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4)
빈민가
* * *
레온을 도와달라.
그 갑작스러운 말에 반응한 건 카일라였다.
“레온? 레온이 왜요?”
카일라의 얼굴을 본 노움이 해맑게 웃었다.
“아! 네가 레온이 말한 두 번째 제자구나! 완전 귀엽다 야!”
“에, 에그러새오.”
노움이 다짜고짜 자기 볼을 잡아당기자 카일라는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움은 그런 카일라를 마치 어린 동생 보듯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묘한 광경이었다.
그도 그럴 게. 겉모습만 보면 노움은 기껏해야 10대 중반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데일은 그런 둘을 무심하게 쳐다보다, 식탁을 쿵쿵 두드렸다.
그제야 노움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레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말해라. 왜 위험하다는 거지?”
“그게. 그게 말이죠.”
노움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레온이 어젯밤부터 안 들어와요…….”
“네? 레온이요?”
카일라가 놀라 되묻자, 노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랑 함께 산 이후로 말도 없이 외박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그래도 요즘, 학교인지 뭔지를 세우느라 바빠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안 돌아오는 건 이상하잖아요. 아무런 말도 없이!”
“음.”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요! 어, 어쩌면 질 나쁜 놈들한테 잡혀있을지도!”
카일라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레온씨. 아내분이 있다고 했었죠.”
노움은 쑥스러운 듯이 볼을 붉혔다.
“레온이 제 얘기도 했었군요. 아직 결혼식은 안 올렸지만요.”
레온에 대한 기억을 되짚던 카일라가 데일에게 물었다.
“음. 근데 레온씨, 지난밤에 아내분이 기다린다고 서둘러 돌아가지 않았었나요?”
“그랬었지.”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정보를 종합했다.
학교를 세우기 위한 자금을 마련한 레온. 아직 혼인을 맺지 않은 애인. 잠적.
이런 경우는 데일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유감이군. 레온은 다른 여자로 갈아탄 것 같다. 흔히 있는 일이지.”
힘들 때는 애인에게 빌붙다가, 성공하니 애인을 차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버리는 케이스.
레온이 그럴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었지만, 사람 속이란 모르는 것이다.
데일의 냉정한 말에 노움이 굳어버렸다.
옆에서 듣던 카일라는 쓰레기를 쳐다보는 눈으로 데일에게 말했다.
“가끔 데일 경은 막말을 하는 것 같아요.”
굳어 있던 노움은 그럴 리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요. 저랑 레온이 알고 지낸 시간이 20년이에요. 숨겨둔 애인이 있었으면 제가 이미 눈치챘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강한 확신이었다.
이 정도로 한 점 의심 없는 확신이라면 믿어볼 만할 터.
‘정말 레온에게 무슨 일이 생기긴 한 모양이군.’
데일이 물었다.
“그럼 너는 레온이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나?”
고민하던 노움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생각에는……. 도둑 길드에 납치당한 것 같아요.”
“도둑 길드?”
도둑 길드. 납치. 갑작스러운 얘기에 데일이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노움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게. 아실지 모르지만, 빈민가에서는 누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들리면 용병이나 강도들이 찾아가서 돈을 빼앗는 일이 많거든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하켄도 그 비슷한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요즘, 레온이 기사님과 함께 일하며 소소하게 한몫 잡았다는 얘기가 퍼졌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많은 돈은 아니었을 텐데.”
노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요즘 빈민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요. 특히 레온은 더 위험하죠.”
“더 위험하다고?”
데일이 묻자 노움이 자신 없는 얼굴로 답했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소문에는 장물아비들과 도적 길드 중 한 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들었는데……. 레온이 장물아비들과 같이 일하잖아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도적 길드의 표적이 된 것 같아요.”
“음.”
나름 그럴듯한 추리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굳이 레온을 납치하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게…….
하지만 데일은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아직 그 정도의 인간성과 자제심은 남아 있었다.
확률은 적지만, 그녀의 생각대로 적을 위협하기 위해 납치해두었을 가능성도 있고.
노움은 그런 데일의 손을 덥석 붙잡고는 말했다.
“부탁이에요 기사님! 레온에게 듣기로는 기사님은 엄청 좋은 분이라고 들었어요! 어려운 아이들에게 식량도 나눠주시고…….”
“레온이 호들갑을 떤 거다.”
