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86)
수여식
* * *
훈장 수여.
구태여 거절할 이유도 없지만, 애초에 데일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황제가 오라면 가야 했다.
데일이 찾아오는 게 용건이었는지, 황실 기사단원들은 빠르게 돌아갔다.
마치 한 몸처럼 걸음걸이를 맞추는 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기사단원들이 빠져나가자 도서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사서도 멍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휴. 또 기록관님 잡으러 온 줄 알았네요.”
“……잡혀간 적이 있었나?”
“역사책에 폐하에 대한 다소 과격한 표현을 써서 문제가 됐던 적이 있었죠.”
데일은 어딘가 듬성듬성했던 기록을 떠올렸다.
그 깐깐해 보이는 노인이 유독 칼 찬 놈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던 것도.
‘이미 한번 호되게 당했었군.’
한시름 놓은 사서가 말했다.
“음. 축하드려요. 훈장 그거 아무나 받는 게 아닌데. 부럽네요.”
데일은 사서의 시큰둥한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별로 부러워하는 표정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예. 그 훈장 수여식이라는 게 귀족들 전부 모이는 사교회 같은 자리인데, 그런 데 평민이 가봤자 좋은 소리 못 듣거든요. 심지어 훈장까지 받았다? 어후. 엄청 못살게 굴걸요? 아, 훈장을 받으면 이제 준남작이니 경께서도 귀족이려나요?”
사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귀족에 대해 썩 좋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데일은 황제의 칙서를 슬쩍 확인한 뒤, 사서에게 말했다.
“이만 가봐야겠다. 안드레이 님께는 나중에 망토를 찾으러 오겠다고 전해드려라.”
“어차피 한동안 집중하느라 말도 못 붙일 거예요.”
데일은 도서관을 나선 뒤, 빠르게 걸음을 옮겨 7구역으로 돌아왔다.
‘훈장 수여식이라.’
가란드가 귀띔해주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빠르게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다.
데일은 용병 길드로 향해 가란드를 찾았다. 집무실 문을 열자 가란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데일 경을 찾고 있었습니다. 소식은 들으셨나요?”
데일은 황제의 칙서를 보여주었다.
“수여식이 바로 다음 주군요.”
“따로 내가 준비해야 할 건 없소? 의복이라거나?”
“괜찮을 겁니다. 수여식이 귀족들 간의 사교회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기사들은 갑옷을 입고 가는 게 관례니까요.”
“예법이나 그런 건? 황제를 상대로 지켜야 할 예절이 있지 않소.”
가란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훈장을 수여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워낙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잘 안 드러내는 분이시니까요. 그리고 데일 경은 예법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 그렇소?”
“아무도 그런 걸 기대하지 않을 테니까요.”
가란드는 데일의 몸을 가리켰다.
새까맣고 위압적인 갑옷.
두려움과 멸시의 대상인 이교도 기사에게 그 누가 깍듯한 예법을 바라겠는가.
“그냥. 상식선에서 행동을 하시면 됩니다.”
“상식. 상식이라. 알겠소.”
데일이 중얼거리자, 가란드는 뒤늦게 불안함을 느낀 모양이다.
그가 황급히 말했다.
“문제만 안 일으키시면 됩니다. 귀족들과의 자리에서 문제가 벌어지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니까요. 또, 데일 경은 일단 용병 길드 소속이라 문제가 발생하면 저한테도 책임이…….”
그에 대해 데일은 짧게 답했다.
“걱정 마시오. 그쪽에서 건들지 않으면 나도 가만 있을 테니.”
“……그쪽에서 건들면요?”
“그건 그때 가서 봐야 하지 않겠소.”
가란드가 말했다.
“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웬만하면 참아주세요. 귀족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귀찮게 굴 수 있으니까요.”
“명심하겠소.”
데일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답했지만, 가란드는 왠지 데일을 불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 * *
수여식 당일이 되었다.
마차를 보내준다는 말에 데일은 여관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데일은 평온했다. 훈장 같은 건 솔직히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도리어 흥분한 건 다른 사람들이었다.
카일라가 안절부절못했고, 하켄은 부러움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맥주만 홀짝였다.
엘레나는 긴장하며 말했다.
“청사자 기사단장의 단장이라는 위치를 망각하지 마시고, 늘 당당하고 기품있게 행동해주세요.”
“그런 자리를 받아들인 기억은 없다.”
프라우도 존경 어린 눈으로 데일을 보며 말했다.
