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8)
늑대
* * *
늪지 마을에는 적당한 짐 마차가 없었다.
돌아갈 때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걸어서 가야 했다.
비가 그치자마자 쨍한 햇빛이 떠올랐다. 습하고 더운 날씨는 행군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하이고 벌써 이렇게 더우면 올여름은 어떡하나.”
하켄은 얼굴에 대고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이런 더위에도 그는 투구나 갑옷을 절대 벗지 않았다.
전장에서 들인 습관으로, 조금 더운 게 화살에 맞아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논리였다.
여러모로 불쾌함이 진해지는 날씨지만, 마젤은 집중을 잃지 않았다.
그는 주의 깊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켄이 물었다.
“왜 그래요 마젤.”
“이 근방에는 위험한 짐승이 많더군. 올 때도 세 번이나 습격당했소. 덕분에 늦어버렸지.”
“아. 원래 이 주위가 좀 위험하긴 하죠.”
다만, 마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동하는 내내 일행이 습격당하는 일은 없었다.
무장한 사람 둘에 흉흉한 기운을 흩뿌리는 기사까지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음?”
앞서가던 마젤이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짐승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고, 털이나 피 따위가 흩뿌려져 있었다.
“늑대들끼리 싸운 것 같소.”
“늑대 무리가 서로 영역 다툼하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죠.”
“한데 이상하오. 흔적을 봤을 때는 무리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커다란 늑대 한 마리가 다른 늑대 무리를 상대로 싸운 것 같은…….”
마젤은 유달리 크게 찍힌 발자국을 살폈다. 묘하게 눈에 익었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는 이 발자국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냈다.
‘마법사가 늑대 무리를 데리고 다닐 때, 유달리 멀리에서 따라가던 놈이 하나 있었지.’
데일에게 듣기로, 여인이 부리던 늑대들은 모두 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늑대는 뭘까?
의문이 들었지만 마젤은 빠르게 상념을 털어내었다.
거대한 덩치의 늑대는 분명 위협적이지만, 지금은 크게 경계할 필요 없다.
어지간한 짐승은 데일이 단칼에 베어버릴 테니 말이다.
그렇게 이동하다 보니 일행은 들판에서 밤을 맞이했다.
하켄은 야영 준비를 하며 마젤에게 말했다.
“마젤. 저녁에는 고기 좀 먹을 수 있을까요? 토끼 같은 거라도 구워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맡겨두시오.”
사냥꾼이 용병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데에는 이런 장점 때문도 있었다.
건량이나 육포 대신, 신선한 고기를 사냥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마젤은 군말 없이 일어나, 활과 화살집을 챙겼다.
그의 실력이라면 오래지 않아 토끼 한두 마리는 사냥해 올 것이다.
하지만 마젤은 열 걸음도 걷지 않아 자리에 멈췄다.
“음.”
“왜 그래요.”
“이것 좀 보시오.”
불을 피우려던 하켄과 데일이 마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마젤이 가리킨 곳에는 웬 멧돼지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녀석이었다.
“아니 대체 여기에 웬 멧돼지가…….”
마젤은 죽은 멧돼지의 목덜미를 가리켰다.
송곳니에 물어뜯긴 상처가 나 있었다.
“늑대 짓이오. 숨통을 끊고 나서 이곳에 옮겨 놓았군. 마치 우리 보라고 하듯이 말이오.”
셋은 시선을 교환했다. 이쯤 되면 뭐가 이상하긴 했다.
데일은 감각을 집중해 주위를 훑었다. 키 낮은 수풀 속에서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어찌나 은밀하게 숨어 있었는지, 집중하지 못했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라.”
그러자 수풀 속에서 무언가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커다란 덩치의 회색 늑대.
하켄은 늑대를 알아보았다.
“아. 저놈 저거, 우리가 가죽 벗길 때 노려보던……. 허. 여기까지 쫓아왔네. 복수하려고 찾아온 걸까요?”
마젤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소. 우리가 지금껏 오는 동안 짐승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잖소. 그거, 아무래도 저 늑대가 쫓아내서 그런 것 같소.”
마치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늑대는 천천히 걸어 나와 멧돼지 사체를 코로 툭 건드렸다.
그러고는 이쪽을 쳐다보며 크릉, 울었다.
“뭐야 저거. 설마 선물이라고 주는 겁니까?”
