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
Chapter 0 – 억제기가 깨진 날
뚜벅 뚜벅.
규칙적으로 복도에 울려오는 딱딱한 구두소리. 아카데미를 떠나는 날이 되었음에도 동요의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런 일이 내게 벌어졌구나.
타인의 일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느낌. 누군가는 현실도피라고 할 수 있겠으나 진심으로 그 정도 감상 이외의 것은 없었다.
길게 늘어진 복도 끝, 현관 입구에서 팔짱을 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여인.
세련되게 뻗어진 금발, 끝부분을 꽁지로 묶어 어깨 위에 올리자 가슴부근까지 내려온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은 그녀의 미모를 더욱 빛내기 위한 조명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에리카 브라이트.”
토해내듯 뱉어낸 그녀의 이름. 에리카는 조소에 가까운 비틀어진 미소를 입가에 내걸며 팔짱을 꼈다.
“기분이 어때?”
“흠.”
어떤 대답을 해줘야 그녀가 만족할까. 조금 고민되었으나 에리카는 팔짱을 낀 상태로 손가락을 톡톡 두들기며 말을 가로챘다.
“아카데미에서 짤리게 된 소감이 어떻냐고. 그것도 네 약혼녀 때문에.”
“그래, 그거 말이지.”
미안하다.
감정이 옅게 마모되어 있다 보니 그렇게 간드러진 묘사는 힘들겠으나.
“후련하군.”
나는 살짝 웃으며 그리 말해주었다.
까득.
입술을 비틀고, 뜨거운 숨을 짓이기며 이빨을 깨무는 에리카.
“웃을 줄도 알았구나?”
“…….”
“좀 웃어봐, 앞으로도. 그러면 나 같은 년한테 배신당할 일도 없었을 수도 있겠지.”
팔짱을 풀며 주먹을 쥔 채로 나를 스쳐가는 에리카. 싱그러운 오렌지향이 코를 적잖이 스치고 지나간다.
“꺼져. 앞으로 영원히 내 인생에 들어오지 말아줘.”
등을 돌린 채로 떠나가는 에리카를 잠시 눈에 담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하지.”
뚜벅 뚜벅.
다시금 평소와 다름없는 구두소리와 함께 아카데미 밖으로 나선다.
아직 방학 기간이라서 그런지 아카데미는 차분하리만치 고요했다.
천천히 몸을 돌려 멍하니 아카데미를 바라본다.
거대한 아카데미 사이를 헤집으며 돌아다니고 있는 수십, 수백의 악귀들.
그들은 일제히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낄낄 거리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눈깔을 파먹어야 했는데! 네놈의 탐스러운 검은 눈동자를 내 눈에 끼워야 했는데!] [언젠가 네놈의 사지를 잘라, 와인처럼 피를 따라 마시리라!] [자유다! 자유! 자유라고오오!] [키히히히!] [여섯 손으로 네놈의 내장을 파서, 아홉 개의 입에 집어넣은 후, 백여든 개의 이빨로 씹어 먹으리라!] [이곳은 이제 귀신의 처소가 되리라, 망자의 쉼터가 되리라!]“애처로운 장소다.”
게임 ‘리트라이’의 무대인 로베른 아카데미. 게임 속 주인공과 주연, 조연들이 힘을 합쳐서 싸워 나가는 장소.
안타깝게도 로베른에는 과할 정도로 유령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죽어서 이름 없이 묻혀나간 자들의 공동묘지 위에 지어진 장소였으니까.
듣기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미래를 향한 발판이자 초석이 되는 상징성을 가지는 건물이라고 하지만.
“쯧.”
아직 게임 메인스토리도 시작되지 않은 시점.
내가 저 악령들을 막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떠올리며 혀가 차진다.
“되었다.”
악령들의 저주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는 법이다.”
아카데미 정문을 밟고 나서자, 뒤에서는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악령들의 비명과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내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딱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악령들의 억제기가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