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88)
기사단
* * *
데일의 목소리가 온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마 술과 여자에 빠져있다는 늙은 황제의 귓구멍에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데일은 눈을 감고 반응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결투를 신청해본 게 얼마 만일까?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엘레나의 힘을 탐하던 마탑의 빈민가 수색. 재판. 그리고 결투.
결투를 벌였던 크리스틴은 황실 기사단에 입단할 예정이었던 사내로, 상당한 강적이었다.
당시 데일은 기량과 기교에 밀려 패배하기 직전까지 갔다.
죽음을 앞두었고, 인간을 포기할 뻔했다.
몇 가지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데일은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여타 흑기사처럼, 완전히 괴물이 되어버렸거나.
‘뭐. 싸늘한 건 지금도 매한가지지만.’
시간이 흘러 데일은 또다시 결투를 벌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데일이 다르고, 상대가 다르고, 결투 방식이 다를 것이다.
이제 데일은 약자가 아니었다.
‘오는군.’
곧장 반응이 왔다.
병사들과 귀족들, 마탑의 마법사들, 황실 기사단까지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곳 상위구역에 사는 모두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데일은 건물에서 내려서, 다시 바닥에 착지했다.
에른스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경. 이게 맞는 방법인지 모르겠어. 너무 시선을 끄는 거 아니야?”
“오히려 시선을 끄는 게 좋다. 기사가 아닌가? 어둠 속에 숨어서 몰래몰래 일을 벌인다면, 그건 기사가 아니라 도적이겠지.”
여전히 불안해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에른스트는 일단 데일을 믿기로 했다. 그 역시 상황의 심각함을 알았다.
‘이대로는 안 돼. 우리도 황혼과 싸워야만 해. 아니면 모두 끝이야.’
아마 소수의 머저리나 간신을 제외하면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터다.
싸워야 한다.
적어도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상위구역 주민들은 비슷하게 생각했지만, 황제의 칼날이 두려워 누구 하나 앞장서지 못했다.
그 역할을 데일이 대신해주려 한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데일 경에게 따라줄 수도 있을지 몰라. 아니. 반드시 그럴 거야. 데일 경에게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이 있으니까.’
에른스트는 말은 안 했지만, 데일을 존경한다.
언제나 말보다 행동으로.
싸울 때는 가장 앞장서서 싸워나가는 이 흑기사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리라.
에른스트는 그리 믿었고, 이제 곧 벌어진 사건들을 불안함과 기대감을 안고 기다렸다.
마침내 병사와 기사들이 도착했다.
병사들은 일제히 쇠방패를 들어 전열을 대비했고, 지붕 곳곳에 마법사가 올라가 데일을 주시했다.
잘 훈련되고 기민한 움직임이다.
적어도 3군단과 달리, 이레네는 최소한의 역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데일이다! 황실 기사단과 얘기하고 싶다!”
데일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렸다.
병사들과 마법사들이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기사단도 술렁였다.
본래라면 불청객을 즉시 제거하는 게 옳다.
하지만 이 중에는 데일과 안면이 있는 자들도 있다.
설령 대화 한번 나누지 않았어도. 한때 같은 전장을 달리던 전우인 것이다.
그렇게 이어진 기묘한 대치는 머지않아 깨졌다.
병사들 사이를 헤집고 기사가 한 명 나선 것이다.
기사는 투구를 벗었다.
데일도 아는 얼굴이다.
항상 기사단장과 붙어 다니던 제자이자 지금은 황실 기사단의 임시 단장.
그녀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쯧 하고 혀를 차고 말했다.
“아일라. 미하일의 제자, 아일라.”
“데일이다. 초면은 아니지?”
“글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으니, 안면이 있다고 말하기도 뭐한 것 같은데.”
어깨를 으쓱이는 아일라에게 데일이 말했다.
“결투다. 황실 기사단의 단장 직위를 걸고 결투를 벌이자.”
아일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본인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지 아나 모르겠군. 네가 스승님과 인연이 없었다면 진즉에 베어버렸을 거다.”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다. 나는 한 명의 황실 기사단원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거다.”
“……지금 뭐라고 했어?”
데일의 충격적인 선언에 삽시간에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아일라가 날카롭게 노려보자, 데일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나는 전대 기사단장인 미하일 경과 친분이 있다. 나는 한 사람의 전사로서 그를 존경했고, 그 역시 나를 좋게 봐주었지.”
