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88)
수여식
* * *
화려한 연회가 될 거라는 후작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현악기를 든 수십 명의 악단이 연주를 시작하고, 쟁반에 음식을 가지고 들어온 하인들이 끝없이 줄지어 들어섰다.
쟁반에는 향신료와 재료를 아끼지 않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신기한 요리가 들어 있었다.
연회장의 한구석에는 포도주가 솟아자는 폭포가 있었다.
귀족들은 잔을 들고 요령 좋게 포도주를 떠 마셨다.
‘하켄이 보면 환장하겠군.’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뭉쳐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귀족은 귀족끼리. 기사는 기사끼리. 그리고 마법사는 마법사끼리.
그런 와중에 붕 뜨는 이들이 있었으니, 이번에 훈장을 수여 받은 용병들이었다.
이들은 용병 업계에서는 존경받으며 대접받는 베테랑들이다.
하지만 그런 베테랑도 귀족들 사이에서는 영 기를 펴지 못했다.
게다가 귀족들이 일부러 텃세를 주기도 했다.
“큼. 큼큼. 정말이지, 예법도 모르는 자가 말이지.”
“이래서 천한 것들은…….”
멀뚱대던 용병들이 음식이나 술에 손을 댈라치면, 귀족들은 그런 식으로 대놓고 무안을 주었다.
일종의 견제이기도 하다.
귀족들 입장에서는 훈장을 수여 받은 용병이 언제든지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로 보였으니.
평소에는 거칠 것 없는 용병들도 신분이라는 벽 앞에서는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용병들은 구석 쭈그려 서서 눈치만 보았다.
그때. 데일이 음식으로 다가갔다.
평소처럼 먹는 시늉이라도 하려는 것이다.
귀족들이 이번에도 수군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교도가 참여하는 건 연회의 격을 떨어트리는 게 아닌가.”
“눈치라는 게 있었다면 알아서 자리를 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다 들으라는 듯. 한층 더 노골적인 비아냥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데일은 용병들과 다르다.
신분제가 없는 사회에서 온 데일에게 귀족이라고 딱히 위축되거나 그런 일은 없다.
데일은 수군거리는 귀족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대놓고 물었다.
“불만 있나?”
당황하는 귀족들에게 데일이 이어 말했다.
“불만 있으면 직접 말해라. 아니면 검을 뽑던가.”
귀족들은 노련하다.
이렇게 대놓고 다가오는 경우쯤은 이미 대비하고, 멋들어지게 면박을 줄 방법쯤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데일이 풍기는 기세다.
“무슨…….”
데일과 바로 앞에서 눈을 마주친 귀족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기사단장과는 다른 의미로 위험한 기세가 풍겼다.
데일의 주위만 유독 어두운 기분이 든다. 주위가 싸늘해진 느낌에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당황한 귀족들은 궁색하게 변명했다.
“험험. 뭔가 오해하고 있나 보군.”
“왜 우리가 자네에게 불만이 있겠나.”
“아니라면 다행이군.”
귀족들을 내려다본 데일은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아무 맛도 안 나는군.’
특별한 재료와 향신료로 만들어낸 진미이련만. 역시나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눈치를 보던 귀족들은 데일에게서 황급히 멀어졌다.
지켜보던 다른 귀족도 마찬가지.
데일 주위에 원형으로 빈 공간이 생겨났다.
데일은 멍하니 서 있는 용병들에게 말했다.
“안 먹나?”
그제야 용병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멋쩍게 웃으며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은패 용병인 토드입니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은패 용병인…….”
용병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모두 은패 등급 이상인, 뛰어난 용병들이었다.
술이 들어가고, 마음이 풀리자 용병들은 하나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로 용병 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높은 등급의 용병인 만큼 가지고 있는 정보의 질이 매우 뛰어났다.
“최근 북쪽 지방에서 언데드들이 많이 늘어나서, 성수를 미리 챙겨다니는 게 좋습니다.”
“안 그래도 그쪽 지방에서 몬스터들이 유독 많이 늘어나서 곤란인 상황인데…….”
“그렇군.”
데일은 그들이 전해주는 정보를 하나하나 기억해두었다.
당장 어디에 쓸지는 몰라도, 분명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귀족들보다는 이 용병들과 친해지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질 거다.’
데일은 확신했다.
지금은 전선이 소강상태라 위태로운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평화가 깨어질 조짐은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개개인의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법.
