠군.’
모처럼 크라켄 고기로 실컷 포식했으니 구태여 위협해오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크라켄을 사냥한 데일에게 다시 덤벼들 정도로 몬스터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유유히 수영해 범선으로 다가선 데일이 말했다.
“밧줄 좀 내려주시오.”
“…….”
“아, 으. 예! 내려드리겠습니다!”
벙찐 얼굴로 멍하니 서 있던 선원들이 앞다투어 밧줄을 던져주었다.
밧줄 서너 개가 데일의 근처에 떨어졌다.
“하나면 되는데.”
데일은 그중 하나를 붙잡고 범선 위로 올라섰다.
갑판으로 올라선 데일은 몸에 묻은 바닷물과 해초 따위를 후두둑 털어냈다.
루브릭이 헐레벌떡 달려와 공손히 수건을 받쳤다.
“이걸로 몸을 닦으십시오.”
“고맙소.”
“아닙니다. 홀로 크라켄을 때려잡는 기사인데, 이 정도는 당연합니다.”
이전보다 훨씬 공손한 태도와 말투였다.
데일이 대충 몸을 닦아내자, 다른 선원들이 앞다투어 달려와 손을 내밀었다.
“다, 다 쓰셨으면 제가 받아드리겠습니다.”
“아니, 내가!”
“……?”
“이 새끼들! 위아래도 있는 법이거늘! 헤헤. 저한테 주시면 됩니다.”
루브릭이 샛노란 이를 드러내며 헤헤 웃었다.
이 촌극에 데일은 꺼림칙한 기분으로 수건을 건네주었다.
“왜 수건 따위에 다들 목매는 것이오.”
“수, 수건 따위라니요!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오래도록 바다의 공포로 군림한 크라켄을 때려잡았는데! 그분의 몸을 닦은 수건에도 당연히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지 않겠습니까!!”
으레 뱃사람들은 미신에 약한 법이다. 그럴 수밖에.
변덕스럽고 위험한 바다와 항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은, 미신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데일의 성수가 묻은(정확히는 바닷물이지만) 수건은 몬스터들을 내쫓고 행운을 불러오는 영험한 힘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으음. 알겠소.”
조금 소름끼쳤지만 데일은 이해해주기로 했다.
딱히 해가 될 것도 없고.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기사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마치 왕을 섬기는 신하들처럼, 선원들이 데일의 앞에 바짝 엎드렸다.
분명 이 배의 선장은 루브릭이건만.
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루브릭이 가장 앞에서 엎드리고 있었으니까.
“……원래대로 북쪽으로 계속 가주시오. 당분간 습격은 없을 것 같으니까.”
“옙!”
“모두 위치로!”
“이대로 북쪽 바다로 간다!!”
* * *
‘바다새’호는 순조로운 항해를 계속했다.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떴다.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이던 짙푸른 바다는 점점 먹물색으로 변해갔다.
곳곳에 암초가 보였으며, 해류는 거칠었고, 용뼈 산맥에서부터 불어온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 선원들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과연 듣던 대로 만만치 않은 바다다.
하지만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루브릭 선장은 능숙하게 배를 항해해갔다.
“하하! 어쩌면 이대로 엘드리엄까지 도착할 수도 있겠는데요!”
루브릭이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순조로웠다.
크라켄 이후로는 몬스터에게 습격당한 적도 없고, 이런 위험한 바다에 해적 따위가 있을 리도 없으니까.
하지만 데일은 이 평화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유령선에 대한 게 혹시 헛소문이었소?”
“그럴 리가요! 놈들은 진짜입니다! 저도 멀리서 본 적이 있다고요!”
“근데 왜 안 나타나는 것이오.”
“으음.”
유령선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순탄하게 항해해, 목적지까지 도착해버릴 것 아닌가.
“안 나타나면 좋은 것 아닙니까? 어차피 목적지는 엘드리엄이지 않습니까.”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선박의 원리가 궁금하오. 어쩌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저쪽에서 안 나타나면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없지 않습니까.”
“흐음.”
데일이 고민에 빠져 있자, 옆에서 엿듣던 선원 하나가 의견을 냈다.
“미끼로 유인하면 어떨까요?”
“미끼?”
“낚시를 생각해보십시오. 떡밥이든 미끼든 뿌려놔야, 물고기가 다가오지 않겠습니까?”
“오오.”
“막내야 너 완전 똑똑한데?”
“역시 막내!”
“헤헤. 제가 선배님들이랑 달리 조금 똑똑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죠.”
고개를 끄덕인 데일이 물었다.
“그러면 그 미끼는 누가 하지?”
“그거야…….”
선원들의 시선이 막내 선원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돛대의 꼭대기에 막내 선원이 칭칭 묶여 소리쳤다.
“살려주세요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