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3)
수색
* * *
데일이 검을 들며 말했다.
“아무리 상황이 궁해도 그렇지. 저런 의심스러운 자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되잖소.”
눈앞의 사내야말로, 지금 평의원들이 빈민가를 뒤엎으려는 원인이었다.
저런 놈을 숨겨두고 있었으니, 만약 데일이 아닌 다른 이에게 발각되었다면…….
‘꼼짝없이 모두 잡혀갔겠군.’
심지어 이 경우에는 억울함을 토로하지도 못한다. 저 수상쩍은 인간이 주민들의 대접을 받고 있으니.
데일의 꾸짖는 말에 촌장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제, 제가 부탁한 게 아닙니다. 저 사람이 돌아다니는 저를 다짜고짜 붙잡고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주민들을 지켜줄 테니까 돈과 음식을 요구했습니다. 따르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아무래도 촌장은 저 사내에게 재수 없게 걸려버린 모양이다.
데일이 물었다.
“왜 나한테 미리 말하지 않았소.”
촌장은 고개를 조아렸다.
“혹여나 사람을 불러오면, 주민들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악마랑도 싸운 적이 있는 전사라니, 겁이 나서 그만……. 죄송합니다.”
데일의 실력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다는 걸까.
사실, 저 사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악마랑 싸워 살아남았다는 건, 그 자체로도 엄청난 실력을 지녔다는 것이므로.
물론, 어디까지나 그게 사실일 때의 얘기다.
‘그 정도로 강한 것 같지는 않은데.’
데일은 사내를 훑어보았다.
사내는 그때까지도 태연하게 접시에 묻은 양념을 핥아먹고 있었다.
검을 든 데일을 앞에 두고도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배짱 하나만큼은 두둑한 놈이었다.
데일의 시선을 눈치챈 사내는 그제야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접시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사람 부르면 죽여버리겠다고 경고했는데도 이 지랄이군. 이 보르단 님이 어지간히도 우습게 보인 모양이야.”
그리 말하고는 촌장에게 살기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기겁한 촌장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데일은 나머지 주민들도 뒤로 물렸다. 그리고는 집 문을 닫았다.
실내에는 둘밖에 남지 않았다.
데일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식물 찌꺼기가 묻은 접시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암흑가의 주민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
데일은 검을 굳게 쥐며 자세를 잡았다. 상황이 명확했으므로, 상대에게 더 물을 건 없었다.
그 모습에 보르단이라는 이름의 사내는 웃음을 흘리더니, 자신을 소개했다.
“이 몸은 동부전선 3군단 소속 백인대장……이었던! 보르단 님이시다! 무려 그 유명한 용병왕과 함께 악마와 싸워 살아남은 전적이 있지!”
보르단은 묻지도 않은 자기 업적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어때? 대단하지?’라고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데일은 담담하게 자기 심정을 말했다.
“뭐 어쩌라고.”
보르단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리고는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일단 이 보르단 님께서 예의부터 가르쳐줘야겠군.”
보르단은 성미가 급한 성격이었다.
그는 외마디 고함을 내지르더니, 그대로 데일에게 달려들었다.
양손에는 어느새 손도끼가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뚱뚱한 모습에 비해 그 움직임이 제법 날렵하다.
순식간에 바로 앞까지 다가온 보르단이 양손의 손도끼를 동시에 내리쳤다.
카각!
데일은 롱소드를 쥔 손목을 꺾어 손도끼를 비스듬히 비껴냈다.
그런데도 만만치 않은 충격이 검을 타고 전해졌다.
데일은 뒤로 물러날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실내의 특성상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좁다.
밀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데일은 연이어 휘둘러져 오는 손도끼에 어깨를 들이밀었다.
견갑과 도끼날이 부딪혀 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튕겨나갔다. 물론. 튕겨 나가는 쪽은 도끼였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보르단이 휘청였다.
그대로 가깝게 파고든 데일은 롱소드를 횡으로 휘둘렀다.
그 궤적은 보르단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보르단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절묘하다. 순간적으로 파고들어 균형을 무너뜨린 뒤, 정확히 급소를 노리는 일격.
‘제법……!’
보르단은 데일의 검에 담긴 경험의 깊이를 느꼈다.
하지만 경험이라면 보르단 역시 밀리지 않는다.
그는 목을 노리는 롱소드의 궤적에 오른팔을 들이밀었다. 평범한 전사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다.
전사에게 팔이란 목숨보다도 소중한 법이니.
하지만 보르단은 했다.
팔과 검이 맞닿았다.
솨아악!
