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7)
늑대
* * *
지팡이가 부러지자, 여인과 그녀가 부리던 늑대들이 일제히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유물 지팡이의 힘을 받아 강력한 능력을 발휘했지만, 그 지팡이가 부러지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홀로 늑대와 사투를 벌이던 하켄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는 처참한 꼴로 죽어 있는 여인을 보며 물었다.
“죽은 겁니까?”
“그래.”
“어후.”
하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로소 그의 고향 마을이 위협에서 벗어난 것이다.
데일은 널브러져 있는 늑대들을 살폈다.
숫자도 많고, 덩치도 큰 늑대들이다. 그 사이에서 하켄이 용케 혼자 버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이 좀 늘었나?”
“하하. 겨우 짐승 따위한테 질 정도로 약하지는 않습니다.”
겨우 짐승이라고 부를만한 놈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켄은 방패에 몸을 기대며, 씨익 웃을 뿐이었다.
‘지킬 게 있으면 강하다 이건가.’
하켄의 성장은 기꺼운 일이다.
앞으로도 하켄을 부려먹을 일이 많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럼 뒤처리를 하자. 가죽 벗기는 법은 아나?”
“그럭저럭합니다.”
하켄은 품에서 뾰족한 단검을 꺼내 늑대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단칼에 깔끔하게 죽은 놈들이 많아, 가죽 상태가 괜찮았다.
그사이, 데일은 죽은 여인에게 다가가 그 품을 뒤졌다.
큰 수확은 없었다.
동전 두어 개. 단검 몇 자루. 냄새나는 육포랑 썩은 치즈.
‘원래는 전사나 도적이었군.’
나름 실력이 있었을 것이다. 몸에 밴 단련의 흔적이나 근육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하기에 유물 지팡이도 능숙하게 활용했던 것이다.
‘혹시 군인이었나?’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여인의 신분을 증명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생기를 흡수하면서 그 기억을 엿보려고도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기억은 마치 노이즈 낀 영상처럼 불분명해,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저런 지팡이에 정신이 오염되었으니, 기억이 성할 리도 없다.
결국, 남은 의문은 하나였다.
‘이 지팡이를 어떻게 얻은 거지?’
활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물 지팡이다. 탐낼만한 이들도 많고, 값어치도 상당할 터.
이런 누군지도 모를 여인이 들고 있기에는 과분한 물건이었다.
물론, 여인이 운 좋게 유적을 발견해 얻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공교로워.’
전장에서 돌아오는 군인들. 악마 하수인의 출현. 빈민가에 찾아온 전쟁 마법사와 쇠뇌수들. 도시에 혼란을 가져오기 위해 암약하는 골칫덩이들.
그런 와중에 이 여인이 ‘우연히’ 강력한 지팡이를 얻게 되어, 지하 수로에 악어 떼를 풀어놓을 생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일을 사주한 배후가 있을 터.
‘누군지는 몰라도 골치 아픈 짓을 하는군.’
아직 상대는 가볍게 찔러본다는 느낌이 강했다.
적당히 주먹을 몇 번 날리며, 이쪽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엿보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제대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쪽이 만만하다는 계산이 서게 된다면, 다음엔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르니.
물론, 대처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건 데일의 일이 아니다.
그건 도시의 통치자들이 할 일.
데일이 지금 해야 하는 건, 강해지는 것뿐이다.
생각을 마친 데일은 하켄을 돕기 위해 다가갔다. 하켄은 요령 있게 늑대 가죽을 벗기고 있었다.
“돕겠다.”
“괜찮습니다. 제가 다 할게요. 그나저나……. 시선이 영 부담스럽네요.”
하켄이 가리킨 곳에는 늑대가 한 마리 서 있었다. 여인의 팔을 물어뜯은 늑대.
목덜미에 상처가 나 있는 늑대는 이쪽을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 가족들 가죽이 벗겨지는 게 슬픈가 봐요.”
“처리하겠다.”
“됐어요. 가족들 잃어서 가뜩이나 서글플 텐데.”
하켄답지 않은 말이었다.
평상시였다면 가죽 하나 추가라고 신나서 사냥했을 텐데.
어쩌면 동료를 모두 잃고 진짜 ‘고독한 늑대’가 되어버린 저 생물에게 연민을 느끼는 걸 수도.
아니면 똑같이 친우를 잃었던 자기 처지와 겹쳐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켄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야.”
데일은 뽑았던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 뒤, 둘은 가죽 해체에 전념했다. 늑대는 저 멀리서 둘을 애처롭게 쳐다볼 뿐,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적의가 없었기에 데일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작업을 모두 마친 둘은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은 연회 준비가 모두 끝나 있었다. 사람들은 하켄과 데일을 보며 말했다.
“하켄! 연회의 주역이 사라지면 어떡하니! 네가 없어서 시작을 못 했잖아……. 근데. 너 괜찮아?”