아일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데일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스승인 미하일은 항상 아일라 앞에서 데일을 칭찬하고 호의를 보였으니.
데일이 이어 말했다.
“미하일 기사단장은 나에게 여러 번 기사단에 입단할 것을 권유했다. 여기 있는 기사들 중에 그 모습을 본 사람이 적지 않을 거다.”
기사단장은 일부러 기사들 앞에서 데일에게 입단을 권유하기도 했다.
다짜고짜 데일을 기사단에 들였다가는 불만이 생길 수 있으니, 미리 분위기를 살핀 것이다.
당시 기사들도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그럴 수밖에.
데일은 전장에서 같은 편으로 서면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었다.
“그때는 비록 우리가 가는 길이 달라 거절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나는 기사단장의 제안을 받아, 기사단의 일원이 되겠다.”
“그게 무슨 궤변이야!”
“임시 단장은 미하일 경의 의지를 존중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건 또 따르지 않는 건가?”
기사단이 전대 기사단장의 충심을 핑계로 여전히 황제 옆에 붙어 있는 걸 비꼬는 말이었다.
아일라의 얼굴이 굴욕으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억지로 화를 참으며 끊어 뱉듯이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모든 단원들의 인정을 받으면 단장이 될 수 있다고 들었다. 너희들에게 결투를 신청하겠다. 나랑 실력을 겨뤄보자. 방식은 상관없다. 너희들이 한꺼번에 덤벼도 좋고, 한 명씩 차례차례 겨뤄도 좋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약속하겠다. 나는 절대 너희를 죽이지 않겠다. 너희는 날 죽여도 되지만, 나는 이곳에 피를 흘리러 오지 않았다. 그러니 부담 없이 덤벼도 좋다.”
“우리를 모욕하는가!”
“이 오만한 놈!”
기사들이 고함을 터트렸다.
그 황실 기사단이다. 실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만큼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드높다.
한데.
자기들보고 한꺼번에 덤비는 것도 모자라, 죽이지 않겠다니?
이는 모욕이나 다름없다.
아일라도 칼날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알아? 너는 지금 우리의 명예를 짓밟고 있어.”
“너희들에게 짓밟힐 명예가 남아 있었나? 몰랐군.”
“뭐?”
“시민들이 적에게 몰살당할 때. 모두의 터전인 도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너희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너희는 도망치지 않았나. 그런데도 명예를 운운해?”
기사들의 입을 다물었다.
아일라가 변명하려 했다.
“그건 우리도…….”
“그만!”
데일이 거칠게 말을 끊었다.
“충성심을 핑계 대지 마라. 너희는 너희의 의무를 저버렸다. 조금이라도 명예가 남아 있다면, 검을 뽑아라!”
데일의 일갈에 기사들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한 젊은 기사가 아일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단장님. 제가 가겠습니다. 더 이상의 모욕은 참을 수 없습니다.”
“토브루 경.”
“저자 한 명을 상대로 기사단 전부가 달려들었다가는, 저희 기사단은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될 겁니다. 저는 그건 싫습니다.”
“……상대는 강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스승님마저 인정한 강자입니다.”
“상대가 강하다고 물러서면 그게 기사입니까?”
“…….”
“그리고 설령 제가 패배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최대한 놈에게서 실력을 이끌어볼 테니 그사이, 선배님들이 분석해주십시오.”
아군을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희생하며, 그 희생을 최대한 값지게 사용하는 것.
그게 황실 기사단이다.
아일라는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합니다.”
그것으로 결투가 성사되었다.
사람들은 우르르 뒤로 물러나 넓은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표정은 다양했다.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단순히 흥미 어린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나머지 대부분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데일은 그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내심 내가 이기는 걸 바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겠군.’
두 사람은 결투장의 중앙에 마주섰다.
데일의 상대는 젊은 기사 특유의 씩씩함을 담아 외쳤다.
“에이네이 가문의 토브루!”
“데일. 신입인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하! 선배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지?”
“?”
“방금 입단했다며. 그럼 네가 내 후배지, 막내야.”
데일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 젊은 기사는 제법 유쾌한 구석이 있었다.
둘의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공증인을 맡아줄 이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작은 체구에 커다란 고깔모자가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노인이었다.
데일이 인사했다.
