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77)
항해
* * *
밴쉬 야가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당장은 힘들겠지. 하지만 시간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50척의 유령선이라…….”
하늘을 날아다니는 전력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공중에서 흩뿌려지는 공격은 군대의 사기를 꺾어놓기 마련이니.
그것뿐만 아니라, 데일은 이 유령선이라는 이동 수단에도 관심이 있었다.
빠르게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대자연의 장벽들과 적 세력을 무시하고 대륙 각지를 다닐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한 데일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게다가.
‘어쩌면 황제와 접촉할 수 있을지도.’
공중에 날아다니는 이레네에 당최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 고민이었으니,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황제랑 접촉할 수 있을지 말지. 접촉하는 게 이득일지 아닐지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하지만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었다.
내친김에 데일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이 유령선이 하늘을 나는 원리도 좀 궁금한데.”
“음! 그걸 말해주는 건 어려울 것 없지.”
이곳은 일종의 협상 자리다.
야가브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데일의 아래로 들어가 협력하거나, 데일에게 소멸당하거나.
당연히 야가브는 전자를 택했다.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자기 쓸모를 최대한 부풀리기로 했다.
쓸모가 많을수록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테니.
“우리는 부유 마법을 사용했다. 부유 마법이 뭔지 알지?”
“알다마다. 황제가 도시를 띄워올릴 때 사용한 마법 아닌가.”
“뭣. 황제가 뭘 띄워?”
처음 들어보는 소식에 야가브의 눈이 땡그래졌다.
그야 쉽게 믿기 힘든 얘기긴 했다.
“그보다 너희는 밴쉬가 아닌가. 마력을 담아둘 신체도 없는데, 어떻게 마법을 쓰는 거지? 아니. 애초에 흑마법을 사용하면서 일반 마법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마력은 영혼과 정신과 관련된 힘이지. 육신이 없어도 그릇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아낸다면, 어려울 것도 없어.”
“마법과 흑마법은?”
“애초에 마법과 흑마법은 상극이 아니야. 오히려 흡사한 부분이 많지. 단지 두 가지를 다 다룰 만한 재능과 시간이 있는 이가 드물 뿐이야.”
그리고 언데드에게 시간은 넉넉하다.
재능과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야가브는 말했다.
“결국은 의지의 문제야. 상극이라 할 수 있는 밤의 신성과 빛의 신성도, 잘만 하면 동시에 다룰 수 있을걸? 어마어마한 반발에 몸이 펑! 터져나가겠지만.”
“두 가지 기적을 동시에 다룬다는 소린가?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군.”
데일은 야가브에 대한 신뢰도를 한 단계 낮췄다.
그런 데일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야가브는 멋쩍게 웃었다.
“히히. 어디까지나 이론상 가능하다는 소리야. 애초에 두 신이 다른 신의 신도에게 신성을 왜 내려주겠어. 의미 없는 가정이지.”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이 밴쉬가 마법과 흑마법에 모두 조예가 있다는 건 대충 알았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어?”
“썩어도 범선인데, 이 무거운 배를 하늘로 들어서 날아다니려면 어마어마한 마력이 필요해. 심지어 배 위에는 스켈레톤들도 타고 있지. 그걸 해낼 정도로 무식하게 마력이 많았다면, 나랑 싸울 때 좀 더 고전했겠지.”
“흐음.”
야가브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냥 무식한 기사인 줄 알았더니, 제법 마법적인 조예가 있었다.
옳은 지적이다.
단순히 비행 마법으로 무거운 걸 들어 올리려면 그에 걸맞는 대가가 필요하다.
황제가 이레네를 공중에 들어올리는 희대의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건 그에게 마탑이 있었기 때문이다.
“꼼수를 좀 부렸어. 영체화라고 들어봤어?”
“흑마법이군.”
영체화.
대상의 육체를 물질계와 정신계의 중간 틈새로 날려 버리는…… 뭐 대충 그런 거창한 설명의 기술이었던 거로 데일은 기억하고 있다.
중요한 건 몸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자연스레 무게도 사라져버린다는 것.
야가브는 기껏해야 적 공격을 회피할 때 쓰는 기술을 훌륭히 응용해낸 것이다.
“과연. 이 세상에 실체가 없는 배가 둥둥 떠다니는 거니까, 정말로 유령선이군.”
“하하! 마음대로 날아다니다가 전투에 들어가면 영체화를 풀면 되니, 마력을 아낄 수 있지!”
물론. 영체화에도 단점은 몇 가지가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못 쓰잖아.”
