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86)
3군단
* * *
기사들의 날카로운 칼날이 번들거렸다.
그들의 노골적인 적의와 살의가 데일을 자극했다.
몸 안의 본능이 이 자들을 죽이라 외쳤다. 하지만 데일은 참았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다짜고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네 혐의를 부정하는 거냐?”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다.”
“하! 뻔뻔도 하군!”
화려한 갑옷을 입은 기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첫째! 언데드를 비롯한 사악한 자들을 모아 그 의도가 의심스러운 단체를 조직한 죄!”
밤의 군단을 말하는 걸까?
사실, 이 점을 찔러 들어오면 할 말이 궁하긴 했다.
리치, 도적, 언데드 병사들, 그리고 이제는 밴쉬까지.
누가 봐도 건전한 단체는 아니지 않은가?
“둘째! 4군단장 베른바르트를 비롯해 불순한 무리들과 어울리며 폐하에 대한 반란을 꾸민 죄!”
반란? 내통? 베른바르트?
이레네가 무너지고 4군단이 완전히 황제에게서 돌아서긴 했다.
그걸 반란으로 여긴 걸까?
“마지막으로 황혼과 내통해 이레네를 불구덩이에 빠트리고, 명예롭던 황실 기사단장 미하일 경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 이래도 네 죄가 없다고 주장할 셈이냐!”
“잠깐.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껀 터무니없는 모함인데.”
“시끄럽다! 변명은 재판장에 가서 해라! 모두 저놈을 제압해!”
“예!”
“…….”
“…….”
“뭐 하는 거야. 제압하라고!”
“……예.”
기사들이 데일을 앞에 두고 우물쭈물거렸다.
막상 칼을 뽑긴 했는데, 그 소문의 흑기사를 직접 상대하려니 겁이 났다.
물론. 둘러싸인 데일은 어처구니없는 심정이었다.
‘겁을 집어먹었다고? 이런 것들이 기사?’
데일은 방금 기사들이 대화를 나누던 걸 곰곰이 되짚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놈들. 귀족이 아닌데.’
귀족과 평민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억양이다.
아무리 평민이 비싼 옷을 입고 화려하게 꾸려도, 평생에 걸쳐 익숙해진 억양은 어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민이 기사가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절대 흔하지는 않았다.
근데 이 기사들은 전부 평민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황제는 예전에도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평민들을 써먹곤 했지.’
그때 황제가 겉으로 표방한 건 실력주의였다.
문제는 이 기사들이 실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비싼 갑옷을 입은 용병 정도일까.
솔직히 말해.
데일 혼자서 전부 쓰러트릴 수 있다.
‘어떻게 할까.’
마침내 상관의 닦달에 못 이겨 기사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기는 건 쉽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도 생각해야 했다.
‘어쩌면 내가 이 기사들을 죽이길 노리는 걸지도 모르겠군.’
앞의 혐의는 터무니없는 모함이라 주장할 수 있지만, 여기서 기사를 한 명이라도 죽이면 그건 현행범이다.
완벽한 명분이 되는 것이다.
“나는 대주교 성하가 보낸 전령이다. 전령을 이렇게 대하는 법이 있나?”
“하! 밤의 여신을 섬기는 흑기사가 대주교의 전령이라고? 농담이라면 제법 웃기구나!”
“여기 대주교의 인장이 찍힌 편지도 들고 왔다.”
“당연히 조작된 거겠지!”
기사는 보지도 않고 외쳤다.
아니,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는 기색이었다.
“이러는 이유가 뭐지?”
“죄를 지은 자를 잡아들이는 데에 이유가 필요한가?”
“군단장을 만나고 싶다.”
“군단장께서는 너 같은 놈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
“억울한 게 있으면 재판을 받도록. 아니면, 역시 찔리는 게 있나 보지?”
완고한 태도.
잠시 고심한 데일은 이내 마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좋다. 순순히 끌려가주마.”
“!”
눈치만 보던 기사들이 후다닥 달려들었다.
“더, 덮쳐!”
“밧줄 가져와!”
“밧줄로 안 돼! 쇠사슬이 필요해!”
기사들이 달려들어 쇠사슬과 밧줄로 과할 정도로 꽁꽁 묶어놓았다.
그리고는 얼굴에 자루까지 뒤집어씌워 시야를 가렸다.
“감옥 가장 깊숙한 곳에 집어넣어라. 시민들에게 보이지 않게 철저히 가리고.”
“예!”
“그리고 입단속도 철저히 해!”
기사들이 데일을 마차에 실은 뒤 끌고 갔다.
데일이 완전히 제압되었다 여긴 기사들이 겨우 한시름 놓았다.
“사, 살았다.”
“시발 새끼. 지도 직접 잡기 쫄리니까 우리 시키는 것 봐.”
기사들이 그들의 상관을 욕하든 말든.
데일은 정신을 집중해 바깥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마차는 지금 요새의 한복판을 나아가고 있었고, 거리에는 시민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문 들었어? 흑기사 데일 경이 이 요새에 왔대.”
