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89)
시험
* * *
기사단장이 말했다.
“수단에 제한은 없네.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뜻을 합쳐도 좋고, 혼자만의 힘으로 헤쳐나가도 괜찮네. 지혜와 힘, 모든 걸 쥐어짜네 최선을 다하게. 그럼.”
기사단장은 목례를 간단히 한 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더 질문을 해봤자 받아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데일은 생각했다.
‘중요한 발표가 있다더니, 이런 거였나.’
확실히. 도시를 뒤흔들만한 사건이긴 하다.
새로 친위대를 창설하고, 그 단장을 시험에 통과한 사람으로 뽑겠다니.
‘정말 신분과 출생을 보지 않겠다는 말을 지키려는 건가?’
귀족들에게는 물론, 평민이나 용병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다니. 천년이 넘게 신분제가 이어져 온 제국에서는 놀라운 일이긴 할 터.
하지만 완전히 평등하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먼저 정보를 줘서 우위를 주었군.’
친위대가 창설될거란 소문은 암암리에 돌았지에, 시험의 내용은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발표했다.
시간 싸움인 시험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빨리 정보를 얻는 것도 큰 배려다.
그만큼 준비하고 계획을 짤 시간을 얻을 수 있으니.
실제로 다른 사람들은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기사들은 한데 모여 무언가를 궁리하고 있었으며, 술이 확 깬 용병들도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몇몇 이들은 발 빠르게 연회장을 나서려 했지만, 후작이 외쳤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밖에는 이미 해가 졌소. 해가 뜰 때까지는 저택에 머물러 주시오. 원한다면 하룻밤을 지낼 방을 내어드리겠소.”
해가 뜰 때까지는 후작의 저택에 남아 있어야 한다.
‘이걸 노리고 일부러 발표를 늦게 한 건가?’
만약 잡아두지 않았다면, 성질 급한 이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냅다 서북부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낙오자가 나오는 건 원치 않는 것 같았다.
‘아니면 좀 더 협력하라는 뜻일 수도 있고.’
이미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뭉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세력이 작은 이들도 있는 법.
세력이 작은 이들은 이 시간을 이용해 자기들끼리 동맹을 맺을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시험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머리를 굴렸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런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도 데일은 여유로웠다.
데일은 솔직히 친위대의 단장 자리 같은 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해가 뜰 때까지 멍하니 서 있을 뿐.
가끔 용병들이 다가와 함께할 거냐고 묻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데일은 단호히 거절했다.
몇 번의 거절이 있은 후에는 아무도 데일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다들 욕심에 눈이 멀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데일은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며 연회장의 한구석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때. 누군가 데일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는 별생각이 없나 보군?”
고개를 돌리니 있는 건 기사단장과 그 제자였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친위대에는 들어갈 생각이 없소. 단장 자리도 관심 없고.”
“그거 아쉽군.”
그렇게 말한 기사단장은 데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데일이 물었다.
“뭐 할 말 있으시오?”
“지금 자네 생각을 맞춰보겠네.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시험을 치르는가, 의아해하고 있겠지?”
“……맞소.”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방식은 꽤 피가 많이 흐르지 않겠소?”
기사단장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상위 구역에는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거든.”
“……?”
“이만 가보겠네. 다음에 언제라도 찾아오게. 검이나 한번 섞어보자고.”
기사단장은 그렇게 말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제자가 졸졸 뒤따르다, 데일을 한번 흘겨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해가 뜨자 연회에 참석한 이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아마도 오늘이 끝나기 전에, 도시는 이번 일에 대한 화제로 들끓을 것이다.
모두가 급한 반면. 데일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마침 그를 태우고 왔던 마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다른 분들은 급하게 달려 나가시던데, 무슨 일이 있나요?”
데일은 마차에 타며 답했다.
“다들 급한 약속이 생긴 모양이다.”
“그런가요?”
데일이 마차 문을 닫자, 마부는 천천히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마부가 물었다.
