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90)
시험
* * *
데일은 우선 여관으로 돌아가 하켄을 찾았다.
두꺼운 책을 펼쳐 그 안에 집중하고 있던 엘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 데일 경. 수여식은 어땠나요?”
“그냥 그랬다. 그보다 하켄은 어디 있지?”
“술 먹고 곯아떨어졌을 거예요.”
“대낮부터 팔자도 좋군.”
데일은 성큼 계단을 올랐다. 엘레나가 그런 데일의 등에다 말했다.
“아. 데일 경.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데일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혹시 급한 일인가?”
“으음. 아뇨. 급하지는 않는데요.”
“그럼 나중에 얘기하지. 지금은 조금 바빠서.”
“아. 예.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엘레나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궜다. 그 옆에 선 카일라가 데일을 도끼 눈을 뜨고 노려보았다.
마치 일이 바빠 딸도 내팽개치는 아빠를 보는 듯한 눈빛이다.
카일라가 툭 던졌다.
“애정이 식었네요.”
“……애정은 무슨.”
데일은 괜스레 민망함을 느끼며 말했다.
“일이 끝나면 그때 꼭 얘기를 들어주겠다.”
그제야 엘레나도 표정을 풀었다.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빠르게 계단을 오른 데일은 하켄의 방문을 열었다.
좋게 말해도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는 방에서, 하켄은 널브러져 있었다.
“커억. 커어억.”
어지간히도 깊게 잠들었는지 코를 요란하게 골다, 이따금 기침을 내뱉었다.
데일이 방문을 열었건만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놀더니 다 풀어졌군.’
데일은 하켄에게 다가가, 가볍게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물론, 데일 기준으로 가볍게였다.
쓰라린 통증에 하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 시발 어떤 새끼야!”
“나다.”
데일과 하켄의 시선이 마주쳤다.
하켄은 곧장 사근사근한 표정을 지었다.
“아. 데일 경이셨군요. 허허. 말로 하시지.”
“불만 있나?”
“불만이라니요! 오히려 좋습니다! 잠이 확 깨는 게, 기분이 아주 상쾌합니다. 허허허.”
호들갑을 떠는 하켄에게 데일이 상황을 설명했다.
하켄은 입가에 큼직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돈 냄새가 나는데요?”
“그래. 가란드의 말로는 파티를 꾸리는 게 더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다던데. 함께하겠나?”
“데일 경이 가는데, 당연히 저도 가야죠! 오히려 저를 안 데려갔으면 섭섭할 뻔했습니다!”
하켄은 당연히 함께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다음은 에스델이었다.
갑작스러운 얘기라 에스델이 곤란해할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에스델은 선선히 승낙했다.
“할게요.”
“괜찮겠나?”
“안 그래도 서북부에 벌어진 혼란은 교단에서도 주시하고 있었거든요. 교단에서도 허락해줄 거예요.”
방패수, 사제, 그리고 흑기사.
이 셋은 조합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는 데다가, 함께 다닌 시간도 있어 손발도 잘 맞는다.
이 정도면 가란드의 말대로 몸값을 높게 받을 수 있으리라.
셋은 바로 용병 길드로 향했다.
하켄이 말했다.
“하하! 귀족 놈들. 지금쯤 잔뜩 달아올라서 난리치고 있겠죠? 평소에는 하찮은 용병이라고 무시하던 놈들이 애걸복걸하는 꼴이라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갑과 을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 역전되기도 한다.
지금 실력 있는 용병들은 그야말로 갑이 되어, 귀족들의 열띤 구애를 받고 있을 것이다.
일행은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예상하고 길드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길드 내부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뭐지? 사람은 많은데?’
문이 열리자, 안쪽에 대기하고 있던 시선이 일제히 이곳으로 집중되었다.
그들 중 하나가 외쳤다.
“와, 왔다!”
그러고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데일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가룸 가문에서 나왔습니다! 경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후한을 조건을 드리겠습니다!”
“파드룸 남작가에서 나왔소. 파드룸 남작이 어떤 분인지는 아실 거라 믿소. 우리 쪽에 합류하시오.”
“제발! 제발 이렇게 부탁입니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회유. 협박. 애원.
