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2)
수색
* * *
데일이 길을 만들어버리자 자경단원들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어이없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데일의 힘을 눈앞에서 보니, 도저히 직접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슨 힘이 이렇게…….’
‘우리는 한주먹거리밖에 안 되겠는데.’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뒷골목에서 비루하게 먹고 사는 주민들이라도 지키고 싶은 건 있다.
자존심.
여기서 그냥 데일을 보내 줄 수는 없었다.
자경단원이 마지막 용기를 그러모아 외쳤다.
“멈춰! 마지막 경고야! 피 보고 싶지 않으면 말 들어!”
과연 누구의 피를 보게 될까.
쉽게 상상이 가지만, 일단 데일은 멈췄다.
정말이지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귀찮은데.’
기어코 무력을 사용해야만 하는 걸까. 하티 역시 짜증이 나는지 낮게 울부짖었다.
데일이 어찌할까 고민하던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뭣들 하고 있는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눈동자가 녹색인 중년 사내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데일과 안면이 있는 인물이다.
‘토모 상회의 아이렉.’
몰락한 왕국의 귀족이자, 지금은 장물아비로서 빈민가에서 활동하는 인물이다.
아이렉의 뒤로는 일전에 데일과 ‘사소한’ 마찰이 있던 집사와 장정들이 따라왔다.
그들은 데일을 보며 흠칫 놀랐다.
아직도 얻어맞은 자리가 쑤셨다.
“아, 아이렉 님.”
자경단원들은 아이렉이 오자 급하게 고개를 수그렸다.
아이렉의 영향력이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광경이다.
적당히 손을 내저어 준 아이렉은 데일을 보며 흥미를 빛냈다.
“오랜만이네 데일 경. 감사를 표하기 위해 몇 번 사람을 보냈는데, 계속해서 엇갈리기만 했는데…… 이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감사?”
“경이 검은 뱀 형제단을 박살 내주지 않았나. 귀찮게 굴던 골칫덩이들이 사라지니, 얼마나 시원한지 몰라.”
불과 얼마 전.
아이렉은 도적 길드와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데일이 혼자서 적을 모두 쓸어주었으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렉이 물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무슨 일인가?”
“사제장 에리얼의 부탁으로 신도들을 지키기 위해 왔소.”
“아. 무슨 일인지 바로 알겠군.”
아이렉은 자경단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경은 그냥 보내 주어도 괜찮네. 우리한테 해가 되지는 않을 거야.”
“그, 그치만.”
“내가 보증하겠네.”
“그렇다면…….”
우물쭈물하던 자경단원들은 두말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이 흑기사와 싸우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긴 것에 안도할 따름이었다.
말 잘 듣는 자경단원들의 모습에 데일이 물었다.
“그쪽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오?”
아이렉은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터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들고일어나 뭉쳤을 뿐이네. 물론, 그 과정에 내가 사소한 도움을 줬지만.”
사소한 도움.
자경단원들의 무장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면 간단하다.
‘어쩌면 이번 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건 장물아비들이겠군.’
빈민가 사람들에게 무기를 공급해 수익을 거두는 건 물론, 영향력도 키울 수 있다.
어쩌면 이번 일이 지나가면, 도시의 세력 균형이 요동치지 않을까.
그리고 누구보다 셈에 밝은 사내는 어떻게든 이득을 거머쥘 것이다.
자경단원들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아이렉이 말했다.
“요새 이 일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네. 평의원 놈들이 뭘 믿고 이런 멍청한 계획을 추진하는지, 이제는 도리어 궁금할 지경이야. 대체 무슨 비장의 패를 꼭꼭 숨기고 있는지……. 자네는 혹시 뭐 들은 거 없나?”
“없소. 사제장도 모르겠다는군.”
은근히 찔러보는 말에 데일은 즉답했다.
아이렉은 실소를 터트렸다.
“하하. 그래. 밤의 사제장은 오히려 나보다 더 도시 사정에 어두우신 분이니……. 이런. 내가 바쁜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은 것 같군.”
“아니오. 오히려 도움을 받았소.”
