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4)
마법사
* * *
데일은 바짝 엎드린 주민들을 보고 한숨을 삼켰다.
“왜 또 엎드려 있소.”
“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우물쭈물하던 촌장이 물었다.
“그, 망나니 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데일은 대답 대신 고개짓 했다.
생기가 모두 빨려 미라처럼 바짝 마른 보르단의 시체가 보였다.
“오오!”
“역시……!”
주민들은 감격했다. 주민들을 괴롭히던 전사를 이리 간단히 해치우다니.
촌장이 호들갑을 떨었다.
“악마와 맞붙어 살아남은 전사를 이리 손쉽게 쓰러트리다니……. 이런 기사님을 보내주시다니, 역시 여신님께서는 저희를 저버리지 않았군요!”
지적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우선, 데일을 보낸 건 여신이 아니라 에리얼이다. 그것도 유물을 주겠다는 말에 혹해서 받아들인 것뿐.
게다가 보르단에 대한 것도 과장이 심했다.
그가 뛰어난 전사는 맞았다.
하지만 악마랑 맞붙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서열이 가장 낮은 악마도 보르단쯤은 손짓 한 번으로 죽여버릴 수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다른 놈이 악마를 상대할 동안, 옆에서 졸개들을 상대했겠지.’
물론, 그것만으로도 평생 자랑할 만한 업적은 맞다.
하지만 데일의 관심을 끄는 건 직접 악마를 상대한 쪽이다.
‘분명, 용병왕인지 뭔지랑 함께 싸웠다 했나.’
데일이 게임을 통해 이 세상을 접하던 시절. 그 당시에 악마란 자연재해와도 같은 존재였다.
한낱 인간이 어찌할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랬다.
하지만 인류에도 그런 악마를 상대할 만한 괴물들은 있었다.
마탑의 마스터나, 황실의 기사단장, 전선을 수호하는 네 명의 장군.
하지만 용병왕이라는 이름은 그 당시에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애초에 용병 나부랭이에게 왕이라는 칭호라니. 너무 거창해서 오히려 비꼬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사이에 새로 나타난 영웅인가.’
분명 가란드도 몇 번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조사해볼 마음이 생겼다.
생각을 정리한 데일은 주민들에게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이제는 일일이 해명하기도 귀찮았다. 그냥 오해하든 착각하든 놔두기로 결심했다.
슬금슬금 일어난 주민들은 엉망이 된 실내를 청소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격전이 벌어진 내부는 비교적 깨끗했다.
깨진 접시와 가구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지만, 피는 한 방울도 없었다.
검은 안개가 주위에 퍼져나가며 보르단이 흘린 피를 모조리 흡수한 것이다.
덕분에 작업이 수월해진 주민들은 금방 실내를 정리했다. 문제는 보르단의 시체다.
바짝 말라버린 시체를 주민들이 곤란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하티가 성큼 걸어와 데일의 허리를 툭 쳤다.
“뭐.”
하티가 코로 보르단을 가리켰다. 그 몸짓을 알아차린 데일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허락이 떨어지자 하티는 아가리를 크게 벌려 보르단을 씹어먹었다.
바짝 말라버린 시체라 그런지, 하티가 씹을 때마다 질겅이는 소리가 났다.
개껌을 씹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이렇게 사람을 먹게 놔둬도 되나?’
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신경 껐다.
이미 사람 맛을 아는 늑대기도 하고, 당장 사람을 죽여 생기를 빼앗는 데일이 지적할 부분은 아닌 것 같았다.
뒤처리가 끝나자 어느새 완전히 해가 졌다.
데일은 공터에 다시 모인 주민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주민들은 데일을 단순히 존경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도저히 봐주기 어려운 부담스러운 감정이 눈동자에 가득했다.
‘뭐. 말은 잘 듣겠군.’
데일은 주민들에게 생각해두었던 방침을 말했다.
“소란이 끝날 때까지 한동안은 몰려다니시오. 혼자 떨어져 다니지 말고. 해가 지면 외출을 피하고, 웬만하면 모르는 이와 최대한 접촉을 피하시오.”
괜히 꼬투리 잡히려는 걸 막기 위해서 하는 최소한의 조치다.
이외의 부분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까.’
여러 사람의 이권이 개입되는 사건이다. 일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가능성도 조금이나마 있었다.
* * *
데일은 여관으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파리만 날리는 여관에서 카일라가 반갑게 맞았다.
“아! 오셨어요!”
카일라의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걸렸다. 그 눈부신 모습에 한구석에 앉아 있던 하켄이 투덜거렸다.
“뭐야. 내가 들어왔을 때는 흙 씹은 표정이더니. 왜 이렇게 반응이 달라.”
카일라가 새침하게 받아쳤다.
