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79)
되돌아오다
* * *
너무 놀란 도적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데일은 도적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어어.”
흔히 이야기 속 왕자가 공주를 안아 들듯. 허리와 다리를 양손으로 들어 올리는 듯한 자세다.
사소한 차이가 있다면 안긴 게 아리따운 공주가 아닌 수염이 숭숭 난 중년 사내라는 점이라는 것.
그리고 안고 있는 이는 왕자라기에는 너무 살벌하다는 점이었다.
“…….”
“…….”
도적과 데일의 눈이 마주쳤다. 가까이서 쳐다보니 시선이 부담스럽다.
도적이 겁에 질려 소곤댔다.
“살려주세요.”
데일은 답했다.
“싫어.”
우드득.
데일은 그대로 힘을 줘, 도적을 구겨버렸다. 그러고는 그때까지도 활을 겨누는 도적들을 향해 던져버렸다.
팡!
“억!”
날아온 도적에게 부딪힌 동료 두엇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데일은 곧장 무기를 뽑았다. 하켄과 하티가 도우려고 일어나자, 데일이 말했다.
“가만히 있어라.”
“예?”
“내가 알아서 하겠다.”
마침 새 무기들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데일은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가며 손도끼를 던졌다.
공중에서 팽그르르 회전하며 날아간 도끼가 도적 하나의 미간에 틀어박혔다.
도적들은 반사적으로 활시위에서 손을 놓았다.
투퉁퉁. 화살이 데일의 투구를 두드렸다. 나름 활 솜씨가 좋았다.
하지만 데일은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날을 시퍼렇게 세워놓은 단검을 곧장 투척했다.
“어억!”
도적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 흔한 누비 갑옷도 입지 않은 대가였다.
마침내 도적과 데일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도적들은 당황했다. 도망쳐야 할지 맞서 싸워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보다, 동료를 잃었다는 분노가 더 큰 모양이다.
“감히 형님을!”
“죽여!”
커다란 벌목용 도끼가 정수리를 노려왔다. 데일은 간단히 고개를 비틀어, 도끼를 단단한 견갑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내뻗어 철퇴로 앞의 도적의 머리통을 부순 뒤. 곧바로 몸을 돌려 마주 공격하던 도적의 명치를 힘껏 걷어찼다.
두 도적이 흰자위를 까뒤집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건 동시였다.
이제 남은 도적의 수는 8명 남짓.
데일의 무위를 본 다른 도적들이 망연자실한 얼굴을 했다. 활을 든 녀석은 화살을 시위에 걸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데일이 물었다.
“더 안 하나? 너희들 구역이라 하지 않았나. 자기 땅을 지키려면 더 열심히 싸워야지.”
데일 나름대로 농담을 던져본 거였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도적들은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흘끗 쳐다봤다. 실력 차이가 크다는 게 명확해졌다.
‘이길 수 없어.’
그제야 분노로 흐려졌던 이성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슬그머니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두려움에 민감한 데일은 곧장 낌새를 눈치챘다.
“미리 말하지만, 도망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튀, 튀어!”
데일의 말을 끊고, 도적들이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적들은 나름 자신이 있었다. 이곳은 자신들의 영역인데다가 나무가 우거진 숲이다.
경험 많은 사냥꾼도 잘 모르는 숲에는 섣불리 들어가지 않는 법이다.
사방으로 달아나면 충분히 달아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데일은 양손에 단검을 들고 연달아 던졌다. 도적 둘이 풀썩 자리에 쓰러졌다. 하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기어코 달아났다.
“귀찮게 구는군.”
하켄이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다 잡아 죽여야지.”
저런 놈들은 가만 놔두면 또 무리를 만들어 무고한 사람들을 습격할 것이다.
하켄이 물었다.
“어떻게 쫓을 생각이십니까? 숲길에서는 자칫 길을 잃기 쉬운데요.”
“사냥을 할 때는 개를 풀어놓는 법이다.”
“개? 아……!”
하켄과 데일이 하티를 쳐다보았다.
하티가 불만스럽게 크릉 울었다. 자기는 개가 아니라 늑대라고 말하는 듯했다.
데일이 물었다.
“쫓을 수 있겠나?”
하티는 우아하게 걸어 데일을 지나쳤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듯이 고개를 휙 돌렸다.
데일은 그 뒤를 따랐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이 산중에서 보내야 할 듯싶었다.
