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87)
3군단
* * *
에른스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경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만은 믿지 않았지. 경 같은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 있겠어?”
데일이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나.”
“멜피스 그 새끼가 경을 감옥에 처박았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지.”
“앞에서 사람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흐흐! 잊었어? 나 친위대 단장이야. 생각보다 권력이 있다고.”
에른스트가 한껏 가슴을 펴며 우쭐댔다.
“마침 잘됐군. 지금 상황이 급하다는 건 알지?”
“어. 하늘이 심상치 않던데. 황혼이 무언갈 하려는 거 아니야?”
“황제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뭔가 계획이라도 있나? 말하기 어려우면, 계획이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줘도 된다.”
“폐하는 지금…….”
깊은 한숨을 내쉰 에른스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말할게. 폐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제정신이 아니라고?”
“시민들을 모두 버리고, 성을 띄워 도망쳐버린 건 아무리 폐하라도 비난을 피할 수 없었어. 상위 구역의 사람들도 경악했고. 그래도 평소였다면 괜찮았을 거야. 스승님이 있으면…… 아무리 귀족들이라도 폐하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기사단장은 황혼에게 패배해 죽었다.
황제를 수호하는 가장 강력한 검이 사라진 것이다.
“그 당시 분위기는 정말로 흉흉했어. 당장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지. 폐하께서도 그걸 알아차리고 자기한테 위협이 될만한 고위 귀족들을 대거 숙청하기 시작했어.”
“그래도 되나? 저항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간 폐하께서는 귀족들의 힘을 꾸준히 깎아왔으니까. 북부에서 귀족들이 충돌했던 것도 그렇고, 친위대를 신설한 것도 그렇고. 다른 무엇보다, 여전히 황실 기사단은 폐하를 따르고 있어. 마탑은 중립을 지켰고.”
피바람이 불었고, 대규모 숙청이 일어났다.
황제의 공포 정치에 민심은 더욱 흉흉해졌다.
가장 충성스럽던 신하마저도 황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걸 겉으로 대놓고 표현할 수는 없다.
다음 처형 상대로 선정될 테니.
“그때부터였을 거야. 요직에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한테 딸랑거리는 사람을 앉혀놓은 게.”
“전형적인 암군이군.”
“원래는 총명하던 분이셨는데…… 스승님의 죽음에 특히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에른스트가 말을 이었다.
“지금은 국정 운영은 아랫사람한테 모두 떠넘기고. 술이랑 여자에 빠져 살고 계셔. 나이도 있으신 분이. 쯧.”
“결국. 황혼이 세상을 뒤집어엎든 말든 별달리 움직일 계획이 없다는군.”
“모르지. 워낙 노회하신 분이라, 저 모습은 가면이고 마음속에 깊은 심계를 꾸미고 있을 수도 있지.”
에른스트는 여전히 황제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하긴. 애초에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황제 역시 에른스트를 친위대 단장에 임명했을 터.
데일이 물었다.
“에른스트.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뭐가.”
“뭘 물어보는지 알지 않나. 지금 세상이 박살나게 생겼는데, 이대로 동쪽 한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나?”
에른스트는 잠시 고민했다.
생각을 정리한다기보다는 신중히 말을 고르는 눈치였다.
그런 모습에서 데일은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이레네에 불던 피바람은 순진하고 다소 어벙하던 청년에게 신중함을 길러주었다.
“우리 사이니까 솔직히 말할게. 이대로는 안 돼. 당장 황혼을 막아야 해. 내가 그리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녀석이 하려는 일만은 막아야 해.”
“그러면…….”
“하지만 폐하를 설득하는 게 힘들어. 아니. 말을 붙이는 것조차도 어려워. 항상 술에 찌들어계시니.”
“황제가 안 된다면, 3군단만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나?”
에른스트가 고개를 저었다.
“군단장 멜피스가 문제야. 그놈은 우리가 뭘하든 반대부터 하고 볼 놈이야. 싸울 의지도, 싸워야 할 이유도 이해하지 못하는 놈이지. 오히려 우리가 폐하를 설득하려 하면, 신이 나가지고는 우리가 음험한 의도를 품고 있다고 모함할 놈이지.”
에른스트는 이를 빠득 갈았다.
아무래도 당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데일은 상황을 정리했다.
무기력한 황제.
황제의 칼날에 팔다리가 잘려버린 귀족 세력.
무능한 군단장.
에른스트의 친위대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
마탑은 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황실 기사단은 아직은 황제를 따르고 있다.
한참을 고민하던 데일이 다시 물었다.
“지금 황실 기사단장은 누구지?”
“아일라 경이라고…… 알지? 스승님의 제자.”
“그 젊은 여자 기사를 말하는 건가?”
“어어. 기사단장을 맡기에는 조금 어리긴 하지. 그래도 스승님의 제자라는 점이랑, 실력이 빼어나다는 점 덕분에 임시로 단장을 맡고 있어.”
“임시?”
“어. 폐하께서는 그…… 스승님 정도가 아니면 단장으로 성에 안 차시는 것 같아.”
참으로 욕심 많은 작자였다.
