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18
◈ 118. [자유탐사] 불꽃 튀는 콜로세움 (2)
……그런데.
온갖 폼을 잡으며 전투를 준비한 것치고는. 너무 쉽게 끝나 버렸다.
우리는 앞에 갈기갈기 찢어진 채 쓰러진 폴른 블러드를 내려다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뭐야?
“그, 확실히 스펙은 강했는데…….”
“영락한 흡혈귀라 그런가요. 너무 단순하게 움직여서.”
피에 대한 갈구와 본능만 남은 전(前) 흡혈귀다 보니. 결국 짐승과 다를 바 없었고.
아무리 빠르고 강해 봐야 동선도 뻔하고 행동도 뻔히 예측되었다. 그러면 쉽게 대처하지.
쥬니어와 데미안이 원거리에서 쏘고, 루카스와 에반젤린이 근거리에서 은제 무기로 몰아붙이자 폴른 블러드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나는 머쓱하게 지팡이로 뒷목을 벅벅 긁었다. 아니, 기껏 폼 잡았더니 이게 뭐람.
“그, 머시기…… 좀 더 센 놈 없을까?”
무대 위를 올려다보며 요청했다.
《…….》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런 우리를 내려다보던 쟈칼은 크흠,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좋습니다! 이번에 잡아 온 제철 몬스터 중 가장 싱싱하고 펄떡펄떡한 놈을 꺼낼 때가 됐군요!》
그렇게 말하며 쇠창살 문을 열었다.
쿠궁……!
[불꽃 튀는 콜로세움 – Wave 6]– 적을 해치워라!
– Lv.50 뱀파이어 : 1체
– 승리 배당 비율 : 2.00 vs 2.00
뱀파이어!
드디어 진짜 제대로 된 흡혈귀와 붙게 된 것이다.
《Versus! 자칭귀족 타칭거머리! 아 몰라 이제 소개도 귀찮아! 대충 나가서 싸우다 뒤져! 낙오된 흡혈귀! 베르나토~~~!》
절그럭. 절그럭.
이윽고 나타난 것은…… 온몸이 쇠사슬에 묶인 젊은 남자였다.
피부는 창백했고, 푸석한 머리는 푸른 곱슬머리였다. 그리고 두 눈은 피처럼 붉은 빛깔이었다.
《윽…….》
경기장의 조명에 눈부셔하던 흡혈귀, 베르나토는 무대 위의 쟈칼을 발견하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빌어먹을, 쟈칼!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아앙? 뭐라는 거야?》
《네놈의 이 투기장 소꿉놀이가 허용되는 것은, 위대한 군단장들께서 네놈의 존재를 묵인해 주시기 때문이다!》
베르나토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팡팡 쳤다.
《하지만 나는 위대한 노스페라투이신 로드 셀렌디온의 패밀리다! 감히 나를 건드려서 이 꼴로 만들었으니, 반드시 군주께서 네놈을 심판하실-”
푸확!
무어라 더 말하려던 베르나토의 양팔이 갑자기 날아갔다.
온 사방에 핏물이 낭자했다. 자신의 팔이 잘렸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베르나토는 멍청한 소리를 냈다.
《어?》
어느새, 쟈칼은 양손에 단도를 하나씩 뽑아들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단도를 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참격을 쏘아 내서, 흡혈귀의 두 팔을 잘라 내 버린 것이다.
《그 철분 냄새 풍기는 입 좀 닥쳐, 더러운 핏물 새끼야.》
《무, 무슨-》
《나한테 잡혀서 여기 끌려왔으면, 네놈은 그냥 이곳 쟈칼 콜로세움의 소모품일 뿐이야. 네놈이 어디 패밀리든, 누구 엉덩이 밑에 깔려 있었든, 아-무 관심 없다고!》
쟈칼은 손에 들린 단도를 베르나토에게 겨누었다.
《다음에는 모가지를 날려 버릴 테다. 알겠으면 똑바로 싸워! 아가리에 마늘 빻아서 한가득 처먹이기 전에! 알겠어?!》
《큭……!》
치를 떨던 베르나토는 쟈칼에게서 돌아서서 우리 쪽을 보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두 팔과 몸통 사이에 핏물이 이어지더니, 팔이 저절로 허공에 떠올라 놈의 몸통에 붙었다.
《네놈들이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고, 혈통도 확인하지 못했으며, 지금은 식욕마저 없다만.》
손가락을 움직여 제대로 팔이 붙었는지 확인한 베르나토가 우리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네놈들을 죽여야겠다. 저항하지 않는다면, 한 번에 편히 보내 주마.》
“호오. 그것 참 감사한데.”
손에 들린 지팡이를 빙글 돌리며 나는 씩 웃었다.
“나도 미리 말해 두지. 우리는 네놈을 죽일 거야. 그리고 저항 안 하면 곤란하니까, 있는 힘껏 발버둥 쳐 줘.”
《뭐?》
“흡혈귀를 실전에서 상대해 보는 건 처음이거든. 우리도 경험치 좀 얻어야지 않겠어?”
베르나토는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뭐, 흡혈귀 입장에서 인간은 마트에 진열된 쥬스 병 같은 느낌이겠지.
그 쥬스 병이 대뜸 ‘우리도 너 죽일 거임’이라고 하면 벙 찌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흡혈귀 친구. 지금은 고블린 투표단까지 승리 예측이 50 대 50인 상황이야.
쥬스 병에 머리 깨질 시간이라고.
“자, 얘들아. 그럼 저놈 상대하기 전에.”
나는 파티원들을 돌아보고, 지팡이를 슬쩍 들어올렸다.
“오랜만에 손바닥 맞을까?”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루카스와 에반젤린, 그리고 데미안은 나란히 서서 손바닥을 내게 내밀었다.