팔에 긴 상처를 내고 지나간 롱소드가 보르단의 머리카락을 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빠르게 검을 되돌린 데일은 의아해했다.
‘얕아.’
분명 팔을 잘라낼 만한 각도였는데, 팔과 부딪힌 검이 마치 쇠와 부딪힌 것처럼 튕겨나갔다.
그 때문에 팔에 길고 얕은 상처를 내는 데에 그쳤다.
보르단은 그런 데일의 의아함을 알아챘는지, 사납게 웃었다.
“흐흐. 이 보르단 님이 제법 튼튼해서 말이야.”
오른팔에 난 상처에서 피가 강처럼 흘러내렸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데일은 침착하게 상대를 살폈다. 실력이 뛰어난 놈이다. 우선 그 직업을 유추해야 한다.
하지만 몸을 튼튼하게 만드는 기술은 여러 직업에 존재한다. 그것만으로는 알아낼 수 없다.
‘모르겠군.’
아직 단서가 부족하다. 일단 계속 싸워보는 수밖에.
어쨌거나 오른팔에 난 상처는 유의미한 타격이다. 그 부분을 차근차근 공략하다 보면, 금방 답이 나오리라.
데일이 검 끝을 하늘로 세우고 거리를 재자, 보르단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기분 탓일까?
그 속도가 아까보다 빠르게 느껴진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다.’
보르단은 확실히 빨라졌다. 짓쳐들어오는 도끼의 기세도 더 강하다.
이변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손도끼가 데일의 가슴을 강타하고 있었다.
쿠웅!
강한 충격에 데일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보르단이 파고들었다.
데일은 왼손을 내려 홀스터에서 단검을 뽑았다. 그대로 보르단의 어깨에 내리찍었다.
단검의 날이 깊숙이 들어갔다. 피가 튀었다. 뜨거운 피다. 하지만 보르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히죽 웃으며 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미치광이의 춤사위처럼 난해하고 규칙성 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보르단의 힘과 속도가 뒷받침되자, 난해함은 오히려 강점이 되었다.
도무지 그 움직임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데일은 롱소드를 몸쪽으로 바짝 끌어당겨 수비에 전념했다. 뒷걸음질해 실내의 모퉁이로 이동했다.
공간이 좁다는 걸 활용하면, 상대의 수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보르단은 계속해 빨라지고 있었다.
참격이 어지럽게 퍼부어졌다.
하지만 데일은 냉정하다. 그는 승리에 이르는 길을 차분히 찾아 나갔다.
오히려 잔뜩 흥분한 쪽은 보르단이었다.
“흐! 흐하! 흐흐하하!”
뭐가 그리 좋은지, 보르단은 손도끼를 휘두르며 바보 같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입에서는 침이 뚝뚝 흘렀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데일은 그런 보르단의 눈을 살폈다. 아까와는 달리, 보르단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마치 빨간 물감을 흰자위에 칠해놓은 것 같은 꺼림칙한 모습이다.
그제야 데일은 정답에 이르렀다.
“광전사였군.”
광전사. 피를 흘릴수록 더 강해지는 미치광이 전사들.
데일이 정답을 맞히자 보르단은 히죽히죽 웃었다.
그러고는 자기 어깨에 박힌 단검을 뽑아냈다. 고여 있던 피가 콸콸 흘러내려 웅덩이가 되었다.
사람 몸에 이 정도로 피가 많은지 감탄이 나올 정도의 광경이었다.
“흐흐. 기사란 것들도. 흐하. 막상 싸워보면 별거 없을 때가 많다니까.”
보르단은 승리를 이미 확신하는 듯. 데일을 향해 이죽거렸다.
데일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보르단은 처음 전투를 시작할 때와 비교해 족히 두 배는 강해졌다.
나름 자부심을 가질만한 실력이 있는 것도, 경험이 풍부한 것도. 모두 이해했다.
그러니…….
“슬슬 끝내야겠군.”
“흐?”
처음의 보르단은 경계할만한 적이었다.
그가 어떤 힘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 데일은 보르단의 힘을 안다. 그가 어떤 기술을 다루는지도 안다.
그렇기에, 설령 두 배 더 강해졌어도, 보르단은 이제 경계할만한 적이 아니었다.
데일은 검을 앞으로 세웠다. 그리고 어서 오라는 듯, 손을 까딱했다.
보르단은 그 여유가 맘에 들지 않았다. 저 시커먼 기사의 사지를 토막 내, 목숨을 구걸하는 게 보고 싶었다.
“우아아아아!!”
