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78)
되돌아오다
* * *
데일은 망토를 유심히 살폈다.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기 힘들 만큼 미약하지만, 마력의 흔적이 베여 있었다.
‘유물? 아니면 마도구?’
어느 쪽이든 단순히 질 좋은 망토는 아니었다. 비밀이 숨겨져 있다.
데일이 리델에게 물었다.
“이 망토. 선조께서 직접 만든 것이오?”
“예? 아, 그건 아닙니다.”
리델은 고개를 저었다.
“듣기로는 집 나간 선조께서 용병일을 하다 유적에서 발견했다는 말도 있고…… 그냥 술집에서 주사위 도박으로 따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뭐, 워낙 오래된 물건인 만큼 정확히는 모르겠군요.”
“으음, 알겠소.”
“왜 그러십니까?”
데일은 솔직하게 말했다.
“이 물건에는 어떤 힘이 서려 있소. 어쩌면 이 망토, 생각보다 더 값진 물건일 수도 있소.”
지금이라도 리델이 망토의 가치를 깨달았으면 해서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리델은 도리어 기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리델은 욕심 없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부디 기사님께서 잘 사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델은 망토를 돌려받을 생각 같은 건 조금도 없는 듯했다.
데일은 다시 한번 망토를 만지작거렸다.
‘힘이 서려 있다라.’
이 망토에 어떤 비밀이 잠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비싼 돈을 들여 전문가에게 감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지.’
게다가 꼭 망토의 힘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리델이 선물해 준 망토는 이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그렇기에 데일은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잘 사용하겠소.”
“아…… 고, 고개를 드세요.”
쩔쩔매는 여인과 리델에게 감사를 표한 데일은 말했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소.”
“네. 기사님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대들도 조심히 지내시오.”
부드럽게 덕담을 나눠 한 데일은 집을 나섰다.
그런 데일에게 리델과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하지만 조금 후.
데일은 리델의 집으로 돌아왔다.
어리둥절해하는 리델에게 눈을 슬쩍 피하며 말했다.
“이미 작별 인사까지 해 놓고 이런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영주성까지 길 안내 좀 해주겠소?”
“?”
데일과 리델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 영주성까지 함께 걸어가야 했다.
* * *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카엘름에서 인력과 물자를 보충한 상단은 4군단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레베카와 데일과의 계약은 그렇게 끝이 났다.
레베카는 데일을 여러 번 붙잡으려 했지만, 데일은 완고히 거절했다.
결국, 레베카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상단이 출발하는 당일.
레베카는 어딘가 수심에 잠긴 얼굴로 상단 일행을 둘러보고 있었다.
호위 병력은 이전보다 줄었다.
이제부터는 4군단의 영향력 아래 있는 지역이라 도적이나 몬스터도 적다는 게 레베카의 설명이었다.
그런 레베카에게 데일이 질문을 던졌다.
“위험하지 않겠소?”
“뭐가 말이죠?”
“탈영병들을 봐서 알지 않소. 전선의 상황이 생각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그런 곳엘 굳이 왜 직접 가려는지 모르겠군.”
레베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선에 직접 들러 분위기를 살피고, 장군들의 동향을 살피는 것도 상인 길드장의 역할이에요. 폐하께서 직접 명하신 일이죠.”
“다른 사람을 시킬 수는 없소?”
“그러면 경쟁자들이 제 자리를 치고 들어오겠죠?”
잠시 고민하던 데일이 되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그 자리를 지킬 이유가 있소? 이미 돈은 충분히 벌지 않았소.”
“이름을 댈 부모도 없는 고아 출신으로 일어나 평의원까지 된 여자. 그게 저예요.”
그렇게 말한 레베카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이 말이다.
데일도 더 말하지 않았다.
레베카와 함께 멀어져가는 상단을 보았다.
문득, 레베카가 일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외곽 구역의 상인 길드장은 유독 자주 바뀐다고. 목이 날아가는 일이 많다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단어가 있다.
‘판 위의 장기말.’
외곽구역의 평의원이라는 자들도 결국은 장기말에 불과한 것일까.
그리고 그 장기 말을 움직이는 건 상위구역에 있는 황제와 고위 귀족들일 것이다.
‘악마. 전선의 장군들. 영웅들. 그리고 황제.’
데일은 머릿속에서 퍼즐을 맞춰보려 했다. 하지만 아직 퍼즐의 빠진 조각이 너무 많다.
데일은 상념을 털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마침 하켄이 마차를 몰고 오고 있었다. 무려 카엘름 백작이 직접 내준 마차였다.
데일은 마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툭 말했다.
“뭐지 이건? 이런 걸 타라는 건가?”
“……저도 창피하니까 말하지 마세요.”
백작이 내준 마차는 참으로 화려했다. 화려해도 너무 화려했다.