“못 쓴다기보다는 마력이 압도적으로 많이 들지. 그래서 죄다 우리 같은 밴쉬나 스켈레톤으로 데리고 다니잖아?”
결국.
유령선 함대를 만들어놔도 사람들을 수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언데드 수송용으로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리고 데일 휘하 병력의 절반은 언데드였다.
데일은 야가브의 쓸모를 인정했다.
“좋아 그럼. 한동안 내 밑에서 일해줘야겠다.”
“뭐. 싸움에서 패배했으니 복종하는 것도 당연한 거지. 그게 언데드의 방식이고.”
언데드는 위계질서가 강하다.
“다만. 우리한테도 무언가 보상이 있어야 좀 더 열과 성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매끄럽게 혀를 굴려, 어떻게든 무언가 하나라도 받아내려는 태도에 데일은 피식 웃었다.
나쁘지 않다.
의욕 있는 부하도 필요한 법이다.
무르하탈과는 다른 방식으로 데일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나랑 같이 다니다 보면, 너와 밴쉬들이 무시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약속하지.”
누가 감히 데일의 부하들을 무시하겠는가.
그건 곧 데일을 무시한다는 것과도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한가?”
야가브는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 * *
밴쉬 자매들의 합류가 결정되고.
데일이 가장 먼저 한 건 자매의 병력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함선이 3대. 각 함선에는 스켈레톤과 밴쉬가 각각 30여 기씩.
밴쉬는 몰라도, 스켈레톤은 당장 그렇게 큰 전력은 아니다.
유령 선단에 강력한 화력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다만. 그 기동성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데일은 유령선에 올라 야가브의 방식에 익숙해지려 했다.
우선은 영체화부터.
“영체화를 걸 거야. 어. 솔직히 자신 없는데, 그래도 열심히는 해볼게.”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
“음. 영원히 차원의 틈새에 부유하던가,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버리는 사소한 일들이 벌어지는 정도?”
“별로 사소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럼 간다! 되도록 마음 편하게 먹어. 그쪽 영혼은 특이해서, 우리 마법이 먹히지 않을 것 같단 말이야.”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았다.
밴쉬들이 데일을 둘러싸 구문 구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력이 데일의 몸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몸 안에 흐르는 밤의 신성과 마력이 저절로 방어하려 했지만, 데일은 최대한 몸을 가라앉혔다.
다음 순간. 머리가 짜르르 울렸다.
데일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몸은 반투명했고, 초록색 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대충 성공한 것 같군.”
“■■■■!”
“■■?”
“■■■■■.”
밴쉬들이 무어라 입을 뻐끔거렸지만, 목소리가 전달되는 일은 없었다.
이 차원의 틈새인지 뭔지에서는 바깥의 소리가 차단되었고, 시야도 뿌연 노이즈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그래. 완벽한 기술이 어딨겠어.’
다소 아쉬운 점이었다.
하지만 이게 어디인가.
‘잠깐. 저놈들이 마음만 먹으면 날 계속 이 상태로 가둬둘 수 있는 건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자력으로 탈출할 방법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보통 이런 경우.
무식한 방법이 대개 정답인 경우가 많았다.
데일은 마력을 잔뜩 끌어다가 새벽안개를 전개했다.
주위에 안개가 뻗어나가자, 데일을 감싼 초록빛이 크게 일렁였다.
그러다 일순.
공간이 찢어지며 데일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꺄아악!”
“아악!”
밴쉬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리고 원망스럽게 외쳤다.
“뭐 하는 거야! 강제로 마법이 취소되었잖아.”
“어떻게 하면 나올 수 있을지 시험해봤다.”
“……다음에는 그냥 손을 흔들어. 얼마든지 꺼내줄 테니.”
사소한 해프닝은 있었지만, 데일 역시 영체화된 상태로 이 유령선과 함께 날아오를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우리도 흑기사를 영체화한 건 처음이야. 네 신체랑 영혼이 너무 강해서, 마력이 엄청 들었어. 그나마 반언데드라 이 정도였지.”
“좋아. 그럼 나는 일단 바다새호로 내려오겠다. 알아서 따라와.”
“어디로 간다 했지?”
“엘드리엄.”
“호호! 자매들아! 우리는 이제 엘드리엄을 함락하러 간다!”
““예 언니!!!””
“그런 거 아니야.”
어쨌든. 밴쉬 자매는 오랜만에 육지로 간다는 사실에 들뜬 모양이다.
그녀들이 바다 위를 방랑한 건, 절대 바다를 좋아해서가 아니었으니까.
“음. 유령선을 위에 두고 항해해보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그러게요 선장.”
