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9)
수색
* * *
에스델은 교단의 본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여과된 빛이 에스델의 머리 위로 찬란하게 흩뿌려졌다.
그녀는 교단의 상징인 은 고리를 앞에 두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얼굴은 고심에 가득 차 있었다.
“고민이 있는 모양이구나 에스델.”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에스델은 뒤를 돌아보았다.
굳센 인상의 노파가 서 있었다.
“오르단 사제님.”
오르단.
교단의 고위 사제로, 성녀를 대신할 유망주로 불리는 에스델의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오르단은 늘 에스델에게 엄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에스델은 그런 엄격함 뒤에 자애와 사랑이 있음을 안다.
그녀는 에스델이 가장 믿고 따르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오르단이 속내를 물어보니, 에스델은 답할 수밖에 없었다.
“예. 마음이 혼란스러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혼란스러운 것이냐.”
머뭇거리던 에스델이 답했다.
“교단에 찾아왔던……. 흑기사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다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그가 왜?”
오르단의 눈에 궁금증이 어렸다.
“얼마 전에 그가 도적 길드를 소탕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싸움을 엿보았던 빈민가의 주민들이 말하더군요. 전의를 잃고 목숨을 구걸하는 이들도 모두 예외 없이 처단했다고. 그야말로 괴물 같은 모습이었다고.”
오르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델이 이어 말했다.
“그들은 분명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돕니다. 아뇨. 사실 압니다. 그저 제 치기 어린 이상이라는 것을. 어린아이의 투정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그 이교의 기사에게 실망한 것이냐?”
“실망…… 은 아닙니다.”
에스델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제가 그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그 기사는 어떤 인물이었느냐.”
“…….”
에스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데일은 그 존재만으로 에스델의 믿음과 신앙을 시험하는 이였다.
그간 에스델은 이교도하면 모두 사악하고 잔악무도한 이들이라 여겼다.
아니, 에스델뿐만 아니라 교단의 대부분은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데일은 아니었다.
그가 아이들에게 먹을 걸 나눠주는 걸 보았다.
그가 죽은 자들에게 보이는 예의를 보았고, 누구보다 앞장서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데일은 어딘가 뒤틀려있을지언정 분명…….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끔 존경심이 들 정도로…….”
다른 신앙인들에게는 선뜻 고백하기 힘든 말이다. 이교도를 그리 칭한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므로.
하지만 오르단에게라면 말할 수 있다.
“그 생각은 여전하느냐?”
“……네. 단지 제가 멋대로 기대한 모습과 데일 경이 일치하지 않으니, 멋대로 충격받은 것 같습니다. 선뜻 그의 신원을 보증한 게 잘못된 결정이었을까 후회도 되고, 그런 제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지고요.”
오르단은 잠시 눈을 감고 에스델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교단의 많은 이들은 네가 그 기사와 함께하는 걸 좋게 보지 않는단다. 흰 도화지 같은 네게 검은 물이 들까 걱정하는 거지.”
“…….”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단다. 온실 속에서 편하게 자란 화초보다, 억센 환경에서 자라난 잡초가 더 질기고 강인하다는 얘기를 알고 있느냐?”
에스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한때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다.
농사에 대한 지식 정도는 있었다.
오르단이 이어 말했다.
“신앙과 믿음도 마찬가지란다. 아무런 고뇌 없는 믿음은 작은 풍파에도 쉽게 무너지는 법이란다. 역설적이지만, 믿음을 강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의심이란다.”
오르다는 에스델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려주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려무나. 그 의심에 부딪히고 싸워 이겨냈을 때. 그때 비로소 네 믿음이 굳건히 설 것이란다.”
“사제님…….”
“그 흑기사가 네 믿음과 마음을 뒤흔든다면, 계속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러다 보면 신께서 네 마음을 밝히어 주시겠지.”
오르단이 미소 지었다. 입가에 패인 주름이 인자함을 자아냈다.
그런 오르단을 멍하니 쳐다보던 에스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머리가 환해지는 기분이에요.”
“젊은이에게 그럴듯한 조언을 건네는 건, 노인네들의 몇 안 되는 쓸모란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자. 이제 궁상은 그만 떨고 일어나려무나. 다른 형제자매들이 걱정 많이 하고 있단다.”