아이렉 덕분에 무익한 싸움을 피하게 됐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면, 나랑도 함께 일해주게. 요즘 같은 시기에는 경 같은 인재가 절실하니 말이야. 특히 자네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말끝을 흐린 아이렉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데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길을 걸었다.
아이렉이 보증해주었으니 이제 빈민가에서 귀찮은 일이 벌어질 일도 적을 거다.
데일은 하티와 함께 비교적 큰 골목길을 따라 북동쪽으로 향했다.
밤의 신도들이 모여 사는 곳은 빈민가에서도 가장 외곽이었는데, 사람들은 경멸과 비아냥을 담아 그곳을 ‘암흑가’라고 불렀다.
암흑가에 발을 디디자마자 데일은 생각했다.
‘어둡군.’
단순히 볕이 잘 들지 않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다.
분위기 자체가 침침하고 어둡다 해야 할까.
빈민가의 다른 지역에서는 자경단이다 뭐다 시끄러운데, 이곳만 유독 고요했다.
데일은 그 고요에서 체념의 기색을 읽었다.
얼기설기 얽혀 있는 허름한 집들을 지나친 데일은 암흑가의 중앙에 자리한 공터에 다다랐다.
공터에는 아이들 몇이 우울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데일이 다가오자 아이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들은 데일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데일은 예상치 못한 만남에 바짝 얼어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가장 높은 사람 데려와라.”
“높은 사람이요?”
아이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자, 데일은 좀 더 쉬운 단어를 썼다.
“어른 불러오라고.”
“아.”
“이해했나?”
“네, 네!”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더니 이내 골목길로 달려가며 큰소리로 외쳤다.
“나오래요! 나오래요!”
“기사님이 어른들 전부 나오래요!”
아무래도 데일의 말을 조금 잘못 이해한 듯싶다.
아이들의 외침에 고요하던 거리가 소란스러워졌다. 집집마다 불이 켜지더니 주민들이 하나둘 걸어 나왔다.
그들은 데일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엇.”
“진짜 기사님이네…….”
주민들은 놀란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평소 동경하던 이가 직접 이 누추한 곳에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주민들은 들뜬 기색으로 웅성거리는 한편, 선뜻 데일에게 다가오지는 못했다.
마치 자경단원이 아이렉을 어려워하는 것처럼, 데일을 어려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주민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노인은 데일을 향해 다짜고짜 엎드렸다.
“노, 노부가 여신님의 기사를 뵙습니다.”
그러자 다른 주민들도 냉큼 엎드렸다. 아이들도 주위 눈치를 살피다,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해가 안 되는 반응은 아니다.
흑기사는 교단으로 치면 성기사와 같은 느낌이다.
일반 신도에게 성기사나 사제가 가지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데일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담스럽군.’
애초에 데일은 여신을 섬기는 성기사가 아니다.
심지어 경전 한번 읽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 이 세상에 떨어졌을 때는 품에 경전이 하나 있었지만, 글자를 모르는 데일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있던 때도 아니고.
그래서 대충 땔감으로 태워버렸다. 들고 다니기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다.
훗날 그 일을 가지고 여신이 얼마나 잔소리를 했는지.
그러니 데일에게는 이들에게 섬김받을 자격이 없었다.
게다가 나이가 지긋한 노인에게 절을 받는 건, 유교 사회에서 살아온 데일에게는 굉장히 껄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데일은 노인을 재빨리 일으켰다. 반쯤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일어나시오. 그리고 나는 당신들이 무릎 꿇을만한 그런 사람이 아니오.”
부축받은 노인의 눈가에 희미한 물기가 어렸다.
“아아. 참으로 겸손하시어라.”
다른 주민들도 더욱 감격해 고개를 조아렸다.
데일은 얼굴을 손으로 짚었다.
종교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여러모로 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데일은 나이가 너무 들어,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앉은 노인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곳의 지도자요?”
“그렇습니다. 일단 편의상, 촌장이라 불리며 주민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촌장.
이런 외곽에 자기들끼리 모여 사는 암흑가는 하나의 마을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데일이 말했다.