그래서 보르단은 달렸다. 괴성을 지르며 달렸다. 둘 간의 거리가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데일은 시시각각 가까워져 오는 미치광이 전사를 무심히 쳐다보다, 왼주먹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보르단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쨌거나 빈틈이다. 보르단은 데일의 투구를 향해 손도끼를 내리치려 했다.
그 순간.
데일이 말아 쥐었던 주먹을 폈다.
화아아악!
손바닥에서 검은 안개가 흩어져 나왔다. 안개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뻗어 나가 온 실내를 가득 메웠다.
보르단의 시야도 새까맣게 물들었다.
당황한 보르단은 제자리에서 멈췄다.
싸늘하다. 피부에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누군가 귓가에 저주의 말을 속삭이는 기분이 든다.
신경질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려던 보르단은 움직임을 멈췄다.
‘환청. 환청이다.’
보르단은 전장에서 오래 구른 전사다. 이런 상황도 몇 번인가 마주했다.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도 한줄기 이성을 붙잡았다.
‘다, 다행히 그렇게까지 강력하지 않아.’
이 안개에는 온몸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의 냉기도.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깎여나가는 두려움도 없다.
그저 시야의 제한뿐.
‘안개가 흩어질 때까지 버티면서 치명상. 치명상만 피하면 된다.’
죽음에 이르지 못하는 상처는 광전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목이 베이거나 심장이 꿰뚫리지만 않으면 괜찮다.
그때부터는 보르단의 차례다.
보르단은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공격이 오면, 언제라도 대응할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심장은 쿵쿵 뛰었다. 어둠 속에서는 시간조차 느리게 흘러갔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영원 같은 찰나의 끝을 알린 건, 쇠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였다.
‘온다!’
방향은 가늠이 된다.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분명 찌르기. 보르단은 예상 지점을 향해 손도끼를 교차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곳을 향해, 롱소드가 안개를 가르며 찔러 들어왔다.
캉!
손도끼와 롱소드가 부딪혔다.
막았다!
보르단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
손도끼에 가로막힌 롱소드가 튕겨나갔다. 롱소드를 붙잡고 있어야 할 데일이 없다.
그제야 보르단은 이게 찌르기가 아닌 투척이었음을 깨달았다.
보르단은 급히 시선을 올렸다.
무기끼리 부딪치는 소리에 맞춰 땅을 박찬 데일이 어느새 앞에 다가와 있었다.
보르단은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롱소드를 버렸는데, 어떻게 치명상을 입히겠는가.
단검으로 목을 끊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심장만 가리면!’
그 마지막 순간의 판단이 승부를 가로 지었다.
보르단은 도끼를 심장을 가렸다. 그리고 데일은……. 양손을 뻗어 보르단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돌렸다.
그제야 데일의 의도를 알아챈 보르단이 급하게 손을 되돌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끄윽!”
데일은 이미 자세를 잡았다. 힘을 주었다.
보르단이 안간힘을 쓰며 막아보려 했지만 한참 부족하다.
머리가 천천히 돌아갔다.
얼굴 전체가 새빨개진 보르단이 마지막 힘을 담아 외쳤다.
“끄으으윽. 아, 안 돼……!”
우득.
뼈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보르단의 머리가 돌아갔다. 반 바퀴하고 조금 더였다.
데일은 보르단의 숨이 끊어진 걸 확인하고 놓아주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보르단의 얼굴은 정말로 억울해 보였다. 마치 데일이 비겁한 수라도 쓴 것처럼.
“그러게 본인 약점을 잘 알았어야지.”
광전사의 약점.
목이 꺾이면 죽는다.
물론, 살아있는 사람 대부분이 공유하는 약점이기도 하다.
데일은 보르단의 시체에 건틀렛을 박아넣었다.
생기와 잔혼이 흘러들어왔다. 만족스러울 정도의 양이었다.
* * *
암흑가의 주민들은 싸움이 벌어지는 집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기사님이 지면 어떡하지?”
“그, 그러면 그놈이 우리를 전부 죽이려 들 텐데.”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대체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암흑가의 주민들은 그저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데일이 이기기를. 저 잔혹한 전사를 처단해, 그들에게 안정을 가져다주기를.
고함과 무기 휘두르는 소리.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려오던 실내가 돌연. 고요에 휩싸였다.
“…….”
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문을 열어 안을 살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그런 갈등에 보답하듯, 문이 벌컥 열렸다.
아직 다 흩어지지 않은 검은 안개가 문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안개 사이에서, 데일이 걸어 나왔다.
검은 안개에 둘러싸여 걸어 나오는 흑기사. 주민들이 섬기는 여신의 사도. 그 신비롭고도 차가운 분위기.
“아아.”
촌장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