하찮은 신분으로 이곳까지 올라온 용병들은 훗날 두각을 드러낼 것이다.
‘친해져서 나쁠 게 없다.’
게다가 친분을 쌓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용병들은 강자를 존경하는 편이고, 그래서인지 데일에게 호의적이었다.
“나중에 불러주십쇼! 데일 경과는 꼭 한번 같이 일해보고 싶으니!”
“저도요! 같이 싸울 수 있으면 영광일 겁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귀족들의 텃세에 쭈뼛쭈뼛하던 용병들은 이제 완전히 기를 되찾았다.
주위는 신경을 안 쓰고 자기들끼리 열띤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로 음담패설이나 여자에 관한 주제.
등급이 높든 낮든, 용병은 용병이었다.
성욕이 없는 반언데드인 데일에게는 별로 공감하기 힘든 주제였다.
적당히 뒤로 빠진 데일은 고개를 돌렸다.
‘답답하군.’
데일은 멍하니 서서 한시라도 빨리 이 연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 * *
흥겨운 연회의 한구석에서 기사단장과 그의 제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
일전에는 그렇게 칼날 같은 기세를 흩뿌려대던 기사단장이지만, 지금은 마치 무정물처럼 어떤 기세도 품지 않았다.
바로 앞에 지나다니는 귀족들이 그런 기사단장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기사단장의 제자는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연회를 즐기는 귀족들과 기사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한심하네요.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바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풀어져서는……. 쓸모없는 놈들이 너무 많아요. 수를 콱 줄여버려야 하는데.”
과격한 말에 기사단장은 껄껄 웃었다.
“하하. 이런 사람들도 있어야 제국이 돌아가는 법이다.”
제자는 입을 삐죽였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런 연회에 쏟아부을 돈으로 무기를 사고, 병사들을 모으면 전쟁에서는 더욱 유리해질 수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
기사단장은 표정을 달리하며 말했다.
“하지만 쓸모없어 보이는 것에도 저마다의 의미는 있는 법이다. 저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 교류하는 것도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다. 너도 맨날 검만 휘두르지 말고, 저 사이에 섞여 다른 기사들과도 친분을 다지는 게 어떻겠느냐. 모두가 너랑 친해지고 싶어 안달일 텐데.”
제자는 콧숨을 흥 내뿜었다.
“친해지고 싶은 건 제가 스승님. 아니, 단장님 제자라서 그런 거잖아요. 그런 사람들이랑 친해져봤자 뭐하겠어요.”
“그럼 저 녀석은 어떻냐. 적어도 내 제자라고 특별히 여길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기사단장이 가리킨 건 연회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데일이다.
용병들 사이에 껴 있는 데일은 멀리서도 유달리 눈에 띄었다.
제자는 인상을 콱 찌푸렸다.
“더 싫은데요. 일단 이교도잖아요.”
“그 점은 나도 마음에 안 드는구나.”
“그리고 그런 식으로 낭비할 시간은 없어요. 그 시간에 검을 휘둘러야죠. 그래야 제가 단장님을 뛰어넘어, 하루라도 빨리 단장님이 은퇴할 거 아니에요.”
기사단장은 다시 한번 껄껄 웃었다. 당돌한 발언이지만,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기사단장은 실력과 재능이 있는 전사에게 한해서는 몹시 관대한 편이었다.
기사단장은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더더욱 혼자서 검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예?”
“혼자서 수련하는 검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좋은 아군과, 훌륭한 적수가 없다면 네 검은 언제까지고 제자리를 맴돌 것이다. 나 역시 뛰어난 동료가 있어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단다.”
“단장님께서도요?”
제자가 놀라며 물었다.
기사단장은 좀처럼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하는 법이 없는 사내였다.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검에 대한 순수한 재능만은 나를 뛰어넘는 놈이었지. 검술에 대한 집착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고.”
제자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단장님보다 재능이 뛰어났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그래. 정말이지, 괴물 같은 재능이었다. 도시의 검술 길드에서는 존경을 담아 마스터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렇게 대단한 분이 있었다고요? 근데 저는 그런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
기사단장은 서글프게 웃으며 말했다.
“녀석은 남과 비교할 수 없는 재능을 가졌지만, 신께서는 공평하신 법이다. 녀석의 몸은 너무 약했어. 지병이 있었지. 마력을 다루는 능력 역시 뒤떨어졌고. 몸이 재능을 따라오지 못하는 거야.”
