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0)
수색
* * *
데일은 길드 건물을 나섰다. 하켄이 물었다.
“이제 어디 가십니까?”
“신전.”
“아, 그럼 다녀오세요.”
하켄의 배웅을 받은 데일은 늑대 하티와 함께 길을 걸었다.
벌써 밤이었다.
하지만 도시는 어둡지 않았다. 각 건물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주위를 밝혔다.
당장 해가 지면 새까만 어둠이 펼쳐져,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야 하는 빈민가와는 영 다른 모습이다.
‘어수선하군.’
날이 저물었음에도 사람들은 분주히 돌아다녔다. 단순히 기분 탓일지 모르지만, 데일은 어수선하다고 느꼈다.
묘한 기류가 흐른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소식 빠른 시민들은 곧 있을 일에 대해 전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했나.’
뒷골목을 대대적으로 수색하는 계획은 아직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여전히 반대하는 평의원들이 있고, 논의할 것도 많다.
하지만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정식 공문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가란드는 귀띔해주었다.
생각에 몰두하던 사이, 하티가 뭉툭한 코로 데일의 허리를 툭 건드렸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신전의 허름한 입구에 도달했다.
데일은 하티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머지않아 평소와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새까만 어둠. 목검을 휘두르는 스켈레톤. 안대로 눈을 가린 사제장 에리얼.
한데, 오늘따라 신전에 사람이 많았다.
신도로 보이는 이들이 에리얼을 둘러싸 웅성거리고 있었고, 에리얼은 곤란한 기색으로 그런 신도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흔한 광경은 아니다.
밤의 여신을 섬기는 신도 수는 교단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
그마저도 세간의 인식 탓에 신앙을 숨기는 경우가 많기에, 직접 신전을 찾는 이들은 소수.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건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몇몇은 양초가 든 램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어둠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일반 신도임을 의미했다.
데일이 하티와 함께 내려서자 실내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신도들은 멍하니 데일을 쳐다보다, 일제히 웅성거렸다.
“저분이 그……. 맞지?”
“세상에. 진짜 데일 경이야.”
“참으로 든든하시어라…….”
신도들은 데일을 보며 감격에 겨워했다. 몇몇 눈가는 촉촉해지기까지 했다.
길거리를 걸을 때와는 정반대의 반응이다.
데일에게는 달갑지 않은 시선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부담스러운 상황을 해소해준 건 에리얼이었다.
에리얼이 신도들을 해치고 두 걸음 걸어 나왔다.
“오셨군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이면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저쪽에서 무어라 말을 걸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기도실을 사용하고 싶다.”
“아무 기도실에나 들어가면 됩니다. 지금은 전부 비어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성큼 걸음을 옮겼다.
신도들이 옆으로 물러나 데일에게 길을 터주었다.
몇몇은 말을 걸고 싶어 했으나, 그 옆에 선 커다란 늑대 탓에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데일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저들이 자신한테 무얼 기대하는지는 몰라도, 데일은 그 기대를 충족해줘야 할 의무가 없었다.
데일은 기도실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하티에게 지시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하티는 알겠다는 듯. 꼬리를 한 차례 흔들었다.
데일은 기도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투구를 벗었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제단 위에 올려진 은촛대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형상을 이루었다.
[데일. 내 아들. 어서 오너라.]밤의 여신은 여느 때와 같이, 긴 머리카락을 바닥에 드리우며 반가이 맞았다.
창백하고 하얀 발이 데일을 향해 한 발짝 다가왔다.
데일은 말했다.
“우선 제물을 바치고 싶습니다.”
데일의 눈앞에 세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근력 상승》
《갑옷 강화》
《영혼 강화》
신전에 방문하는 건 오랜만이다. 모아 놓은 영혼의 양도 적지 않다.
데일은 신중히 고민했다.
사소한 능력치 차이가 싸움의 승패를 가를 수 있다.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
‘우선 영혼 강화는 제외……. 아니지.’
영혼 강화는 마력과 정신력 능력치를 올려주는 선택지다.
당장 마력을 활용하는 기술이 없는 데일에게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데일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데일이 여신에게 물었다.
“혹시 새로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까?”
그의 기억 속에 있는 흑기사라는 직업은 3등급부터 기술을 하나둘 배우기 시작해, 5등급에서부터는 특성화를 시작한다.
흑기사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특성화를 하냐에 따라 다양한 육성이 가능하다.