“저에겐 믿을 사람은 기사님밖에 없어요! 사례는 꼭 할게요!”
그 어조가 제법 간절하다.
옆에 있던 카일라도 아무 말 없었지만, 내심 데일이 도와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데일은 생각했다.
‘믿을 사람이라.’
처음에는 다짜고짜 잡아먹니 마니 하더니, 그래도 사람이라 생각해주는 건가.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와주겠다.”
어차피 의뢰도 없어, 할 일 없이 시간이나 죽이던 참이다.
노움이 의뢰금을 많이 주지는 못할 것 같지만, 소일거리 정도는 되리라.
“저,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노움이 뛸 듯이 기뻐했다. 이미 레온을 찾기라도 한듯한 태도였다.
카일라도 괜히 흐뭇해하며 말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아침 일찍 가보세요. 어, 레온씨의 부인 분도…….”
“나탈리야. 칼슨의 딸 나탈리.”
“나탈리도 여기서 하루 자고 가세요.”
“어? 그래도 될까?”
“하하. 지금은 남는 게 방이라서요.”
카일라는 자조적으로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여관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어색하게 웃은 나탈리가 말했다.
“그러면 하루만 신세 질게.”
두 여자는 이내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눴다.
나탈리는 애써 밝게 얘기하며, 레온에 대한 걱정을 눌러두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데일은 계단을 올랐다.
카일라가 물었다.
“오늘은 일찍 올라가시네요? 글 연습은 다 하신 거예요?”
“깃펜이 부러졌다.”
“아……. 나중에 레온을 찾으면 하나 더 달라고 하죠.”
“그래.”
방으로 들어온 데일은 멍하니 누웠다. 공부를 못하니 시간이 남았다.
시간이 남으니 할 게 생각밖에 없었다.
오늘은 레온에 대해 생각했다.
체구는 작지만, 꿈은 컸던 사내.
어떻게 봐도 어린애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익살스럽고, 수다스럽고, 때로는 놀랄 만큼 눈치 빠르던 그 노움에 대해 생각했다.
‘레온이 사라졌다라…….’
문득. 옛날 기억이 났다.
보육원에 있던 아이 하나가 가출해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데일은 조부와 함께 온 동네를 뒤지고 다녔는데, 저녁 늦게서야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에 울먹이고 있던 아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때 조부와 데일이 얼마나 안도했던지.
돌이켜보면 꽤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기억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데일은 막연히 생각하며 밤을 보냈다.
* * *
나탈리와 데일은 새벽같이 여관을 나섰다.
반죽을 준비하는 제빵사, 분주히 의뢰에 나서는 용병,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을 진열하는 잡상인들.
도시는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탈리는 짧은 다리를 분주히 움직이며 그 사이를 요령 좋게 헤집고 지나갔다.
데일은 그냥 걸었다.
그러면 주위에서 알아서 비켜주었다.
나탈리는 레온과 닮아 매우 수다스러웠다.
그녀는 걸으면서도 쉼 없이 재잘거렸다. 주로 대화 주제는 레온이었다.
“정말이지. 레온은 한 곳에 꽂히면 정신이 팔려서 주위도 안 본다니까요? 분명 또 그놈의 학교를 생각하느라 주위에 도둑들이 온 것도 몰랐을 거예요.”
“그렇군.”
“이번에 레온을 보면 한소리 따끔하게 해야겠어요. 정말.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는지.”
한숨을 푹 쉬며 툴툴거렸지만, 그 안에 레온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데일은 묵묵히 나탈리의 말을 들어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길 한참.
나탈리가 걸음을 멈추고는 데일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가.”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
“……난 너 따라가고 있었는데.”
“저도 기사님을 따라가고 있었는데요?”
“?”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둘의 시간만 멈춰버렸다.
어색한 얼굴을 한 나탈리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일단 도둑 길드에 찾아가 보면 되겠지.”
“하지만 도둑 길드가 한 두 개가 아니에요. 이름 있는 조직만 세 개에, 소규모 조직은 훨씬 많다고요.”
설마 도둑이 그렇게 인기 있는 직업일 줄이야.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당장 데일이 게임으로 이 세상을 접했을 때도, 몬스터나 악마와 싸우는 횟수보다는 강도들이랑 싸우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둘은 다시 고심에 빠졌다.
만약 도둑 길드에 잡혀간 게 사실이라면, 일단 어느 길드인지부터 찾아야 한다.