마치 귀족 영애나 탈법한 그런 마차였는데, 밝은 색상의 마차를 새하얀 백마 두 마리 끌고 있으니, 더욱 요란스러워 보였다.
하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일단 엄청 비싼 물건은 맞습니다. 마차 자체도 엄청나게 튼튼하고요. 화살이 날아와도 거뜬히 막아낼걸요?”
“확실히 튼튼해 보이긴 하는군.”
“그리고 다행히 저희한테는 사제 양반이 있지 않습니까.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귀족 영애가 탄 마차겠거니, 하지 않겠습니까?”
부끄러운지 빨개진 얼굴을 파묻고 있던 에스델이 휙 고개를 들며 말했다.
“하켄. 이상한 얘기하지 마세요.”
어쨌건. 하자도 없는 마차를 외양 때문에 마다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셋은 마차를 타고 성 밖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이른 시각이다.
갓 해가 뜬 카엘름은 처음 보았던 것처럼 옅은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을씨년스러움은 이제 없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하나둘 걸어 나왔다.
시민들은 마차에 탄 에스델을 보고 미소를 짓다, 데일을 보고 굳었다.
하지만 이내 데일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데일은 보는 이들이 전부 그랬다.
“반응이 이전과는 다르군.”
“이제 다들 마음의 여유도 찾으니, 누가 자기들을 도와줬는지 깨달은 거죠.”
“네가 억지로 시킨 건 아니겠지?”
“……대체 저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데일은 카엘름의 주민들에게 슬쩍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카엘름 성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뒤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 * *
두 마리 백마가 이끄는 마차는 빠르게 달렸다.
마차는 고가품이라 그런지 거친 길 위를 마구 달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탓에 하켄의 질주 본능이 자극받은 모양이다.
하켄은 마차의 속도를 마음껏 올렸다.
“하하하! 바람이 기분 좋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데일 경?”
이제 여름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가을이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었다.
하켄은 아직 여름의 습기가 남아 있는 바람을 한껏 만끽했다. 곱슬머리가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렸다.
반면, 이런 과격한 질주에 에스델은 죽을 맛이었다.
“제, 제발 하켄. 적당히 하세…… 우읍.”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접어든 산길은 몹시 울퉁불퉁했다.
그런 곳을 빠르게 달렸으니, 아무리 고가품의 마차라도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안색이 파리해진 에스델은 연신 헛구역질했다.
하지만 하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하하하! 사제 양반! 그냥 속 시원하게 게워내! 언제 또 이런 속도감을 즐겨보겠어?”
“우읍. 데, 데일 경.”
에스델이 데일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데일은 하켄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억!”
“속도 줄여.”
“옙.”
하켄은 두말하지 않고 속도를 늦췄다. 에스델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이시여.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하하. 그거 영광이구만. 내 방패를 뚫으려면 어지간한 무기로는 안 될걸?”
농담을 던지는 하켄에게 에스델이 살벌한 눈빛을 던졌다. 하켄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에스델이 중얼거렸다.
“이번 기회에 공격 기적을 배워야겠어요.”
데일은 그걸 배워 어디다 쓸지는 묻지 않았다.
대신, 하켄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바람을 쐬면서 되도록 먼 곳을 바라봐라. 그러면 멀미가 덜할 거다.”
“……감사합니다.”
마차의 문을 열고 나온 에스델은 하켄의 옆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비켜준 데일은 마차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다시 마차가 움직였다. 하켄은 슬쩍 눈치를 보며 천천히 말을 몰았고, 에스델은 눈을 감고 시름시름 앓았다.
마차를 혼자서 쓰게 된 데일은 이번에 새로 구매한 무기들을 일렬로 늘어놓았다.
단검 여럿에 손도끼, 팔뚝만 한 도끼에, 혹시나를 대비한 한 손 검. 그리고 팔뚝만 한 철퇴까지.
가니아고스의 싸움에서 무기가 없어 위험했었기에, 일부러 다양하게 준비했다.
데일은 무기를 사고 덤으로 받은 숫돌과 기름, 그리고 새 헝겊을 꺼냈다.
데일은 헝겊을 들어 무기를 하나하나 닦았다. 이미 충분히 깔끔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데일에게 처음 싸우는 법을 가르쳐준 이들은, 자기 몸은 매일 안 씻어도 무기는 매일 닦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작자들이었다.
그들의 습관은 데일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데일은 천천히 무기를 닦았다. 쇠 비린내가 기분 좋게 풍겨왔다. 문득 이렇게 무기를 새로 장만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써보고 싶은데.’
새로 옷을 사면 입어 보고 싶은 것처럼 무기를 구하면 써먹어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렇다고 아무 대상에게나 시험해볼 수 없는 게 곤란한 점.
그런 데일의 아쉬움과 별개로, 마차는 산길을 쉼 없이 이동했다.
