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79)
대주교 에스델
* * *
에스델은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꿈인가?
아니다. 이건 분명 사악한 언데드가 에스델에게 마법을 걸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속으면 안 된다.
이런 달콤한 꿈이 현실일 리 없다.
“왜 그러지?”
하지만 저 목소리.
차갑고 무뚝뚝하며, 엘프처럼 딱딱 끊어 말하는 듯한 억양은 기억 속 목소리와 너무나 흡사했다.
그렇기에 간절함을 담아. 그리고 불안함을 담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진짜. 진짜 데일 경인가요?”
“가짜 데일도 있나? 그나저나 갑옷 멋지군. 그토록 갑옷 좀 입고 다니라고 잔소리했는데, 이제야 판금 갑옷을 마련한 건가?”
그제야 에스델은 상대가 데일이라는 걸 확신했다.
“어쨌든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 하켄에게 대충 얘기 들었다. 이곳에서 이것저것 일을 벌인다고.”
“…….”
데일이 악수를 건네자, 에스델은 그 손을 양손으로 꼭 붙잡았다.
그 몸이 조금 들썩였다.
당황한 데일이 물었다.
“……우나?”
“크응. 안 울어요.”
“코도 훌쩍이는 것 같은데.”
“아니라고요.”
데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투구 아래 얼굴이 가려져 확인할 수가 없다.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야.
에스델은 데일의 손을 붙잡은 채, 그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슬슬 데일이 곤란해하고, 병사들이 의아해하던 순간.
에스델이 입을 열었다.
“약속하세요.”
“뭘?”
“다시는.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노력해보지.”
에스델은 데일의 손을 한층 강하게 쥐었다.
“노력이 아니라 약속하세요. 지금 당장.”
그 박력에 데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약속하겠다.”
둘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약속을 어기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의미였다.
* * *
데일의 등장은 순식간에 엘드리엄을 달궜다.
“데일 경이 오셨대!”
“데일 경? 흑기사 데일 경? 뭔 소리야. 그분은 악마와의 싸움에서 돌아가셨잖아.”
“밤의 여신의 힘으로 부활했대!”
“허어!! 당장 보러 가세!”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데일이 엘드리엄의 성문 앞에 다다랐을 즘.
이미 온 엘드리엄의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데일을 보며 열렬한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아아!!! 진짜 데일 경이다!”
“데일 경! 데일 경!”
“북부의 영웅이 돌아오셨다!”
“불사신이다! 저분은 불사신이다!”
“손 한 번만 잡아주세요!”
“제 아들 이름도 데일로 지었습니다 데일 경!”
“제 막내딸도요!”
“딸 이름으로 좋은 이름은 아닌 것 같은데…….”
차갑고 무뚝뚝한 북부인들의 뜨거운 반응에 데일은 당황했다.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거지?”
에스델은 무슨 이상한 질문을 하냐는 듯. 되물었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연하다고?”
“원래 경은 검은 사신을 막아낸 영웅으로 북부인들한테 인기 많았잖아요. 게다가 악마랑 싸우다 전사한 영웅이 되돌아오다니. 당연히 열광하죠.”
숭고한 죽음을 맞이한 영웅은 전설이 되는 법.
그 전설이 이리 살아 돌아왔으니, 북부인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됐고. 어서 손이나 흔들어주세요. 기왕이면 미소도 좀 짓고요.”
“어. 그래.”
투구를 벗은 에스델은 꾸며낸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데일은 그런 에스델의 모습이 낯설었다.
하지만 에스델이 한 번 더 흘겨봤기에, 어색하게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환호성은 더더욱 커져 온 천지를 울렸다.
“성하! 데일 경이 살아돌아왔으니 황혼을 무찌를 수 있는 겁니까?”
“이제 승리는 우리 것이죠! 그쵸?”
“한 말씀만 해주세요! 억!”
사람들이 어찌나 열렬히 달려드는지, 에스델의 호위를 맡은 엘프 전사들이 연신 몽둥이를 휘둘러야 했다.
하지만 열광적인 북부인들은 몽둥이에 얻어맞더라도 에스델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때.
