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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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모인 건 이른 새벽이다.
계절이 가을에 접어들면서 부쩍 해가 짧아졌다. 도시는 아직 어슴푸레한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다.
데일은 하켄과 에스델. 그리고 하티와 함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의뢰주와 그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데일을 고용한 시종이 이쪽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아!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쪼르르 다가온 시종은 옆에 있는 청년을 가리켰다.
“이분이 저희 도련님이십니다.”
젊은 청년이었다. 푸른 눈은 총기로 반짝였고, 옅은 곱슬머리는 단정히 옆으로 넘겼다.
굳게 다문 입술 탓에, 어딘지 고집스러워 보이는 인상의 귀족 청년이었다.
청년이 데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경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데일이다.”
“티센 가문의 에른스트.”
데일은 그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손에 전해지는 악력. 그리고 청년의 허리에 찬 검을 보고 데일은 생각했다.
‘그래도 제법 실력이 있군.’
어느 정도 기사로서 수련을 쌓은 듯했다.
그때. 에른스트가 말했다.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해두겠어. 나는 굉장히 평등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거든?”
“?”
“그러니 경이 포악하고 잔인한 이교도든. 혹은 천한 용병이든 나는 전혀 신경 안 써. 그러니 나를 편하게 대해주기 바라겠어.”
“으음. 알겠다.”
데일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일단 적당히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그러고 보니 별난 구석이 있다 했었나?’
시종이 말했던 대로, 확실히 일반 귀족 청년과는 조금 다른 인물인 듯했다. 좋은 방향으로 다른지, 나쁜 방향으로 다른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에른스트는 이어서 하켄과도 인사를 나눴다.
“잘 부탁해. 앞서 말했듯이, 나는 천한 용병이라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사람이야.”
“어. 거. 감사합니다.”
천한 용병이라는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짓는 하켄을 뒤로하고, 에른스트는 마지막으로 에스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왜 그러시죠?”
에스델이 묻자, 에른스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급하게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하더니, 목소리를 일부러 내리깔며 말했다.
“마,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제님. 성함을 들려주시겠습니까?”
갑자기 자기한테만 존댓말을 사용하자, 에스델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에스델이에요.”
“맙소사. 이름마저 아름답다니.”
“……예?”
“앞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에른스트는 악수를 청했지만, 에스델은 못 본 척 외면해버렸다. 왠지 손을 마주잡기 껄끄러웠다.
에른스트는 에스델이 악수를 받아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꿋꿋이 손을 들었지만, 시종이 얼른 다가왔다.
“도련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더 늦어지면 여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군.”
고개를 끄덕인 에른스트가 외쳤다.
“자! 어서 출발하자!”
함께 따라온 사병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예!”
그들은 각각 다섯 명씩 3대의 마차에 나눠 탔다.
데일 일행은 두 번째 마차에 올랐는데, 에른스트와 시종과 함께 동승해야 했다.
마부는 하켄이 맡았다. 시종이 자기가 몰겠다고 했지만, 하켄은 자기가 하겠다며 완고하게 말했다.
에른스트와 같이 있는 걸 썩 내켜 하지 않는 듯했다.
두꺼운 판자로 보강되어, 화살도 거뜬히 막아낼 것 같은 마차가 덜컹거리며 나아갔다.
이레네의 성벽과 빈민가가 빠르게 멀어져 갔다.
어느 정도 도시를 벗어나고. 마차가 가도에 접어들자, 시종이 운을 뗐다.
“일단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혹시나 서로 생각하고 있는 게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한차례 말을 끊고, 주위를 둘러본 시종이 이어 말했다.
“우선, 저희의 목적은 서북부에 벌어진 혼란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최근 서북부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하나는 몬스터 범람입니다.”
북쪽의 겨울은 혹독하다.
북쪽 지방에서 겨울을 나야 한다는 건, 매 순간 죽음과 자연을 상대로 싸워 이겨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건 짐승이든, 사람이든, 몬스터든 예외가 없었다.