‘장물아비들과 반목하고 있는 조직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데일이 말했다.
“장물아비들이라면 뭐라도 알고 있겠군.”
“예? 아, 그렇겠네요.”
“레온이 함께 일했던 장물아비에게 안내해라. 위치는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목적지가 정해지자 나탈리는 잽싸게 이동했다.
데일은 그런 나탈리를 놓치지 않게 성큼성큼 걸어야 했다.
동문을 통해 성을 나선 나탈리가 빈민가의 거리를 능숙하게 이동했다.
‘동쪽 거리는 생각보다 번화한데.’
빈민가의 규모는 작지 않다.
악마에게 여러 국가가 멸망하고, 그 피난민들은 아레네로 몰려들었다.
당연하지만 모두가 성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일부 귀족이나 능력 있는 평민들은 성안에 들어왔지만, 대부분은 성 밖에 정착했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고 모인 지금, 빈민가에 사는 인구는 성안에 살아가는 인구와 비슷하다.
사람이 몰리면 돈도 몰리기 마련.
빈민가에도 열악한 거리가 있는가 하면, 제법 그럴듯하게 번화한 곳도 있었다.
이곳이 그랬다.
동쪽에 조성된 상업 거리는 나름대로 질서와 치안이 유지되는 곳이었다.
거리를 따라 멀끔한 간판을 단 가게가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었다.
‘멀쩡해보이는 외관과 달리, 대부분은 불법에 한 발을 걸치고 있지만.’
당장 이들이 찾아가는 장물아비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단순히 장물을 사고팔기만 하는 중계인이 아니다. 그러면 이윤이 얼마 남지 않는다.
가장 벌이가 짭짭한 장사는 직접 장물을 ‘만드는’ 것.
무고한 사람을 죽여 장비를 빼앗으면, 그게 장물 아니겠는가?
“아. 도착했어요.”
나탈리가 멈춘 곳은 지붕이 초록색인 2층 건물 앞이었다.
데일은 이제 그 간판의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토모 상회]데일이 물었다.
“여기인가?”
“예. 레온이 반쯤 출근하다시피 하는 가게예요.”
언뜻 보면 무기와 방어구부터, 생필품이나 고서까지 모두 취급하는 잡화점이었다.
데일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수염을 멋지게 기른 노신사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귀족적인 예법이었는데, 단순히 귀족을 흉내 낸 느낌은 아니었다.
‘원래 귀족을 섬기던 사람인가?’
노신사에게서 느껴지는 기품에 나탈리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반면, 데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데일이 다가오자 노신사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이거. 세간에 명성이 자자한 기사께서 찾아오시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조금 비꼬는듯한 어조였다.
데일이 물었다.
“나를 아시오?”
“물론이지요. 적어도 빈민가에서 경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매번 아이들에게 먹을 걸 나눠주시지 않습니까.”
“음.”
별것 아닌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소문이 퍼질 일이었던 걸까.
노신사가 물었다.
“저희 가게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물건을 보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데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레온이 이곳과 자주 거래했다고 들었소.”
“아, 레온 말입니까? 확실히. 노움치고는 똑똑하고 빠릿빠릿한 청년이었죠. 그래서요?”
“녀석이 얼마 전에 실종됐소. 혹시 아는 거 없소?”
노신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 오른손으로 수염을 가다듬었다.
그러다 재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그걸 왜 우리한테 묻는지는 둘째치고. 대체 왜 그걸 당신에게 알려줘야 하는 거죠?”
꽤나 적대적인 태도다.
역시 데일이 이교도라서일까.
‘그냥 좋게 넘어가는 법이 없군.’
어쨌든, 뭔가 알고 있긴 한 모양이다. 데일은 나탈리의 어깨를 부드럽게 밀쳤다.
“나가 있어라.”
“예? 아, 예.”
나탈리가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쿵. 다시 문이 닫혔다.
그 모습을 노신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뭡니까.”
데일은 잠시 대답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장물을 다루는 가게답게 공기에 은은하게 피 냄새가 섞여 있다. 그 냄새가 데일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데일이 덤덤히 말했다.
“아무래도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오.”
데일과 노신사의 시선이 마주쳤다. 노신사는 투구 속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그 눈빛을 보며 주춤했다.
데일이 말했다.
“처맞고 싶지 않으면 아는 거 다 불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