에스델이 자리에서 멈춰 손을 들었다. 그녀는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소란스럽던 시민들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카리스마.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지금껏 전사한 줄 알았던, 영웅 중의 영웅 데일 경께서 우리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셨지요. 우선 이 경사로운 일에 모두 눈을 감고, 두 여신께 감사 기도를 올립시다.”
그러자 시민들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데일은 미묘한 눈빛으로 그런 에스델을 쳐다보았다.
에스델은 애써 시선을 돌렸다.
“이로써 또 하나의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영웅은 죽지 않으며, 악은 절대 선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가올 황혼과의 결전에서, 저희들은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황혼의 목을 베는 그날까지, 함께 싸웁시다!”
“와아아아!”
“대주교님 만세! 데일 경 만세!”
“황혼의 목을 잘라라!”
시민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에스델과 데일은 계속 걸음을 옮겼다.
데일이 조용히 물었다.
“음. 여러모로 달라졌군.”
뭐랄까. 정치인 비슷하게 되었다 해야 하나.
에스델은 여전히 입가에 꾸며낸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데일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힘들어요. 근데 이 자리에 있으면 이럴 수밖에 없어요.”
황혼이 온 대륙을 지배하려는 지금.
신들의 권위는 그 어느 때보다 위협받고 있다.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에 교단의 얼굴마담인 에스델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신들은 우리를 가호하며,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시민들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너도 고생이 많군.”
“알아주니 고맙네요.”
“근데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못 물었는데. 왜 이렇게 입이 걸걸해진 거지?”
에스델이 흠칫했다.
그리고는 딴청을 피웠다.
“글쎄요. 무슨 말을 하는지 저는 잘…….”
“아까 분명 나를 보면서 사지를 찢어버리니 뭐니 하지 않았나.”
“사지는 찢다니요. 저는 분명 사지를 산산조각…….”
“기억하고 있네.”
“……죄송해요.”
“아니. 책망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궁금해서.”
에스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그 편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에스델도 고상하고 점잖은 언어를 사용했더랬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전사 기질 가득한 북부인들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에스델은 좀 더 적나라하고 직관적인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눈높이를 맞추는 건 중요한 일이지.”
“예…….”
둘은 시민들을 뚫고 나가 성주의 저택 앞까지 다다랐다.
엘드리엄 성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성주는 데일을 보며 씨익 웃었다.
“자네가 죽었다고 했을 때, 나는 믿지 않았었네. 대체 누가 자네 같은 괴물을 죽이겠나.”
“오랜만이오.”
데일은 악수를 위해 오른손을 내밀려다, 성주의 허전한 망토를 발견하고 재빨리 왼손을 내밀었다.
지난번. 검은 사신과의 전투에서 성주는 팔을 잃었다는 게 떠올랐다.
성주는 웃으며 악수를 받아주었다.
“하하! 아무튼 반갑네.”
엘프답게 힘 있고 억센 손이었다.
* * *
셋은 성주의 집무실에서 회포를 풀었다.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았다.
“그렇군. 늪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건가? 대단하군.”
데일이 살아남은 경위.
“하켄은 여전히 잘하고 있나 보네요. 솔직히 언제 진실이 탄로 나 목이 매달려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라만티스를 쓰러트리고 알브헤임까지 활로가 뚫린 건 반가운 일이군. 그 성벽을 정공법으로 뚫으려면 원래 1만의 병력은 필요했을 진데. 큰일을 해주었어.”
하켄과 서부의 상황.
“……북쪽 바다를 항해해 왔다고요?”
“성밖에 세워둔 저 유령선. 혹시 내가 아는 그 유령선이 맞나? 수십 년간 바다를 누비던.”
“맞소.”
데일이 밴쉬를 굴복시키고, 북쪽 바다를 항해해 온 일까지.
에스델과 엘드리엄 성주는 연신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데일이 걸어온 행보는 쉬이 믿기에는 다소 놀라웠다.
다만. 이 흑기사가 허세 같은 걸 부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순순히 믿었다.
성주는 데일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잘해주었네. 경이 살아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이 큰 용기를 얻었어. 다른 곳에도 연락을 넣었나? 자네 얘기가 퍼진다면, 대륙의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날 텐데.”
