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99)
흑기사
* * *
여섯 대의 마차는 북쪽으로 더 이동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대부분의 경쟁자가 북쪽으로 올라간 것일까?
아니면 덩치가 커지니까 더는 건드리지 않는 것일까.
데일 일행은 습격받는 일 없이 순조롭게 이동했다.
그리고 닷새 뒤. 목적했던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엘드리엄.
서북부에서는 가장 규모 있는 도시로, 용뼈 산맥에서 나오는 몬스터 부산물과 광석. 희귀 약초 따위를 팔아 성세를 이룬 도시다.
엘드리엄은 용뼈 산맥에서 몬스터가 내려오는 걸 감시하는 목적도 겸하는데, 그래서인지 유독 높고 단단한 성벽을 가졌다.
일행은 성문 쪽으로 다가갔다.
두터운 모피 옷을 껴입은 경비병이 나는 듯한 발걸음으로 마차에 다가왔다.
“멈춰라.”
딱딱한 말투에 시종이 인상을 찌푸렸다.
“뻔히 가문의 문양을 봤으면 그에 걸맞는 예의를 갖춰야…… 엇.”
말을 이으려던 시종은 경비병과 눈이 마주쳤다.
날카롭게 빛나는 회색 눈동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되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 뾰족한 귀.
“고, 고산 엘프?”
고산 엘프. 다른 말로는 하이엘프가 당당히 경비병으로 일하고 있었다.
엘프라는 말을 들은 데일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냐.”
엘프와 데일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데일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엘프가 물었다.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니다.”
데일은 자리에 도로 주저앉았다.
다시 정신 차린 시종은 급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일행은 이레네에서 왔으며, 서북부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고 전했다.
앞서 말한 무례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하이 엘프에게 그런 걸 바라는 건 미련한 짓이니까.
“그렇군. 너희들도 황제의 시험인지 뭔지를 치르러 온 귀족들인가.”
“그래. 들여보내 주겠나?”
엘프가 턱짓했다.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너희도 목숨을 조심해라. 이미 많이 죽었다. 시체를 치우는 건 귀찮다.”
“뭐?”
“그리고 거기 너. 이름이 뭐지?”
엘프는 데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데일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네가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엘프 경비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는 강한 전사다. 나중에 찾아가겠다. 결투할 준비를 해라.”
그러고는 이견은 받지 않겠다는 듯.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손에 들고 있는 창끝이 북부의 햇빛을 받아 서늘한 예기를 뿜어냈다.
데일은 그런 엘프를 깔끔히 무시해버렸다.
하켄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하. 엘드리엄은 예전부터 하이엘프랑 왕래가 잦았다고 하더니, 설마 경비병으로 엘프를 세워뒀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그럼 도시 안에는 귀쟁이가 더 있다는 말인가?”
“음. 그렇겠죠?”
데일은 벌써 이 도시가 싫어졌다.
하지만 에른스트와 시종이 심각하게 여긴 부분은 다른 곳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죠? 엘프가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앞서 왔던 귀족들이 많이 죽었다는 건가?”
경비병이 말할 정도면 꽤나 많은 숫자가 죽은 모양이다.
일행은 귀족들끼리 서로 싸우다 피해가 커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일단 정보부터 모아야겠군. 그전에 일단 숙소를 잡고.”
데일의 제안에 다들 동의했다.
마을을 떠난 이후로는 다시 노숙과 야영을 반복하는 나날들이었다.
노숙이라는 건 안 그래도 체력을 갉아먹는 짓인데, 초겨울에 들어선 북부는 춥기까지 하다.
뼛속까지 침투하는 냉기에 다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특히 노숙에 익숙하지 않은 에른스트는 반쯤 기절한 상태였다.
그나마 멀쩡한 시종이 말했다.
“숙소를 잡죠. 도련님과 다른 분들은 쉬고 계세요. 제가 정보를 좀 모아오겠습니다.”
숙소를 잡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도시에 찾아온 귀족들이 많아서인지, 엘드리엄은 때아닌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험을 치르고 오겠다는 인간들이 대체 왜 다 도시에 틀어박혀 있는 거야.”
에른스트는 그렇게 불평해댔다.
