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98)
흑기사
* * *
언데드 무리를 맞서서 사람들은 용맹히도 싸웠다.
사병이든 마을 주민이든,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애든. 어떻게든 언데드를 막기 위해 한 손을 거들어야 했다.
그리고 위협이 사라진 지금.
사람들은 모두 피곤에 절어 곯아떨어졌다.
마을은 잠에 빠졌다. 적막이 주위에 내려앉았다.
이따금 코 고는 소리나 숲에서 올빼미 우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잠을 이루지 못한 건 데일뿐이다.
사람들에게 집을 양보해준 데일은 집 바깥의 벽에 기대, 멍하니 달을 쳐다보았다.
옆에서는 웅크려 잠든 하티가 고롱고롱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데일은 그런 하티의 갈기를 한차례 쓸어준 뒤, 눈을 감았다.
이 기나긴 밤을 보내려면 역시 과거를 곱씹는 것밖에 없다.
데일은 이전의 기억들을 되새겼다. 소중했던 그 순간들을.
어느새 기억들은 현실처럼 생생해졌고, 데일은 꿈을 꾸었다.
기억 속 조부는 보육원의 마당 한편에 마련된 평상에 앉아, 아이들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쌀쌀한 겨울에 이르렀는데도 씩씩하게 공을 차고 있었다.
보온병에서 따뜻한 차를 따라 홀짝이던 조부가 말했다.
“언젠가 네가 먼 곳으로 떠나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아마 데일의 진로에 대해 얘기하다 나온 말이었을 거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부가 이어 말했다.
“하지만 늘 잊지 말거라. 네게는 돌아올 집이 있다는걸.”
“돌아올 집이요?”
“이곳 말이다.”
조부는 선하게 웃었다. 깊게 패인 주름에서는 인자함이 묻어나왔다.
데일은 물었다.
이곳은 보육원이고, 조부와 데일이 둘이서 사는 집은 따로 있지 않냐고.
조부는 말했다.
“이놈아. 가족들이 있는 곳이 집이지. 안 그러냐?”
데일은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족이라. 확실히 이제는 아이들이 데일에게도 가족 같은 존재가 되긴 했다.
조부를 쫓아 맺어진 인연이라 하나, 이제는 정이 너무 들어버린 것이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를 가게 되든, 이곳. 그러니까,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겠다 약속했다.
‘돌아가야 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조부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 * *
부산스러운 소리에 데일은 눈을 떴다.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겨울의 해는 늦게 떠오르는 법이니, 제법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마을의 마당에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데일이 일어서자 하켄이 인사를 해왔다.
“아. 일어나셨어요?”
“그래.”
“근데, 방금 혹시 자고 있던 건가요? 저는 흑기사는 잠을 잘 수 없다고 들었는데…….”
“잔 거 아니다. 그냥, 꿈을 좀 꿨을 뿐이다.”
잠은 안 자고 꿈을 꾸다니? 하켄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훌렁 털어버렸다.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굳이 캐묻지 않는 게 하켄의 장점이었다.
“뭘 하고 있었나?”
“아. 일단 여자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요, 저희는 뒤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소한 냄새가 난다.
간밤의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돼지 몇 마리를 잡아 통째로 굽고 있었다.
마을의 바깥에서는 조각나고 말라비틀어진 언데드 시체를 한데 모아, 에스델이 신성력을 흩뿌리고 있었다.
혹여나 저 시체가 주위에 나쁜 영향을 끼쳐 또 다른 언데드가 일어서는 것을 방지하는 작업이다.
다른 주민들은 부서진 목책을 수리하고 있었다.
오우거가 요란하게 박살을 내버려서 절반 정도는 새로 지어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있었다.
“오우거 놈이 나무를 막 던져댔잖아요? 그래서 재료가 부족하지는 않다네요.”
하켄의 말대로. 오우거가 던진 나무를 장정 여럿이 낑낑대고 들어올리려 했다.
“그 괴물놈은 쉽게쉽게 들어서 우습게 봤는데…….”
“아이고 허리야. 이거 생각보다 더 무거운데?”
나무를 드는 주민들이 앓는 소리를 하던 순간.