“저, 정말? 내가 아는 그 데일 경이 맞아?”
“그렇다는데. 봤다는 사람이 엄청 많아.”
“그럼 당장 가서 환영식을 해야지! 영웅이신데!”
“그게…… 기사들이 잡아갔다나 봐.”
“뭐?”
“데일 경이 황혼이랑 내통했다느니 뭐니 하는 걸 아직도 주장하더라고.”
“빌어먹을 황제 새끼.”
“쳐죽일 놈.”
“거기!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헛소문을 퍼트리면 엄벌 대상이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사의 일갈에 시민들이 흩어졌다.
데일은 계속해서 시민들의 소리에 집중했고, 방금 전과 비슷한 얘기가 도시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황제에 대한 민심이 최악이군.’
이제 상황이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다.
그나마 황제에게 충성하는 3군단이지만, 시민들의 입까지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황제가 이레네를 버리고 도망친 것도 전부 소문이 났을 터.
황제의 권위와 민심은 최악이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데일이 동료와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악마 두르핀과 동귀어진했다는 소문이 돌며 온 대륙에 그 명성을 퍼트렸다.
그리고 죽음에서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며, 그는 영웅에서 전설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황제보다도 데일을 칭송했다. 그게 황제에게는 몹시 거슬렸을 것이다.
‘그래서 뒤집어씌운 거군.’
난공불락의 이레네가 그냥 무너질 리 없다.
그 강력한 기사단장 미하일이 죽을 리 없다.
필시 배신자가 있을 것이다.
그 배신자는 바로 흑기사다.
흑기사는 본디 언데드의 본능을 가진 자로, 사악하고 잔인하다.
그동안 데일의 연기에 모두가 속았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데일이 뒤통수쳤다.
대충 그런 소문을 퍼트려 데일의 권위를 깎아내려 했을 터.
하지만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순진하게 저 얘기를 믿는 이들도 소수나마 있었지만, 대부분은 황제의 주장을 불신했다.
그러는 와중에 데일이 3군단을 방문했으니, 저들로서도 당황했으리라.
‘내가 온 걸 숨기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군.’
대륙의 영웅이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 퍼지면,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뭐. 당장 처형당할 일은 없겠네.’
그랬다가는 감당할 수 없으리라.
물론, 순순히 처형당해줄 생각도 없었지만.
천천히 움직이던 마차가 멈췄다.
“내려!”
기사들이 데일의 몸을 우악스럽게 붙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철창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기사들은 데일을 그 안에 집어넣은 뒤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하아. 시간도 없는데 골치가 아프군.”
어떻게 해야 할까.
데일은 생각에 잠겼다.
* * *
3군단장의 이름은 멜피스.
멜피스는 싸움도 못 하고, 지휘도 형편없으며, 머리도 그리 좋지 못한 사내다.
하지만 그는 정치에 대해서만큼은 천재적인 감각을 지녔다.
명문가의 차남으로 태어난 멜피스는 3군단으로 부임해 가장 안전한 보직을 꿰찼고.
곧장 다른 귀족 지휘관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관계를 쌓아나갔다.
멜피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부하가 세운 업적은 교묘하게 자신의 것으로 돌렸으며, 자기 실책은 부하에게 전부 떠밀었고, 경쟁자를 모함해 뒤로 제끼고, 부하들에게 돈을 걷어 상관에게 뇌물로 바쳤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계급이 올랐다.
그럴듯한 전공 하나 없는 머저리가 가슴에 훈장을 대롱대롱 달고 다녔고, 지휘관 중에서도 높은 서열에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3군단장은 그런 멜피스를 쳐내야겠다 마음먹었고, 관련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멜피스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이레네가 무너지고, 다른 모든 군단이 황제를 배신할 때, 오직 3군단만이 황제에게 붙었다.
멜피스는 여기서 기회를 봤다.
그는 거짓 증거를 모아 군단장을 배신자라 고발했고, 황제는 이를 받아들였다.
군단장은 정식 재판도 없이 빠르게 처형당했다.
멜피스는 황제의 지혜로움을 찬양하며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고, 이에 크게 기꺼워한 맹세는 멜피스를 3군단장으로 앉혔다.
그다음에 멜피스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전임 군단장의 사람들을 쳐냈고, 자기한테 아부하고 딸랑거리는 이들을 주요 보직에 앉혔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멜피스만큼이나 무능했다.
군단은 빠르게 약해졌다.
군기는 개판에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멜피스에게는 상관없었다.
그는 자기 자리만 보존할 수 있다면 다른 무엇도 관심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데일이 왔다.
데일은 큰 위협이었다.
누가 봐도 시민들. 심지어 병사들도 데일을 더 좋아할 것 아닌가?
마침 황제도 데일을 싫어했으니 일은 쉽다.
멜피스는 신속하게 데일을 잡아넣었다.
“그래. 순순히 감옥 안에 잡혀들어갔다고?”
“아,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기사들에게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래. 제까짓놈이 내 기사들에게 어쩔 수 있겠나.”
