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99)
황혼
* * *
가뜩이나 황량한 황무지는 생기를 빨아들이는 주황빛에 검게 죽어 있었다.
생명이 없는 죽음의 대지.
그런 대지에 뜬금없이 뚫려있는 커다란 구멍들은 마치 이쪽에 경고하는 것 같았다.
감히 이 땅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아일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너무 쉽긴 했지. 어떻게 생각해?”
데일은 구멍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인 것 같다.”
“악마?”
“땅에 굴을 파고 살며 지나다니는 인간들을 습격하는 악마가 있다. 아무래도 그 녀석인가 보군.”
대지를 부수는 자 케톱.
데일은 기억을 뒤져 악마에 대한 지식을 찾아냈다.
“이곳은 케톱의 영역인 것 같다. 아무래도 저 구멍은 녀석이 파 놓은 굴이고, 그 굴은 땅 아래에 얽히고설켜 있을 거다.”
“……상대법은 혹시 알고 있어?”
“녀석의 영역에서 싸워주는 건 하책. 가장 좋은 건 케톱을 밖으로 유인해 사냥하는 거지만…… 지금은 힘들겠지.”
일행은 황무지 너머로 가야만 한다.
돌아갈 시간은 없고, 악마를 유인해 사냥할 여유도 없다.
아니. 애초에 악마 케톱이 유인에 당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작정하고 시간을 벌려고 하겠지.’
에른스트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레네에서 연락이 왔어. 주위에 다른 적은 없는 모양이야.”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이레네는 주위를 넓게 정찰할 수 있었다.
그들이 관측한 바로, 이 근처에 적은 없다.
적어도 지상에는 말이다.
아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 결국 저 사이를 지나가는 수밖에.”
“놈이 튀어나오면 최대한 빨리 처치해서 피해를 줄여야 한다.”
대놓고 적의 함정에 발을 들이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일라가 말을 몰아 검게 죽은 황무지 위로 발을 디뎠다.
“지금부터 적의 영역이다! 모두 긴장하도록! 특히 구멍 근처를 이동할 때 조심해라!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즉각 소리치도록!”
“예!!!”
병사들은 두려움을 잊기 위해, 억지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데일이 에른스트에게 말했다.
“이레네에 있는 마탑에 연락해서, 적이 튀어나왔을 때 요격할 수 있게끔 준비하라고 해라. 하지만 화염 마법이나 전격 마법 같은 건 안 돼. 되도록 아군에게 피해가 적을만한 마법으로 준비하라고 해라.”
“으, 으응. 알겠어.”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준비하는 데일에게 고개를 붕붕 끄덕인 에른스트가 급히 말을 몰았다.
데일은 엘레나에게 말했다.
“엘레나 너도 프라우 옆에 딱 붙어 있어라. 여차하면 해골마가 도망칠 테니 괜찮겠지만,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 그리고 너도 마법을 준비해두면 좋을 것 같다. 저 하늘에 있는 마탑의 마법사들보다는 네가 훨씬 나을 것 같으니.”
“……네! 맡겨주세요!”
칭찬받았다 생각했는지 엘레나가 의욕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는 황실 기사단에 지시를 내렸다.
“각자 흩어져서 병사들을 지키시오.”
“옙.”
악마를 상대로 일반 병사는 그리 의미가 없다.
마력을 다룰 줄 아는 기사나 마법사, 혹은 사제가 필요하다.
‘기사들이 뭉쳐서 함께 싸우는 게 가장 좋지만…….’
케톱은 영리하고 신중한 사냥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악마치고는 겁이 많기도 하다.
녀석은 이쪽의 가장 약한 부분만을 공격할 것이니, 기사들을 흩어놓는 게 좋았다.
진열을 가다듬은 3군단이 다시 전진했다.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하늘에 함께하는 이레네와 옆에서 걷는 황실 기사들, 그리고 데일을 보며 억지로 두려움을 억눌렀다.
“아, 아무 일도 없겠지?”
한 병사가 구멍 하나를 지나치며 그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대체 얼마나 깊은지 모를 땅굴에는 깊은 어둠만이 서려 있었다.
왠지 기분 나쁜 냄새가 나고 섬뜩한 소리가 굴속에서 울려 나왔다.
식겁한 병사는 급히 구멍에서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한동안 위태로운 평화가 이어졌다.
기사들은 구멍을 날카롭게 감시했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평온이 도리어 병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영리한 놈.’
데일은 마검을 꺼내 들었다.
악마는 반드시 이쪽을 습격할 것이다.
사람들의 불안함이 극에 달했을 때. 그때 바로 케톱이 모습을 드러내리라.
‘얼마 안 남았어.’
그리고 그런 데일의 생각을 증명하듯.
땅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각이 민감한 데일만이 감지해냈다.
하지만 이내 모든 병사들이 느낄 정도로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뭐, 뭐야!”
“놈이 온다!”
“조심해!”
사방에 뚫린 구멍에서 일제히 짐승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기사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었다.