갑자기 손에 전해지는 무게가 가벼워졌다.
주민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고, 나무를 든 데일을 발견했다.
“어. 음.”
“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분명, 이 근방에 퍼지는 검은 사신에 대한 소문 때문에 주민들은 과할 정도로 흑기사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데일이 그들이 알던 흑기사와는 다르다는 걸 안다.
지난밤의 전투에서 데일이 없었다면, 그들 역시 죽어서 언데드 무리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렇게 난감한 침묵이 계속되던 그때. 데일이 툭 뱉었다.
“은근슬쩍 팔 내리지 마라.”
“아, 죄, 죄송합니다.”
주민들은 서둘러 손을 들어 나무를 함께 잡았다.
여럿이 드니 아무리 무거운 나무줄기라도 거뜬히 들어낼 수 있었다.
절반 이상은 데일 덕분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데일과 주민들은 주위에 널브러진 나무를 모아 땅에 단단히 박았다.
그리고 끈을 이용해 다른 나무들을 요령 좋게 묶어놓았다.
목책을 이전과 상태로 복구하는데에는 불과 얼마 걸리지 않았다.
조잡할지언정 튼튼한 나무 성벽.
겨우내 굶주린 짐승이 마을을 어슬렁거려도, 굳건히 방어해줄 것이다.
다시 세워진 목책을 보며 촌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주름진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한참을 그러고 서 있던 촌장은 데일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언데드 무리가 왔을때만 해도, 다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터전이 제 대에서 끊기는 줄 알았습니다.”
“별거 아니오. 내 의뢰주는 에른스트이니, 그에게나 감사하시오.”
용병의 활약은 곧 의뢰주의 성과.
데일은 용병으로서의 미덕을 보였지만, 데일이 단순한 용병이 아니라는 건 촌장도 알았다.
그는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주머니를 하나 내밀었다.
“꼭 받아 주십시오. 저희 성의입니다.”
전날. 시종이 촌장에게 건넸던 돈의 대부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액수가 그리 크지도 않았고, 이걸 데일이 받으면 또 그림이 이상해진다.
데일은 거절했다.
“됐소. 겨울이 길 테니, 주민들과 함께 나눠 쓰시오.”
“허어……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크게 감동한 촌장이 물었다.
“그러면 존함이라도 알려주시죠. 누가 마을을 지켜냈는지, 저희 후손들에게도 알리겠습니다.”
데일은 그러지 말라고 거절하려다 말았다.
‘어차피 금방 잊겠지.’
원한은 쉬이 잊히지 않지만, 고마움은 금방 휘발되기 마련이다.
후손들에게 말해준다는 것도 그냥 고마우니까 하는 말이리라.
그때, 요리가 모두 준비되었다.
사람들은 공터에 모여 잘 구워진 돼지고기를 나눠 먹기 시작했다.
마을을 구해주었기에, 주민들은 에른스트와 사병들에게 친절히 대했다. 음식과 술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주민들은 마을에서 도망치지 않은 것에 대해 에른스트를 칭송했다.
그리고 저 혼자 도망치려던 오만하고 뚱뚱한 이고르를 욕해댔다.
에른스트는 한껏 기쁜 얼굴로 그 칭송을 즐겼다.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어! 사람들을 지켜냄으로써 얻는 기쁨은,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가 없구나!”
그런 에른스트에게 눈치를 보던 사병들이 다가갔다.
에른스트의 사병이 아닌, 이고르의 사병이다.
“저. 에른스트 님.”
“음?”
이고르의 사병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저희를 받아주십시오!”
“뭐라고?”
대표로 보이는 사병이 바닥에 머리를 쿵! 찧으며 말했다.
“에른스트 님의 약자를 아끼는 그 마음! 그리고 언데드를 앞두고도 도망치지 않는 용기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지금껏 섬겼던 이고르 같은 작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훌륭한 분을 이제야 만나게 되다니…… 에른스트 님과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부디 거둬주십시오!”
“주십시오!”
무릎 꿇은 사병들은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데일과 하켄은 그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생각이야 알 만하다.
‘다급하군.’
