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36)
Chapter 135 – 135. 역린
잠깐의 대치 상황.
타오르는 불길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전투의 날카로운 소음.
불길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 나와 발크자르는 서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나를 향해 창을 내지를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지만 막상 행동으로는 실행하지 못했는데.
발크자르의 어깨와 등 뒤에 있는 조상들이 도망치듯 떠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안함.
불길함.
자신의 손안에 담겨 있던 힘이 흐트러지듯 사라지기 시작한 것에 대전사는 당황하고 있었다.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던 강대한 힘이 막상 사라지기 시작하니 대전사도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그가 당황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대화를 시도했다.
발크자르가 아니라, 그 너머.
“대삼림의 붉은 독수리시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면서 대전사에게 힘을 주고 있는 수호신을 향해.
“어찌하여 자신의 보금자리를 버리고, 이리 행차하셔 고난을 겪으십니까.”
“네놈, 감히 누구에게……!”
[그만.]하늘에서 울리는 듯한 진득한 목소리.
묵직하게 전신에 퍼지며, 전격처럼 따끔하게 피부를 아려오던 산군의 위엄과는 다른 느낌.
미형의 남성에게서 나올 법한 목소리였으나 그 내면의 열기는 인간의 것으로 볼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추악한 자리에 있기에 가장 고결한 자여.]“……!”
나를 향한 호루아의 평가는 생각 이상으로 후했으며, 그걸 들은 발크자르의 눈동자도 흔들리듯 떨려왔다.
[그대의 행위는 내게도 닿았다. 왕국의 신민은 자네라는 존재 덕분에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군.]“과찬이십니다.”
산군과 마찬가지로 호루아도 나를 향해서는 꽤나 호의적인 반응.
설득을 통해 대전사에게서 호루아의 힘마저 빼앗아 올 수 있다면 사실상 전투는 쉽게 끝나겠다고 판단했지만.
‘그건 힘들겠군.’
이렇게 대화하는 와중에도 발크자르의 붉은 날개는 찬란하니 타오르고 있었다.
물러섬은 없다는 방증이었다.
[허나, 그대의 위로가 내게 통용될 거라 생각지 말라.]“…….”
[그대의 고결함은 위대하나, 어리석구나. 모두를 품길 바라 악마조차 그 안에 담았는가.]“벨리카는 그리 쉽사리 정의할 수 있는 악마가 아닙니다. 명색이 기형의 대악마니까요.”
악마로서의 자질조차 기이하게 뒤틀렸다 스스로 일컫던 벨리카.
산군은 나를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대악마를 보며 눈을 감아줬지만, 호루아는 그렇지 않았다.
[그 더러워진 손을 내게 뻗지 말라. 그대의 위로는 필요 없다.]“…….”
명백한 거절의 의사.
호루아가 어째서 대전사에게 힘을 빌려주는지도 알려주지 않겠다는 확언.
오히려 이 대화에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발크자르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창을 쥔 자세를 고쳤고.
단 한 번의 펄럭임만으로 억센 바람 소리와 함께 압도적인 속도를 보여줬으나.
콰득! 콰득!
“이, 건…….”
“우리에게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위협적으로 찌르고 들어오던 발크자르의 창끝은 내게 닿지 못했다.
치고 나오던 그의 발목을 붙잡은 수백의 손길.
전부 학살당한 왕국민의 것이었다.
“서로 날뛸 수 있는 장소가 같다는 것 정도겠지.”
대전사인 그가 가장 활약할 수 있는 장소는 당연히 전장이다. 그는 화려하게 전장을 누비며 적들을 유린하고, 목을 베어 넘기며, 전장의 향기에 취한다.
반대로 나 역시.
수많은 망자들이 만들어진 전장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는 잠들어 있는 성녀와 대악마를 두려워 했지만.
잘 자고 있는 두 사람을 굳이 깨울 필요도 없을 정도로 완벽한 무대였다.
품에서 레메게톤을 꺼내 든다.
확실한 힘의 격차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에.
레메게톤에서 길게 뻗어 퍼지기 시작한 검은 파동.
하늘이 요동치며, 대지가 울기 시작한다.
[끄아아아아!] [어째서! 어째서!] [엄마아아아아아아!]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을 학살하고 다녔다는 소리는.
목숨의 무게를 그만큼 가볍게 여겼다는 소리였으며, 그 책임을 짊어지겠다는 뜻이겠지.