결국, 도시에서 조금 외진 곳에 가고 나서야 겨우겨우 방을 구할 수 있었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아. 좀 쉬고 싶어.”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에른스트에게 시종이 말했다.
“편히 쉬고 계세요. 저는 우선 용병 길드로 가보겠습니다. 정보를 모으는 데에는 거기만 한 데가 없으니까요.”
“나도 가겠다.”
“예? 굳이 안 그러셔도 됩니다.”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데일은 무한한 체력을 지니고 있다. 피곤하다는 감각도 없다.
굳이 숙소에서 시간을 죽일 필요는 없다.
시종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음.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혼자 돌아다니는 게 겁이 나던 참입니다. 북부 사람들은 성질이 거치니까요.”
에스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그럼 교단에 한번 들러보겠습니다. 언데드를 퇴치하기 위해 지원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자 죽은 듯 흐느적거리던 에른스트가 눈을 번쩍 뜨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예? 갑자기요?”
“연약한 여인을 혼자서 돌아다니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근데 방금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고…….”
에른스트는 억지로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하하. 쉬고 싶다니요. 저는 지금도 쌩쌩합니다.”
“으음…….”
에스델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에른스트와 둘이서 함께하는 게 썩 내키지 않는 듯했다.
에스델이 데일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냈다. 데일은 하켄의 등을 앞으로 툭 밀쳤다.
“하켄이 에스델과 함께할 거다.”
“예? 제가요? 저도 쉬고 싶은…….”
하켄은 데일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당연히 가야죠. 음! 신앙심 깊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저 아닙니까?”
“아.”
명백히 거절당한 에른스트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내렸다.
그 틈을 타 일행이 재빨리 숙소를 나섰다.
피곤해 죽겠는데, 교단에 따라가게 된 하켄이 툴툴거렸다.
“사제 양반도 그냥 저 도련님이랑 같이 가면 되지. 좀 어벙해 보이는 구석은 있어도, 사람은 착해보이는데.”
에스델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예전부터 저에게 과한 호의를 보이는 남성분들 탓에 곤란했던 적이 많아서…… 일부러 거리를 두게 되더군요.”
“쳇. 배부른 소리하네. 난 여자들이 달라붙어 오면 가리지 않고 다 받아줄 건데.”
“그러니까 하켄이 안 되는 겁니다.”
“……방금 뭔가 엄청 심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에스델은 모른 척, 데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늦지 않게 다시 숙소로 모이는 것으로 하죠.”
“해가 지기 전까지는 돌아가겠다.”
에스델과 하켄이 멀어졌다.
데일은 뒤늦게 나온 시종에게 말했다.
“길을 안내해라.”
“아. 따라오세요. 안 그래도 여관 주인에게 용병 길드 위치를 물어본 참이었습니다.”
시종은 씩씩하게 앞장섰다.
여정 내내 에른스트의 수발을 들랴, 잡일을 하랴 바쁜 시종이다.
다른 그 누구보다 피곤하고 지쳤을 것이다.
하지만 시종은 그런 내색은 일절 하지 않았다.
데일은 새삼 이 시종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유능한데.’
여정의 처음부터 한 생각이었다.
다른 시종들과의 경쟁에서 기어코 데일을 쟁취해낸 것도 그렇고, 에른스트를 보좌하는 것도 그렇고.
상당히 유능한 사람이었다.
데일이 물었다.
“힘들지 않나?”
“예? 뭐가요?”
“에른스트를 섬기는 거 말이다.”
“으흠. 뭐.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가끔 쥐어박고 싶어질 때도 있고요.”
시종은 놀랄 만큼 솔직하게 말했다.
웃지도 않는 게, 농담이 아니라 순수한 진심 같았다.
하지만 시종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도련님이 좋습니다. 도련님이 바라시는 그런 꿈들. 멋있잖아요? 설령 순진한 꿈이라 해도, 그런 멋진 꿈을 옆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흠.”
“왜 그러십니까?”
데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에른스트가 운이 좋다는 생각이 새삼 떠올랐다.”
“하하. 도련님이 여러모로 운 좋게 태어난 건 맞죠. 별 어려움 없이 자랐으니, 여전히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종 같은 사람이 옆에서 함께한다는 건 큰 축복일 것이다.