하켄의 꼴이 엉망이라 한 얘기다.
하켄은 호탕하게 웃어 보인 뒤, 마리에게 가죽을 내밀었다.
“갓 벗겨낸 늑대 가죽이야! 잘 무두질해서 팔아봐!”
“어머. 선물이니?”
“당연히 돈은 줘야지.”
“그럼 그렇지…….”
마리는 곧바로 가죽값을 지불했다. 하켄은 은화를 받아 데일과 나누었다.
“역시, 데일 경이랑 같이 다니면 주머니 가벼울 일은 없다니까요.”
그렇게 말한 하켄은 잠시 머뭇거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한참을 주저하던 하켄이 다시 입을 연 그 순간. 마을 주민들이 하켄을 둘러쌌다.
“뭐해. 빨리 와.”
“술 먹어야지!”
주민들은 하켄을 억지로 붙잡고 술을 권했다. 하켄은 맥주가 든 통을 그대로 들어 입에 부어 넣었다.
그러자 주민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켄이 속에 들어간 맥주를 곧바로 게워냈을 때, 환호성은 야유가 되었다.
어쨌거나 하켄은 행복해 보였다.
이제야 본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되돌아왔다 해야 할까.
데일은 구석진 자리에서 맥주잔을 드는 시늉만 했다. 몇몇 주민들이 다가와 함께 즐기자 했지만, 데일은 거절했다.
주민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마음속 두려움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아무리 마을을 구했다 하나 이교도 기사는 공포의 대상이다.
굳이 저 안으로 들어가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데일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이니까.
연회는 계속돼 밤이 되었다.
어찌나 술을 많이 퍼마셨는지, 다들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마리의 아들이 얼굴이 새빨개진 하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툭 말했다.
“아빠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하켄은 술이 확 깼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황했다. 아이가 말했다.
“삼촌. 다음에는 아빠도 데려와 줘요.”
하켄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삼촌이 꼭 데려올게.”
“약속이에요?”
“그때까지 엄마 말 잘 듣고 있어라.”
그렇게 말한 하켄은 아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린 뒤, 맥주를 꿀꺽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식탁에 머리를 처박았다.
취한 건지. 취한 척하는 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와 다른 주민들은 그런 하켄을 옮겨 어딘가로 사라졌다.
“…….”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일은 잔을 내려놓았다.
바깥에서 마을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누가 오는군.’
은밀한 발걸음이다.
데일은 밖으로 나가 누가 오는지를 확인했다.
키가 유달리 큰 차가운 눈의 사냥꾼. 마젤이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카젤도 데일을 발견했다. 그 차가운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데일 경?”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목소리.
데일이 말했다.
“한발 늦었군.”
“이게 무슨……. 설마 진짜로 거인의 영역을 지나치는 데 성공한 것이오?”
“거기에다 마법사와의 싸움도 이미 끝마쳤다. 뭐, 진짜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마젤은 왁자지껄한 마을 분위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끄러움이야말로 데일과 하켄이 여인과 싸워 이겼다는 증거다.
졌다면 이 활기 넘치는 마을에도 싸늘한 정적만이 흘렀을 테니.
마젤을 이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두어 차례 얼굴을 쓸어내렸다.
“거인의 영역을……. 무모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자신이 있었던 것일 줄이야.”
한숨을 내쉰 마젤이 말했다.
“혼자서 마법사를 사냥하니 마니 으스댔는데, 꼴이 우습게 되었군. 가란드에게 내 몫의 의뢰금을 받으면 전부 주겠소.”
데일은 거절했다.
“그럴 필요 없다. 너는 어디까지나 원칙을 지켰을 뿐이다. 멋대로 행동한 건 우리 쪽이지.”
마젤은 고개를 저었다.
“내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했소. 세상에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으니 절대 단정 짓지 말라고. 하지만 난 둘이 거인의 영역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 확신하고, 계획에서 완전히 배제해버렸소. 그리고 보다시피 늦장을 부리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마젤은 얼굴에 새겨진 커다란 흉터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쓰라린 상처가 있어야 교훈이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오. 그러니 이번 의뢰금은 모두 경과 하켄에게 주겠소.”
상처가 있어야 교훈이 남는다라.
마젤 나름의 원칙인 듯했다.
솔직히 말해 데일은 마젤이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그렇다면야.’
굳이 반복해서 거절할 필요는 없다. 돈을 받고 헤벌쭉해질 하켄의 얼굴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데일은 마을 쪽을 가리켰다.
“들어와라. 연회가 한창이니,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실 수 있을 거다.”
“술은 됐소. 비를 피할 빈집만 있으면 그걸로 족하오.”
마젤은 터벅터벅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날 밤. 늪지 마을에는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 *
전날 그렇게 술을 퍼마셨건만, 하켄은 해가 뜨자마자 일어났다.
전선에서 복무한 경험이 만들어낸 습관이었다.
