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87)
수여식
* * *
황실 기사단의 기사단장.
아마도 대륙에서 가장 강한 검사이자, 황제를 지키는 검.
모든 기사들의 우상.
검성.
거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지켜보던 귀족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 누구도 숨소리 하나. 자그마한 소음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집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사단장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칼날 같은 기세는 사람을 절로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기사단장은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말했다.
“그 검. 뽑으면 죽을 걸세.”
손을 붙잡힌 기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 짜내며 말했다.
“거, 검을 뽑으면 저를 죽이실 거라니. 지금 저 이교도의 편을 드시는 겁니까?”
“뭐?”
잠시 벙찐 얼굴을 하던 기사단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 친구, 뭔가 착각하고 있군. 내가 자네를 왜 죽이겠나?”
“그, 그렇다면…….”
기사단장은 데일을 가리켰다.
“검을 뽑으면 저 친구가 자네를 죽일 거란 말일세. 자네는 단 열 합도 받아내지 못할 거야. 영광스러운 훈장 수여식 날에 그런 하찮은 싸움으로 피를 흘려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아니면.”
기사단장은 한 번 호흡을 삼킨 뒤 말했다.
“설마 자네가 이길 거라 생각했나? 부디 아니라고 말해주게. 나름 기사란 것들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형편없다면, 제국의 미래는 참으로 암울할 테니.”
“…….”
기사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만 부르르 떨었다.
기사단장이 말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게나. 적당히 사과하고 끝내게. 앞서 말했듯이, 좋은 날에 피를 흘리는 건 별로지 않나. 자네도 내 얼굴을 봐서 한 번만 봐주게나.”
기사단장은 데일에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개입에 흥이 식어 심드렁하던 데일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우리가 서로 얼굴을 보고 봐주고 그런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애초에 오늘 처음 만난 사이 아니오?”
“……!”
“!”
듣던 기사와 귀족들이 경악했다.
저 기사단장에게 저렇게 건방지게 대꾸하다니.
두려움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렇게 행동할 수는 없을 진데!
그때. 인파 속에서 검을 든 기사가 튀어나와 외쳤다.
“스승님께 무슨 망발이냐 이 무례한 놈아!”
“스승?”
쩌렁쩌렁 외친 건 젊은 여기사였다. 단장을 스승으로 칭하는 걸로 보아, 그의 제자인듯했다.
제자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기사단장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래. 기사라면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스, 스승님?”
기사단장은 데일에게 말했다.
“미안하네. 아무래도 너무 내 생각만 했군. 자네는 나를 처음 보는 거겠지만, 사실 난 자네를 본 적이 있네. 그…… 누구더라?”
기사단장이 제자에게 시선을 주자, 제자가 답했다.
“크리스틴 경입니다.”
“그래. 그 크리스틴이라는 놈과 결투를 벌이는 걸 봤지. 솔직히 만족했네. 기술은 부족했지만, 확실히 싸우는 법을 알더군. 오랜만에 피가 끓었어.”
기사단장의 말에 주위가 더욱 웅성거렸다.
특히, 기사나 기사 지망생들의 경악했다.
그들은 기사단장이 같은 기사단원들한테도 얼마나 엄격한지. 그리고 또 칭찬에 인색한지를 알았다.
기사단원 중 하나가 단장에게 처음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얘기는, 상위구역에서 너무 유명했다.
‘그런 기사단장의 눈에 들다니.’
기사들은 더욱 질투심을 불태우며 데일을 쳐다보았다.
정작. 데일은 심드렁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오늘은 이만하게. 분란을 일으키면 자네한테도 좋을 게 없네. 저래 보여도 나름 이름 있는 가문 출신이니 말일세. 자네는 뭣 하나. 어서 사과하지 않고?”
기사단장이 데일에게 시비를 건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는 굴욕적인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하다.”
누가 봐도 억지로 하는 듯한 사과.
하지만 데일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역시 귀찮은 일은 사양이었다.