“그렇다면 지금 기사단은 아일라라는 기사의 뜻에 따르고 있는 건가?”
“음. 그렇지. 이게 옳지 못하다는 건 알아도, 스승님께서는 끝까지 폐하를 모셨으니. 아일라 경도 그 의지를 따르고 싶은 것 같아.”
“그렇군. 그러면, 만약에 기사단이 황제에게서 등을 돌리면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때는 진짜 끝이지. 마탑도 더는 눈치만 보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아일라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을걸?”
고개를 끄덕인 데일이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기사단장을 정하는 조건이 뭐지?”
“단원 중에서 폐하께 정식으로 임명을 받거나, 기사단원들 모두가 인정할 정도의 사람이거나…… 근데 그건 왜 물어? 잠깐. 설마?”
“내가 기사단을 설득하겠다. 이레네로 나를 안내해줘라. 그 정도 권한은 있겠지?”
에른스트는 데일이 무슨 일을 할지 짐작이 간다는 듯. 당황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 그 정도는 가능하지. 근데. 잘못되면 너도 나도 끝이야. 엄청 위험하다고!”
“세상이 망하려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너는 몰라도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에른스트가 말을 흐렸다.
데일은 에른스트와 두 눈을 마주쳤다.
“에른스트. 네가 목숨을 걸고 다른 귀족들과 경쟁하며, 친위대 단장이 된 이유가 뭐지?”
“…….”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아니었나?”
에르스트는 눈을 감았다.
그는 고심에 빠졌고, 데일은 기다려주었다.
에른스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데일 경. 아론. 기억나?”
“네 충실한 시종 아니었나. 네 꿈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바쳤던.”
“……기억해주는구나.”
“당연한 것을.”
데일이 아론을 기억해주자, 에른스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데일 경이 예전에 그랬잖아. 아론이 스스로를 희생한 걸 후회하지 않게 똑바로 행동해라, 고. 아무래도 그 순간이 온 것 같네.”
에른스트가 다시 눈을 떴다.
그 눈동자에는 조금 전까지의 두려움과 주저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가자. 아. 열쇠 구해올게.”
“괜찮다.”
“뭐?”
데일은 힘을 주었다.
타닥. 탕!
온몸에 칭칭 감은 밧줄은 힘으로 끊어버리고. 쇠사슬은 벽에 부딪혀 그대로 박살냈다.
창살?
데일은 창살을 양손으로 잡고 가볍게 양옆으로 벌렸다.
데일을 위한 문이 만들어졌다.
“어. 음. 어.”
“애초에 내가 여기로 잡혀들어온 게 아니라, 잡혀준 거다.”
“……그런 것 같네.”
에른스트가 경악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은 빠르게 감옥 밖으로 나왔다.
감옥의 입구에는 경비병들이 기절해 있었고, 그런 경비병들을 전사들이 감시하고 있었다.
데일도 낯이 익은 얼굴들이었다.
“친위대야. 경도 알지? 예전에 같이 북부에서 싸웠던 용병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경.”
“소문은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기 경의 검은 챙겨두었습니다.”
“아. 다들 오랜만이다. 고맙다.”
친위대가 앞다투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데일은 습관적으로 그들의 몸을 살폈다.
근육이 단단히 잡혀 있고, 무기와 갑옷이 잘 조화를 이룬다.
조금 싸울 줄 아는 용병이 아닌, 진짜배기 전사의 느낌이 났다.
시간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에른스트도 그렇고, 이들도 마찬가지다.
“가자. 마침 요새 내부가 혼란스러운 것 같아.”
“왜 그러지?”
“황혼의 군세 일부가 이쪽으로 온다나 봐. 숫자는 2000밖에 안 된다는데…… 뭔가 불안해. 서두르자.”
친위대는 데일을 둘러싼 뒤, 빠르게 움직였다.
목표는 이레네.
이레네는 하늘에 둥둥 떠 올라 지상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에른스트는 그 그림자 안으로 걸어 들어가 조심히 외쳤다.
“한스 경! 한스 경! 어딨어요?!”
“…….”
묵묵부답.
한숨을 내쉰 에른스트가 다시 외쳤다.
“지혜롭고 뛰어난 마법사 한스 경!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허허. 누가 나를 부르나 했더니, 친위 대장이셨군요.”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나타난 마법사의 이름은 한스.
그리고 이 역시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늘 반가운 얼굴을 많이 보는군.”
“……어라. 데일 경?”
한스는 마치 뱀 앞에 선 쥐처럼 데일을 보고는 굳어버렸다.
데일은 한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나저나 한스 경이라니. 출세했구나. 마탑에서도 따돌림이나 당하던 평민 마법사가.”
“하. 하하. 다 데일 경 덕분이죠. 에른스트 단장이라도 연결해주시고, 그 뭐냐. 바이만 보물고에서 비행 마법도 배울 수 있게 해주시고.”
“그래 한스. 앞으로는 부르면 재깍재깍 튀어나와라. 여러 사람 기다리게 하지 말고.”
“……예.”
한스가 쭈그러들자, 친위대가 고소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도 어지간히 거드름을 피운 모양이다.
