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84)
마녀
* * *
데일이 다시 한번 물었다.
“악마라니. 그게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이 근방에 악마가 있나?”
“그게…….”
주점 주인이 조금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그리 높지 않은 산에 고성이 하나 버려져 있습니다. 두 달쯤 전에 악마가 그곳에 터를 잡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긴 합니다만.”
“악마 이름이 뭐지?”
“파, 파리한? 파레힌?”
“파르훈을 말하는 거군.”
“아, 예. 맞습니다! 분명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고약한 놈이라고 들었습니다! 처음 그놈이 고성에 자리 잡았을 때는 저희도 밤잠을 설쳤지만, 다행히 자기 둥지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귀찮게 되었군.’
데일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파르훈.
전투 능력 자체는 악마들 중에서는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녀석의 특기는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
정신력 능력치가 낮은 상태로 파르훈을 마주하면, 자칫 놈의 하수인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근데 엘레나는 최근 심적으로 불안정하지 않던가?
데일은 불안해졌다.
“엘레나가 이곳에 들른 게 언제지?”
“엘레나?”
“네가 말한 마녀 말이다.”
“아. 그러니까 그게…….”
“닷새 전이지?”
“어어. 닷새 전이 맞아.”
주민들이 너도나도 말을 보탰다.
엘레나는 닷새 전 이 마을에 들렀고, 해가 지기 전에 북쪽을 향해 떠났다.
‘악마의 둥지까지 가는데 하루가 걸렸을 거고, 싸움을 앞두고 체력을 비축했겠지. 그러면 다음 날 싸웠다고 치면…….’
적어도 엘레나가 악마와 맞붙은지 이삼일은 지났다는 것.
어쩌면 지금 엘레나는 궁지에 몰려 있을 수도 있다.
‘서둘러야겠군.’
궁지에 몰려있다면 도와야 하고, 사로잡혀 있다면 구출해야 한다.
데일은 희희낙락하는 밴쉬 자매들에게 명령했다.
“야가브. 잠시 뱃머리를 돌린다.”
“음? 어디로?”
이야기를 전혀 듣고 있지 않던 야가브가 되물었다.
“북쪽. 고성에 악마가 산다. 그놈을 처리하고 간다.”
“아하. 그런 거라면야. 출항이다!”
“예!”
우렁차게 대답한 밴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유령선이 돛이 쫙 펼쳐졌고, 영체화 마법을 통해 녹색 빛에 뒤덮였다.
데일은 떠나기 전에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대로 외진 곳으로 도망치시오. 산이든. 숲이든.”
“예?”
“여기서 황혼의 병사들이 수십이나 죽었소. 분명 추가 병력을 보낼 것이오.”
황혼의 병사들은 그들의 동지가 처참하게 죽은 흔적을 발견할 것이다.
그럼 그 분노는 어디로 향할까?
눈치 빠른 주점 주인은 상황을 눈치채고 얼굴이 하얘졌다.
“아. 그, 그렇군요.”
“시간이 얼마 없소. 많아야 이틀? 그 안에 주민들을 데리고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하오.”
“하지만…… 저희가 도망칠 수 있을까요?”
“내가 가짜 흔적을 만들어주겠소.”
데일은 일부러 남겨둔 시체들을 향해 오른손바닥을 펼쳤다.
안광이 번뜩이고. 마력이 휘몰아쳤다.
이내, 시체들은 비척비척 일어났다.
“그어어.”
“그으.”
데일은 명령을 내렸다.
“각자 흩어져서, 힘이 다할 때까지 최대한 멀리 움직여라.”
“그어어.”
강제로 되살아난 병사들이 비척비척 걸어갔다.
이제 태양도 뜨지 않는 시대니. 저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병사들이 움직이며 만들어낸 흔적은 주민들이 도망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경께서는 저희 마을의 은인이십니다!”
“저도 이제부터 밤의 신도가 되겠습니다!”
주민들이 바닥에 엎드리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
주점 주인이 대표로 말했다.
“무언가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저희가 가진 게 없어서 이 돈이라도…….”
“그거, 내가 준 돈 아니오?”
“흠흠. 그건 그렇습니다만.”
“먹을 거는 어떻습니까?”
“삶은 감자라도 좀.”
주민들은 앞다투어 작은 것 하나라도 데일에게 선물해주려고 했다.
개중에는 덜자란 꼬맹이들도 들풀 따위를 따와 데일에게 내밀었다.
“기사님. 감사합니다!”
“…….”
아무리 데일이라도 이것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결국. 데일은 주민들의 선물을 한 아름 받아들고, 아이에게서 받은 들꽃은 조심히 주머니에 넣었다.