기사단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고집부릴 이유는 없었다.
“알겠소.”
“따라줘서 고맙네. 나중에 기사단으로 찾아오게. 검이나 한번 섞어보고 싶으니. 자네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네.”
그렇게 말을 남긴 기사단장이 멀어져 갔다.
기사단장의 제자는 데일을 한차례 찌릿 노려보더니,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데일에게 시비를 걸었던 기사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는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데일에게 무참히 패배했을 거라고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미 기사단장이 중재한 마당에 한 번 더 시비를 건다? 그러면 그건 기사단장의 체면을 무시한 게 되어버린다.
기사는 그런 간 큰 짓을 감행할 자신이 없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기사는 그렇게 내뱉고는 얼른 사라졌다.
데일은 그런 기사를 붙잡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저런 머저리들은 언젠가 다시 마주치게 되어 있었다.
굳이 지금 처리할 필요는 없다.
사건이 일단락되었지만, 한번 싸늘해진 분위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눈치만 살핀 채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마침내 훈장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후작 각하께서 납십니다! 모두 뒤로 물러나십시오!”
하인의 외침과 함께 귀족들이 양옆으로 물러났다. 그 다음으로는 후작가의 기사들이 들어와 일렬로 도열했고, 마지막으로 중년의 후작이 당당하게 걸어왔다.
후작은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길고 화려한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일부러 우아한 동작을 천천히 걸었는데, 자기한테 쏠리는 시선을 즐기는 듯했다.
미리 준비한 단상에 올라선 후작은 한 것 거드름을 피우며 주위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고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오늘은 참으로 뜻깊은 날이오. 황제 폐하께서 공을 세운 젊은 용사들에게 훈장을 수여하시기로 하셨으니 말이오. 그 명예로운 임무를 폐하께서 내게 일임하시니, 이 또한 나에게는 커다란 영광이오.”
후작의 말에 몇몇 귀족이 의미 깊은 날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 후작이 옆에 있는 하급 귀족에게 시선을 주었다.
하급 귀족은 훈장 수여자의 명단이 적힌 긴 종이를 양손으로 힘껏 펼쳤다.
그리고는 외쳤다.
“베르하르트 가문의 오토는 앞으로 오시오!”
“예!”
기사가 재빨리 튀어나와, 후작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하급 귀족이 외쳤다.
“오토 그대는 남서부에서 단신으로 트롤을 사냥하고, 백성들을 지켰으며, 마을의 평화를 지켜낸 공로를 인정해, 붉은 방패 훈장을 수여하는 바이오!”
귀족의 긴 설명이 끝나자, 후작이 기사에게 훈장을 건네주었다.
“축하하네. 앞으로 더 정진하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사는 눈물까지 주륵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다.
‘너무 요란 떠는 것 아닌가?’
훈장을 받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저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일까?
단순히 명예 때문이라고 하기에 기사는 너무 기뻐했다.
그런 데일의 의문을 뒤로하고.
훈장 수여식은 계속 이어졌다.
하급 관리는 계속 수여자의 이름과 그 공로를 읊었고, 후작도 일일이 훈장을 건네주었다.
훈장 수여자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기사들뿐만 아니라 용병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수여식이 끝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조용히 듣던 귀족들도 지루했는지, 슬슬 잡담을 나눴다.
“이번에는 유독 훈장을 많이 수여하는군. 영웅들이 사라진 이후로는 한동안 뜸하지 않았는가.”
“그게, 내가 듣기로는 폐하께서 새로 친위대를 하나 만드신다는군. 황실 기사단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새로운 친위대?”
“그래. 신분에 상관없이 실력만 있으면 받아준다는데.”
“무슨 터무니 없는 소리를.”
“터무니없기는. 이번 훈장 수여식에는 유독 용병이나 평민이 많지 않은가. 심지어…….”
수군대던 귀족들은 흘긋 데일을 살폈다.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대화를 이어갔다.