“여관으로 데려다 드리면 될까요?”
잠시 고민하던 데일이 답했다.
“용병 길드로.”
“3구역에 있는 길드 본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7구역에 있는 용병 길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3구역으로.”
“옙.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데일은 단장 자리에는 관심은 없다. 굳이 주도해서 시험을 치를 생각도 없다.
하지만 데일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귀족들이 돈을 풀겠군.’
시험의 취지를 생각하면, 자기들이 지닌 힘과 실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옳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순수하게 돌아가지 않는 법.
권력을 탐하는 귀족들이 대거 참여할 것이고, 그 귀족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귀족들이 돈을 풀만한 곳은 정해져 있다.
‘용병.’
여러모로 무력이 중요한 시험이다. 실력 있는 용병들의 몸값이 엄청나게 뛸 것이다.
하지만 일정 등급 이상의 용병들은 이미 귀족가 중 하나와 친분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무력은 절실한데, 막상 고용할만한 실력 있는 용병은 많지 않을 거라는 것.
이런 상황에서 데일이 지니는 가치는 특별하다.
데일은 이미 실력을 검증한데다가, 딱히 친분을 가진 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냉정을 되찾은 귀족들은 지금쯤 데일이 얼마나 귀중한 전력인지를 깨닫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돈 보따리를 싸매고 달려오고 있을 터.
기다리다 보면 괜찮은 조건의 의뢰가 넘쳐날 것이다.
데일은 그중에서 가장 적절한 의뢰를 골라잡으면 될 뿐이다. 시험의 참여자로서가 아니라, 고용된 용병으로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난리가 나겠군.’
이번 사건에서는 싸움의 냄새가 난다.
싸움은 데일의 성장으로 이어질 터. 굳이 이런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용병 길드에 도착했다.
용병 길드에는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는지, 오히려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폭풍 전의 고요라 해야 할까.
데일은 직원에게 걸어가 가란드가 있는지 물었고, 직원은 직접 가란드에게 안내해주었다.
가란드가 데일을 반가이 맞아주었다.
“무슨 일입니까 데일 경. 오늘은 분명 훈장 수여식에 간 것 아니셨습니까?”
“수여는 모두 끝났소.”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별문제는 없었죠?”
데일은 잠시 멈칫했다.
문제가 없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잘 해결되었소.”
“왜 뜸을 들이시는지…… 일단 알겠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데일은 수여식에서 한 발표에 대해 설명했다.
친위대와 그 단장을 뽑기 위한 시험을. 가란드가 미간을 좁혔다. 생각을 정리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흐음. 또 시끄러운 일이 터졌군요.”
“굳이 왜 이런 방법을 쓰는지 기사단장에게 물었더니, 새바람이 필요하다고 답변을 들었소. 무슨 의미인지 알겠소?”
잠시 고민하던 가란드가 말했다.
“상위 구역은 살기 좋은 곳입니다. 바깥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고,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죠. 하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상위 구역에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에 걸맞는 능력이 있어야만 하죠.”
데일은 아이렉에 대해 떠올렸다.
바이만 왕국의 귀족인 아이렉은 빈민가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상위 구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고.
가란드가 이어서 설명했다.
“이레네가 처음 세워지고. 폐하께서 무능한 귀족은 상위 구역에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엄청 혼란스러웠다는군요. 귀족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피바람이 불고 나서야 겨우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폐하께서는 뜻한 바를 이루셨습니다. 상위 구역에는 능력 있는 귀족들만이 남았지요.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혹시 짐작이 가시나요?”
데일은 눈을 감고 가란드의 설명을 정리한 뒤, 어렵지 않게 말했다.
“자식들이 문제가 되었군.”
가란드가 눈을 크게 떴다. 습관처럼 시험해보기 위해 한 말인데, 이렇게 빨리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으음. 역시 예리하시군요. 맞습니다. 능력 있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식이, 능력 있으란 법은 없었지요.”