이윽고 출항 준비가 끝났다.
데일은 배 위에 올라탔다.
야가브가 핀잔을 주었다.
“뭔 쓸모없는 걸 그렇게 이것저것 받았어.”
“신경 꺼라.”
데일은 삶은 감자를 와삭와삭 씹어먹었다.
“우리는 딱히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는데, 굳이 꾸역꾸역 입속에 집어넣는 이유가 뭐야?”
“성의라는 게 중요한 거다.”
“정말이지. 너는 참 이상한 놈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야가브는 데일에게 영체화 마법을 걸어주었다.
이윽고 배가 하늘로 두둥실 떠오른 뒤,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아래에서는 주민들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게 흐릿하게 보였다.
아마 환한 미소를 짓고 있겠지.
그 모습을 보며, 데일은 바로 얼마전에 야가브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바보같이 살지 말라고 했던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저기 있지 않은가.
내심 마음이 복잡하던 데일은 역시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등을 기댔다.
이제 해결해야 할 건 하나.
‘부탁이다 엘레나. 제발 살아만 있어라.’
위기에 빠져도 좋고, 놈의 지배를 받아 하수인이 되어도 좋다.
살아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살아만 있으면.
* * *
엘레나와 프라우는 악마가 산다는 고성의 출입구에서 멈춰 섰다.
“여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공주님.”
“흐으음.”
확실히, 악마의 둥지라는 얘기를 들으니 이 허름한 고성이 무언가 으스스해보인다.
막상 와보니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 역시 꺼림칙함에 부채질한다.
‘믿을 만한 동료들이 있었다면 두렵지 않았을 텐데.’
마법사는 필연적으로 주문을 외우는 동안 무방비해진다.
그 특성상 상대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고, 위험에 빠질 일도 많다.
괜히 마법사들이 믿음직한 호위들을 옆에 두고 다니는 게 아니다.
엘레나에게도 그런 호위가 없다. 아니, 있기는 한데…… 확실히 실력은 뛰어난데…… 썩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흐흐. 오늘 제 아이들이 피를 가득 먹겠네요.”
엘레나가 질린 얼굴로 말했다.
“제발 자기 무기를 ‘아이들’이라고 표현하는 건 그만둬줘요. 변태 같이 웃지도 말고요.”
“변태라니. 말씀이 심하시군요. 그나저나 왜 여기서 멈춰 서신 건가요? 혹시 겁먹으신 건가요?”
프라우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엘레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녀는 대답 없이 고성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자, 잠깐 기다리세요!”
프라우가 급히 엘레나의 뒤를 따랐다.
고성은 조용했다.
반쯤 무너져 내린 옛 왕국의 장식물과 독특한 건축구조가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살아있는 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없는 장소 같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엘레나는 이 성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악마의 사악하고도 꺼림칙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놈 역시 엘레나와 프라우가 들어온 걸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의 의도는…….
‘더 안쪽으로 들어오라는 건가?’
“계속 가죠. 경.”
“…….”
대놓고 함정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엘레나와 프라우는 한참을 걸었다.
복도와 빈방을 여럿 지나쳤고.
마침내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고성의 옛 주인이 살았던 공간일 것이다.
엘레나는 이 문 너머에 악마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 앞이에요. 대비하세요.”
“…….”
엘레나가 앞으로 다가가자, 커다란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넓은 홀이 보였다.
엘레나는 홀 안으로 발을 들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어?’
분명 이 안에 악마가 있는 게 확실하건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엘레나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조심하세요 경. 놈이 무언가 꾸미고 있습니다. 경?”
“…….”
프라우가 대답이 없다.
엘레나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이 엘프, 너무 조용하다.
분명 평소였다면 제발 닥쳐달라고 해도 떠벌거렸을 텐데 말이다.
식은땀이 한줄기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엘레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프라우를 보았다.
프라우다. 분명 프라우가 맞았다.
한데…… 뭔가 꺼림칙하다.
“프라우.”
“왜 그러십니까 공주님.”
프라우답지 않은 부드러운 음성.
엘레나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경 아이들 이름이 뭐였더라?”
“하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독신이라 아이가 없습니다.”
엘레나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어느샌가 튀어나온 불덩이가 그대로 프라우를 덮쳤다.
콰아아아!
프라우의 몸이 연기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대체 언제부터 바뀐 거지?’
그 다음 순간.
홀 반대편에 나 있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수십 명의 전사가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전사들은 모두 프라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겁 없는 친구들! 이 파르훈의 성에 어서 오게!”