* * *
하티가 도적들을 냄새로 추적해 전부 죽이기까지는 반나절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시간이 단축된 이유는 사방으로 도망갔던 도적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산 중턱에 마련된 은신처.
자신들의 집으로 되돌아오는 도적을 모두 잡아 죽인 데일은, 놈들의 은신처를 둘러보았다.
‘그럴듯하게 지어놨네.’
조잡하게 지은 집 몇 채가 서 있었고, 심지어 닭 같은 가축도 몇 마리 키우고 있었다.
작은 마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모습이었다.
물론, 도적들이 평범하게 가축을 길렀을 리는 없다. 키우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얼굴이 꾀죄죄한 꼬마가 닭을 돌보고 있었는데, 데일이 하티와 함께 다가오자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눈에 물방울을 맺으며, 히끅거렸다.
“흑. 자, 잘못했어요.”
“……뭐가.”
“앞으로는 잘할게요. 게으름도 안 피우고, 엄마 말 잘 듣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아무래도 아이의 부모는 착하게 굴지 않으면 악마가 찾아와 아이를 잡아먹을 거라 겁을 준 모양이다.
아이가 보기에 커다란 늑대를 대동하고 나타난 흑기사는 악마와 큰 차이점이 없었다.
자기는 악마가 아니라고 설득하려던 데일은 이내 그만두었다. 말해봤자 알아듣지도 않을 것 같았다.
대신, 데일은 물었다.
“너희 엄마는 어딨지? 너 혼자는 아닐 거 아니냐.”
그러자 주저앉아 있던 아이가 데일의 다리를 붙잡았다.
“아, 안 돼요! 저, 저는 괜찮으니 엄마는 살려주세요.”
“…….”
속으로 한숨을 삼킨 데일이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몇 채 안 되는 집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이 있었다.
데일은 아이를 다리에 매단 채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문을 열자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가 묶인 여인들이 보였다. 도적들에게 지독한 대우를 받았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여인들은 데일을 발견하고는 겁에 질려 구석 자리로 뒷걸음질 쳤다.
‘여기서 말을 걸어봤자 역효과겠군.’
번거롭지만, 에스델을 데려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데일은 에스델과 하켄을 은신처로 데려왔다.
에스델은 지독한 광경에 말을 잃었다.
데일이 부탁했다.
“에스델. 네가 저 여인들을 치유해주고, 상황을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스델이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여인들에게 다가갔다. 여인들은 같은 여성이며 사제이기도 한 에스델이 다가오자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사이. 하켄이 데일에게 물었다.
“다른 집도 둘러보셨습니까?”
“아니.”
“그럼 얼른 둘러보죠. 어쩌면 돈을 꽤 많이 모아놨을 수도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집들을 하나하나 수색했다. 은화 몇 개와 조잡한 무기 따위를 주울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큰 소득은 없었다.
하켄은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이 정도밖에 없을 리가 없는데…….”
그때. 옆에서 서성이던 하티가 바닥에 놓인 나무 판자를 앞발로 툭툭 두드렸다.
그 의중을 알아챈 데일은 철퇴를 들어 그대로 바닥을 내리쳤다.
쾅!
바닥이 무너지며 그 아래에 있던 자그마한 구멍이 드러났다.
구멍 속에는 나무 상자가 하나 있었다.
하켄이 화색을 띠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도적놈들이 의리 따위가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뒤로 빼돌려 놓는 게 당연하죠. 빨리 열어보죠!”
“호들갑 떨지 마라.”
데일은 상자의 뚜껑을 잡아당겼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렸다.
안에 있던 내용물이 드러나자 하켄이 감탄을 흘렸다.
“오. 오오!”
상자에 든 건 은화 더미였다. 반짝이는 금화도 몇 개 섞여 있었고, 보석 목걸이나 반지도 두어 개 들어 있었다.
‘알뜰하게도 모았군.’
하켄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이, 이거면 몇 년은 놀고먹어도 되겠는데요?”
데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요즘은 돈주머니가 점점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버는 수익은 많은데, 소비는 그에 따라가지 못하니 점점 돈이 늘어났다.
‘은행이라도 가야 하나?’
돈을 많이 모아두어서 나쁠 건 없다. 특히, 이제 상위 구역으로 올라가면 돈을 쓸 만한 일들이 생길 것이다.
데일은 이 뜻밖의 횡재를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그때. 하켄이 은근하게 물어왔다.
“데일 경. 저는 욕심 없습니다.”
“?”