작위는 기본적으로 자식 중 한 명에게만 내려진다.
작위를 얻지 못하는 다른 자식은 상위 구역에 남기 위해 공을 세우고, 자기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상위 구역의 모든 기사가 명예와 업적에 집착하며, 괜히 황실 기사단에 입단하기를 갈망하는 게 아니다.
데일은 얼마 전에 훈장을 받고 눈물을 흘리던 기사를 떠올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나.’
귀족 자재가 공을 세울만한 곳은 한정되어 있다.
가장 공을 세우기 쉬운 곳은 바로 최전선이지만…….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전선으로 내몰고 싶겠습니까. 또,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바깥으로 내치고 싶어 하겠습니까. 최근, 무능한 자식들에게 적당한 자리를 줘서, 어떻게든 상위 구역에 터를 잡게 하는 귀족이 늘고 있습니다. 무능한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면, 그만큼 유능한 사람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고요.”
“부패하기 시작한 것이군.”
“그렇습니다.”
데일은 연회장에서 웃고 떠들며 흥청망청하던 수많은 귀족을 떠올렸다.
귀족들의 숫자는 다시 늘어나고 있고, 상위 구역은 부패하고 있다.
황제는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귀족의 자재들을 과감하게 내치자니, 만만찮은 저항이 있을 게 자명하다.
귀족들은 도시가 건국된 이래 수십 년간 힘을 축적해 왔다.
어쩌면 이레네 건설 초기 때 일었던 혼란보다 더욱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일부러 숨통을 트여준 것이군. 만약 친위대에 들어가면 일단 상위 구역에서 쫓겨날 일은 없을 테니.”
“예. 게다가 이번 일로 귀족들의 힘도 빼놓을 수 있을 겁니다. 귀족들간의 경쟁이 가열될수록 출혈도 커질 테니까요. 물론, 너무 심한 출혈이 예상되면 황실에서 적절히 개입하겠지만요.”
데일은 후작의 말을 기억했다.
‘신분과 출생에 관계없이 능력에 좌우할 거라 했던가?’
말은 번드르르하지, 결국 이번 일은 귀족들 간의 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컸다.
용병들은 어디까지나 곁가지.
가란드가 말했다.
“게다가 서북부 지방의 혼란은 생각보다 심각하긴 합니다. 혼란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맞습니다.”
“황제는 욕심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오. 한꺼번에 이득을 몇 개나 보려는 것인지.”
가란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기에 악마에게 맞서 제국을 지탱해오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악마와의 전쟁을 수십 년간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습게 볼 인물은 아니었다.
‘한번 보고 싶긴 하군.’
황제는 실제 게임에서도 얼굴 한번 마주하기 힘든 인물이었으니,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황제가 아니다.
가란드가 물었다.
“데일 경께서도 참여하실 겁니까?”
“어디까지나 용병으로 참여할 생각이오. 이런 일은 그냥 넘기면 아쉬울 것 같아서 말이오.”
“하하. 대목을 놓치지 않는 안목. 데일 경도 용병이 다 되셨군요. 그럼 제가 몸값을 올리는 방법을 하나 조언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데일이 말했다.
“그래주면 고맙겠소.”
“별거 아닙니다. 개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그러니.”
“그러니?”
“파티를 꾸리십쇼. 개인으로서 의뢰를 받는 것보다는 그편이 더 큰 돈을 받을 수 있을 테니.”
“파티라…….”
당장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었다.
데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갔다오겠소.”
“서두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귀족들의 몸이 잔뜩 달아올랐을 테니까요.”
그날. 수십 대의 마차가 이레네의 성문을 나서 북서쪽으로 향했다.
일단 빨리 달리고 보자고 결정한 성급한 선발대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용병 길드는 용병을 고용하기 위해 찾아온 귀족의 시종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접수처의 직원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데일 경! 데일 경은 어디 있소!”
“제발 부탁이니 우리에게 데일 경을 주선해주시오!”
그들은 모두 데일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