“그런 명예로운 자리에 설 수 있다니. 같은 전사로서 부럽네. 정말 부러워! 경. 사실 부탁할 게 있네. 어려운 부탁이지만…….”
“어렵다는 걸 알면 부탁하지를 마라.”
“나도 함께 데려가 줄 수 있겠나? 응? 얌전히 있겠네! 아, 이렇게 하면 어떤가! 큰 가방을 준비해서 내가 그 안에 들어가는 거네. 그 뒤에…….”
프라우가 늘어놓는 쓸데없는 계획을 무시하며, 데일은 문밖에 의식을 기울였다.
마침. 밖에서 누군가 당황하는 소리와 말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왔군.”
“예?”
데일은 문으로 가 밖을 살폈다.
고급스러운 마차를 이끄는 마부가 커다란 하티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었다.
“웬 괴물이 도시에…….”
“위에서 보내서 온 것이오?”
데일이 묻자, 마부는 흠칫 놀랐다. 거대한 늑대만큼이나 데일의 모습도 만만치 않게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미리 얘기를 듣고 각오했던지라 빠르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마부는 귀족을 섬기는 사람답게 예의 바르게 말했다.
“데일 경이십니까?”
“그렇소.”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데일은 마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마부는 놀란 말들을 진정시킨 뒤, 이내 마차를 몰았다.
고급스러운 마차가 대로를 걷자, 지나다니던 행인들은 모두 길을 비켜주었다.
마부는 이런 대우가 익숙한 듯.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마차를 몰았다.
목적지는 귀족들이 모여 사는 2구역이다.
황제의 오른팔 격인 후작이 훈장을 수여할 예정이었다.
데일은 2구역의 정경을 눈에 담았다.
귀족들이 모여 사는 곳답게 확실히 깔끔하고 비싸보이는 저택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저택의 크기는 크지 않다.
카엘름 성에서 보았던 백작의 저택의 반의반도 안 되는 규모다.
‘당연한가.’
2구역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다.
살 수 있는 사람의 숫자도 정해져 있다.
저택은 자연스레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크고 웅장한 대저택이 있었다.
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후작가였다.
마부가 후작가의 정문 앞에 말을 멈추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셔야 합니다. 저택의 하인들이 안내해드릴 겁니다.”
“고맙소.”
마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마부는 괜스레 헛기침하며 말했다.
“제 일을 했을 뿐인데 고맙긴요. 괜찮다면 돌아가는 길에도 제가 모셔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저택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이미 저택 앞에는 수많은 귀족들과 그들이 타고 온 마차들로 몹시도 북적이고 있었다.
‘이게 다 귀족이라니.’
아무리 전쟁 통에 숫자가 많이 줄었다 해도, 이렇게 모아놓으니 여전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족들은 서로 얼굴을 아는지.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속내까지 즐거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데일이 있으니, 확실히 눈에 띄었다.
귀족들이 눈을 흘겼다.
“저게 그?”
“쯧. 이교도가 훈장을 수여 받다니. 세상은 변하는 법이라지만, 이번엔 조금 심하군.”
“악마라 부르기도 민망한 녀석을 운 좋게 잡아놓고 으스대려는 건가? 황제 폐하께서는 너무 자비로우셔서 문제야.”
“요즘에는 웬 괴상한 소설을 냈다지? 얼굴만 번드르르해서는.”
대부분은 데일을 적대하는 분위기다.
소설의 애독자로 보이는 몇몇 젊은 여인들이나 귀부인들은 이쪽으로 흠모의 감정을 보냈지만, 주위 분위기 탓에 다가오지 못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건 오랜만이군.’
적나라하게 쏟아지는 적의에 데일의 몸이 반응했다. 자꾸만 손이 검의 손잡이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데일은 인내심이 있는 사내다. 이 정도에 칼을 뽑았다면 진즉 도시에서 칼부림을 벌였을 것이다.
데일은 쑥덕대는 귀족들을 무시하며 검은 옷을 입은 하인에게 다가갔다.
“수여식에 참여하러 왔다.”
“아. 저택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데일은 하인을 따라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의 넓은 홀에는 바깥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귀족과 기사, 마법사, 그리고 상인들까지. 상위구역에서 힘 좀 쓰는 사람은 모두 모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교의 장이라 했던가. 왜 사서가 심드렁했는지 알 것 같군.’
저들이랑 얘기를 나누고, 인맥을 다져놓으면 분명 훗날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데일은 그러지 않았다.
귀족들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시도해봤자 성공할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저택 안으로 들어오니 데일에게 향하는 적의는 더 강해졌다.