저들은 주인인 이고르와 시종을 잃고 말았다. 심지어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가문의 사병이자, 호위 임무를 맡은 자로서는 최악의 실책.
이고르의 가문으로 돌아가봤자 남은 건 엄중한 처벌뿐이다.
‘재수 없으면 목이 잘려도 안 이상한데.’
그럴 바에야 새 주인을 찾는 게 나았다.
이고르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에른스트라면 그 주인으로서 적당했다.
아니. 그밖에 선택지는 없었다.
‘감명을 받았다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
지켜보던 사람들도 다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는 바로 에른스트였다.
“내 용기에 감명을 받았다니…… 큼큼. 좋아. 어쩔 수 없지.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겠어. 앞으로 더 열심히 하도록!”
기분이 좋은지, 에른스트는 입꼬리를 연신 씰룩였다.
그러고는 못 이기는 척 그들의 합류를 받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에른스트의 아랫사람이 된 사병들은 냉큼 엎드렸다.
그 모습에 에스델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의인에게는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말이 있죠. 정말 보기 좋은 광경이네요. 그렇죠?”
“사제 양반…… 아니. 됐다.”
무어라 설명해주려던 하켄은 그만두었다.
꼭 모두가 진실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닌 법이니.
이렇게 이고르의 사병 25명이 아군에 합류하게 되었다.
부서진 마차를 제외하면, 마차는 3대가 더 추가되었다.
‘총 40명에 마차만 6대 규모인가?’
순식간에 몸집이 몇 배는 늘어났다.
이 정도 전력이면 그래도 어디 가서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데일이 에른스트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생각이지?”
에른스트는 한 점 고민 없이 답했다.
“어쩌긴. 계속 북쪽으로 가야지.”
“오우거를 봤을 텐데. 생각보다 강한 언데드가 일어서고 있다.”
지금은 몬스터들이 산에서 내려와 활보하는 시기다.
그만큼 몬스터의 사체도 많을 것이고, 오우거 못지않은 강력한 언데드도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에른스트는 단호히 말했다.
“그래.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물러서면 안 되는 거야.”
데일은 에른스트의 눈을 보았다. 희망과 의지로 가득 찬 눈빛을.
에른스트의 이상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에 실패해야 했을지도.’
만약 언데드 오우거라는 불행을 맞닥 뜨려 부하를 잃고, 생명의 위기를 느꼈다면.
그랬다면 에른스트는 자기가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깨닫고, 돌아가기로 마음먹지 않았을까?
데일이 없었다면, 적어도 오늘의 기적 같은 승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단한 승리가 에른스트의 의지에 불을 붙이고, 도리어 그를 더욱 위험한 장소로 내몰고 있었다.
‘…….’
고민하던 데일은 상념을 털어냈다.
이제 와서 말리는 것도 우습다.
게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왠지 이놈. 운이 따라주는 것 같기도.’
데일이 의뢰에 참여한 것도 에른스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고, 이번에 이고르의 사병들이 합류한 것도 운이 좋았다 볼 수 있다.
묘하게 운이 따르는 놈이다.
그리고 운 좋은 놈은 오래 살기 마련.
데일은 이 순진한 청년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계속 지켜보고 싶어졌다.
* * *
이레네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용뼈 산맥이 나온다.
용뼈 산맥의 산악지대와 고원지대는 하이 엘프의 터전이다.
몬스터가 득시글거리며 위대한 자연과 매 순간 투쟁해야 하는 험지.
전사들의 땅.
강인한 엘프들이 아니라면 살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 용뼈 산맥의 동쪽으로는 1군단이 있다.
천혜의 요새를 등지고 선 1군단은 그 규모는 다른 3개의 군단에 비해 가장 작지만, 여태껏 악마에게 단 한 번도 함락당한 적이 없는 곳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1군단에는 강인하고 경험 많은 전사들이 가득하다고. 그래서 적은 숫자로 굳건히 수비해내는 거라고.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악마와 괴물들이 굳이 추운 북부를 공격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그 흑기사 놈은 정황상 1군단에서 용뼈 산맥을 넘어, 이곳 서북부까지 왔을 것이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소.”