“일부러 소문을 퍼트렸소. 카엘름에도 전령을 보냈고. 다만. 얼마나 효과를 보일지는 모르겠소.”
지금의 파편화된 대륙에서 소문의 전파는 그리 빠르지 못하다.
당장 엘드리엄에서는 악마 라만티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아직 못 전해듣지 않았던가?
“전령이라. 카엘름 위치를 생각하면, 솔직히 거기까지 닿을 확률이 너무 낮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소.”
“그래.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긴 하지. 그럼 이제 내가 말할 차례인가?”
시원스레 운을 뗀 엘드리엄 성주는 북부의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에스델을 중심으로 새로운 교단의 중심지가 됐다는 말과, 각지에서 몰려드는 병력들이 점점 수를 불려나가고 있다는 것.
설명을 모두 들은 데일은 생각했다.
‘상황이 괜찮은데?’
정말로 괜찮다.
강력한 병력을 통해 황혼의 세력을 저지하고 있으며, 치안도 대륙의 그 어디보다 안정되었다.
“용뼈 산맥에 있는 하이엘프 부족들과도 계속해 접선을 시도하고 있네. 워낙 배타적인 자들이라 도움을 청하는 게 쉽지가 않지만, 몇몇 부족에서는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더군.”
“상황이 괜찮은 것 같소. 여기까지 준비하다니, 대단하오.”
“운이 좋았네. 황혼은 북부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거든.”
데일이 말했다.
“하켄은 이레네를 향해 진격하고 있소. 지금쯤 병사들을 이끌고 알브헤임에 도착했겠지. 엘드리엄도 함께 남하해 이레네를 친 뒤, 즉시 황혼을 향해 진격하는 게 좋지 않겠소?”
이레네를 되찾은 뒤, 그곳에서 곧장 동쪽으로 진격한다.
그 과정에서 황혼 아래에 고통받는 다른 도시들도 해방시키고, 카엘름이나 4군단과 합류해 규모를 불린다.
그렇게 모든 전력을 집중해 황혼의 병력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황혼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알고 있을 거라 믿소. 여신께서 내게 말하시길, 우리에게는 정말로 티끌만한 여유밖에 없다는군.”
“!”
“정말. 정말 밤의 여신께서 직접 알려주셨단 말인가?”
“그렇소.”
“허.”
얼굴을 굳힌 성주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사실 우리는 언제라도 남하할 준비가 되어 있었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
성주는 지도를 펼쳐 보였다.
북부. 용뼈 산맥. 그리고 1군단.
1군단은 황혼에게 넘어간 배신자들이다.
천혜의 요새인 용뼈 산맥을 사이에 두고 있어 아직까지 마찰을 빚을 일은 없었지만, 이레네로 진격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이레네를 공격할 때 뒤통수 맞기 좋아 보이는군.”
“1군단은 4개의 군단 중에서도 머릿수가 가장 적지만, 가장 독한 이들이기도 하지. 용뼈 산맥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전선을 수십 년간 유지했는데, 악기가 들어차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나?”
“뒤를 기습할 수 있는 정예 병력이라…….”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명확하다.
혼자 앞뒤로 싸 먹히는 걸 경계하는 거겠지.
하지만 이제 하켄이 서부군을 이끌고 오면 그것도 어느 정도 해결.
대부분의 일들은 빠르게 논의가 되었다.
한참의 회의를 거친 뒤.
데일은 문득 생각나는 걸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에스델. 아니. 대주교 성하.”
“데일 경까지 사석에서 그렇게 부르시면 저 울 거예요.”
“……아무튼 에스델. 하켄이 말하기를 영웅들의 흔적을 쫓고 있다고 들었는데?”
에스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영웅들은 이미 실종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무구나 자취는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황혼을 이기는 데에 단서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 조사대를 꾸렸죠.”
그 황혼과 영웅들과의 관계가 있다고 여긴 데일은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과는 좀 있었나?”
“예. 꽤 흥미로운 자료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중 가장 큰 성과는 이거겠네요.”
에스델은 서랍을 열어, 두툼한 책을 꺼냈다.
“이건?”
“일기. 성녀의 일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