특히, 검을 찬 기사나 귀족들은 데일에게 질투 가득한 눈빛을 보내왔다.
이유를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상위구역의 기사. 혹은 기사 지망생들은 명성과 실적을 쌓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당장 크리스틴도 데일과의 결투에 목을 매지 않았던가.
그런 와중에 웬 이교도 기사가 크리스틴을 결투로 꺾어 명성을 날리는 데다가, 악마를 토벌해 훈장까지 받는단다.
질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질투하는 기사만 있는 건 아니다. 개중에는 이 기회를 영리하게 잡으려는 이들도 있었다.
사슬 갑옷을 입은 기사가문의 자제 중 하나가 데일의 근처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우연을 가장한 척. 데일의 앞에 다리를 밀어 넣었다.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놈을 넘어트리면 가만히 안 있겠지. 그때 검을 뽑아 이 반송장 놈을 꺾는다면…… 명예는 내 차지다.’
일부러 시비를 걸어 싸움을 건 뒤, 쓰러트린다.
그렇다면 데일이 쌓아온 모든 명성은 기사에게 돌아갈 터.
높은 신분의 자제가 하기에는 지나치게 유치하고 비열한 계략이지만, 신분이 높다고 인격적으로 더 낫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사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다리를 거는 걸 넘어, 아예 발을 뻗어 데일의 정강이를 차버리려 했다.
데일은 그 움직임을 읽었다.
무릎을 오므린 뒤, 절묘하게 힘을 주었다.
깡!
기사의 쇠장화가 데일의 무릎과 부딪혔다. 강한 힘에 균형을 잃은 건 도리어 기사 쪽이었다.
“윽!”
예상치 못한 반격에 기사는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갑옷이 대리석 바닥과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에 저택 안에 한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곳으로 쏠렸다.
데일은 엉덩방아를 찧은 기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체 단련을 더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쉽게 넘어져서 어디 검이나 제대로 휘두르겠나?”
데일의 덤덤한 목소리가 정적 속에서 울려 퍼졌다.
데일은 나름의 농담과 조롱의 의미로 내뱉은 말이었다. 평소에 데일의 농담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의도가 정확히 전해졌다.
기사의 얼굴이 수치와 분노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그것도 귀족들 앞에서 체면을 구겼으니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사는 자리를 박차며 주먹을 내뻗었다.
“반송장 주제에 감히!”
데일은 그 주먹의 궤적을 읽고, 손바닥을 앞으로 펼쳤다. 그리고 주먹을 정확히 붙잡아 버렸다.
기사가 다른 주먹을 내질렀지만 이번에도 텁! 하고 붙잡아 버렸다.
졸지에 어른한테 제압당한 어린애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이를 악문 기사는 안간힘을 써서 주먹을 빼내려 했지만, 도무지 빼낼 수가 없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성장을 통해 더더욱 강해진 데일의 힘은 기사가 당해낼 수가 없었다.
결국, 기사는 마력을 끌어올려 신체를 강화하고 나서야 데일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데일이 놔준 것뿐이었지만.
“…….”
데일이 기사를 여유롭게 가지고 노는 모습에 분위기가 더욱 싸늘해졌다.
기사가 느끼는 모멸감은 더욱 커졌다.
눈을 시퍼렇게 물들이고, 온몸에 마력을 끌어오른 기사는 기어코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댔다.
“후회하게 해주마.”
데일은 기사가 검을 뽑기까지 기다렸다.
웬만하면 참아주겠다는 가란드와의 약속 때문에 참고 있었다. 하지만 검을 뽑는 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행위다.
그 순간부터는 데일 역시 거리낄 게 없었다.
그렇게 기사가 검을 뽑고, 곧장 휘두르려던 그 순간.
어디선가 뻗어온 손이 기사의 손을 붙잡았다.
“거기까지만 하게. 죽을 걸세.”
“넌 또 뭔데…….”
분노한 기사는 뻗어온 손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뜨겁게 달아오른 피가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었다. 그의 표정에서는 핏기가 가셔 하얗게 질려버렸다.
마치 사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다.
아니. 어쩌면 눈앞의 존재가 사신보다 더 두려운 대상일 수도 있다.
기사가 자기 앞에 선 노인을 보며 외쳤다.
“기, 기사단장!”
그곳에 서 있는 건 황실 기사단장이었다. 그는 오싹할 정도로 딱딱 끊어지는 발음으로 말했다.
“그 검. 뽑으면 죽을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