귀족가에서 나온 시종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데일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길드 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개중에는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가문 출신인 듯.
드잡이질까지 벌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 분위기에 완전히 질려버린 하켄과 에스델이 뒤로 물러났다.
다른 용병들은 휘말리지 않기 위해 서둘러 거리를 벌렸고, 길드 직원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러다 사고 나겠군.’
데일은 주위를 슬쩍 둘러본 뒤, 정신을 집중했다.
안광이 한차례 세찬 빛을 내뿜었다. 마력이 주위에 퍼졌다. 퍼져나간 마력은 시종들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으윽.”
“뭐, 뭐야.”
갑작스러운 충격에 시종들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두통과는 조금 다른, 정신 그 자체를 뒤흔드는 오싹한 감각에 피가 차갑게 식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그제야 데일도 입을 열었다.
“다들 진정하시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일이 그렇게 말하니, 진정하기 싫어도 진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가란드가 계단을 내려왔다.
“허허. 왜 이렇게 소란스럽나 했더니…….”
상황을 전해 들은 그는 모두에게 말했다.
“서로 싸우다가는 끝이 없을 겁니다. 그건 아무도 원치 않잖아요? 다들 시간이 촉박하니.”
시종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한시라도 빨리 도시를 나서 서북부로 떠나야 했다. 이렇게 드잡이질 하고 있는 시간도 몹시 아까웠다.
가란드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각자 생각해둔 조건을 종이에 적어, 저한테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중에서 제일 괜찮은 조건을 몇 개 골라, 데일 경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서로 슬쩍 눈치를 살핀 시종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시간만 죽이느니, 조금이라도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낫다.
데일이 가란드에게 말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말해주시오. 하켄과 에스델과 함께할 예정이오.”
“아, 제 조언대로 하셨군요. 좋습니다.”
씨익 웃은 가란드는 시종들에게 설명했다.
전장에서도 굴러본 적 있는 베테랑 방패수와 장래가 촉망받는 유능한 사제가 함께할 거라고.
노련한 용병 출신답게 시종들의 마음이 혹할만한 부분을 잘 짚어주었다.
시종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흑기사에 용병과 사제까지.’
‘포섭만 할 수 있다면…….’
몸이 달아오른 시종들은 종이를 두고 고민했다.
기회는 단 한 번이니만큼, 괜찮은 조건을 불러야 했다.
문제는 다른 이들이 어떤 조건을 부를지 가늠이 안 된다는 것.
‘어쩔 수 없다.’
시종들은 눈을 꾹 감고, 자기가 부를 수 있는 최대한을 써넣었다.
가란드는 그런 시종들에게서 종이를 거두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평범한 은패 용병은 꿈도 꾸기 힘든 조건들이군요.”
가란드는 조건들을 확인한 뒤, 빠르게 간추렸다.
단순히 돈만 본 건 아니다.
의뢰주가 신용이 있는지. 길드와 마찰이 있었는지. 평판이 어떠한지까지. 마치 자기 일처럼 상세히 따졌다.
데일은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소 가란드.”
“아뇨. 저희가 괜히 중계 수수료를 받아먹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 데일 정도 되니 가란드가 직접 일처리를 해주는 것이었다.
작업이 끝나자 가란드는 종이 세 장을 건네주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될 것 같군요.”
추리고 추린 의뢰서는 석 장이었다.
과분할 정도의 조건. 최상의 대우. 특별히 문제없는 의뢰주.
수요와 공급이 가격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데일은 지금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귀족들이라도 무리하는군. 그렇게 자리가 탐이 났나?’
귀족들은 욕심을 부리며 무리하고 있었다.
물론, 데일이 걱정할 부분은 아니다.
게다가 이번 의뢰는 그 특수성 때문에 상당히 위험할 것이다.
‘전투가 많이 있겠지.’
그렇다면 이 정도 조건이 마냥 비싸기만 한 건 아닐 것이다.
데일은 결정을 내렸다.
“이걸로 하겠소.”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가란드는 데일이 누구의 의뢰를 받아들였는지 발표했다.
계약을 성사해낸 시종은 환호성을 질렀고, 나머지는 실망하거나 짜증을 부렸다.