“하켄도 데일 경처럼 잘생기던가요.”
“나도 데일 경만큼은 아니어도 꽤 괜찮게 생기지 않았나?”
“…….”
“미안.”
카일라가 말없이 정색하자 하켄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내렸다.
다시 데일을 향해 화사한 미소를 지은 카일라가 이번에는 하티를 발견했다.
“와아! 데일 경이 새로 기르는 강아지인가요? 엄청 귀엽네요!”
하켄이 핀잔을 줬다.
“하다못해 개도 아니고, 저 덩치를 보고 강아지라는 말이 어떻게 나와. 누가 봐도 늑대잖아.”
“뭐 강아지나 개나 늑대나 그게 그거죠.”
카일라는 하티의 거대한 덩치에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역시, 배짱이 두둑한 여자였다.
데일이 물었다.
“여관에서 기를 수 있겠나?”
“음. 아무리 그래도 실내는 좀 힘들고. 뒷마당에 기르면 되지 않을까요? 도둑 퇴치도 되고 좋겠네요!”
데일은 하티를 쳐다보며 뒷문을 가리켰다.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하티가 어슬렁 걸어나갔다.
그 똘똘한 모습에 잠시 감탄한 카일라가 데일에게 물었다.
“식사하실 거예요?”
“그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섭식 행위를 위해 데일은 하켄의 앞에 앉았다. 투구를 벗고 하켄에게 물었다.
“그래서. 넌 왜 여깄는데.”
“음? 그야 저, 앞으로 데일 경을 따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여관도 옮겨야죠.”
데일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기 투숙 손님이 한 명 늘었으니, 카일라에게는 좋은 일이다.
정작 카일라는 하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지만.
하켄은 맥주잔을 들어 내용물을 꿀꺽 들이켰다. 미묘한 얼굴로 맥주잔을 쳐다본 하켄이 중얼거렸다.
“맥주 맛이 영 이상하단 말이죠. 음식은 그럭저럭 먹어줄 만 한데요.”
데일은 대꾸하지 않았다. 음식 투정이라니.
미각이 없는 그에게는 참으로 사치스러운 모습이었다.
툴툴거린 주제에 맥주를 전부 들이켠 하켄은 데일을 흘끔 쳐다보았다.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왜.”
“아니, 그. 전에 가란드가 부탁한 것 말입니다. 데일 경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가란드와 카달과 함께했던 자리에서 일행은 제안을 받았다.
빈민가 수색에 함께해 주지 않겠냐는 의뢰.
마젤은 미련 없이 거절했다.
데일은 고민해보겠다고 답을 미뤘고, 하켄도 데일과 똑같이 답했다.
데일이 되물었다.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저야 당연히 데일 경 하는 거 보고 결정할 생각이죠! 애초에 가란드가 저한테 부탁한 것도 제가 탐나서겠습니까? 다 데일 경 때문이죠.”
하켄은 스스로에 대해 제법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실 겁니까?”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쪽에서 의뢰를 받았다. 정반대의 의뢰로.”
데일은 에리얼에게서 받은 부탁은 대강 설명해주었다. 진지한 얼굴로 경청한 하켄이 대답했다.
“흠. 그러면 저는 그냥 이번에는 쉬어야겠네요.”
“딱히 가란드의 의뢰를 받아도 상관없다. 제법 괜찮은 의뢰일 텐데.”
“아뇨아뇨. 재수 없게 데일 경이랑 싸우게 되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이번 일, 뭔가 좀 냄새가 나요.”
“냄새?”
“구린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끼어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요. 뭐, 그냥 감이지만요.”
감.
사선을 드나든 용병들은 자기 예감에 충실히 따르는 편이었다.
데일도 더 말을 얹지 않았다. 어쩌면 하켄의 예감이 맞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에는 무장을 마친 자경단원들과 아이렉이 떠올랐다.
그들은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란드가 말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겠군.’
데일은 카일라가 내온 햄을 포크로 찍어 먹었다. 역시나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일라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음식이 가득 찬 접시를 내오려 할 때였다.
“꺄아아악!”
밖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렸다. 다음 순간. 여관 문이 벌컥 열렸다.
흰 사제복을 여인이 급하게 문을 닫은 뒤, 바닥에 주저앉았다.
에스델이었다.
“바, 바, 바, 밖에……! 괴물! 괴물입니다!”
안 그래도 흰 얼굴이 더욱 창백해진 에스델이 밖을 가리켰다.
그 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던 하켄이 깨달은 듯, 아! 하는 탄성을 내뱉으며 말했다.
“밖에 있는 늑대를 말하는 거면 데일 경이 키우는 거니까 걱정 마 사제 양반.”