하켄은 부스스한 눈으로 곱슬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어라? 마젤은 언제 왔어요?”
“어젯밤에 찾아왔다.”
하켄은 능글맞게 웃었다.
“하하. 그러면 우리 둘이서 무시무시한 마법사를 쓰러트린 이야기는 아직 못 들었겠네요? 이거, 마젤씨 몫까지 우리가 받아야 하는 거 몰라.”
하켄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그리 말했다. 마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인간에게 자기 의뢰금을 준다고 말한 걸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하켄은 괜히 깨갱해서 덧붙였다.
“노, 농담이었어요.”
일행이 떠날 채비를 하자 마리가 다가왔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켄에게 말했다.
“가는 거야?”
“으응.”
“몸조심해. 밥 꼭 챙겨 먹고 다니고. 빨래도 자주 하고. 어서 결혼할 사람도 구해야지.”
“알았어.”
“그리고 지금 보내는 돈이 너무 많다고……. 그이에게 전해줘. 우린 이것보다 적은 돈으로도 잘 살 수 있어. 그러니 우리 때문에 너무 무리하지 말고, 덜 벌어도 좋으니까 안전만 신경 써. 알았지?”
“으응. 퀼에게 그렇게 말해놓을게.”
머쓱한 얼굴로 답한 하켄이 횡설수설 말했다.
“아, 어젯밤에 너무 많이 마셨나. 출발하기 전에 물 좀 빼러 가야겠네.”
그러고는 후다닥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걱정스레 쳐다보던 마리가 데일에게 말했다.
“기사님.”
“……?”
“하켄 좀 잘 부탁해요. 생각이 좀 짧고, 방정맞은 구석이 있어도 여리고 좋은 사람이에요. 친구가 죽은 것도 숨기고, 혼자서 그 가족들을 책임질 정도로요.”
잠시 멈칫한 데일이 물었다.
“알고 있었나?”
마리가 슬프게 미소 지었다.
“함께한 시간이 얼마인데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마을에 안 올 때, 이미 얼추 짐작하고 있었어요. 이번에 얼굴 보고 확신하게 되었지만요.”
하켄은 퀼의 몫까지 고향에 돈을 보내고 있었던 건가.
‘요즘 돈이 부족하다고 징징대더니, 그럴만했군.’
마리는 품에서 묵직한 자루를 꺼냈다. 그러고는 자루를 열어 그 안에 반짝이는 은화를 보여주었다.
“전부 하켄이 보내준 거예요.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뒀어요.”
“많군.”
“예. 언젠가 하켄이 용병 일을 그만둔다면. 그때 하켄이 새 출발 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요. 그러니……. 부탁드려요. 부디 하켄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기사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마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데일이 답했다.
“노력은 해보겠다.”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퉁명스러운 대답으로도 만족하는 모양이다.
마리는 자루에서 돈을 꺼내 건네려 했지만 데일은 거절했다.
의뢰비란 의뢰를 성공해야 받는 거지, 미리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사이 하켄이 돌아왔다.
“엉? 둘이 뭔 얘기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출발하죠! 갈 길이 먼데.”
짐을 추스른 하켄은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데일과 마젤도 그 뒤를 따랐다. 한참을 걷던 데일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마리와 그 자식들이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로를 위해 서로를 속이는 관계라…….’
피는 안 섞였지만, 분명 이들은 가족이었다.
데일은 그런 하켄이 부러웠다.
‘돌아올 장소.’
하켄의 모험이 끝나는 날, 그는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데일의 모험이 끝나는 날, 과연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때. 앞서가던 하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 결심했습니다!”
“뭘.”
“이번에 도와만 주신다면 제가 하인이라도 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 평생 데일 경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그게 설령 불구덩이 속이라도!”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 마라.”
당장 조금 전에 마리에게 부탁받았는데, 불구덩이에 뛰어들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딱딱한 대꾸에 바보같이 웃던 하켄이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라. 어느새 비가 그쳤네.”
우중충한 구름 사이로 한줄기 햇빛이 비집고 나와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장마가 끝나고, 계절이 바뀐다.
여름이 다가온다.
하지만 바뀌는 건 계절 만이 아닐 것이다.
“…….”
점점 밝아오는 하늘과 참나무에 앉아 한가롭게 깃털을 고르는 까마귀들을 차례로 바라본 데일은 이내 고개를 내렸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돌아가 이번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일행은 가도를 따라 힘껏 걸었다.
* * *
용병 길드.
가란드의 집무실에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경비대장 카달이었다.
카달은 다짜고짜 서류를 하나 건넸다.
“읽어보게.”
“하하. 뭐길래 그리 급하십니까.”
가란드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류를 훑었다.
이내 그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진심이십니까?”
“이대로 가만히만 있으면 안 되지 않나.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속으로 신음을 삼킨 가란드가 중얼거렸다.
“한동안 도시가 또 시끄럽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