“딱 1할만 나눠 주십시오. 그 이상은 안 바랍니다.”
“네가 한 게 뭐가 있는데.”
하켄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이번 도적을 처리하는 데 하켄이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데일과 하켄이 친한 사이라 해도 계산은 철저히 해야 하는 법이다.
반박할 수 없는 말에 하켄이 시무룩해하며 말했다.
“그렇게 많이 벌어서 어디다 쓰시려구요.”
“글쎄. 쓰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지금 이 돈을 당장 쓸만한 곳이 하나 떠오르긴 하는군.”
“예? 뭔데요 그게?”
데일은 답해주지 않았다. 하켄은 그런 데일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았다.
* * *
일행은 도적들에게 사로잡혀 있던 여인들과 아이를 마차에 태우고 이동했다.
긴 시간 학대받아 온 여인들은 체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무리한 이동은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백작이 내준 마차는 안락한 편이었고, 두 마리 백마도 힘이 넘쳤다.
며칠간의 여정 끝에 마침내 이레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데일은 도적들에게 사로잡힌 여인들의 처우에 대해서 에스델과 상의했다.
“저분들은 아마 서쪽의 한적한 수도원으로 가시게 될 거예요.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체력도 떨어지고, 마음도 힘들어하시니까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갈 곳 잃은 여인들을 교단에서 맡아준다면 안심이다.
데일은 도적들의 은신처에서 찾아낸 나무 상자를 열어, 은화의 절반 정도를 자루에 담았다. 그리고 에스델에게 내밀었다.
에스델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건……?”
“저 사람들을 맡기는 것에 대한 대가다. 일단 내가 데려온 거니, 나도 일정 부분 책임져야 맞는 거겠지.”
에스델이 손사래를 쳤다.
“아뇨아뇨. 이건 교단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돈을 받을 수는 없어요.”
“저 여인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받아라.”
“예?”
“돈을 내고 수도원에 간다면 손님이 되지만, 돈을 내지 않으면 귀찮은 짐일 뿐이다. 그러니 받아라.”
에스델은 부인하려 했다. 교단의 모두는 신실하고 선량한 사람들이라 설령 돈이 내지 않아도 여인들을 반가이 맞아줄 거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제 에스델도 세상이 그리 아름답게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특히 교단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믿음 역시 많이 깨졌다.
이번 이단 심문관들과의 만남은 에스델에게 여러모로 충격을 주었다.
에스델은 데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데일의 조언은 항상 현실적이었다.
에스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일 경께는 배우기만 하는군요.”
“뭣하면 그냥 헌금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흑기사가 교단에 헌금을 낸다니. 밤의 여신께서 노하시지 않으십니까?”
“그러지 않…….”
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없었다.
진짜 헌금을 냈다가는 배신행위라고 삐지지 않을까?
어쨌거나 데일은 돈 자루를 에스델의 손에 쥐여주었다.
별로 아깝지는 않았다.
여인들은 도적들이 모아 놓은 돈에 대해 지분을 요구할 정당한 권리가 있었다.
계산은 확실히 하는 것.
그게 데일의 방식이고, 어둠을 따르는 신도들의 방식이기도 했다.
일행은 성문을 넘어 이레네로 들어섰다. 에스델이 여인들을 이끌며 말했다.
“저는 우선 교단에 들러보겠습니다. 보고할 것도 많고, 일단 이분들 일을 봐 드려야 하니까요.”
“그래 고생했다.”
“예. 일을 마치면 카일라의 여관에 한 번 들르겠습니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델이 걸음을 옮기자, 여인들도 데일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그 뒤를 따랐다.
코흘리개 아이도 엄마의 손을 붙잡고 따라 걸었다.
그러면서 자꾸만 뒤를 보고 데일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처음 보는 대도시에 신난 건지. 아니면 엄마랑 같이 밖을 걸어다니는 게 마냥 즐거운지.
적어도 눈물 콧물을 질질 쏟는 모습보다는 훨씬 보기 좋았다.
아이가 앞으로도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아이의 앞에 놓인 삶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든 도적들의 은신처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이와 엄마는 둘이서 잘 헤쳐나갈 것이다.
‘엄마라…….’
그러고 보니 데일에게도 자기를 아들이라 부르는 존재가 있었다.
한동안 신전에 가지 못했다.
그간 잔혼을 많이도 쌓아놨으니, 이제 그걸 바칠 시간이다.
데일은 밤의 신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