“늘 말하지만 제 이름은 에스델입니다. 아니 그보다, 저런 흉측한 생물을 기르다니요! 누가 봐도 평범한 늑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에스델은 반쯤 울먹이며 말했다.
하티를 보고는 어지간히도 놀란 눈치였다.
데일과 하켄은 동시에 카일라를 쳐다보았다.
귀여운 강아지라고 생각한 카일라와는 너무 다른 반응이었다.
‘이쪽이 더 정상적인 것 같긴 하지만.’
그 시선을 눈치챈 카일라는 ‘귀엽기만 하고만’하고 중얼거린 뒤, 에스델에게 다가가 일으켜주었다.
“괜찮으세요 사제님?”
“가, 감사합니다.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식사하시겠어요? 아니면 숙박? 데일 경과 아는 사이 같으니 싸게 해드릴게요.”
카일라는 에스델이 당황한 틈을 타 은근슬쩍 매출을 올리려 했다.
아쉽게도 카일라의 시도는 실패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에스델이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지금은 교단 일이 여러 가지로 바빠서……. 잠시 시간을 내 들른 겁니다.”
바쁜 와중에 굳이 시간을 내어 찾아오다니. 데일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에스델이 다가왔다.
그녀는 어쩐지 데일이 어려운 듯,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그, 데일 경. 신념의 반지는 아직 가지고 계십니까?”
“반지?”
갑작스럽게 반지를 왜 찾는단 말인가.
데일이 되묻자, 에스델이 초조하게 물었다.
“기억 안 나십니까? 마리아 사제님이 데일 경께 드린 반지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설마……. 버, 버린 건 아니죠?”
그제야 데일은 에스델이 무얼 말하는지 기억해냈다.
‘예전에 사제 하나를 구하고 반지 같은 걸 받았었지.’
데일은 주머니를 뒤졌다. 반지는 잡다한 물건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은은한 광택을 뿜어내는 반지를 꺼내자 에스델은 눈에 띄게 안심했다.
“후우. 버리지 않았군요.”
“그래서. 이 반지가 어떻다는 거지?”
데일의 질문에 에스델은 조금 딴소리를 했다.
“이건 그냥 평범한 반지가 아닙니다. 예전, 어느 한 영웅이 자신의 영혼을 잘라 담았다고 하는 유물이죠. 고결한 영혼과 강한 신념을 지닌 사람에게 단 한 번, 큰 힘을 준다는 물건입니다.”
데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뭐 어쩌라는 건지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스델은 어딘가 간절한 어조로 물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특별한 반지를 마리아 자매님은 데일 경께 드렸어요. 자매님은 마지막 순간에 데일 경을 믿었던 거겠죠? 아니. 분명 그랬을 거예요.”
“글쎄. 뭔가 생각이 있었겠지.”
“맞아요. 마리아 자매님은 사람을 허투루 보는 분이 아니니까요.”
그제야 에스델은 안도했다.
끙끙 앓고 있던 문제에 대해 답을 얻은 듯한 표정이다.
데일이 더 뭐라 묻기 전에 에스델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그러면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리 말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져버렸다.
갑작스레 찾아와 멋대로 질문을 던지더니, 혼자 만족해서 사라져버렸다.
하켄은 황당해하며 중얼거렸다.
“뭘 잘못 먹었나 본데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꺄아아악!”
또다시 자지러지는 비명이 울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에스델이 또 하티를 보고 놀랐으려니……. 할 뿐.
* * *
아침이 되자마자 데일은 용병 길드로 향했다.
사정을 설명하며 가란드의 의뢰를 거절할 생각이었다.
한데, 오늘따라 용병 길드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외곽구역의 모든 용병이 다 모인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그들 모두가 게시판 앞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데일은 그들을 헤집고 지나갔다.
용병들이 짜증을 부렸다.
“아이씨 어떤 새끼가 밀치.”
용병은 데일을 올려다보았다. 데일도 그런 용병을 내려다보았다.
“지나가시죠.”
용병은 공손히 고개를 숙인 뒤,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데일은 그런 식으로 편하게 용병들을 뚫고 지나갔다.
평소에는 거칠고 사나운 용병이지만, 데일을 보자 절로 예의와 예절이 솟아났다.
그런 식으로 게시판 앞에 도달한 데일은 게시판을 살폈다.
게시판에는 소집 공고가 붙어 있었다.
‘기어코 하는군.’
평의회에서 결국, 공식적으로 빈민가 수색을 하겠다고 공표했다.
그에 따라 용병들을 대규모로 고용하겠다는 것도.
여기까지는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사실이다. 다른 용병들도 대부분은 알고 있었을 거다.
문제는 공고문에 커다랗게 적힌 문장이다.
데일은 그 문장을 읽고 한숨을 삼켰다.
[본 계획은 마탑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