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19
◈ 119. [자유탐사] 불꽃 튀는 콜로세움 (3)
“실마리를 조금 잡은 것 같군.”
붉은 연기가 되어 사라진 베르나토의 자리를 내려다보며 나는 뇌까렸다.
은제 무기와 마법의 합동 공격으로 타격을 주고.
영핵을 드러내게 한 다음, 데미안이 저격한다.
대(對) 흡혈귀전의 기본 전술이 정립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그때였다.
《훌륭하다, 도전자들이여! 그대들은 자격을 증명했다!》
무대 위에서 쟈칼의 목소리가 거세게 울려 왔다.
《바로 나, 검투왕 쟈칼을 직접 상대할 수 있는 자격을!》
띠링!
[불꽃 튀는 콜로세움 – Wave 7]– 적을 해치워라!
– Lv.75 검투왕 : 1체
– 승리 배당 비율 : 없음
시스템창이 업데이트되는 것과 동시에.
타앗-!
마지막 웨이브이자, 이곳 콜로세움 던전의 최종보스.
검투왕 쟈칼이 직접 투기장 안에 내려섰다.
승리 배당 비율은 왜 없어졌나 했더니, 객석에 있던 고블린들이 죄다 죽어 있었다.
아무래도 쟈칼이 자기 손으로 다 죽여 버린 모양이다. 얌마!
《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이 내가, 직접 콜로세움에 서는 것이!》
양손의 단도를 화려하게 회전시킨 쟈칼이 똥폼을 잡고 중얼거렸다.
《이 대결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관객들은 모조리 정리했다.》
저벅. 저벅.
점점 거리를 좁혀 오는 NPC 보스를 보며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검투왕 쟈칼.
게임에서는 매 턴 첫 공격을 반드시 회피하는 특수능력이 있었다.
특수능력이든 콜로세움 판돈 계수든, 있든 없든 어차피 우리로서는 상대가 안 되는 스펙이었다. 75레벨이라니.
싸우면 진다.
반드시 죽는다.
“쟈칼.”
그럼에도 이곳에 찾아온 것은, 이 보스를 무력화시킬 방법이 내게 있기 때문.
나는 숨을 가다듬은 뒤,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에버블랙은 너를 잊지 않았다.”
《……예?》
흉흉한 투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던 쟈칼의 발이 우뚝 멈췄다.
《지금, 뭐라고……?》
“에버블랙은 너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게임에서, 왜 스피드런 유저들이 초반부터 바로 콜로세움으로 달려오는가.
앞선 웨이브들은 기믹을 이용해 클리어할 수 있다손 쳐도, 이 강대한 보스는 어떻게 처리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싸우지 않는다.
이벤트를 이용해 스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쟈칼의 정체는 수십 년 전, 에버블랙 제국에서 파견한 요원이다.’
수십 년 전, 호수 아래 던전에 대한 소문을 접수한 제국 첩보부(오늘날의 아이기스 특무대)는 특수요원들을 던전으로 파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은 재수 없게도 던전 탐사 도중 이 콜로세움에 납치되었고, 검투사로서 노예처럼 부려 먹히게 되었다.
긴 세월 동안 요원들 모두가 죽었지만, 수인족 출신이라 수명이 길었던 쟈칼만은 끝끝내 생존했고.
기존의 검투왕을 죽이고 새로운 검투왕이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미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난 상황.
쟈칼은 이제 와서 제국으로 귀환해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깨닫고 남은 삶은 검투왕으로서 콜로세움을 지키며 보내기로 한다.
‘배경설정은 이렇고, 그러면 어떻게 전투를 스킵하느냐?’
게임에서는 간단했다. ‘애쉬 황자의 유품’이라는 아이템을 던져 주면 끝이었다.
애쉬는 원래 튜토리얼에서 죽는다.
그런데 유품은 그 뒤로도 계속 루카스의 인벤토리에 남아 있었다.
이 쓰잘데기 없는 아이템이 왜 인벤토리 칸만 차지하느냐고 플레이어들은 불만이 많았는데, 용도가 밝혀진 것이다.
‘황족의 유품을 받은 쟈칼은 멋대로 루카스를 황족이라고 착각하고, 파티를 해치지 않고 돌려보내준다는. 그런 꼼수였지.’
자, 그건 게임상에서였고.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냥 이름 까면 되지.’
유품만으로도 설득당하는 보스인데, 황자인 나 본인을 증명하면. 그럼 게임 끝 아니겠어?
《에버블랙이…… 나를 잊지 않았다니?》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쟈칼이 황급히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귀인(貴人)의 존함은 어찌 되십니까?》
“애쉬. 애쉬 ‘본헤이터’ 에버블랙.”
나는 품에서 흑옥 호패를 꺼내어 보여 주었다.