“오랜만이오. 안드레이.”
“그래. 또 사고를 치고 있구나.”
“또라니. 내가 언제 또 사고를 쳤다고 그리 말하시오.”
“……다 끝나고 얘기하지.”
안드레이는 수염을 벅벅 쓰다듬고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에 뭐냐. 알 거 다 아는 사람들이니, 서로 명예를 지키고 싸우시오. 신께서 보고 계시니.”
안드레이는 건성으로 손을 내렸고 뒤로 물러났다.
으레 결투에서 들리는 환호성이나 함성은 없었다.
데일과 토브루는 서로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
“…….”
조금 전까지의 농담은 온데간데없고.
싸늘한 침묵 속에서 둘은 원을 돌며 상대에게 칼끝을 향했다.
대치가 길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루종일 걸리겠군.’
시간을 듬뿍 드려가며 서로의 인내를 시험하는 건 자신 있었다.
하지만 데일이 상대해야 할 기사가 못해도 쉰 명이 넘는다.
결투 하나하나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다.
결국. 데일은 먼저 공격에 나서기로 했다.
쿵!
데일이 땅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바닥에 깔린 상아색 판석이 쩌적하고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데일의 몸이 흐릿해졌다.
‘무슨.’
토브루는 순간.
상대가 공간이동 마법이라도 사용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만큼 데일의 움직임은 그의 인지를 넘어서 있었다.
저런 거체로 저 정도의 빠르기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꽝!
“으윽!”
어느새 코앞에 다가온 데일이 마검을 내리찍었다.
토브루는 검을 비스듬히 들어 충격을 흘려내려 했다.
그는 뛰어난 기사다. 정확한 대응과 절묘한 자세로 충격의 많은 부분을 감쇄하는 데에 성공했다.
문제는. 데일의 힘 자체가 너무 강했다는 점이다.
한 번의 일격에 자세가 휘청였다.
데일은 다시 한번 마검을 내리찍었다.
자세를 잃었는데, 이전만큼 완벽히 방어해낼 수 있을 리 없다.
토브루는 검을 양손으로 쥐어 앞으로 내밀었다.
항복은 없다. 어떻게든 방어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사의 의지는 단단할지언정, 무기는 그렇지 못하다.
콰창!
연이은 부딪힘에 토브루의 롱소드가 산산이 조각났다.
토브루는 경악했다.
보검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괜찮은 품질의 검이다.
그게 이렇게 부서져 버리다니?
토브루는 패배를 직감했다.
검을 잃은 검사가 무얼 할 수 있겠나.
게다가 저 시커멓고 불길한 마검은 그의 소중한 검을 부숴먹은 것도 모자라, 토브루의 정수리를 쪼개기 위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토브루는 죽음을 느꼈다.
언젠가 기사로서 맞이하게 될 거라 생각한 최후.
조금은 허무했지만…….
‘그래도 엄청난 실력자와 싸울 수 있어, 만족스럽구나.’
그는 황실 기사단의 기사다.
그리고 황실 기사단원은 죽는 그 순간까지 눈을 감지 않는다.
토브루는 떨어지는 검날에서 결코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 검이 두개골을 반으로 가를 때까지, 결코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리라.
그리한다면 기사로서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 터.
하지만 다음 순간.
떨어져내리던 마검이 뚝 멈췄다.
정확히 토브루의 머리 앞. 새끼손가락 한 마디의 거리를 앞두고 멈췄다.
“패배를 인정하나?”
데일이 무덤덤하게 물었다.
토브루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이내 허탈하게 웃었다.
“내리치는 검을 얼굴 바로 앞에서 정확히 멈추는 기예를 보여주는데, 인정해야지. 졌다. 한 수 잘 배웠다.”
“너도 훌륭했다. 빈말이 아니다. 무게중심 잡는 수련을 한다면, 더 실력이 늘 것 같군.”
“……조언 고맙다.”
이것으로 첫 번째 결투는 끝.
지켜보던 사람들. 특히 기사들은 충격에 빠져 웅성거렸다.
‘토브루는 막내지만 그렇다고 약한 놈은 아니다.’
‘그런데 단 두 합만에 꺾었다고? 그것도 죽이지도 않고?’
‘대체 어느 정도의 실력을…….’
데일은 동요하는 기사들을 보며 덤덤히 말했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