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1)
수색
* * *
빈민가 수색을 막아달라고?
데일은 고민도 없이 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제가 말을 조금 잘못했군요.”
에리얼은 정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신도들이 해코지당하는 걸 보호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신도들이라면 분명, 아까 신전 내부에서 북적거리던 그 사람들을 말할 것이다.
에리얼은 사정을 천천히 설명했다.
“이번 일은 다소 이상한 구석이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 계획부터가 터무니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도시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빈민가를 뒤집어엎는다니. 명분은 그렇다 치고, 현실성이 너무 없어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 계획에는 나름 일리가 있었으나, 문제는 빈민가의 규모다.
빈민가 전체를 수색하고, 예상되는 저항을 짓누르려면 그만한 전력이 필요하다.
평의원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그 정도 전력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이 계획에 평의회의 과반이 찬성했습니다. 입안자인 조피스 가주부터 시작해, 경비대장, 상인 길드장, 교단의 주교까지. 미적지근한 가란드를 제외해도, 4명이나 찬성하다니. 반대하는 건 저와 대장장이 길드뿐이죠.”
당연한 얘기지만 평의원들은 바보가 아니다. 승산 없는 일에는 끼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거나. 특히, 도시의 행정을 책임지는 조피스 가문은 상위 구역의 귀족가와도 연이 있습니다. 비교적 온건한 성격인 그가 이런 계획을 단독으로 입안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에리얼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번 일에 관여하는 어떤 세력이 있다.
그리고 이번 계획의 목표는 도시 위협을 제거하는 것 외에도 더 있을 수 있다고.
에리얼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이럴 때는 제 능력 부족이 뼈아프네요. 확실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이렇게 휩쓸리지는 않았을 텐데…….”
밤의 교단은 영세하다.
신도가 적으니 자금 여유가 없고, 자금이 없으면 속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된다.
나름 한 종교의 신전이 이렇게 허름한 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장황해지자 데일은 조금 짜증이 났다.
그는 인간이었을 때도, 지금도 복잡한 정치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데일은 이야기를 되돌렸다.
“그래서. 신도들을 보호해달라는 건 무슨 소리지?”
에리얼이 답했다.
“저는 애초에 이 계획이 실패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획을 주도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겠죠. 그럴 때 희생양으로 삼기 좋은 게 우리의 신도들입니다.”
밤의 신도들은 수도 적고, 힘도 없다. 게다가 그들에 대한 인식 또한 좋지 않다.
만만한 먹잇감.
‘만약 밤의 신도들을 몇 붙잡아, 이놈들이 범인이었다고 한다면…….’
시민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노라고.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고 말하며 만족할 것이다.
일의 실패도 감출 수 있으며, 계획을 주도했던 평의원들의 인기와 명성은 더욱 올라갈 터.
“용병들이 빈민가를 수색하기 시작하면, 제일 위험한 건 신도들입니다. 그러니 데일 경께서 힘을 보태주시지 않겠습니까?”
데일은 현실적으로 말했다.
“나 혼자 경비대와 용병들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다.”
에리얼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데일 경을 보면 용병들도 섣불리 행동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리고 데일 경이 함께한다면 신도분들도 기뻐하실 겁니다. 다들 데일 경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왜들 그렇게 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군.”
에리얼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삶이 고되니까요.”
밤의 신도들은 기나긴 패배의 시간을 겪어왔다. 어렵고 고된 삶의 연속.
그런 사람들은 의지하고 자부심으로 삼을 우상이 필요하다.
최초로 교단에 한 방 먹인(적어도 신도들은 그리 생각한다) 흑기사라면, 그 자격을 훌륭히 충족한다.
에리얼이 조심스레 물었다.
“부탁을 들어주시겠나요?”
데일은 고민했다.
‘보호 임무라.’
데일이 진짜 밤의 여신을 섬기는 흑기사라면, 고민 없이 승낙해야 한다. 하지만 데일은 그렇지 않다.
데일이 물었다.
“부탁이 아닌 의뢰라면 고민해보겠다. 보수는?”