길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식량을 비축하거나, 겨울잠을 준비하기 위해 미리 살을 찌워둬야 한다.
그래서 몬스터들은 가을이 되면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곤 했다.
그리고 몇 년에 한 번씩. 그런 식으로 내려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아 큰 곤란을 겪곤 한다.
“문제는 이번에는 한 가지 더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언데드들이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죠. 자연적으로 언데드가 일어나는 건 드문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체가 일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범위도 너무 넓다는군요. 일어나는 언데드의 종류도 심상치 않고요. 즉.”
“누군가 인위적으로 언데드를 일으키고 있다는 건가?”
시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희가 예상하기로는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내려주신 시험의 내용은 서북부의 혼란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데드들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거하면, 저희가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사료됩니다. 몬스터들이야, 뭐. 늘 벌어지는 일이었으니까요.”
시종의 똑 부러진 설명에 에른스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데일은 의문을 제기했다.
“괜찮겠나?”
“뭐가 말이죠?”
“수여식에서 봤을 텐데. 귀족들은 서로 동맹을 맺고, 함께 움직이고 있다.”
기사가 포함된 전력이 수십 명씩 몰려다니고 있을 터.
이곳에 있는 15명은 분명 적지 않은 전력이지만, 혼자서 시험을 이겨내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적당히 간을 보다가 이득을 보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시험에서 이길 생각인가?’
데일의 지적에 시종이 슬쩍 에른스트의 눈치를 살폈다.
에른스트는 한차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나는 친위대의 단장 자리에는 관심 없어.”
“?”
“내가 서북부로 향하는 건, 그곳 사람들이 고통을 받기 때문이지 사사로운 권력 때문이 아니야. 이건, 내가 귀족이라는 이름으로 특권을 누려온 데에 대한 당연한 의무야.”
말은 즉, 순수한 호의로 용병을 고용하고 가문의 사병을 이끌고 나왔다는 소리다.
거짓말도 이렇게 얼토당토않으면 도리어 신뢰감이 생기는 법이다.
데일은 에른스트의 눈동자를 보았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당당한 눈빛.
‘설마 진심인가?’
그 옆에 앉은 시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에른스트와는 뜻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이제 보니 순진한 귀족 청년이었군.’
그리고 또 다른 순진한 사람. 에스델이 화색을 띠며 말했다.
“정말 훌륭한 생각입니다! 신께서도 에른스트 님의 행동에 기뻐하실 거예요!”
뺨이 발그레해진 에른스트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험험. 그렇게 칭찬해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둘이 대화하는 사이, 데일이 시종에게 조용히 물었다.
“괜찮겠나?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에른스트는 다소……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데.”
“당연히 안 괜찮죠. 근데 저희가 함께 따라붙지 않으면, 혼자서라도 서북부로 달려 나갈 기세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침을 꿀꺽 삼킨 시종이 말했다.
“일단 서북부에 도착하고, 직접 참상을 겪으시면 도련님의 열정도 좀 식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영웅놀이도 그만둘 테고요.”
영웅 놀이라.
다소 신랄한 표현이었지만 데일도 동의했다.
‘오래 살기는 힘든 타입이군.’
차라리 돈이나 이득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괜찮다. 적어도 그들은 현실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렇게 이상을 위해 싸움에 나서는 이들은 죽을 확률이 높았다.
시종이 말했다.
“저희가 괜히 경을 비싼 돈을 드리고 고용한 게 아닙니다. 만약 저나 다른 사병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도련님만은 가문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다. 하지만 정말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는 내 말에 따라야 한다.”
“그때는 제가 어떻게든 도련님을 설득해보겠습니다. 뭣하면 기절시켜서라도요.”
다행히 시종이랑은 얘기가 잘 통해,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어차피 당장 해야 할 일은 큰 차이가 없으니, 굳이 더 얘기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이번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겠는데.’
저런 종류의 사람은 쉽게 질리기 마련이다. 현실이 이상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걸 체감하면, 곧바로 줄행랑칠 것이다.
‘그러면 어쩌면 의뢰를 한 번 더 받을 수도 있겠군.’
