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85)
3군단
* * *
고성은 고요했다.
아무리 유심히 살펴봐도,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악마는 강대한 존재고, 필연적으로 사악하고 강력한 기세를 뿜어낼 수밖에 없다.
숨으려 해도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고성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텅 비어버린 것 같다.
혹시 잘못 찾아온걸까?
하지만 이 근처에 고성이라고는 이곳밖에 없다.
데일은 밴쉬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흩어져서 누가 있는지 찾아봐라. 파르훈은 정신 계열 공격을 하니까 조심하고.”
“알았어!”
밴쉬들이 흩어졌다.
데일은 복도를 따라 성큼 걸었다.
빈방을 여럿 지나쳤고, 마침내 고성의 옛 주인이 살았을 법한 큰 홀을 발견했다.
한데. 홀 문이 열려 있다.
데일은 마검을 뽑아 들고 홀 안으로 들어갔다.
홀 안은 난장판이었다.
‘화려하게도 싸웠군.’
강력한 불꽃이 오래된 벽돌을 그슬린 흔적이 가득했고, 기둥이나 지붕 따위도 무너져 내렸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흔적이다.
그리고 성 하나를 무너트릴 압도적인 화력을 낼 수 있는 이는 몇 없었다.
‘엘레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악마는 또 어디 갔고?
데일이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야가브와 자매들이 모여들었다.
“데일! 악마 녀석을 찾았어!”
“뭐?”
밴쉬들이 하늘을 유려하게 비행하며 데일의 앞에 내려앉았다.
그녀들은 원을 이루었는데, 그 원 한가운데에 웬 자그마한 연기가 흐릿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밴쉬들은 그 연기를 중심으로 빙빙 돌며 조롱을 내뱉었다.
“깔깔깔! 이게 그 악마라고?”
“완전 조그맣잖아!”
“이런 추한 모습으로 살고 싶었을까? 나였으면 그냥 죽었을 거야!”
“부끄러운 줄 알아!”
“…….”
가운데에 있는 악마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몸만 부르르 떨었다.
데일이 자매들을 뒤로 물리고 악마에게 다가갔다.
“파르훈?”
자기 이름을 부르자, 파르훈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데일을 발견하고는 더더욱 몸을 움츠렸다.
“데, 데일? 악마 살해자 데일?”
“그런 호칭으로 불리던 때도 있었지. 파르훈, 맞나?”
“……그래.”
“대부분의 힘을 잃었군.”
파르훈이 입을 꾹 다물었다.
“엘레나랑 싸운 거군? 거기서 패배한 거고.”
“……그 마녀를 아나? 아니. 그렇군. 마녀가 분노한 이유가 그러고보니…… 과연 그렇게 된 거였나.”
혼자 무언갈 깨달았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파르훈에게 데일이 물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군. 설마 네가 엘레나한테 질 줄은 몰랐는데?”
“날 아나?”
“잘 알지. 정신 공격이 특기지 않나? 그리고 주문을 외울 때 집중해야 하는 마법사들은 필연적으로 정신 공격에 약하지. 말해봐라. 패배했는데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파르훈이 수치심을 느끼며 대답했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미리 영혼을 쪼개놓았다. 늘 최악을 대비해야 오래 사는 법이니.”
“자기 영혼을 쪼갤 수가 있나?”
데일은 그 말에 흥미를 보였다.
언젠가 선배 흑기사 케인에게서 산 채로 영혼을 뜯어내는 요령을 배웠던 것처럼.
이 악마아게서도 쓸만한 기술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자세히 말해봐라. 엘레나랑 어찌 싸웠고, 영혼은 어떻게 쪼갰고, 후에 엘레나는 어디로 갔는지. 아. 옆에 엘프 전사도 같이 있지 않았나?”
데일의 거듭된 질문에 당황하던 파르훈의 얼굴에 이내 미소가 어렸다.
기회를 잡은 자 특유의 미소였다.
“아. 그래.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지. 대신. 나랑 거래하자고.”
“흠?”
“내 목숨을 보장한다면 모든 걸 사실대로 털어놓겠다. 궁금하지 않아? 나는 많은 걸 알고 있거든. 그 괴물 같은 마녀를 지금 막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거라고.”
“…….”
“어때. 거래를 받아들이겠나?”
데일은 무감정한 눈빛으로 파르훈을 응시했다.
“거래. 말이지?”
“그래. 당연히 받아들일…… 커억!”
데일은 파르훈에게 양손을 뻗었다.
파르훈이 급하게 몸을 빼려했지만, 이미 데일은 악마의 영혼을 지배해 천천히 몸속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힘을 잃은 악마를 삼키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파르훈이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치며 외쳤다.