“황실의 3황자다.”
《세상에, 이럴 수가아…….》
호패를 받아들고 감격하던 쟈칼은 내게 엎드려 절했다.
《하릴없는 세월을…… 꼼짝없이 잊힌 줄 알았습니다. 제국이 저를 잊었다고 생각했고, 저도 제국을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쟈칼. 설혹 그대가 에버블랙의 이름을 잊는다 해도, 제국은 한시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아아…….》
“만에 하나 제국이 그대를 잊는다 해도, 내가 약속하지.”
나는 내 가슴팍 위에 손을 올려 보였다.
“나, 애쉬가 그대를 기억할 것이다.”
가면 속에서 흘러넘친 눈물이 쟈칼의 턱 아래로 줄줄 쏟아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보낸 저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군요…….》
이렇게까지 슬퍼하고 기뻐하는 쟈칼의 모습을 보자 조금 양심에 가책이 들었지만, 으음. 뭐 어때. 이제 정말로 내가 기억해 줄 건데.
***
쟈칼에게 설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황제의 밀명을 받고 직접 던전을 탐사하기 위해 들어온 황자이고.
그 과정에서 앞서 던전에서 실종된 제국 군인과 요원들의 리스트를 파악했다는 것.
콜로세움 던전의 보스 쟈칼과, 실종된 요원 중 코드네임이 쟈칼인 요원이 겹쳐서, 파악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는 것.
곰곰이 생각해 보면 허점이 잔뜩 있는 설명이었지만, 쟈칼은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제 이름을 잊지 않아 주신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보스 모드가 끝나자 평범한 NPC처럼 변한 쟈칼이 평온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식 불과 조금 전까지 그렇게 개소리 뿜뿜해대던 검투왕 쟈칼과 동일인이 맞나 싶다.
“쟈칼. 혹시 앞으로의 던전 수색에 도움을 줄 수 있나?”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서 물었다.
쟈칼은 75레벨이나 되는 무지막지한 강캐다.
혹시 영입이 가능하다면, 하다못해 지원으로 부를 수만 있다면 앞으로 엄청 편해질 텐데.
하지만 쟈칼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검투왕의 자리에 오른 이상, 제 육신은 이곳 콜로세움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그렇군…….”
“이곳 일대에서라면 드릴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만, 이 지역을 벗어나서는 어떤 힘도 쓰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쟈칼은 정말로 죄송해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냐, 아냐, 내가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한 거지. 미안해.
“그건 그렇고, 쟈칼.”
나는 본목적이나 꺼내기로 했다.
“내가 어둠의 결정이라는 아이템이 필요한데…… 혹시 갖고 있는 거 있나?”
“그럼요, 그럼요! 몇 개나 필요하십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게임에서는 저 꼼수로 쟈칼과의 보스전을 스킵하면, 이후에는 상인 NPC로 변해서.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게 되는데 품목 중 하나가 어둠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짜로 받았다. 일단 3개만 받기로 했다. 당장 그 이상은 필요도 없고 해서.
[어둠의 결정]– 분류 : 재료
– 지옥의 어둠이 뭉쳐 만들어진 결정체. 가까이 귀를 기울여 보면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5구역 이상의 던전에서 드물게 발견된다.
중반 이후 최고위 아이템 제조에 지긋지긋하게 들어갈 재료 아이템, 어둠의 결정과의 첫 만남이었다.
얼른 인벤토리에 쏙 넣었다. 이걸로 성은 무기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전부 모였군.
“또 뭔가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전하?”
쟈칼은 뭐든지 내게 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몸이 근질근질한지 내 앞에서도 어깨를 들썩댔다.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는 뭐합니다만, 이 일대에서만은 제가 무소불위의 최강자입니다! 시키기만 하십시오!”
“음, 그러면…….”
잠깐 망설였던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물었다.
“눈 좀 붙일 곳 있을까? 내 파티원들 모두 고생해서, 좀 쉬어야 할 것 같거든.”
***
“1박2일 일정이라고 하신 데다가, 캠핑 장비까지 다 챙겨 와서. 당연히 야영할 줄 알았는데.”
콜로세움 내부.
검투사 숙소.
예상 외로 깨끗한 침대가 늘어선 이곳에 우리 파티는 들어섰다. 가방을 바닥에 풀며 에반젤린이 말을 이었다.
“이런 괜찮은 숙소를 빌릴 수 있을 줄이야. 깜짝 놀랐네요.”
“그러게요. 심지어 던전 한 가운데인데.”
쥬니어도 맞장구쳤다.
“딱딱한 바닥에서 잘 각오를 하고 왔는데 침대라니. 만만세에요!”
“만만세~!”
에반젤린과 쥬니어는 동시에 침대 위에 폴짝 올라갔다.