“물론 확실히 준비할 겁니다. 거래에 철저한 건 저희의 미덕이니까요. 만약 의뢰를 무사히 완수하신다면…….”
잠시 뜸을 들인 에리얼이 입을 열었다.
“신전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하급 유물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
데일은 생각보다 통 큰 보상에 놀랐다.
유물이라니.
아무리 하급 유물이라 해서 절대 뒤떨어지는 물건은 아니다.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데일이 부러뜨렸던 유물 지팡이 역시 굳이 분류한다면 하급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보수치고는 차고 넘친다 볼 수 있다.
데일이 물었다.
“유물을 이렇게 아무에게 막 주어도 되나?”
“사제장인데 그 정도 권한은 있습니다. 신도들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그깟 유물이 대수겠습니까. 그리고 아무에게 주는 게 아닙니다. 데일 경이라서 드리는 겁니다.”
에리얼은 일부러 뒷 문장을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데일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정신은 유물에 팔려 있었다.
‘유물이라. 이렇게 얻을 수 있을지는 몰랐는데.’
쓸만한 유물이라는 건 단순히 돈이 많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데일은 꽤나 운이 좋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득이 유물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여기서 여신의 세력이 더 약해지는 건 곤란해.’
도시의 세력 중에 가장 데일에게 호의적인 곳을 꼽으라면, 바로 이곳이다.
나중에 일이 생겼을 때 데일을 지지해줄 곳도 바로 이곳일 거다.
때로는 혼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생기기 마련. 아군이 되어줄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많은 게 좋다.
데일은 결정을 내렸다.
“알겠다. 소동이 끝날 때까지 신도들을 보호하면 되겠지?”
“네. 데일 경이 맡아주신다면 안심입니다. 저는 저대로, 다른 평의원들이 허튼짓하지 않도록 최대한 견제해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데일이 물었다.
“따로 내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나? 조심해야 할 점이라던지.”
“조심해야 할 점. 말인가요?”
“아무래도 신도들이 특이하니,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 같아서.”
데일은 일부러 ‘특이하다’ 부분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고는 시선을 옆으로 돌려, 늘 같은 자리에서 목검을 휘두르는 스켈레톤을 쳐다보았다.
에리얼의 시선도 자연스레 돌아갔다.
“이백만 서른 셋. 이백만 서른 넷.”
그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켈레톤은 오로지 목검 휘두르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에리얼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신도분들은 대부분 평범한 분들입니다. 어디서나 볼 법한 그런, 선량하고 순박한 사람들이죠. 마스터 루드비히는……. 음. 다소 특별한 경우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야.
들어야 할 건 다 들은 데일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하티가 한발 앞서 걸어나갔다.
그런 데일을 에리얼이 잡아 세웠다.
“아. 마지막으로.”
“더 할 말이 있나?”
에리얼은 말하기 매우 곤란하다는 듯. 조심스레 말했다.
“그, 다른 신도분께서 항의를 하셨거든요. 데일 경이 자꾸 기도 중간에 들어왔다고…….”
“…….”
“그 점을 좀 조심해주셨으면 해서요…….”
데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도망치듯이 신전을 나섰다.
* * *
신전을 나온 데일은 고민했다.
이대로 여관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빈민가를 한번 찾아갈까.
여러모로 애매한 시간이었다.
‘일단 한번 가볼까.’
에리얼은 단순히 옆에 서 있어주기만 해도 된다고 했지만, 데일은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할 생각이 없었다.
보상으로 귀한 유물을 준다면 그 가치만큼의 일은 해야 한다.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을 수도 있겠어.’
평의원들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이다. 허투루 일을 벌이지는 않을 터.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데일은 도시의 북문을 나섰다.
밤의 신도들은 빈민가의 북동쪽에 살고 있었다.
빈민가에 들어서자, 데일은 이전보다 분위기가 험악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아이들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여인들도 최대한 외출을 피했고, 돌아다니는 장정들은 다들 무기 하나쯤은 차고 다녔다.
게다가 무리 지어 다니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도시 놈들이 우리의 터전을 빼앗으려 듭니다! 형제들,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겁니까?!”