여기서 기사들이란, 그가 용병들에게 돈을 받고 기사 작위를 내려준 이들이었다.
한시름 놨다는 생각에 멜피스는 기지개를 켰다.
“생각보다 별거 없군. 기사 한둘 정도는 벨 줄 알았는데. 뭐. 그랬으면 기사 살해죄가 추가되었겠지만.”
“소문이 과장된 것이겠죠. 애초에 소문이란 게 믿을 게 못 되지 않습니까? 그까짓 송장 놈이 영웅이라니! 진짜 영웅은 바로 군단장님이십니다!”
“하하. 이 친구. 아부도 참.”
“아부가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악마와 황혼에 맞서 이 요새를 굳건히 지키는 멜피스 님이 영웅이 아니라면, 누가 영웅이겠습니까?”
요새를 굳건히 지킨다기보다는, 무서워서 요새에 틀어박힌 것에 더 가깝지만, 어쨌든 멜피스는 흐뭇하게 웃었다.
“흐하하! 그래. 내가 그까짓 언데드 놈보다는 낫긴 하지.”
“맞는 말씀입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큰일입니다!”
“이봐. 감히 노크도 없이…….”
“황혼의 병력 일부가 이곳을 향해 진군하고 있습니다!”
“뭐, 뭐, 뭐? 그 새끼들이 왜 여기로 와? 아니. 그보다 숫자는?”
“이천입니다!”
벌떡 일어났던 멜피스가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뭐야. 겨우 이천? 여기 요새에 있는 병사가 몇인 줄 알아?”
“수, 수는 적지만 심상치 않습니다. 강력해 보이는 이들도 많고…….”
“3군단 소속 지휘관이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쩌겠나. 쯧쯧쯧. 그냥 가까이 오면 화살이나 듬뿍 먹여주도록.”
당황한 지휘관이 간곡히 말했다.
“병사들의 사기가 좋지 못합니다. 하다못해 마탑과 황실 기사단에 지원을 요청하는 게.”
“무슨 소리! 겨우 이깟 일로 그분들을 부르면, 폐하가 자칫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그래! 대륙의 영웅 멜피스 님이 있는데, 대체 무엇이 두렵단 말이냐!”
“멜피스 님 같은 위대한 분을 섬긴다면, 자랑스러워하고 용맹을 보여야지!”
부하의 아부에 멜피스의 입가가 씰룩였다.
보고하러 온 지휘관은 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뒤, 집무실을 나섰다.
멜피스가 혀를 찼다.
“쯧쯧. 어찌 저리 무능한 놈들이 많은지. 기분도 잡쳤는데 술이나 따라봐.”
“예. 여깄습니다!”
부하는 요즘은 구하기도 힘든, 비싼 포도주를 은잔에 가득 따라주었다.
* * *
데일은 감옥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머리에 뒤집어씌운 자루라도 좀 빼주지.’
감옥 안은 고요했다.
다른 죄수도 없었고, 간수도 없었다.
아마 데일이 무서워 입구에서만 경계하는 듯했다.
데일은 생각을 정리했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군.’
지금 상황은 다소 예상외였다.
설마 군단장이랑 대화조차 못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주교의 전령으로 온 데일을 이리 가둬버리다니?
후환이 두렵지 않은 건가?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어.’
시간이 없다.
지금쯤 하켄과 에스델은 최후의 싸움을 위해 이레네를 향해 진격하고 있을 것이다.
한가하게 감옥에 틀어박혀 있을 시간은 없는 것이다.
‘그냥 탈옥해?’
그럴 거였으면 성문에서 그냥 기사들을 베는 게 낫지 않았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군단장을 만나지 못한다면, 하다못해 황제가 있는 저 이레네로 올라갈 방법이라도 찾고 싶다.
그러려면 도움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어렵다.
한데, 누구한테 도움을 받는다는 말인가?
‘그냥 힘을 쓸 걸 그랬나.’
새삼 후회가 들었고, 내면의 본능이 거보라며. 지금이라도 저들을 죽이라고 충동질했다.
그렇게 데일이 깊은 고심에 빠져있던 그때.
발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쇠 장화가 바닥을 딛는 소리다.
기사인가?
저 은밀하면서도 경쾌한 걸음걸이만 들어도 저자가 전문적으로 싸움을 배운 인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아까 그놈들은 아니군. 누구지?’
데일이 의아해하던 그때.
발소리가 철창 바로 앞에서 멈췄다.
“데일 경. 오랜만이야.”
익숙한 목소리였는데,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음. 오랜만이군. 반갑다.”
“……나 못 알아보는 거지?”
“내 머리에 씌워진 자루를 좀 치워줬으면 좋겠는데.”
“아.”
그제야 상대가 가까이 다가와 자루를 걷어주었다.
해맑은 얼굴이 데일 바로 앞에서 씨익 웃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그치?”
에른스트
함께 북부를 돌아다녔던 한때의 의뢰자이자, 친위대의 단장이자, 기사단장의 두 번째 제자.
그리고 너무나 순진하고 어수룩하던 귀족 청년.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군.”
정말로 반가운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