쏟아지는 망령들.
죽었던 자들의 울음소리와 비명, 살고 싶었다며 미련을 토해내는 망자들.
“허.”
“이렇게까지.”
“아, 신이시여.”
하늘을 가리는 구름처럼, 대지에 피어오르는 새싹처럼.
끊임없이 솟아 올라오는 실체화된 망자들을 바라보며, 뒤에 있던 핀덴아이와 글로리아가 탄성을 내뱉었고.
루치아는 조심스레 무릎을 꿇으며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이 모든 원망의 표적이 된 대전사.
그는 진땀을 흘리며, 침을 꿀꺽 삼킨다. 주변의 압도적인 망자의 숫자 앞에 창을 쥐고 있는 손에서 힘이 서서히 풀리는 게 보였다.
“죽음의 무게조차 모르는구나.”
그와 반대로.
레메게톤을 쥐고 있는 내 손은 더욱 힘이 들어갔다.
감정이 옅으나.
지금의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난 분노하고 있었다.
화산처럼 터져오를 듯한 그런 분노가 아니라, 한겨울의 빙판처럼 날카롭고 차갑게 서리 내린 분노.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마음에 안 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네놈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자신을 죽인 대전사를 향해 날아드는 영혼들.
“끄! 아아악!”
창을 휘두르며 어떻게든 발악을 해본다. 그와 함께하던 선조들의 영혼이 대전사를 지켜보려 하지만 역부족.
결국 영혼에 파묻히며 손만 하나 삐죽 나와 있는 대전사를 향해 따지듯 말했다.
“세티마의 주민들을 위한다는 이름을 내걸었으면, 적어도 그들을 위한다는 한마디 정도는 했어야지.”
대족장의 죽음과 세티마 주민들의 학살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전쟁을 벌였으면.
적어도 그들에 관해서 잠깐이라도 입에 담아야 했다.
그랬다면 일말의 자비 정도는 내가 비췄을 텐데.
“그들을 도구로 사용한 건, 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장을 열어젖히는 데 필요한 명분이었을 뿐이다.
이제는 발크자르의 비명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와 함께 게릴라전을 펼치러 왔던 다른 부족의 전사들은 이미 왕국 기사들의 검에 죽음을 맞이했다.
나름대로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온 것이었겠으나, 결국 완전한 실패.
스스로의 강함을 너무 맹신한.
지구에서 봤던 여포와 항우가 보여줬던 어리석은 최후와 하등 다를 것 없는 모습.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신이 버렸으나.
발크자르는 신이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겠지.
화르르륵!
영혼들을 태우는 수호신의 불꽃이 거대한 기둥을 만든다. 밀려들던 영혼들은 하나 같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으며 나 역시 굳이 그들이 고통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마나를 물렸다.
불꽃의 기둥에서 뱉어지듯 날아가는 발크자르. 그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기절한 상태였으나 호루아의 날개가 억지로 그를 하늘 높이 데려가고 있었다.
대전사만큼은 살리겠다는 호루아의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장면.
나름 완벽하게 승리를 굳힐 수 있다 생각했으나 발크자르가 빠져나갔다.
하지만 내가 이 이상 전장에 합류할 필요는 없을 듯싶었다.
아마 나를 향해 꽤나 큰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이며 그와 함께하는 선조들과 호루아의 힘을 맹신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겠지.
대전사 발크자르 한 사람이 끌고 오던 전쟁이다.
사실상 수준의 차이를 보여줬고.
그가 위축된 순간, 이미 이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쿨럭! 쿨럭!”
호루아의 자비 덕분에 가까스로 도망쳐온 발크자르는 자신의 막사 안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나자 토해낸 피를 닦아주던 여인을 밀쳐내며 발크자르는 애써 상체를 일으킨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주술사 숑의 따끔한 질책이 떨어졌다.
“제가 그토록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와 싸우면 안 된다고! 저희 부족민의 기동성을 이용해서 싸우면 그와 부딪치지 않고도 싸울 수 있었습니다! 이길 수 있었단 말입니다!”
“…….”
“선조분들은 당신을 떠났고, 호루아 님의 힘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저희 부족과 대삼림은 사막에 잡아먹히게 되겠지요!”
미래가 없다고 외쳐대는 숑을 바라보며 발크자르는 머리에 기생충이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 피로감과 두통을 느낀다.