서북부의 혼란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뢰주가 내빼면 데일은 다른 의뢰주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일에게는 나쁠 게 없는 장사.
합의를 마친 데일은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영웅들에 대한 기록이었는데, 저번에 읽은 책이 영웅들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담았다면, 이건 영웅 개개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다루었다.
데일은 우선 용병왕이라는 작자에 대한 행적부터 더듬어갈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에스델과의 대화를 이어가려고 절절매던 에른스트가 그 모습을 보았다.
“어? 그, 글자를 읽을 줄 아나?”
에른스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데일이 물었다.
“그렇게 놀랄 일인가?”
“아, 아니. 이교도들. 특히 흑기사는 학문이랑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아까 편견 같은 건 없다 하지 않았나?”
“으응? 그, 그랬지. 하하하.”
에스델이 끼어들었다.
“데일 경은 다른 이교도들이랑은 다르니까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에스델은 자기가 우쭐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에른스트는 머쓱하게 머리만 긁적였다.
그런 둘의 반응을 무시하며 데일은 책을 펼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스델도 낡은 성경을 꺼낸 뒤, 에른스트에 물었다.
“에른스트 님은 독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나요?”
“흠. 흠흠.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어딜 가든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닙니다. 책은 영혼의 양식이니 말이죠!”
에른스트는 시종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줘.”
“……뭘 말이시죠.”
“내가 즐겨 읽는 책 좀 건네주라고.”
시종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갑자기 뭔 소리예요. 평생 책이라고는 기사도 소설밖에 읽어보지 않은 분이!”
“지금은 일단 아무 책이나 달라고!”
그런 둘의 실랑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데일은 책을 읽어내렸다.
앞으로 목적지인 서북부 지역까지는 못해도 일주일은 가야 하니, 여유를 좀 가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데일의 머지않아 방해받았다.
마차가 갑작스럽게 멈춰버렸다.
“뭐야. 왜 멈추는 겁니까.”
시종의 물음에 하켄이 말했다.
“아무래도 직접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일행은 마차에서 내렸다.
에스델이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세, 세상에.”
가도에는 시체가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못해도 10명은 죽었다.
마차 2대가 부서져 있었고, 온 사방에 피가 낭자했다.
데일은 바닥 한편에 널브러진 피에 젖은 깃발을 발견했다.
‘이건…….’
어제. 대로를 지나칠 때 마주쳤던 마차에 새겨진 문양과 같다.
에스델이 중얼거렸다.
“도, 도적 떼에 습격이라도 당한 걸까요?”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화살에 당한 시체가 적고, 대부분은 검에 치명상을 입었다.
하나하나 깔끔하고 절묘한 궤적의 검상이다. 어중이떠중이 도적이 가지기에는 너무 뛰어난 검술.
옆에 서 있던 하티는 시체 주위를 맴돌다, 어디론가로 고개를 돌리고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데일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다들 준비해라.”
이윽고, 수풀에서 이 참상을 만들어낸 원흉들이 걸어 나왔다.
잘 무장한 기사와 사병이 스물.
그들은 딱히 숨길 생각도 없는지, 피가 묻은 검을 들고 이쪽을 향해 당당히 다가왔다.
그중 한 기사가 데일을 발견하고는 화색을 띠었다.
“어?”
참으로 공교롭게도, 훈장 수여식에서 데일에게 시비를 걸었던 기사다.
기사는 기뻐하며 외쳤다.
“아무래도 신께서는 나를 어여삐 여기시나보군! 이 건방진 반송장을 다시 만나게 해주다니!”
사납게 미소 짓는 기사에게 다른 기사들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기사는 그런 기사들을 뒤로 물렸다.
“저놈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오.”
그러고는 검을 뽑으며, 데일을 향해 말했다.
“그때 내가 너를 죽이지 않은 건 기사단장 때문이었다는 걸 똑똑히 알려주마.”
데일도 마검을 뽑아 들고는 중얼거렸다.
“그거 우연이군.”
데일의 생각도 기사와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