“동료를 세뇌한 원수에게 대신 복수해줬으니, 그 은혜를 갚는 것 아니겠소?”
“아니, 늑대가 은혜를 갚는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마젤도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오. 어쨌거나 꽤나 영리한 놈인 것 같소. 인내심도 뛰어나고, 상대를 추적하거나 기척을 숨기는 법도 잘 아는 것 같소. 타고난 사냥꾼이라는 말이오.”
늑대는 마젤이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할 거리에서 절묘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여느 평범한 늑대와는 다르다는 뜻이었다.
데일은 앞으로 다가갔다.
멧돼지에 손을 올리고, 늑대를 향해 물었다.
“나한테 주는 건가?”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알아듣는 건지, 적당히 눈치로 대답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뜻이 전해진다는 건 알았다.
“고맙다. 은혜는 더 갚을 필요 없으니 그만 가봐라.”
늑대는 뒤로 두 걸음 이동한 뒤, 멈춰 서서는 다시 이쪽을 쳐다보았다.
“가라니까?”
그러자 늑대는 아예 배를 깔고 앉아서는, 고개를 훽 돌리며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다.
하켄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가기 싫은가 본데요. 우리랑 함께 가고 싶은 거 아닐까요? 정확히 말하면 데일 경이랑요.”
“나보고 늑대를 키우라고?”
“뭐, 안 될 거 있나요?”
마젤도 말을 얹었다.
“손해 볼 건 없을 거요. 보기 드물게 영리한 녀석이니. 나중에 쓸모없어지면 죽여서 가죽과 고기를 팔면 되는 것 아니오?”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이 약한 세상의 주민다운 발언이었다.
척박한 세상에서 가축이라는 건 결국, 쓸모없으면 처분하는 재산일 뿐이니.
데일은 늑대를 무심히 쳐다보았다. 늑대도 그런 데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받아 달라 온 것치고는 딱히 간절해 보이지도, 애교를 떨지도 않았다.
그 고고함이 마음에 들었다.
데일은 잠시 고민하다, 마젤에게 물었다.
“늑대가 길 안내도 할 수 있을 것 같나?”
마젤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는 데일이 지독한 길치라는 걸 몰랐다.
“……뭐. 영리한 녀석이니 가능하지 않겠소?”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같이 가자.”
회색 늑대는 딱히 기뻐하는 기색도 없이, 크릉하고 짖을 뿐이었다.
하켄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런 커다란 늑대를 데리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기겁하겠는데요?”
“어차피 나 혼자 다녀도 기겁한다.”
“아…….”
어색한 표정을 지은 하켄이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두신 이름은 있습니까? 계속 늑대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이름이라……. 하티. 정도면 괜찮겠지.”
“음. 왠지 제 이름이랑 비슷해서 기분이 묘한데요. 너는 괜찮냐?”
하켄은 괜히 하티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하지만 하티는 꼬리를 한차례 휘저을 뿐, 아무 대답도 안 했다.
맘대로 부르라는 표시 같았다.
“거 도도한 녀석일세.”
헛웃음을 지은 하켄은 시선을 돌려 죽은 멧돼지를 보았다.
덩치가 워낙 큰 동물이다.
요리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됐고. 빨리 밥이나 먹읍시다. 손질하는 데만도 한세월이겠네.”
고개를 끄덕인 마젤은 칼을 꺼내 멧돼지를 능숙하게 해체했다.
그리고 다리 한 짝을 잘라내 하티에게 던져주었다.
하지만 하티는 멀뚱히 고기를 쳐다보다, 데일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먹어도 된다.”
그제야 하티는 다리를 오도독 씹어먹기 시작했다.
그 충성심 강한 모습에 하켄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보다 낫구만.”
* * *
며칠간 계속 이동한 끝에 일행은 이레네에 다다랐다.
빈민가의 아이들이 이쪽을 기웃거렸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짐마차를 이용하지 않아 식량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했다.
‘줄 만한 게 없군.’
하지만 정작 다가오는 아이들도 없었다.
몇몇 아이들이 기웃거렸지만, 그럴 때마다 부모로 보이는 어른이 와 꾸짖었다.
“얘. 오늘은 나가지 말라고 엄마가 얘기했잖니!”
빈민가의 주민들이 순식간에 뒷골목으로 사라졌다.
지루한 듯,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하켄이 말했다.
“뭔가 평소랑 분위기가 다른 것 같은데. 저만 그렇게 느끼나요?”