해가 지기 전에 이 산을 넘어야만 했다. 자칫하다가는 산 한가운데에서 야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다행히 앞서서 하켄이 워낙 빠르게 달린 덕분에 여유가 좀 있었다.
이대로라면 여유롭게 산을 통과할 수 있을 터.
그 같은 계산에 하켄이 늘어지게 하품하며 다소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였다.
“엇.”
하켄은 반사적으로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다음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방패에 날아와 박혔다.
본능적으로 화살을 방어해낸 하켄은 서둘러 고삐를 잡아당겼다.
깜짝 놀란 두 마리 백마가 앞발을 들며 히힝 거렸다.
옆에서 같이 달리던 하티도 으르렁거렸다.
앞쪽에 한 무리의 무장한 사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게 뭐야.”
하켄은 눈매를 좁혔고, 옆에서 시름시름 앓던 에스델의 얼굴은 갑작스러운 정지에 더더욱 창백해졌다.
* * *
날 때부터 도적이었던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각자 사정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이유로 도적의 길을 걷게 된다.
농한기에 굶주림에 지쳐 농기구를 들고 도적질을 하다 계절이 지나면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는 농부도 있는가 하면.
수준 떨어지는 용병이 먹고살기 위해 직종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그보다 흔한 경우는 바로 도시에서 중죄를 저지르고 도망간 범죄자들이 노상강도가 되어버리는 일이다.
이번에 데일 일행을 맞이한 도적들도 그러했다.
이들은 기본 사람 한 두 명은 죽이고, 도시에서 도망쳐 나온 범죄자들이었다.
도적들이 하켄에게 화살을 겨누며 말했다.
“자자. 여기는 우리 영역이다. 그러니 통행세를 내줘야겠어.”
하켄이 인상을 찌푸렸다.
“뭔 개 같은 소리야. 언제부터 이 산에 주인이 생겼다고.”
“빈 땅에 우리가 와서 깃발을 꽂았으니 이제 우리 땅인 거지. 그리고 곱슬머리. 혀를 잘라버리기 전에 닥쳐.”
“…….”
하켄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도적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위협이 먹힌 거라 생각했다.
도적들이 히죽거리며 상의했다.
“형님. 어떤가요. 이번엔 제법 짭짤하게 벌겠는데요.”
“그냥 짭짤한 수준이 아니다. 아무래도 우리, 횡재한 것 같다.”
“예?”
형님이라 불린 사내가 마차를 가리켰다.
“봐봐라. 척 봐도 높으신 분들이 쓸법한 마차 아니냐.”
“확실히. 엄청 화려한 게 신분 높은 여자들이 탈법한 마차긴 하네요. 말도 새하얀 게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고.”
“그리고 마부석에 앉은 둘을 봐라. 저 곱슬머리는 그냥 얼간이처럼 보이지만 그 옆에 있는 여자는…….”
그때까지도 시름시름 앓는 에스델을 본 도적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사제네요! 그것도, 엄청나게 이뻐요!”
“그래. 한눈에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 근데 생각해봐라. 보통 마부석에는 누가 앉지?”
“어…… 멀미가 심한 사람이요?”
정답에 근접한 추론이지만, 형님은 부하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생각을 좀 해라 이 새끼야. 신분이 낮은 사람이 마부석에 앉고, 그 윗사람이 마차에 타잖아.”
“아! 그렇다면…….”
“그래. 저런 여사제를 부하로 부릴만한 사람은 귀족밖에 없지 않겠어? 그것도 꽤 고위 귀족.”
형님이 목소리를 한층 낮추며 말했다.
“내 생각에는 저곳에 공주가 타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고위 귀족의 영애나.”
“고, 공주!”
공주라는 단어에 도적들이 웅성거렸다. 형님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이대로 공주를 사로잡기만 하면 그때부터 우리 인생은 활짝 핀 거다. 가족에게 협박을 해서 돈을 뜯어내든, 암시장에 팔아버리든 떼돈 버는 거야.”
“형님!”
“그래. 그러니 조심히 사로잡아라. 혹여나 손 데거나 다치게 하면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직접 하마.”
형님은 부하들에게 활을 계속 겨루고 있으라 한 뒤, 조심히 마차로 다가섰다.
하켄이 물었다.
“뭐야 넌 또. 뭐하려고 그러는데.”
“너희가 숨긴 공주는 우리가 데려가마. 아, 물론 신사적으로 대우할 테니 걱정은 하지 말고. 흐흐.”
“뭐?”
하켄은 이게 뭔 개소리냐는 듯. 머리만 벅벅 긁었다. 하티와 에스델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형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형님은 꿋꿋이 걸어가, 마차의 문 앞에 섰다.
그는 만면에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힘껏 잡아당겼다.
“자! 순순히 나오세요 공주님!”
문이 열렸다.
형님은 안에 있는 데일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형님은 생각했다.
‘공주가 왜 이렇게 크고 새카맣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