에른스트에게는 복이 있었다. 사람이 알아서 모여드는 복이.
그렇게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금방 길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용병 길드 엘드리엄 지부.
엘드리엄은 용뼈 산맥에서 내려오는 몬스터 때문에 용병 수요가 많은 도시다.
이레네 지부만큼은 아니어도, 엘드리엄 지부는 꽤나 성세를 자랑했다.
시종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에는 험상궂은 인상들의 용병이 서성이고 있었다.
과연 북부 사내들답게 눈썹이 부리부리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시종이 들어서자 일제히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대놓고 무시하는 눈빛으로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뭐야 저 비쩍 마른 놈은.”
“꼴에 검사라고 검을 차고 있는데.”
강자를 동경하는 게 용병의 습성이라지만, 북부에서는 좀 더 심하다.
약해 보이면 무시 받는다.
뒤이어 데일이 들어오자, 길드 내부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용병들이 당황해 중얼거렸다.
“흑기사.”
“검은 사신? 아니. 아니지. 상식적으로 검은 사신이 도시 안에 있을 리가.”
“그렇다면…….”
한 용병이 깨달았다는, 크게 외쳤다.
“데일! 악마를 죽였다는 흑기사 데일이다!”
놀라울 거 없는 일이지만 데일의 명성은 이곳 북부에까지 전해졌다.
다시 말하지만. 북부의 용병들은 강자를 동경한다.
그들은 시종을 휙 밀친 뒤 앞다투어 다가왔다.
“만나서 영광이오!”
“이 먼 북쪽까지는 무슨 일이신가요.”
“같이 용뼈 산맥에 몬스터 사냥이라도 가시겠습니까? 산맥 지리에 저만큼 밝은 건, 엘프들 정도밖에 없을 겁니다.”
이 느닷없는 환영에 데일은 한숨을 삼켰다.
‘사람들이 적당히라는 게 없군.’
겁에 질려 도망가거나, 부담스러운 호의를 가지며 다가오거나.
흑기사가 되고 나서 받는 취급이란 건 늘 이런 식으로 극단적이다.
그래도 전자보다 후자가 낫다면 나았지만.
“다들 비켜라. 급한 일이 있다.”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데일의 말에도 용병들은 군말 없이 물러났다.
이들에게 힘 있는 자의 말은 법과도 같았다.
데일은 용병들에게 치여 황망히 앉아 있던 시종을 번쩍 일으켜 세웠다.
시종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인기가 많으시군요.”
“그러게 말이다. 가자.”
데일 덕분에 훤히 뚫린 길을 따라 둘은 접수대로 향했다.
접수대에 데일은 용병패를 내밀며 말했다.
“정보를 좀 얻고 싶다.”
“동패 용병 데일인가? 확인했다.”
젊은 여인들이 접수대를 맡는 이레네와 달리, 이곳의 접수대에는 근육이 우락부락한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서류 작업과는 영 관련이 없어 보이는 외형.
직원은 데일을 흥미 깊은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무엇을 알고 싶은 거지?”
“최근 귀족들이 이 도시에 많이 왔지 않나?”
“많이 왔지.”
“경비를 서는 귀쟁이가 말하길, 귀족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
“아. 일곱 가문 동맹인지 하는 놈들이 검은 사신에게 몰살당한 일을 말하는 거군.”
“검은 사신?”
데일이 되묻자 직원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요즘 여러모로 골머리를 썩게 하는 놈이지.”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다.”
“얘기해주는 거야 어려울 건 없지만…… 아무래도 싸움에 참가한 사람한테 직접 듣는 게 좋지 않겠어?”
직원은 길드의 출입구를 가리켰다.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이 깨금발로 서서, 살금살금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직원이 눈짓하자 용병들이 출입구를 막아섰다.
“흑기사와 전투에 참여했던 마법사다. 혼자서만 살아 돌아온 게 수상해 조사하고 있었지.”
“마법사?”
용병들이 도망치려는 마법사를 번쩍 들어 이쪽으로 다가왔다.
대롱대롱 매달린 마법사가 머리를 덮은 로브를 슬쩍 들며 멋쩍게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근데 이 마법사.
어째 낯이 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