어딜까.
어느 구멍에서 나타날까.
모두가 긴장하고 있던 그때.
데일이 소리쳤다.
“구멍이 아니다! 중앙이다!”
“뭐?”
다음 순간.
진형의 한 가운데가 들썩이더니, 이내 거대한 괴물이 솟구쳐올랐다.
파아아!
모습을 드러낸 건 길쭉한 몸체에 징그럽도록 많은 다리를 가진 괴물.
마치 샌드웜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그 크기가 압도적이다.
순식간에 땅을 뚫고 나와 병사들을 집어삼킨 케톱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대지를 부수는 자 케톱! 감히 나의 영역에 발을 들였으니, 두 발 달린 것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케톱이 아가리를 닫았다. 순간적으로 케톱의 머리가 크게 부풀었다.
그리고 다시 아가리를 벌린 순간.
콰아아아!
흙과 돌이 섞여 끈적해진 액체가 병사들을 덮쳤다.
“크아악!”
“어억!”
액체에 휩쓸린 병사들이 그대로 파묻혀버렸다.
데일은 해골마를 이끌고 케톱에게로 달려들었다.
케톱은 데일을 알아보았다.
“왔구나 흑기사! 내 동지들을 죽인 원수! 오늘이 복수의 날이니라!”
하지만 케톱은 데일과는 싸울 생각이 없는 듯.
그대로 땅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데일이 외쳤다.
“원수라면서 도망치는 거냐?”
“나는 내 동지들만큼 멍청하지 않거든!”
그대로 케톱은 땅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데일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텅 빈 구멍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쫓을까?’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저 아래는 굴과 굴이 얽혀 만들어진 미로다.
안 그래도 길치인 데일이 들어갔다가는 영원히 헤맬 수도 있으며, 케톱의 함정에 그대로 파묻혀 버릴 수도 있다.
데일은 쫓는 대신 피해 상황을 살폈다.
‘방금 그 짧은 기습에 20명 정도가 당한 건가. 좋지 않은데.’
케톱은 영리했다.
구멍을 파 놔서 구멍에 모든 시선을 쏠리게 만든 뒤, 정작 기습은 멀쩡한 땅에서 튀어나오는 식으로 허를 찔렀다.
덕분에 마법사들도. 기사들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게임에서는 그냥 구멍으로만 공격했는데.’
꼭 구멍이 아니라도 공격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소식이 아니다.
이 황무지 전체가 위험지대라는 뜻 아닌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병사들이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미 공격은 시작되었다.
달랠 시간이 없다.
쿠구구구.
다시 한번 지면이 흔들린다.
데일은 바닥에 내려서, 땅의 울림을 느꼈다.
흔들림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케톱은 마치 이쪽을 비웃듯. 계속해서 땅을 흔들어 병사들의 두려움을 키웠다.
데일은 냉정했다.
겨우 이런 심리전에 흔들리기에는 헤쳐온 싸움이 너무 많다.
데일은 눈을 번쩍 떴다.
“3부대 쪽! 온다!”
말과 동시에 데일이 가르킨 구멍에서 케톱이 튀어나왔다.
아까와는 달리, 구멍을 이용하는 터라 튀어나오는 속도가 한층 빨랐다.
데일은 곧장 마검을 투척했다.
파악!
아가리를 벌려 흙을 토해내려던 케톱이 마검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다.
녀석은 아가리를 다문 뒤, 머리를 흔들어 마검을 쳐냈다.
“쯧. 감이 좋은 놈이군. 동지들을 죽인 건 운이 아니었던 건가.”
혀를 찬 케톱이 순식간에 다시 구멍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뒤이어 마법사들의 폭격이 집중되었지만, 이미 사라진 케톱에게는 닿지 않았다.
계속해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케톱이 구멍을 파고 튀어 오르면, 데일이 알아차리고 막아낸다.
마법으로 케톱을 공격하려 하면, 이미 케톱은 지하로 사라져버린다.
숨바꼭질. 아니, 두더지 잡기라 해야 할까?
문제는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게 악마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으아아악! 살려줘!”
갯지렁이같이 생긴 괴물이 튀어나와 그대로 병사 하나를 구멍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어서 구멍에는 까드득. 거리는 뼈 씹는 소리가 울렸다.
케톱의 하수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사와 마법사들이 하수인에 맞서 용전하지만, 주의가 분산되는 건 막을 수 없다.
병사들의 전열이 서서히 붕괴되고, 공포심은 극대화된다.
무력함을 느끼게 된 인간이 취할 행동은 하나.
‘도망치는 것.’
그리고 한 명이 도망치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이다.
도미노가 무너지듯.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3군단이라는 질서가 이대로 끝장이 날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듯.
케톱의 목소리가 모든 구멍에서 울려 퍼졌다.
“하하하! 도망쳐라! 먼저 도망치는 놈은 내 특별히 살려주도록 하마! 의미 없는 싸움에 목숨을 바칠 이유가 있느냐!!”