“그런…….”
“하지만 놈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검을 휘둘러댔지. 마치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부정하려는 것처럼, 반쯤 미친 사람처럼 검을 휘둘렀다. 그러다…… 어느 날 사라져버렸다.”
제자는 눈을 땡그랗게 떴다.
“사라졌다고요? 어디로요?”
“나도 모른다. 지병이 악화되어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말을 흐린 기사단장이 말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 역시 친우가 있었기에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사실, 내 검술 실력만 보면 아직 그 녀석에게 미치지도 못했어.”
놀라운 이야기에 제자는 선뜻 믿을 수 없었다. 기사단장보다 더 뛰어났던 천재가 있었다니.
하지만 그녀는 안다.
기사단장이 허투루 이야기를 지어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제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분의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잠시 주저하던 기사단장은 이내 힘을 주어 말했다.
“루드비히. 검술 길드의 검사들과 그를 아는 기사들은 모두 존경의 의미를 담아, 마스터 루드비히라고 불렀다.”
* * *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연회가 점점 달아오르던 그 시각. 드디어 후작이 연회장의 중앙에 섰다.
그 옆에는 기사단장이 함께였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드디어 발표할 생각이군!’
그렇지 않고서야 기사단장까지 함께 서 있지는 않을 거다.
좌중을 둘러보던 후작은 부드럽게 손짓했다. 그러자 악기를 연주하던 악단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후작에게 쏠렸다.
후작은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법을 아는 사내였다.
마침내 원하는 분위기가 되자, 후작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영광스러운 날에, 한 가지 중요한 발표를 하겠소.”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후작이 이어 말했다.
“최근. 정세가 매우 혼란스럽다는 건 다들 알 것이오. 불미스러운 일이 끊이지 않고, 도시에는 배신자가 숨어들고 있소.”
귀족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후작이 말하니 일부러 과장스럽게 반응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폐하께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인재를 원하고 계시오. 능력 있고, 제국에 충성하는 뛰어난 인재를!”
후작의 얘기가 길어질 것 같자, 옆에 있던 기사단장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 빠른 후작은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다음 부분은 우리의 기사단장께서 설명해줄 것이오.”
“고맙소 후작.”
흠흠. 헛기침을 한 차례 한 기사단장이 말했다.
“이미 알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폐하께서는 새로 친위대를 창설할 계획이라네. 새로 생길 친위대는 신분도, 출신도 상관없이 오로지 능력과 폐하께 대한 충성심만을 보고 뽑을 예정이지.”
기사단장의 말에 좌중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특히 귀족들과 기사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출신과 상관없이 뽑겠다는 말은 큰 불만을 샀다.
하지만 겨우 이런 것에 꿈쩍할 기사단장이 아니다.
그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말했다.
“최근 서북부 지방이 몬스터와 언데드들로 혼란스럽다는 건 알 거라고 믿네. 생각보다 피해가 커지고 있어, 폐하께서도 골치를 앓고 계시는 문제지.”
친위대에 대해 얘기하다, 갑자기 서북부를 언급하니 귀족들은 어리둥절해했다.
기사단장이 이어 말했다.
“시험을 내리겠네. 여기 있는 누구라도 좋아. 한시라도 빨리 서북부로 가 혼란의 원인을 제거하게. 그러면.”
한번 말을 끊은 기사단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한차례 뜸을 들였다.
잠시간의 침묵.
기사단장은 주위를 느릿하게 둘러보며 힘을 주어 말했다.
“친위대에 입단할 자격을 주겠네. 그리고 가장 큰 활약을 보인 이에게는 친위대의 부단장 직위가 내려질 것이네. 참고로 지금 친위대의 단장은 나지만, 얼추 자리가 잡히면 곧바로 단장 자리를 넘겨줄 생각이네. 나는 황실 기사단 하나만으로도 바쁘거든.”
단장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아무리 출신과 성분을 안 본다 해도, 그 단장 자리까지 이렇게 덜컥 넘겨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귀족들. 특히 기사들의 눈에 탐욕이 일었다.
‘황제를 수호하는 친위대의 단장 자리라니.’
그것만큼 부귀영화가 보장된 자리가 또 있을까?
물론, 새로 생기는 친위대가 황실 기사단만큼의 위상을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이 갑작스러운 선언에 사람들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한 귀족이 기사단장에게 물었다.
“시험은 언제부터 시작입니까?”
기사단장은 고민 없이 말했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