“아…….”
“마침 식사시간이니 함께 가자꾸나.”
그렇게 말한 오르단은 고개를 돌려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 따뜻한 뒷모습을 보며 에스델은 미소 지었다. 고민을 털어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오르단 사제님이야.’
하지만 에스델이 보지 못한 게 있었다.
고개를 돌린 오르단의 얼굴이 마치 조금 전의 인자한 사제와는 전혀 별개의 존재인 듯.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차갑고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에스델은 모를 것이다.
의심을 이겨낸다면 분명 믿음이 굳건해질 것이나, 언제나 승리할 수만은 없다는 걸.
오르단은 말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선배들이 의심을 이기지 못해, 잘못된 길에 들어섰는지를.
* * *
대규모 소집 공고.
갑작스러운 선언에 일행이 의아해하자, 가란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압니다. 갑작스러운 얘기죠. 하지만 설명에 앞서, 우선 의뢰에 대해 보고해주시겠습니까? 소집 공고와도 연관이 있으니까요.”
“알았소.”
데일이 우선 대략적인 내용을 보고했고, 마젤이 중간중간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몰살당한 마을. 늑대 무리.
목표의 이동 경로를 읽고 데일과 하켄이 거인의 영역을 지난 일. 마젤이 따로 떨어져 이동한 것.
그리고 여인이 지니고 있던 유물 지팡이까지.
보고가 끝날 때까지 경청한 가란드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미리 목표의 경로를 읽고 앞서나가 마을의 피해를 방지하다니. 그것도 거인의 영역을 지나는 위험까지 감수하고……. 중간에 조금 삐걱댄 부분도 있지만, 결국. 의뢰를 성공해냈으니 완벽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카달도 감탄했다.
“확실히 소문대로 깔끔한 일처리군. 그 명성 높은 용병왕도 이런 식으로 일했다 했는데……. 데일 경. 혹시 경비대는 관심 없나? 내 힘으로 좋은 자리에 꽂아줄 수 있는데.”
자기 눈앞에서 길드의 용병을 채가려는 카달의 모습에 가란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당당함이야말로 카달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데일이 탐이 났다는 뜻도 되지만.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제안은 고맙지만 괜찮소.”
“쩝. 고민하는 시늉이라는 해주지…….”
“그보다 보고가 끝났으니,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야 할 것 같소만.”
마젤이 중간에 끼어들어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걸 막았다.
카달도 아쉬운 기색을 지우고, 진지하게 말했다.
“너희들이 그 년을 쫓는 동안, 수로에 풀어놓은 악어는 대강 다 사냥했다.”
하켄이 물었다.
“아니, 대강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그게. 너무 대충 아닙니까?”
카달이 버럭 화를 냈다.
“그년이 악어를 몇 마리나 풀었는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가뜩이나 장마 때문에 물 불어나서 찾기도 힘들었는데. 작정하고 숨어 있는 놈이 한두 마리 있을 수도 있지. 그런 것까지 내가 설명해야 하나?”
“……죄송합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은 하켄이 깨갱했다.
쓴웃음을 지은 가란드가 말했다.
“다행히 이번 일은 여러분과 경비대가 활약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요근래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가란드는 최근 일어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 서류철을 뒤적이며 말했다.
“당장 데일 경이 이전에 도적 길드를 소탕할 때 만났던 흑마법사도라거나, 이번에 악어를 풀어놓은 여자라거나. 그 외에 크고 작은 위협 행위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그 범인이 잡혔지만, 놓친 경우도 좀 있고요.”
카달은 분개하며 외쳤다.
“이 도시는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직접 세우신 도시이며, 인류의 마지막 보루다! 이런 곳을 어떤 개새끼들이 무너트리려 하고 있어!”
“……악마의 소행이오?”
마젤의 물음에 가란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정확한 배후는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도시에 행해지는 위협 행위의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란드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대로면 도시가 위험합니다. 상위구역은 몰라도, 적어도 외곽구역은 위험하죠. 그래서 평의원 사이에서 많은 의견이 오고 갔는데, 대안으로 나온 게…….”