지금처럼 무식하게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데일의 질문에 여신이 머쓱한 어조로 말했다.
[으음. 깜짝 놀래켜 주려고 일부러 숨기고 있었는데……. 맞다.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다.]“그러면 그것부터 배울 수 있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여신은 데일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강한 힘이 소용돌이치며 데일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데일은 눈을 감았다.
몸속에 흐르는 새로운 힘을 말없이 음미했다.
여신이 설명했다.
[새로운 기술이라는 말은 조금 틀린 표현 같구나. 원래 흑기사로서의 너에게 잠들어 있던 잠재력을 일깨워, 개방하는 것뿐이다. 눈을 떠 몸을 확인하거라.]눈을 감았던 데일은 다시 눈을 뜬 뒤, 몸을 살폈다.
여인이 물었다.
[변화가 느껴지느냐?]꼼꼼히 몸을 둘러보던 데일은 금방 변화를 알아차렸다.
이 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공간 속에서 유독 데일 주위가 더 어두웠다.
어둠에도 고저가 있는 것일까?
이성으로는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데일 주위의 어둠. 혹은 그림자가 더 짙은 건 단순히 착각이 아니었다.
여신이 설명했다.
[평소에 네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한기와 오싹함을 느꼈을 거란다. 그 기운을 실체화한 게 바로 그 어둠이지. 한번 머릿속으로 어둠을 흩뿌린다고 생각해 보아라.]데일은 그리했다.
자기 주위에 어둠을 흩뿌리는 상상을 했다.
어렵지 않았다.
지금 그가 어떤 기술을 익혔는지는 게임을 통해 이미 경험해보았으니까.
사아아아!
어둠이 데일의 의지에 반응했다.
어둠이 데일의 손에 모여들더니 다음 순간. 온 공간을 뒤덮는 안개가 되었다.
데일은 이 기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검은 안개.”
[그래. 그런 이름이란다.]검은 안개.
일정 범위에 어둠을 흩뿌려 공격하는 광역 기술.
단순히 시야를 가리기만 하는 기술은 아니다.
안개와 접촉한 이들은 공포와 한기를 느끼며, 정신력이 약한 이들은 아예 무너져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뿐이었다면 영 미묘한 기술이었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효과는 따로 있다.
‘접촉 대상의 생기를 흡수할 수 있지.’
물론. 살아있는 대상에게 생기를 흡수하려면, 데일의 수준이 지금보다 높아야 하며 기술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살아있지 않은 대상에게서는 생기를 흡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예를 들면 주위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면, 굳이 일일이 건틀릿을 박아 넣지 않아도 된다.
안개를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흡수할 수 있다.
‘전투 중에는 여유가 없을 때가 많으니까. 그럴 때 사용하면 좋겠군.’
여신이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드느냐?]“예.”
[마력을 잡아먹는 기술이니, 무한정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 거란다. 이번 기회에 마력에도 한 번 투자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그렇다면…….”
잠시 고민한 데일이 대답했다.
“근력에 3분의 2를. 나머지는 갑옷 강화에 투자하겠습니다.”
[마력에는 투자하지 않고?]“예.”
[……혹시 내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냐?]여신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어보자,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유용한 기술이긴 하나, 아직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으음. 아들의 뜻대로 하거라.]여신은 살짝 서운해했지만, 더 관여하지는 않았다.
밤의 여신이 데일을 한 번 더 부드럽게 쓰다듬자, 몸속에 새로운 힘이 차올랐다.
몸을 이루는 근육이 더 단단해졌고, 갑옷의 광택도 한층 짙어졌다.
데일은 바뀐 몸 상태를 확인했다.
[데일]등급: 3
직업: 흑기사
근력: 58
내구: 34
마력: 10
체력: ―
정신력: 10
[보유 기술 목록]생기 흡수
검은 안개
[특성]반인 반언데드
부정한 감각
밤의 여신의 축복
[칭호]악마 하수인 살해자
더 강해진 근력. 그리고 더욱 단단해진 몸과 갑옷.
동일 등급의 다른 직업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능력치.
눈앞의 수치는 데일의 지금까지의 싸움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그가 지금 걷는 길이 옳다는 것도.
이로써 이곳에 들른 목표는 달성했다. 하지만 데일은 질문할 게 있었다.
“물어볼 게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거라.]잠시 머뭇거린 데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같은 밤의 신도와 싸운 일이 있었습니다.”