“근데 밴쉬들 엄청 이쁘던데. 한번 꼬셔볼까요?”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루브릭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배를 몰았고, 다음날. 육지가 보이는 곳까지 다다랐다.
“저기 선착장이 보이십니까? 배를 내려드릴 테니 저곳까지 노를 저어 가시면 됩니다.”
작은 선착장이다.
이런 커다란 범선이 접근하기는 힘들었다.
루브릭은 배를 두어 척 내려주었다.
데일을 따라온 도적과 병사들은 몇 차례 노를 저으며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데일이 선장에게 악수를 건넸다.
“도와줘서 고맙소. 위험한 부탁이었는데 말이오.”
“으하하! 세상이 어지럽지 않습니까! 유령선을 처리하는 것도 보고 재밌었습니다.”
“그리 말해줘서 고맙소.”
“저. 그. 정말 고맙습니까?”
“?”
“그럼 땀 닦은 수건 하나만 더…….”
“…….”
데일은 배를 타고 육지에 도착했고, 선원은 다시 노를 저어 범선으로 돌아갔다.
바다새호는 천천히 저 수평선 너머로 멀어져갔다.
데일은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도착한 선착장은 작고 초라한 곳이었다.
부서진 어선 몇 척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사용 안 한 지 오래됐군.’
버려진 곳일까?
아무래도 엘드리엄에서도 북쪽으로 치우진 오지인지라, 사람들이 다 떠난 듯하다.
아직 여름인지라 북쪽 지방은 적절히 시원했다.
“가자. 엘드리엄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
“옙!”
“저기 마을이 보이는데. 약탈할까?”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야가브는 시야가 넓었다.
육지에 상륙한 야가브와 자매들은 묘하게 들뜬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니면 그냥 약탈이 좋던가.
“약탈은 무슨. 근데 마을이 있다고?”
“집이 몇 채 보이는데? 작은 마을인 것 같아!”
“사람은?”
“사람은 안 보여!”
데일은 야가브가 가리킨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언덕을 두어 개 넘자, 그녀의 말대로 마을이 하나 나왔다.
데일에게도 익숙한 마을이었다.
“……그래. 이 근처였지.”
선배 흑기사였던 케인.
그가 이성을 잃고서도 돌아오고 싶어 했던 고향.
언데드를 이끌고 북부를 쑥대밭으로 만들던 케인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 사내였다.
지금도 가끔 꿈을 꾸면 생각나곤 한다.
왤까.
그가 흑기사를 가리키는 별명인 ‘살육 기계’에 걸맞는 무위와 힘을 보여준 것 때문일까?
데일이 케인에게서 흑기사로서 싸우는 법이나 기술들을 배웠기 때문일까.
‘그것도 있지만…….’
남 일 같지 않았다.
자아와 이성을 잃고 날뛰는 것도 그렇고, 죽을 때까지 싸우다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나,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방황하던 모습 모두 데일에게는 타인의 일이 아니었다.
선배 흑기사는 데일의 미래였고, 데일은 그런 미래를 원치 않았다.
데일은 익숙한 집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케인이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그리고 최후를 맞이했던 장소다.
케인의 시체는 없었다.
유달리 따뜻했던 저번 여름. 이 차디찬 북부에서도 시체는 썩어 없어졌다.
데일은 텅 비어버린 집안을 둘러보며 케인의 최후를 떠올렸다.
부릅뜬 눈으로 데일에게 제국의 위험을 경고하던 그 모습을.
그의 경고는 실현되었다.
제국은 무너졌고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케인은 마지막에 어떤 심정이었을까?
자기가 치른 죄에 대한 죄악감?
제국의 미래에 대한 불안?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케인이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그것 하나만큼은 만족했을 것이다.
“뭐 있어?”
밴쉬 야가브가 벽을 통과하며 물었다.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데일은 집 문을 닫은 뒤,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는 케인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간수해야 할 것이다.
내면의 늑대가 다른 늑대를 잡아먹지 않게.
“…….”
마지막으로 마을을 뒤돌아본 데일은 무심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도적과 병사, 유령선이 뒤따랐다.
‘얄궂군.’
데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때 케인이 언데드 군대를 몰고 다니던 장소에서 똑같이 언데드를 데리고 다니는 자신의 상황이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물론.
이 근방 주민들은 ‘검은 사신’이 부활했다면서 공포에 떨 테지만 말이다.
괜스레 겁을 주지 않으려면 어서 빨리 이동하는 게 낫다.
엘드리엄이 머지않았다.
그곳에서 데일은 에스델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