“저런 자에게 훈장을 수여할 정도면, 폐하께서 정말로 신분과 출신에 구애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 아니겠나.”
“으음. 그건 확실히 그렇군.”
단순히 공을 치하하기 위한 훈장 수여는 아닌 모양이다.
데일은 빼어난 청각으로 정보를 모으며 생각했다.
‘친위대라.’
황제는 영웅들의 등장에 한 차례 황권의 위협을 받았다.
영웅들이 도시를 떠나 전선으로 향하게 된 데에는 크든 작든 황제가 관여하고 있을 터.
그런 황제가 친위대를 모으려 한다.
‘왜지?’
이미 많은 병사를 거느린 황제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부릴 수 있는 충실한 군사들을 더욱더 원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건가.’
황제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걸까?
당장은 판단할 만한 정보가 부족했다.
그렇게 긴 시간 끝에 마침내 데일의 차례가 왔다.
하급 귀족이 외쳤다.
“밤의 여신을 섬기는 기사이자 동패 용병 데일! 데일 경은 앞으로 오시오!”
데일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귀족은 그런 데일을 보고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외쳤다.
“데일 그대는 아르구르의 추종자 하시나를 쓰러트렸으며, 용병으로서 의뢰를 받고 도시에 행해지는 갖가지 위협을 성공적으로 처리해내 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지켜내었소. 또한, 카엘름에서 되살아난 가니아고스가 힘을 되찾기 전에 토벌한 공로를 인정해, 황금검 훈장을 수여하는 바이오.”
후작은 귀족에게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검 모양 훈장을 데일에게 내밀었다.
“그대가 데일 경인가?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이번 일은 정말 수고해주었어. 만약 카엘름이 함락당했다면, 제국에는 큰 화가 되었을 걸세.”
데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이 이어 말했다.
“받게. 황금 검 훈장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훈장이 아니네. 그만큼 폐하께서도 자네의 활약을 눈여겨봤다는 거겠지.”
“감사히 받겠소.”
데일은 손을 내밀어 훈장을 가져오려 했다. 그때. 후작은 데일의 손을 확 잡아챘다.
후작의 손에는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후작은 데일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데일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네는 제국과 폐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데일은 미간을 좁혔다.
갑작스러운 질문.
황제가 친위대를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시험인가?’
그렇다면 데일은 좋은 점수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딱히 황제의 친위대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데일은 퉁명스레 말했다.
“별생각 없소.”
당황한 후작이 말했다.
“……그래도 뭔가 느끼는 바가 있지 않나.”
“글쎄.”
데일은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갑자기 둘이 소곤거리자, 귀족들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후작은 뭐라도 대답을 듣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을 기세였다. 데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것 같소.”
“제국이 말인가? 어느 부분이?”
“여러모로.”
“흐음.”
데일의 대답에 후작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보인다면, 우리가 부덕해, 폐하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의견 고맙네. 그리고 다시 한번 축하하네. 그 훈장을 가슴에 착용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자네를 우러러볼걸세.”
데일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슴에 번쩍번쩍한 훈장을 달아도, 사람들의 눈에 데일은 그저 이교도일 테니까.
‘일이 끝났으니까 곧바로 돌아가야지.’
이런 피곤한 공간은 어서 뜨고 싶다.
하지만 그런 데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후작이 말했다.
“이 이후에는 연회가 준비되어 있네. 자네가 본 것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연회가 될 테니, 부디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난…….”
데일은 단칼에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후작이 곧바로 이어 말했다.
“그리고 연회 때 꽤 중요한 발표를 할 예정이라네. 듣는 게 좋을 걸세. 그러니 먼저 돌아가지 말고, 느긋이 연회를 즐기게.”
“그냥 지금 말해주면 안되는 것이오?”
“하하. 경은 보기보다 농담을 잘 하는군.”
“아니. 농담이 아니라…….”
후작은 한차례 웃음을 터트린 뒤, 손을 휘이 저었다.
잔말 말고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데일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아무래도 일찍 돌아가기는 그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