서북부의 평원에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북부로 달려온 성미 급한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적당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언데드를 토벌한 뒤, 그 공적을 가지고 도시로 돌아가면 친위대의 한 자리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분주히 움직이며 몬스터와 언데드를 사냥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번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신중하거나 겁이 많은 귀족들은 뒤로 내뺐다.
하지만 몇몇 영민한 이들은 싸움을 멈추고, 다른 귀족들과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곳 ‘일곱 가문 동맹’ 역시 마찬가지다.
일곱 개의 가문이 모인 이 동맹은 이번 일의 원흉이 ‘검은 사신’이라는 별명의 흑기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놈의 이동 경로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소. 술 취한 부랑아처럼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긴 해도, 결국에는 서북부 쪽으로 계속 이동하더군. 그리고 내 예상대로라면…….”
“반드시 이 평원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군. 맞소?”
지도를 들고 열심히 설명하던 귀족은 갑작스럽게 끼어든 젊은 기사 탓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헛기침을 불쾌함을 표현한 뒤, 말했다.
“큼. 맞소. 이곳을 지키고 있으면 그놈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오.”
다른 귀족이 물었다.
“그러면 도시에 가 지원을 요청하는 게 낫지 않겠나? 듣기로는 꽤 강력한 놈이라는데.”
귀족은 코웃음 쳤다.
“그렇게 되면 공적을 나눠야 하지 않소. 만약 뒤늦게 와 숟가락이나 올린 놈들이 친위대의 단장 자리를 요구한다면, 나는 화나서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오.”
“그건 그렇군.”
“그리고 이곳에는 무려 일곱 가문이 모였소. 용감한 기사와 병사가 백을 거뜬히 넘어가오. 설마 겨우 언데드 따위에 겁을 먹은 것이오?”
“그, 그럴 리가! 나를 모욕하지 마시오!”
상대가 발끈하자, 귀족은 그를 달래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지, 모욕할 생각은 없었소. 다들 생각해보시오. 이번 일만 잘 해결한다면, 여기 있는 일곱 가문에서 친위대의 주요 자리를 다 꿰찰 수 있소. 단장이든 부단장이든 뭐든 다 우리 것이란 말이오! 그러면 우리는 이레네의 새로운 강자가 될 것이오!”
사방에서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귀족들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하지만 이들이 이 급조된 동맹에 동료 의식을 느끼는 건 절대 아니었다.
‘싸울 때 적당히 뒤통수쳐서…….’
‘중요한 공만 가로채면 된다. 어떻게든 단장 자리는 내가 가져야 해.’
‘일곱 가문에서 다 꿰찬다고? 내가 왜? 내가 다 먹을 수 있는데.’
각자 시커먼 속내를 숨기며, 귀족들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그때.
밖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왔습니다! 놈이 왔습니다!”
퍼뜩 고개를 든 귀족들은 화색을 띠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흑기사를 사냥해 친위대의 단장 자리를 따낼 수 있는 기회를.
귀족들은 행여나 다른 귀족들이 앞서 돌격할까 싶어, 앞다투어 막사를 나섰다.
보고한 병사의 말대로 저 평원 너머에서 검은 갑주의 기사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제법 먼 거리였지만, 등에 멘 무식하게 커다란 대검이 선명히 보였다.
흑기사의 뒤쪽으로는 많은 수의 언데드 무리가 뒤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그런 잔챙이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흑기사와 언데드 무리 사이에 거리가 있는 데다, 이곳에는 마탑의 마법사가 있었으니까.
귀족이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던 평범한 인상의 마법사에게 말했다.
“한스 공. 부탁하오. 우리들이 흑기사를 상대할 동안, 그대가 잔챙이들을 쓸어버리시오.”
“아. 음. 넵. 알겠습니다.”
다시 고개를 돌린 귀족이 크게 외쳤다.
“자! 때가 왔소! 영광스러운 선봉은 나와 내 병사들이 맡겠소!”
귀족은 냉큼 말에 올라타 앞서나갔다.
“아앗! 얘기가 다르지 않소!”
그걸 시작으로 다른 귀족과 기사.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은 흑기사를 향해 돌진했다.
다음 날.
일곱 가문 동맹이 전멸했다는 소식이 도시에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