처음이었다.
늘 승리만을 해왔던 자신이 이토록 무참하게 패배했다는 것이.
적을 향해 창 한 번을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그냥 무작정 당하고 도망쳐 왔다는 것이.
또한 자신이 지금까지 행해왔던 살육이라는 행위의 무게감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발크자르는 그 모든 것이 두려웠기에 어딘가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
완전히 마음이 꺾이기 일보 직전이었으나. 숑이 한숨을 내쉬며 지도를 하나 가져온다.
“정말 최후의. 반격의 수가 아직 있습니다. 당신이 여기서 무너지지 않는다면…… 여기.”
툭.
지도 위로 숑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아카데미가 있는 로베른.
“이곳에 그의 약점이 있습니다. 이것만 쟁취한다면 굳이 그와 싸울 필요조차 없을 겁니다.”
“그 머저리 같은 귀족들이 이미 다 실패하지 않았나.”
위령사와 그의 약혼녀 암살을 깔끔하게 실패한 걸 들먹이자 텐트 구석에 쥐 죽은 것처럼 조용히 있던 귀족들이 움찔거린다.
암살이 실패한 이후, 더욱 입지가 좁아진 귀족 세 사람. 특히나 나름의 관계를 맺고 있던 제르만 왕국에서도 깔끔하게 셋을 버렸기에 마리아스족이 실패하면 그대로 끝나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결국 죽는다.
그리 생각한 귀족 로메르잔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외쳤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위령사만 잡으면 결국 승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놈의 약점이 무엇인지 저희 쪽에서 확실하게 찾아오겠습니다!”
아직 로베른에서 활동하는 정보원과의 연결점이 남아있다. 이번 암살이 완전히 작살나서 금방 끊길 정도로 간당간당한 관계였지만.
로메르잔의 말을 받아 숑이 한마디 더 보탠다.
“여기서 무너지실 겁니까? 당신 정도의 대전사가? 싸움은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한 번 진 걸로 무릎 꿇지 마시죠.”
“…….”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발크자르는 숨을 깊게 내쉬며 주먹을 꽉 쥔다.
아직도 위령사의 차가운 눈동자가 자신의 전신을 얼어붙게 만들고, 꿰뚫어 부수는 기분이었으나.
‘나는 대전사다.’
이겨낼 수밖에 없는 위치였기에 발크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놈의 약점을 찾아라. 그리고 내게 말해라. 호루아 님의 날개로 직접 다녀오겠다.”
귀족들에게 함부로 맡기지 않겠다는 확고부동한 뜻.
호루아의 날개가 가진 기동성이라면 단기간에 로베른을 왕복할 수 있으니 납득이 되는 판단이었으나.
로메르잔은 오히려 주술사 숑의 의중이 궁금했다.
자신이 알기로는 지금 로베른 아카데미에 위령사 데이우스 베르디의 약점은 없다.
약혼녀인 에리카 브라이트는 실습으로 떠나있고, 공주인 엘레노아 루덴 그리핀과 그가 아끼는 평민 여학생도 마찬가지.
도대체 로베른에 뭐가 있나 싶었는데.
숑은 상당히 정확하게 한 사람을 집어주었다.
“이제 7~8개월 정도 된 임산부를 찾아라.”
“임산부?”
듣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기분.
데이우스 베르디가 숨겨둔 내연녀라도 있는 걸까?
로메르잔의 머리로는 그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나.
“그 임산부가 바로 위령사의 역린이다.”
숑의 말을 들은 발크자르가 어서 빨리 움직이라며 자신에게 눈치를 줬기에 로메르잔은 다급히 품에서 수정구를 꺼내 로베른에 있는 자신의 심복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역린?’
역린이란 보통 약점이기도 하지만.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다는 뜻 아닌가.’
소름이 싹 치고 올라왔다.
대전사조차 이렇게 덜덜 떨게 만든 위령사가 진정으로 분노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순간, 로메르잔은 차라리 지금이라도 항복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충동이 차올랐으나.
발크자르와 숑의 위압감이 계속 그를 짓누르며 들어왔기에.
로메르잔은 수정구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바랄 뿐이었다.
부디.
위령사라는 용의 역린을 건드린 후.
그 진노가 자신에게 닿기 전에, 대전사가 용의 목을 베어 넘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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