악마 파르훈의 중후한 목소리가 온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파르훈의 본체는 보이지 않았다.
파르훈은 감탄을 터트렸다.
“이거. 엄청난 마력이 느껴지길래 웬 괴물이 오나 했더니, 이렇게 작은 소녀라니! 놀랍군!”
“그런 소녀한테 겁먹어서 본체도 안 드러내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
“하하! 그렇게 도발해봤자 소용없네!”
“……프라우 경은 어떻게 한 거야.”
“이 프라우라는 이름의 엘프 전사는 정말이지 놀랄 정도로 유혹에 약하더군! 거의 어린이 수준이었네! 아가씨는 제법 신분이 높아 보이는데, 전사의 수준을 보니 그리 훌륭한 집안은 아닌 모양이군.”
악마의 신랄한 말에 엘레나는 할 말이 궁했다. 프라우가 좀…… 유혹에 약한 사람은 맞으니까.
하지만 프라우가 욕먹는 건 참아도, 가문을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엘레나의 손짓하자 물방울이 맺히더니 거대한 용의 형상이 되었다.
엘레나는 이번에는 반대로 다시 손짓했다. 수룡의 몸에 번개가 타닥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여버릴 수 있는 강력한 마법.
하지만 그 놀라운 기예에도 파르훈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놀리듯이 말했다.
“훌륭하군! 우리들에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마법 실력이군! 하지만 괜찮겠나? 이 중에는 네 동료가 섞여 있네! 자네 스스로 소중한 동료를 죽이고 싶은 겐가?”
“윽.”
엘레나가 주춤하자, 껄껄 웃음을 터트린 악마가 외쳤다.
“과연 이 중 누가 진짜 동료일까! 어디 한번 열심히 찾아보게!”
프라우의 얼굴을 한 악마의 하수인이 엘레나에게 달려들었다.
엘레나는 수룡을 불러들여 하수인들을 튕겨내려 했다. 하지만 하수인들은 맹목적으로 달려들었고, 엘레나는 마법의 출력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 프라우를 죽여버리면. 그때는 정말로 마음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는 악마다.
손속에 사정을 두며 상대할만한 적이 아니다.
사위에서 밀려드는 적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고.
악마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엘레나를 괴롭혔다.
“그래! 네 마음속 감정이 보이는구나! 작은 소녀여! 너는 슬퍼하며 분노하고 있구나! 소중한 사람을 모두 잃고, 그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존재에게 복수하지 못하는 현실이 화가 나는 모양이지!”
“…….”
“하지만 네가 진정으로 증오하는 건 너 자신이겠지! 소중한 사람들이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능한 자신을! 가만히 지켜만 보던 스스로가 미워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닥쳐.”
“대륙을 떠돌며 복수하고 다니는 건 죽은 이에 대한 속죄인가? 하지만 엘레나. 작은 소녀여. 너도 알고 있지 않는가? 네가 진정으로 복수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악마의 목소리가 엘레나의 귓가로 파고들어 영혼을 뒤흔들었다.
귀라도 막고 싶은 기분이지만, 달려오는 하수인들을 상대하는 것만도 벅찼다.
“모든 건 네 탓이었다. 그 사람이 죽은 건 모두 네 탓이었단 말이다. 네가 약했기 때문이다.”
엘레나는 이를 악물고 달려오는 하수인을 불로 지져버렸다.
마법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엘레나의 마음의 평정이 깨졌다는 의미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프라우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엘레나의 마음은 버틸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악마는 그걸 노릴지도.
“여전히 네가 복수해야 할 자들이 살아있다. 모두를 버린 무능한 황제.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보호를 받으며, 정작 그의 죽음에도 별로 슬퍼하지 않는 무능한 인간들. 그리고 황혼. 소녀여. 복수를 원하나?”
“…….”
엘레나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 눈이 탁 풀렸다.
달려들던 하수인도 걸음을 멈추고, 그 하수인들의 몸에서 연기가 빠져나와 뭉치고 얽히더니 사람 얼굴 같은 형상을 이루었다.
이 연기야말로 악마 파르훈의 본 모습이다.
파루훈이 속삭였다.
“나의 것이 되어라. 스스로를 죽이고 나를 섬겨라. 그리하면 네 복수를 이룰 힘을 주겠다.”
파르훈이 연기로 이루어진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라.”
멍한 표정의 엘레나도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 * *
“저기네! 고성!”
밴쉬 야가브가 쾌활하게 소리쳤다.
저 아래에는 반쯤 무너져내린 고성이 있었다.
“저기가 악마가 산다는 고성…….”
데일은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고요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