“촌장. 나는 사제장 에리얼의 부탁을 받고 이곳에 왔소. 곧 있을 빈민가 수색에서 그대들을 지켜달라 하더군.”
촌장은 다시 한번 감격했다.
“사제장님께서!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신들은 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오. 다른 곳에서는 자경단원이니 뭐니 분주히 움직이는데.”
“아…….”
촌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울적하게 주위 주민들을 둘러본 뒤, 고개를 조아렸다.
“다들 하루 일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들입니다. 자경단이라니요. 무장할 돈은커녕, 당장 오늘 일을 못 하면 내일 굶는 처지에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오?”
“저희도 마냥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도움을 얻을만한 사람들을 찾아다녔죠…….”
촌장이 다시 뒷말을 흐렸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결과가 어땠을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알겠소. 일단 주민들은 지금 전부 모인 것이오?”
“아. 예. 그렇습니다. 아직 일을 나가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을 제외하면 이게 전부입니다.”
데일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번 수색의 목적은 도시에 위협이 될만한 위험인물을 색출하기 위함이오. 최근에 도시를 찾아온 신원이 불분명한 자들이 색출 대상이지. 혹 그런 수상쩍은 이들이 근처에 있거나 하지 않소?”
“으음. 그, 그런 사람은 못 봤습니다. 펴, 평범한 사람들은 이쪽에는 얼씬도 하지 않아서…….”
왜인지 촌장이 말을 덜덜 떨었지만, 어쨌거나 다행인 부분이었다.
괜히 수상쩍은 사람 근처에 있다가는 공범으로 몰려 줄줄이 잡혀 나갈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이곳의 법체계는 야만적인 구석이 많다.
일단 붙잡으면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건 일도 아니다.
재판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정식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귀족이나 힘 있는 자들 뿐이다.
꼬투리를 잡을 만한 부분은 처음부터 없어야 한다.
‘일단 수상한 놈이 없는 건 다행인데…….’
데일은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 고민했다. 촌장과 주민들은 그런 데일의 눈치만 살폈다.
정적.
그 정적을 깬 건 어디선가 들린 고함이었다.
“먹을 거! 먹을 걸 가져와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데일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목소리는 분명 근처에서 들리고 있었다.
데일이 촌장에게 물었다.
“주민은 다 모였다고 하지 않았소?”
“아, 주민은 아니고……. 사실 손님이라 해야 할까, 한 분이 더 계십니다.”
“손님? 일단 안내하시오.”
촌장은 불안한 얼굴로 머리를 조아린 뒤, 종종걸음으로 앞서나갔다.
데일이 그 뒤를 걸었다. 뒤이어 주민들이 우르르 뒤따라왔다.
멈춘 곳은 암흑가에서도 그나마 번듯한 집이다.
촌장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당장 보이는 건, 접시의 산이다.
양념이 잔뜩 묻은 접시가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사내가 볼록한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사내는 기름기가 잔뜩 묻은 손가락을 입으러 빨아먹으며, 투정을 부렸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촌장? 절대 음식이 끊기지 않게 하라고. 난 배고프면 물불 안 가리는 사람이야. 그리고 여자도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짜증을 내던 사내는 그제야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듯. 고개를 들었다.
데일과 사내의 눈이 마주쳤다.
데일은 고개를 내려 촌장에게 물었다.
“저 인간은 누구요?”
촌장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일단은 저희를 지켜주겠다고 오신 분입니다.”
“원래 이곳 주민이오?”
촌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닙니다. 본인 말로는 전선에서 수년간 복무하시다가, 1주일 전쯤에 도시로 오셨다고 합니다. 무려 악마와도 싸워본 적 있는 실력 있는 전사라고…….”
“…….”
데일은 촌장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1주일 전에 갑자기 도시에 온 뛰어난 실력의 전사……. 뭐야.’
그림에 그린 듯한 수상쩍은 인물이 이곳에 눌러앉아 있었다.
지적하는 것도 귀찮았다.
데일은 일단 검부터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