거리가 휑하다.
길가에 선 허름한 집의 창문에는 경계하는 기색의 눈빛들이 이쪽을 훑고 있었다.
데일과 눈이 마주치자 사람들은 얼른 창문에서 사라졌다.
“그래. 뭔가 이상한 것 같긴 하군.”
묘한 기류가 흐른다고 해야 할까.
무슨 일이 벌어지긴 한 모양이다.
일행은 서둘러 도시의 남쪽 성문을 통과해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빈민가와 달리, 성벽 안은 이전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넘치는 활기.
하지만 그 분주함도 일행이 다가서자 뚝 멈췄다.
사람들은 데일을 보며 한번 놀랐고, 그 뒤에 있는 커다란 늑대를 보며 두 번 놀랐다.
“세, 세상에. 이제 저 이교도가 괴수를 데리고 다니잖아.”
“얼마 전에 악어를 풀었다는 것도 설마…….”
수군거리는 행인들을 향해 하티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겁을 집어먹은 행인들이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데일은 하티의 털을 쓰다듬어주었다.
“잘했다.”
하티는 꼬리를 한번 흔들어 데일의 허리를 툭 쳤다.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행인들이 물러나 준 덕에 일행은 용병 길드로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길드 사무소에 도착하니 직원에게서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직원이 위층으로 올라가 달라고 말했다.
“나부터 가면 되나?”
“아뇨. 마젤 님이랑 하켄 님이랑 다 같이 올라와 달라고, 지부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한 일이다.
의뢰 보고는 각자 따로 하는 게 원칙이다.
용병들이 혹시라도 무언갈 숨기거나 실적을 부풀리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가란드는 셋이 같이 올라와 달라고 부탁했다.
“알았다.”
대답한 데일이 일행과 함께 올라가려 했다. 그때, 직원이 그런 데일을 붙잡았다.
“저, 저기. 혹시 그 늑대도 데려갈 건가요?”
“역시 안 되나?”
“아무리 그래도 좀…….”
“그러면 잠시 네가 맡아주겠나?”
데일의 물어보자, 하티가 직원을 향해 흉흉히 눈을 빛냈다.
당황한 직원이 되물었다.
“사, 사납게 보여도 물지는 않죠?”
“글쎄. 일단 사람 맛을 아는 놈이긴 하다.”
거짓말은 아니다.
유물 지팡이를 사용하던 여인의 팔을 통째로 씹어 먹었으니까.
직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데일이 다시 한번 물었다.
“맡아주겠나?”
“아, 아, 가, 같이 올라가셔도 괜찮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계단을 올랐다. 그 뒤를 하티가 따랐고, 하켄도 뒤늦게 다가와 말했다.
“왜 직원들 겁을 주고 그러십니까.”
“때로는 백 마디 설득보다 적당한 공포가 나을 때도 있다.”
“으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겁주는 걸 즐기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짧게 대꾸한 데일은 가란드의 집무실 문 앞에서 멈췄다. 손을 뻗어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일행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가란드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굵은 허리와 억센 팔을 가진 드워프. 외곽구역의 경비대장인 카달이 앉아 있었다.
가란드가 반가운 얼굴로 일행을 맞이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데일 경, 마젤, 하켄, 그리고……. 늑대?”
가란드를 본 하티는 몸을 낮게 웅크리고,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비교적 얌전히 지내던 하티가 이런 반응을 보인 건 처음이다.
마젤과 하켄은 하티가 왜 이러는지 의아해했고, 가란드는 당황했다.
“음. 짧은 사이에 사나운 동료가 생겼군요. 혹시 달려들지는 않겠죠?”
“걱정마라.”
데일은 하티를 툭툭 두드려 뒤로 물렸다. 하티는 여전히 가란드를 경계했지만, 데일의 명령에 다시 얌전해졌다.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낸 가란드가 말했다.
“일단 의뢰 보고부터 들어야겠죠.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잠자코 있던 마젤이 되물었다.
“그전에 왜 우리를 다 같이 불렀는지 묻고 싶소. 경비대장은 왜 있는지 모르겠고.”
“아. 그게 말이죠.”
가란드는 카달과 한차례 시선을 교환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용병 길드에서 조만간 대규모 소집 공고를 낼 예정입니다.”
마젤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대규모 소집 공고? 대체 무슨…….”
용병을 대규모로 긁어모으겠다는 말.
당연히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