“우리 몸은 우리가 지켜야 해!”
“옳소!”
이미 빈민가의 주민들은 평의회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에리얼이나 다른 평의원이 일부러 정보를 흘린 듯하다.
주민들이 이번 일로 느끼는 위기감은 작지 않았다.
이들은 대부분 악마에게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경험을 겪었다.
고향을 잃고 각지를 떠돌다 겨우겨우 정착한 곳이 바로 이레네의 성벽 밖, 빈민가다.
외부 세력이 자기들의 터전을 또다시 들쑤시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주민들은 뭉쳤고, 무장을 시작했으며, 자경단을 만들었다.
수색이 시작되면 전쟁이라도 불사할 듯한 분위기였다.
‘평의원들이 대체 뭘 믿고 그런 걸 계획했는지 모르겠군.’
아무런 대책 없이 저들을 적으로 돌리는 건, 썩 현명하지 않다고. 데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데일이 빈민가를 걷자 이목이 확 끌렸다.
커다란 늑대를 데리고 다니는 검은 갑옷의 기사는 어디서든 눈에 뜨이는 법이니.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정들은 데일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게 그…….”
“왜 온 거지? 설마 선발대로 온 거 아니야?”
“용병 길드 소속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데일은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칠 생각이었다.
그가 보호해야 하는 건 어디까지나 신도들이지, 빈민가의 모든 주민이 아니었으니.
그런 데일이 담벼락 사이에 난 골목길로 들어서려니,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가로막았다.
하나같이 제대로 무장한 게, 자경단으로 보였다.
그중에서 지위가 있어 보이는 사내가 외쳤다.
“멈춰! 주민이 아니면 이곳으로는 지나갈 수 없다!”
“?”
데일은 그들을 의아하게 쳐다보다, 물었다.
“언제부터 이곳을 지나가는 데 자격이 필요해진 거지?”
그 차가운 목소리에 자경단원은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자경단원은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완고하게 말했다.
“너희 도시 사람들은 성안으로 들어가는 데에 검문을 하잖아. 우리도 똑같이 할 뿐이다.”
“음.”
그렇게 말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만…….
데일은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사제장 에리얼의 부탁을 듣고, 신도들을 도우려고 이곳에 온 거다. 딱히 빈민가를 뒤엎는 선발대나 그런 게 아니다.”
“뭣? 그 마녀에게 사주를 받고 왔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보내줄 수 없다!”
역효과였다.
아무래도 에리얼은 밤의 사제장으로서, 그 나름대로 악명을 펼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경단원들은 똘똘 뭉쳐 길을 막았다.
눈빛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절박하고, 비장한 감정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아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곤란하군.’
데일은 굳이 이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한동안 빈민가에서 활동해야 하는데, 그 주민들과 마찰을 일으켜 좋을 게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당장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데일은 다시 한번 물었다.
“나는 이 길을 지나야 한다. 너희들이 우려할 일은 없을 거다. 약속하겠다.”
“뭐라 그래도 길은 비켜줄 수 없다. 정 급하면 다른 길로 가던가!”
물론, 다른 길들 역시 자경단원들이 버티고 서 있을 거다.
너무나 완고한 태도에 데일은 고민했다.
‘다른 길이라…….’
데일은 주위를 둘러보다, 자경단이 버티고 선 옆에 늘어선 담벼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돌로 만들어진 담벼락이었다.
생김새는 허름하지만, 나름대로 튼튼한 벽.
데일은 자경단원을 슬쩍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자경단원이 흠칫 뒤로 물러났다.
다시 고개를 돌린 데일은 옆으로 몇 걸음 옮긴 뒤, 주먹을 뒤로 힘껏 젖혔다.
그다음 순간. 데일은 허릿심을 이용해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꽈릉!
돌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담벼락 중앙에 구멍이 뚫렸다. 구멍에는 데일의 주먹이 박혀 있었다.
데일은 팔을 거둬들여 주먹을 빼냈다.
그러자 담벼락 일부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데일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자경단원들한테 말했다.
“여기도 길이 있었군.”
그러고는 새로 개통한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