나는 쓰게 웃으며 내 짐을 침대 옆에 풀었다.
“나도 당황스러워. 너무 잘해 줘서.”
“말 몇 마디로 그렇게 강해 보이던 적을 단숨에 아군으로 바꾸시다니.”
쥬니어는 배시시 눈웃음을 쳤다.
“전하께서는 정말 대단하시네요.”
“으음…… 뭐어…….”
내가 대단하다기보다는, 원래 있던 공략 참고한 것뿐이지만.
뭐 정보가 가장 큰 무기라고들 하니까. 공략 정보를 안 까먹고 다 기억하고 있는 내 머리에 감사하긴 해야겠어.
“그런데, 우리 숙소 같이 쓰는 거예요?”
이불에 몸을 돌돌 말고 도롱벌레처럼 굴러다니던 에반젤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응?
“그럼 같이 써야지. 따로 쓰려고 생각했어?”
“아무리 그래도 숙녀가 둘인데……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도 하고…….”
“하이고. 숙녀 같은 소리 하네. 이 방에 숙녀가 어디에 있냐?”
도롱벌레 꼬맹이 하나랑 각혈머신밖에 안 보이는데.
“뭐예요?! 지금 말 다했어요!”
“다했다고 하면 어쩔 건데.”
“이럴 거예요-!”
에반젤린은 옆의 베개를 집어 들더니 내 등을 가볍게 통 쳤다. 요게!
“이 건방진 꼬맹이가-!”
이참에 버릇을 잡아 주겠다! 나도 베개를 집어서 에반젤린의 정수리를 팡 내려찍었다.
“꽥!”
체통 없는 비명을 내지른 에반젤린이 나를 홱 노려보았다. 나도 마주 노려보았다. 뭐!
잠시 뒤.
“저희 다 씻고 왔…… 습니다…….”
먼저 씻으러 갔던 루카스와 데미안이 돌아왔을 때, 나와 에반젤린은 진심을 다해 베개싸움을 하고 있었다. 퍽퍽퍽.
“루카스!”
터진 베개에서 나온 깃털이 머리에 잔뜩 묻은 채, 나는 루카스에게 베개를 하나 휙 던져 주었다.
“참전해라!”
“예, 주군.”
루카스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베개를 양손으로 쥐고 달려들었다.
“우아아악! 양면전술은 반칙이지!”
2대1이 되자 비명을 지른 에반젤린이 쥬니어에게 외쳤다.
“도와줘요, 쥬쥬 언니! 언니는 제 편이죠?!”
“아니…… 누구 편도 안 들고 싶은데…….”
“지금 안 도와주면 잘 때 옆에 달라붙어서 괴롭힐 거예요!”
“으음…….”
망설이던 쥬니어는 한숨과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바람 마법이 발동되며, 이불들이 날아올라 나와 루카스를 덮고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으아아악 비명을 질렀다.
“치사하다, 비겁해! 마법사를 동원하다니!”
“먼저 2대1 시작한 건 선배님이라고요!”
“이렇게 된 이상, 좋다! 나도 최강 치트 캐릭터를 동원하겠어! 데미안!”
아직까지 이 베개결전에 참전하지 않은 나의 저격수를 부르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빨리 도와줘! 너는 황자님 편이잖아?!”
“…….”
하지만 데미안은 저쪽 구석 침대에 누운 채 내 말을 들은 체도 않았다. 데미안?
“……쿨…….”
“벌써 잠들었냐!”
결국 나와 루카스는 이불에 돌돌 감겨서 데미안의 옆 침대에 나란히 눕혀졌다. 젠장, 꼼짝도 못 하겠어…….
“죄송합니다, 주군. 제가 부족한 탓에…….”
“네 문제가 아냐, 루카스…… 저 숙녀 듀오의 사악한 동맹 때문이지…….”
그때였다. 그런 우리의 몰골을 보던 쥬니어가 입을 가리고, 숨 죽여 웃었다.
“푸흡…….”
“…….”
그동안 쥬니어가 지어 보였던 미소와는 달리, 그 웃음에는 어떤 가식도 없어서.
조금이나마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 준 것 같아서.
그래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얼른 잠이나 자자, 얘들아. 다들 피곤할 텐데.”
“그러겠습니다, 주군…… 이거 왠지…… 잠이 잘 오는군요…….”
“하하. 승리하고 자니 꿀맛이네요. 잘 자요!”
“여러분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쿨…….”
각자 한 마디씩 인사를 남긴 뒤, 파티원들은 곧 하나씩 잠들었다.
피곤했는지 다들 금세 곯아떨어졌다.
잠든 어린 아이들의 숨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나도 눈이 감겨 왔다.
나는 까무룩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