데일은 빈민가에서 네크로맨서 처단한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 네크로맨서가 어떤 인간이었던지도.
듣던 여신은 씁쓸하게 말했다.
[하킴. 참 가엾은 아이지. 하킴은 성격이 비뚤어질 수밖에 없는 힘든 인생을 살아왔단다. 그게 그 아이가 행한 악업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만.]데일이 날카롭게 물었다.
“네크로맨서의 행동에 여신님의 뜻이 관여하지는 않았다는 겁니까?”
[오해가 조금 있는 듯하구나.]여신은 말했다.
[여신이 지상에 할 수 있는 일은 네 생각보다 적단다. 여러 제약에 묶여있으니 말이다. 많은 신도를 거느린 빛이라면 몰라도, 여신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힘을 내려주고, 목소리를 들려줄 뿐이란다. 아이들이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여신의 말을 따를지는 온전히 그 아이의 몫이란다.]여신은 이어서 설명했다.
사람은 무수한 변수와 가능성을 가졌으며, 그 속내는 깊고도 복잡해 저 우주와도 비견되니. 설령 신이라도 온전히 들여다보지 못한다고.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몫.’
조금은 무책임하게 들리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밤의 여신이 지닌 한계일 것이다.
여신은 이어 말했다.
[나의 신도들은 오랜 세월을 박해받아 왔단다. 지하로, 깊은 산으로, 황무지로 도망쳐야 했었지. 그곳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며 고난을 버텨야 했단다.]그리고 박해받는 신앙은 잔인하고 지독해지기 마련이다.
밤의 신도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고, 그런 절박함은 대를 이어가며 점점 끔찍한 무언가가 되었다.
데일이 마주쳤던 네크로맨서도 아마 그런 결과물 중 하나이리라.
[여신이 아이들을 지켜줘야 했는데……. 그와 관련해서 데일 네게 부탁이 하나 있다.]“부탁, 말씀입니까.”
여신이 부탁이라니. 드문 일이다.
[기도실을 나가면 에리얼 그 아이가 말을 걸 거란다. 네가 겪은 과거의 일 때문에 엘프를 경계하는 건 이해하나, 부디 대화라도 들어주지 않겠느냐.]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못 들어줄 부탁도 아니었다.
데일은 기도실을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물었다.
“다음에도 당신의 신도와 싸울 일이 생긴다면, 베어도 괜찮겠습니까?”
[그리 해야 한다면 그리하거라. 나는 언제나 아들의 판단을 믿는다.]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나 밤의 신도를 죽였다가 여신이 노하진 않을까 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데일과 여신은 어디까지나 필요한 걸 주고받는 관계에 불과하지만, 데일에게는 여신이 필요했다.
아직은.
데일은 기도실을 나섰다.
여신은 그런 데일에게 필요할 때만 찾지 말고 얼굴 보러 자주 오라 말한 뒤,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기도실 문을 여니 하티가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데일이 나오자 하티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를 무심하게 올려다봤다.
일은 다 봤냐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가자.”
데일은 복도를 지나쳐 에리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까와 달리 신전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신도들이 다 되돌아간 모양이다.
에리얼은 데일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오셨군요.”
“그래.”
“그러고보니꼭얘기하고싶은일이있는데혹시들어주…….”
에리얼은 데일이 평소처럼 쌩하니 사라질 줄 알았나 보다.
그녀는 데일이 떠나기 전에 용건을 전부 말하려는 듯. 말을 마구 쏟아내다가, 멈칫했다.
“엇.”
“왜 그러지?”
“아니, 곧바로 떠나버리실 줄 알았는데…….”
“천천히 얘기해도 된다.”
입가에 실린 에리얼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아. 왠지 데일 경이 저를 경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제 착각이었군요.”
사실 착각도 아니고, 여신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데일은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데일 경은 이미 가란드에게 들었겠죠? 조만간 있을 일을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마 용병으로서 빈민가 수색에 동참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거고요.”
“그래.”
신전의 사제장인 에리얼은 평의원 중 하나였다.
이 정도 정보를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얘기를 왜 꺼낸 이유는 뭘까.
데일이 시선으로 다음 말을 재촉하자, 에리얼은 입꼬리를 내리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저는 완전히 반대의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
“반대의 의뢰?”
데일이 묻자, 에리얼이 천천히 힘을 주어 말했다.
“빈민가 수색을 막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