“컥. 그, 그마안! 사, 살려줘!”
“나는 악마랑 거래 안 해.”
이윽고. 파르훈의 혼이 전부 데일의 몸속으로 빨려들어왔다.
악마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데일의 영혼을 쩌렁쩌렁 울렸다.
데일은 머리를 부여잡고 잠시 마음을 안정시켰다.
머지않아 파르훈의 기억이 눈앞에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 * *
“내 손을 잡아라.”
악마 파르훈은 손을 내밀었다.
눈이 탁 풀린 엘레나가 손을 붙잡으려 했다.
둘의 손이 마주치는 순간. 모든 건 끝난다.
엘레나의 정신은 파르훈에게 지배당해, 평생을 그의 꼭두각시로 살아야 할 것이다.
파르훈은 약속한 대로 복수는 이뤄줄 생각이었다.
그 역시 황혼을 너무너무 싫어하니까.
‘내 힘을 빼앗아간 황혼 놈! 이 마녀라면 너한테 능히 복수할 수 있겠지!’
둘의 손이 서서히 맞닿으려던 그때.
텁.
억센 손이 엘레나의 팔목을 붙잡았다.
“?”
파르훈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 있는 건 프라우였다. 진짜 프라우.
여전히 흐리멍덩한 눈을 한 프라우가 엘레나를 붙잡고 있었다.
“공. 주님…….”
파르훈은 경악했다.
‘정신을 잃었는데도, 본능적으로 주군을 지킨다는 건가?’
그는 이 엘프 전사를 너무 얕보고 있었다.
짐승 같은 감각의 전사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알아차리는 법이니.
프라우가 팔을 붙잡자 엘레나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프라우 경.”
정신이 멍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상황을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제 엘레나는 마음껏 날뛸 수 있다는 걸.
화아아!
이윽고 거대한 불꽃이 사방에 피어올랐다.
불꽃은 한데로 뭉쳐 거대한 날개를 지닌 용의 형상을 이루었다.
“무, 무슨 이 정도의 마법을!”
“너 때문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어. 악마.”
불꽃으로 이루어진 용이 거대한 날개를 파닥이며 위로 솟구쳐 올랐고.
이내 그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화아아아!
불꽃의 숨결이 온 실내를 메꾸었다.
커다란 것도. 작은 것도.
단단한것도. 약한것도.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도.
열기는 모든걸 평등하게 소멸시켜 버렸다.
머지 않아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엉망이 된 실내가 보였다.
불꽃에 그슬려 버린 벽돌과 무너진 기둥.
처참했지만, 놀랄 정도로 적은 피해이기도 했다.
화력을 생각하면 성이 통째로 날아갔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엘레나의 마법 제어가 무시무시한 수준에 닿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경. 고마워요. 덕분에 악마의 꼬드김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아닙니다 공주님.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이제 좀 떨어져 주시겠어요?”
엘레나의 허리를 붙잡고 찰싹 달라붙어 있던 프라우가 큼큼 헛기침하며 떨어졌다.
“마법 실력이 더 늘으신 겁니까?”
“그럴지도요.”
엘레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핏줄에 흐르는 마법적 재능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바이만 왕가의 모두가 엘레나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불과 몇 년전까지 엘레나 역시 조금 뛰어난 마법사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어째서 이렇게 빠른 성장을 보인걸까?
엘레나는 그 답을 찾았다.
‘강해질 이유가 있으니까.’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
힘에 대한 끝없는 탐욕.
오로지 마법에만 몰두해 수련하는 노력.
엘레나는 더 큰 힘을 원했고, 그녀의 핏줄과 재능에는 그걸 이룰 힘이 있었다.
“성취는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힘에 너무 취하진 마십시오. 마법은 결국 영혼과 정신으로 제어하는 힘. 단단하지 못한 마음으로 너무 강력한 마법을 부리면 스스로를 삼켜버릴 수 있습니다.”
“아버님이 하던 것과 비슷한 말을 하는군요.”
“바이만 왕가는 올바른 마음을 지니지 못한 마법사가 힘에 취해 어떤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많이 봐왔으니까요.”
프라우는 공주의 호위기사로서 충언을 올렸다.
하지만 그 말은 엘레나의 마음에는 닿지 못했다.
“가죠. 언제까지 여기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이 간악한 악마는 감히 내 마음을 홀리려 했지만, 몇 가지 깨달음을 주었죠. 내가 복수해야 할 대상이 악마뿐만은 아니라는 걸.”
“그럼?”
“황제에게 가야겠어요. 우리 왕국이 무너지는 걸 구경만 한데다 이레네를 버리고 도망친 비겁자를 제 손으로 죽이겠어요.”