그 모든 광경을 보고 있던 용병들은 그저 부러워했다.
“겨우 한 명한테 저렇게 매달리다니…….”
“우리도 언젠가 저런 대우를 받을 수 있나?”
“꿈 깨라. 저 기사님만큼 강해지려면 10년으로도 부족해.”
하지만 손만 빨고 있는 용병들에게도 곧 기회가 주어졌다.
데일을 붙잡는 데 실패한 시종들이 그들을 포섭하기 위해 달려든 것이다.
이곳에 있는 용병들은 대부분 동패 이하 등급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길드는 이내 시장통처럼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데일과 계약을 맺은 시종은 일행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후우. 제안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출발은 언제로 할 생각이지?”
“준비를 마치는 대로, 내일 해가 뜨자마자 출발할 겁니다.”
“인원은?”
“저와 도련님, 가문의 사병에 여러분까지 총 열다섯이겠네요.”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다섯이라.’
힘 있는 가문은 친분을 가진 고위 용병이나 실력자들이 차고 넘칠 것이다.
데일을 비싼 값 주고 고용하기 위해 직접 용병 길드로 달려온 건 이런, 강하다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마냥 약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가문들이었다.
데일은 투구를 긁적였다.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기에는 애매한 전력이군.’
시험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 정도의 전력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모두가 시험의 승리를 위해 달리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을 생각인가?’
병사들을 이끌고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다른 유력한 후보에게 도움을 주고 대가를 얻어먹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가령, 친위대에서 한 자리를 받는다거나.
데일이 그렇게 의뢰주의 의중을 짐작하는 사이.
신나게 앞서 가던 시종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저희 도련님이 조금 별난 분이셔서 말이죠. 너무 놀라지 않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참 좋은 분이신데…….”
“별나다고?”
“하, 하하. 출발은 내일이니, 다들 준비하고 약속 장소로 와주시면 됩니다.”
시종은 일부러 언급을 피하며 서둘러 사라져버렸다.
조금 찜찜했지만, 이미 계약은 성립되었다. 이제와서 무를 수는 없었다.
‘가란드가 선별했으니까. 큰 문제는 아니겠지.’
어쩌면 시험의 통과를 노리는 게 아닌, 적당히 간을 보다 이득만 취하려는 의뢰주가 훨씬 나을 수도 있었다.
데일은 에스델과 하켄에게 말했다.
“우리도 준비를 해야한다. 우선 에스델. 저번에도 말했지만, 제대로 된 갑옷을 입어야 한다. 함께 무기상에게로 가자.”
“으음.”
에스델은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외에 또 준비할 건…… 지금 서북부는 언데드 창궐과 몬스터 범람이 동시에 일어나서 큰 혼란이라고 했었지요? 그렇다면 성수를 넉넉히 챙겨 놓는 게 좋겠네요. 또, 몬스터 사냥용 도구도 챙겨 놓고…….”
데일은 에스델의 말을 끊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기를 제외하면, 되도록 짐을 줄여라. 위급할 때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예? 왜 그렇죠?”
의아해하는 에스델에게 데일은 답했다.
“언데드나 몬스터를 상대할 일보다는 사람을 상대할 일이 많을 테니까.”
때마침 마차 여러 대가 일행 앞을 빠르게 지나쳤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도시 안에서의 난폭한 질주에 시민들이 다급히 몸을 피했다.
“치이고 싶지 않으면 뒤로 물러나라!”
마차를 모는 마부가 거칠게 외쳤다.
그가 모는 마차에는 귀족 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뒤 칸에는 기사 몇과 그 하인들. 그리고 고용된 용병들로 보이는 사내들이 몇 타 있었다.
그들이 데일을 봤다.
데일도 그들을 봤다.
시선이 마주친 기사가 허리에 찬 검을 툭 쳤다. 그리고는 앞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
귀족들이 괜히 용병을 고용하는 게 아니다.
시험에서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든 경쟁자를 고꾸라트리려 하며, 때로는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것. 그게 사람이다.
전투는 피할 수 없다. 싸움판이 벌어질 것이다.
데일은 마차에서 고개를 돌렸다.
“가자.”
그 싸움판에 뛰어들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