“어어.”
“사, 살려준다고?”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병사들이 흔들린다.
지휘관들이 당황하고 기사들이 악마의 교활함에 치를 떨던 그때.
데일은 다른 한 가지에 집중했다.
‘모든 구멍에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말은 곧 저 아래 굴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니. 이건 지금껏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데일의 뇌리에 박힌 건 ‘이어졌다’라는 단어다.
‘그래. 애초에 내가 직접 저 아래로 잡으러 갈 필요가 없었어.’
데일은 급하게 마법사들을 불러 모았다.
계획을 설명하자, 마법사들은 자신 없는 어조로 말했다.
“음. 저 땅 아래 공간이 얼마나 넓을지 모르고…….”
“저희의 힘만으로 가능할지…….”
하지만 엘레나만이 자신만만하게 단언했다.
“할 수 있어요.”
“확실한가?”
“예.”
데일은 지시를 내렸다.
“바로 준비해라. 어차피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지금이라도 주요 병력만 이레네로 올라가 도망치는 게…….”
병사들을 버리고 이레네로 올라가자는 의견에 데일이 살벌하게 말했다.
“닥치고 따라라.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데일의 서슬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법사 수백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자, 온 공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언가 큰 게 준비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케톱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안전한 지하 굴에 들어간 탓에 도리어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주문의 준비가 끝났을 때.
데일이 신호를 보냈다.
“지금!”
화아아아!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불꽃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폭탄처럼 펑펑 터져나가는 불꽃이 아닌, 파도처럼 흐르는 불꽃이다.
마법사들이 모여 만들어낸 막대한 불꽃이 빠르게 굴속을 타고 내려갔다.
“여력이 다할 때까지 마법을 쏟아부어라! 저 녀석이 못 참을 때까지!”
다음 순간.
대지에 나 있는 구멍에서 불기둥이 하나둘 솟구쳐 올랐다.
모든 굴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증거.
불기둥과 함께 악마의 하수인들이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케톱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법사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으윽.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아직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한계에요!”
“조금만 더.”
“윽.”
데일의 마음과 달리.
버티지 못한 마법사들이 픽픽 쓰러졌다.
마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부작용이다.
이대로 실패인가 싶던 그때.
엘레나가 마지막 여력을 쥐어짜 냈다.
그저 붉기만 했던 불꽃이 새파란 빛을 띠기 시작했다.
땅 그 자체가 녹아내릴 정도의 고열이 온 구멍에서 솟아 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크아아아!”
참다못한 악마가 튀어 올랐다.
저 단단한 피부로도 더는 불꽃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기회만 보던 데일이 곧장 달려들었다.
“감히!”
분노한 케톱이 아가리를 쩍 벌렸다.
둥그런 입을 따라 징그러울 정도로 빼곡히 박혀 있는 이빨이 눈에 들어왔다.
케톱은 저 날카롭고 단단한 이빨로 그대로 데일을 삼켜 부숴버리려 했다.
데일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삼키기 쉽게끔, 어깨를 움츠렸다.
데일의 몸이 악마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드득. 드드득 거리는 섬뜩한 소리.
“데, 데일 경!”
“데일!”
“하하! 별것도 아닌 놈이구나!”
비웃는듯한 악마의 태도.
충격적인 현실에 모두가 눈을 질끈 감던 그때.
케톱의 배 한편이 꿈틀거렸다.
찌르는듯한 고통에 악마가 바닥을 굴렀다.
“크아아악!”
케톱에게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통의 시간은 길게 가지 않았다.
부욱.
북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검의 칼날이 가죽을 뚫고 나왔다.
그 틈새로 케톱이 먹어 치워온 토사, 시체, 끈적한 위액과 내장 따위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 데일이 있었다.
케톱의 생기를 흡수해 곧장 몸을 원상복구 한 데일은 마검을 들고 케톱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케톱이 두려워하며 외쳤다.
“괴, 괴물이구나! 괴물이야!”
“악마가 괴물이라니. 우습구나.”
데일은 마검을 들어 올렸다.
“황혼한테 전해. 이런 허튼수작은 이제 그만 부리라고.”
후웅!
마검이 케톱의 머리통을 갈랐다.
워낙 두껍고 거대한 몸인지라 여러 번 내리쳐야 겨우겨우 잘라낼 수 있었다.
‘아. 죽여버리면 황혼한테 말을 못 전하려나.’
하지만 상관없다.
이렇게 악마를 죽였으니, 더 견제가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아군의 사기가 걱정이다.
데일은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내 굳어버린 병사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데일을 동경과 선망 어린 눈으로. 혹은, 마치 괴물을 바라보듯.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상관없다.
두려움이야말로 사람들을 따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니.
“잠시 휴식을 갖겠다. 이후에 다시 출발하겠다.”
감히 탈영을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데일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데일의 말을 따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두려워서라도 도망칠 생각은 못 할 테니.
데일은 널브러진 케톱의 시체로 다가가 투구를 벗었다.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 데일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