그런 낌새를 눈치챈 한스는 불현듯,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해? 나 한슨데? 요즘 마탑에서도 나 함부로 못 대하는데?’
한스는 어깨에 올려진 데일의 손을 툭 쳐냈다.
“흠. 흠흠. 아무래도 저를 아직도 예전의 한스로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한스가 아니면 뭔데.”
“자꾸 이렇게 제 권위를 존중하지 않으시면 그때는 저도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가만 안 있으면. 뭐 어쩔 건데.”
“어쩌긴…… 음.”
한스가 데일을 흘끔 쳐다봤다.
이렇게 말을 했으면 표정 변화라도 있으련만.
데일은 지극히 무감정한 표정이었다.
오래도록 떵떵거리며 살아오며 쌓아온 한스의 자존심이 싸그리 무너져 내리고.
현실이 차갑게 찾아왔다.
“어, 어쩌긴요. 어쩌긴…… 뭐 어떻게 못 하긴 하죠.”
한스가 무기력하게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데일이 말했다.
“한스. 난 아직도 네가 빈민가에 쳐들어와 사람들을 불태우려던 그 모습을 잊지 않았다.”
“……그때 안 죽였잖아요. 아무도.”
“내가 막아서였겠지. 어쨌건. 원래 죽었어야 하는 목숨을 살려준 거니, 늘 겸손해라.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알겠습니다…….”
기가 꺾인 한스가 마법 구결을 외웠다.
쓴웃음을 짓던 에른스트는 데일에게 가리켰다.
“여기 양탄자 위에 서세요.”
날개 달린 말이 그려진 화려한 태피스트리 양탄자였다.
에른스트와 데일, 그리고 한스까지. 셋이 양탄자 위에 올라섰다.
“안드레이 님의 작품이에요. 하늘을 날기 더 쉽게 만든 마도구죠.”
“아. 안드레이. 그분은 잘 지내시나?”
“너무 정정해서 문제죠.”
이윽고 마법 완성되었다.
양탄자가 세 사람을 싣고,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상이 빠르게 멀어졌다.
시야가 탁 트이자 멀리까지 보였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군세가 진격해오는 게 보였다.
‘방금 말한 황혼의 군세인가? 확실히 숫자 자체는 적은데, 심상치 않긴 하군.’
놈들을 유심히 살피던 데일은 또 다른 방향에서 걸어오는 자그마한 점 두 개를 발견했다.
데일은 그쪽을 집중해 바라보았다.
사람 둘이 걸어오고 있었다.
한데 왜일까.
둘의 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누구지?’
오늘은 유독 아는 얼굴을 많이 만나는 날이다.
저들도 혹시 아는 얼굴이지 않을까?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아무리 데일이라도 이 거리에서는 알아볼 수 없다.
그렇게 데일이 지상을 살피는 사이.
양탄자는 높이높이 날아, 이레네에 빠르게 가까워졌다.
한스는 비행 마법을 유지했고, 에른스트는 빛을 내는 마도구를 꺼내 켰다 하늘을 향해 껐다를 반복했다.
데일이 묻기 전에 에른스트가 설명했다.
“암호입니다. 미리 정해진 암호를 보이지 않고 접근하는 비행물체는 전부 요격당해 버립니다. 악마조차도 섣불리 접근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군.”
데일은 새삼, 야가브의 유령선으로 접근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랬으면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새까만 재가 되었을 테니.
이레네 쪽에서도 빛이 깜박거렸다.
들어와도 좋다는 신호였다.
한스가 양탄자를 몰아 이레네에 착륙했다.
상위구역의 모습은 이전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구역을 감싼 두꺼운 성벽이 전부 사라지니, 꽤나 탁 트인 느낌이었다.
하늘 위인지라 전망도 아주 좋았고 말이다.
하지만 늘어선 건물들이나 아름답게 가꿔진 거리는 그대로였다.
혼자만 전쟁의 불씨와 세월의 흐름이 비껴간 듯한 모습이었다.
에른스트가 양탄자에서 내리자, 마법사와 기사 몇이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친위대장. 지상에서의 일은 잘 해결되었습니까?”
“예. 덕분에 일을 잘 보고 왔습니다.”
“그거참 다행이군요. 한데. 뒤에 있는 분은 누구죠? 한 명이 더 올라온다는 보고는 못 들었는데요.”
황실 기사단의 기사가 눈매를 좁혔다.
아래에서 봤던 어중이떠중이 기사랑은 비교도 안 되는 기세였다.
에른스트가 곤란한 얼굴로 데일을 쳐다보았다.
이제 어찌할 거냐는 표정이다.
데일은 고개를 저어주었다.
마치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이.
데일은 땅을 박찼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기사가 검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데일은 저 높이 날아 근처 지붕에 착지했다.
데일은 상위구역을 내려다보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었고, 이내 폭탄을 터트리듯이 목소리를 내뱉었다.
“황실 기사단장 미하일 경의 전우로서 말한다!!”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기사단장 자리를 걸고, 황실 기사단에 명예로운 결투를 신청한다!!!”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온 하늘에, 온 도시에, 그리고 이곳에 살아가는 모두의 귓가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