과연 혼자서 마탑과 기사들을 꺾고 황제를 죽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거다.
목숨이 위험할 거고.
하지만 엘레나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 * *
데일은 얼추 상황을 파악했다.
파르훈은 기억은 극히 일부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엘레나의 행선지는 알 수 있었다.
‘황제.’
지금쯤 동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직 도착은 안 했겠지. 어디쯤일까?’
황제의 아래에는 3군단이 있고, 개인이 군단에 맞붙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사고치기 전에 어서 가야겠군.’
데일은 밴쉬 자매들을 데리고 고성을 나왔다.
배에 올라타 빠르게 3군단을 향했다.
엘레나보다 먼저 도착해야 귀찮은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렇게 3일을 꼬박 비행한 끝에 저 멀리 요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악마에게 맞서 수십 년간 버텨온 인류의 방패.
3군단이다.
그리고 그 3군단 위에는 이레네가 둥둥 떠있었다.
“여기서 내려간다.”
“그냥 요새까지 가면 안 돼?”
“마법사들에게 요격당하고 싶나?”
야가브는 순순히 배를 내렸다.
땅에 발을 디딘 데일이 말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라.”
“왜에. 우리도 황제 보고 싶어.”
“어쩌면 우리를 반기지 않을 수도 있어.”
이들은 황제를 섬기는 자들.
저들은 데일을 불청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일단 대화를 해봐야 한다.
데일은 일단 투구를 벗었다.
이제는 맨 얼굴을 보이는 게 첫 만남의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는 걸 알았다.
데일은 요새를 향해 걸어갔다.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종말이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피난민들이 요새의 정문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세상이 위험에 빠지면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이런 요새일 테니까.
검문을 맡은 경비병들은 피난민들을 깐깐하게 조사했다.
“요새 내에 네 신원을 보증해줄 사람이 있나?”
“어, 없습니다요.”
“네가 황혼이나 악마의 하수인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나.”
“저, 저는 결단코 악마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건 모를 일이지. 결국, 증거는 없다는 거잖아?”
“아이고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요.”
“흠. 글쎄. 성의를 좀 보이면 못봐줄 것도 없지.”
“……저희는 가난한 농부입니다요. 고향을 떠난 저희가 모은 재물이 어딨겠습니까.”
“그래? 당장 끌어내!”
“아악! 죄송합니다!”
경비병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피난민을 붙잡고 저 멀리 던져버렸다.
당연히 폭력은 덤이었다.
우악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심드렁했다.
이제 이런 일이 일상의 일부처럼 흔하다는 증거다.
‘군인들이 부패했군. 여기도 상태가 좋지 못한가 보네.’
검문을 맡은 경비병이 다소의 금품을 챙기는 거야 관습적으로 허용되는 부분이지만, 저건 선을 넘었다.
그만큼 3군단의 상황이 개판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설득이 될까 모르겠군.’
조금 불안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부딪혀보는 게 맞았다.
데일은 성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이씨, 어떤 새끼가 새치기를……!”
“미안하다. 급한 일이라 양해 좀 부탁한다.”
“아, 예. 바쁘시면 어서 가셔야죠.”
기다리던 이들은 기꺼이(?) 줄을 비켜주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비켜서자 경비병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데일을 보고는 굳어버렸다.
“흐, 흑기사?”
“데일이다. 대주교 에스델 성하의 전령으로서 찾아왔다. 3군단장이랑 대화를 좀 했으면 싶은데.”
“……흑기사 데일? 맞으십니까?”
“맞으니까 안에 소식을 전해줬으면 좋겠는데.”
“아, 알겠습니다!”
데일의 이름값은 작지 않았다.
병사가 다급히 성안으로 들어갔다.
피난민이나 병사들이나 모두 데일의 이름에 웅성거렸다.
“그 데일?”
“생각보다 잘생겼네. 괴물처럼 생겼을 줄 알았는데”
“죽다 살아났다는 영웅이잖아.”
“그런 분이 이곳에 왔다고? 우리 군단에 힘을 보태주시러 온 건가?”
“차라리 지금 군단장 대신 우리를 지휘해주면…….”
데일은 사람들이 뭐라하던 그저 조용히 서 있었다.
부정적인 관심도 긍정적인 관심도 그에게는 달갑지 않았다.
머지 않아 병사가 다시 나왔다.
그의 뒤에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척척 걸어나온 뒤 데일을 둘러쌌다.
스릉.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데일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이게 무슨 짓거리지?”
유독 화려한 갑옷을 입은 기사가 외쳤다.
“데일! 너를 악마와 내통하고 반란을 꾸민 체포하겠다!”
데일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