“도시의 검문을 강화하고, 빈민가를 대대적으로 뒤엎을 거다.”
카달이 그리 말하자 잠시 정적이 일었다.
일행은 카달의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가란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워낙 과격한 얘기니, 놀라시는 게 당연합니다. 빈민가를 뒤엎는다니……. 평의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카달은 탁상을 쾅 내리쳤다.
“과격해도 꼭 필요한 일이야! 개수작 부리는 놈들을 사로잡아 조사하니, 열이면 열 빈민가에 지내면서 일을 준비했다고! 지금도 그런 놈들이 잔뜩 숨어 있을 텐데, 그걸 그냥 내버려 두라고?”
그야 당연한 일이긴 했다.
빈민가는 성벽 안에 비해 치안도 나쁘고 감시도 느슨하다.
음험한 수작을 부리려는 범죄자들이 숨어 있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문제는 빈민가의 반응이다.
데일이 말했다.
“빈민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빈민가는 크다.
빈민가의 인구가 성안의 모든 인구와 맞먹을 정도다.
그리고 지금도 악마에게 멸망한 국가의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으므로, 앞으로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비록 경제적 상황은 성안 사람들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하나, 숫자는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법이다.
‘게다가 명분도 문제지.’
지금껏 평의회는 빈민가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데일이 빈민가에서 도적 길드 하나를 박살 낼 때, 경비대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게 그 증거다.
데일이 성안에서 그런 살육을 벌였다면, 상대가 도적들이라 해도 감옥 안에 처박혔을 거다.
그렇게 나 몰라라 하다가 이제 와서 도시가 위험하다고 빈민가를 뒤엎으려 한다?
안 그래도 반골 기질이 강한 빈민가 사람들이다.
만만치 않은 저항이 있을 거다.
가란드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평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만……. 일단 분위기는 강행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소집 공고를 내는 이유를 아시겠죠?”
“뒷골목을 뒤엎고 다닐 때 용병들 힘을 빌리겠다 이 말이군.”
“어디까지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입니다. 저희는 최대한 평화적으로 일을 치를 겁니다.”
만약의 사태라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게 예상되니, 비싼 돈을 주고 주고서라도 사람을 긁어모으려는 거다.
가란드도 자기가 얘기해 놓고 민망한지,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어쨌건. 세 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워낙 실력 있는 분들이니.”
“소집은 강제인가?”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평소보다 의뢰비가 넉넉히 지급되고, 다른 의뢰보다 실적이 크게 책정됩니다. 어때요. 흥미가 있으십니까?”
“오…….”
하켄은 관심을 보였다. 확실히,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끔찍한 악마 하수인이나 포악한 외눈 괴물. 유물 지팡이를 사용하는 미친 여자보다는 빈민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더 나았으니까.
그때, 듣고 있던 카달이 소리쳤다.
“당연히 해야지! 이건 고민할 거리도 못 되는 일이다!”
“카, 카달씨.”
“우리는 황제 폐하의 신민으로서 그분의 은혜를 입었다! 그 은혜를 갚을 기회가 왔는데, 거절해서는 아니되지!”
얘기를 듣던 데일은 시큰둥하게 생각했다.
‘딱히 황제한테 빚진 기억은 없는데.’
어쨌든. 충성심 강한 경비대장은 도시의 모든 주민이 황제의 은총을 받았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켄도 모기만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우와. 요즘 보기 드문 꼰대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마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젤?”
“나는 됐소. 이런 일은 내 전문이 아니오. 다른 사람 알아보시오.”
카달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하지만 마젤은 그 시선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데일과 하켄에게 인사했다.
“둘 다 이번에 고생했소.”
“아. 고생했어요.”
“수고했다.”
“다음에 또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소.”
그답지 않게 훗날을 기약하는 말을 뱉은 마젤은 미련 없이 집무실을 나섰다.
그 시원하면서도 단호한 태도에 익숙한 가란드는 쓴웃음을 지었고, 카달의 얼굴은 잘 익은 과일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가란드는 카달이 분노를 터트리기 전에 얼른 입을 열었다.
“뭐. 마젤은 어쩔 수 없죠. 데일 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의뢰를 맡으시겠어요?”
데일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