“……?”
쥬니어만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식겁한 눈으로 그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어, 지금, 뭐 하시는……?”
짝! 짝! 짝!
재빠른 동작으로 셋의 손바닥을 한 번씩 때려 준 나는 쥬니어를 향해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손.”
“네? 아, 네?”
“괜찮아. 고통은 잠시고, 기쁨은…… 한 3분 정도 갈 거야.”
“자, 잠시만요, 저 체벌은 싫- 앗 따가워엇?!”
짝!
[중급 버프 당첨!] [쥬피터 쥬니어(SSR)에게 ‘3분간 속성 피해 20퍼센트 증가’ 버프가 적용됩니다!]“……어?”
쥬니어는 자신에게 걸린 버프를 확인하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루카스, 에반젤린, 데미안이 그런 쥬니어를 향해 동시에 음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표정이 ‘맛있지?’같은 느낌인 건 기분 탓이냐.
“어, 어어?”
쥬니어의 주위에 떠올라 있는 원소의 색깔이 확 짙어졌다. 버프가 바로 효과를 받나 보다.
나는 그런 쥬니어에게 조곤조곤 속삭여 주었다.
“하루에 한 번만 되니까, 너무 자주 맞으려곤 하지 마.”
버프에 의존하게 되는 것도 지양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이거 좀 변태 같긴 하니까!
***
흡혈귀의 전투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혈마법.
피와 관련된 모든 능력을 혈마법이라 부른다.
스스로의 피, 그리고 타인에게서 섭취한 피를 바탕으로 사용하는 능력이다.
흡혈귀가 사용하는 온갖 기괴하고 강력한 능력들은 대부분 이 혈마법이다.
둘째는 육체.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압도적 재생력과, 명백히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피지컬에서 발휘되는, 육체의 강함이다.
상당수의 흡혈귀들은 무기 다루는 법을 단련한다.
그 우월한 육체로 휘두르는 병장기는 그 자체로 흉악한 위력을 품고 있다.
아무튼 쉽게 말해서 스킬 트리가 크게 두 종류가 있고, 대부분의 흡혈귀는 두 스킬 트리 중 하나를 집중적으로 찍는다.
어느 하나만 경지에 올라도 재해급 위력을 뽐내는 괴물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베르나토는.
《크아아악!》
혈마법도, 육체의 단련도, 수행을 게을리 한 모양이다.
베르나토가 피를 모아서 무언가 마법을 사용하려 하면 쥬니어가 족족 방해해서 무위로 돌렸다.
그렇다고 육체 대결에서 앞서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놈의 육탄전 기술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루카스와 에반젤린의 협공 앞에 온몸이 난도질당하고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쉽게 이기고 있는 것 같지만.
“…….”
꼭 그렇지도 않다.
흡혈귀라는 종이 타고난 재생력은 어마무시한 수준이었다.
아무리 루카스와 에반젤린이 놈을 베어 내고 쥬니어가 마법으로 태워 내도, 베르나토는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했다.
은제 무기에는 놈들의 재생을 늦추는 효과가 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야 흡혈귀의 숨통을 효과적으로 끊을 수 있을까…….’
전투 양상을 뒤에서 지켜보며 나는 신음했다.
“데미안, 놈의 영핵은 보이질 않나?”
“네. 황자님.”
데미안은 아까부터 놈의 영핵을 찾아 저격하기 위해 유심히 살피고 있었지만, 천리안으로도 잘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저 흡혈귀, 전신이 핏물로 이뤄진 느낌이에요. 영핵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합쳐졌다가 잘게 부서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어요.”
“흐음…….”
“저격해도 바로 흩어져 버리니, 어떻게 쏘아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턱을 쓸며 고민했다.
‘어째야 한다……?’
게임에서 흡혈귀를 레이드할 때에는, 보통 게임 중반부 이후였으므로.
각종 치유감소 아티팩트를 덕지덕지 배치해 두고 성은 무기로 슥삭슥삭 썰어서 죽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초반부.
치유감소 아티팩트처럼 희귀한 물건도 없거니와, 아직 성은 무기도 뽑지 못했다.
‘딜찍누도 안 되고……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결정타를 날리지 못한 채 이렇게 소모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소모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베르나토 또한 피를 너무 흘렸다.
《크흑……!》
눈에 띄게 안색이 안 좋아진 베르나토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흡혈하기 적당한 상대라도 찾나.
그러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
“…….”
잠깐만.
아니, 설마, 진짜?
《피, 잘 받아 가마-!》
입을 쩍 벌린 베르나토가 순식간에 내게 쇄도해 왔다. 도드라진 송곳니가 무섭게 번뜩인다.
내가 레벨이 가장 낮은 탓에 또 먼저 노려진 모양이다. 지긋지긋하구만.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나 지금부터 피 빱니다’하고 광고해 주면 말이지. 당연히 이쪽도 카운터를 먹일 수 있다고.
푹! 푸푸푹!
베르나토의 송곳니가 내 목을 물어뜯기 직전,
벌어진 베르나토의 입에 화살 세 대가 순식간에 날아와 꽂혔다.
왼쪽 뺨을 관통해 들어온 화살촉은 반대쪽 뺨을 관통해 비죽 튀어나왔다.
《꺼으…… 허.》
일순 움직임이 멈춘 베르나토의 앞뒤로 루카스와 에반젤린이 달려들었다.
푹!
푸우욱!
베르나토의 배에 루카스의 은검이, 등에 에반젤린의 은창이 꽂혔다.
그 장면을 본 순간, 뇌리에 번뜩 아이디어가 스쳤다.
“루카스, 에반젤린! 무기를 회수하지 말고, 놈의 몸에 박아 둔 채로 떨어져!”
루카스와 에반젤린은 내 명령을 듣자마자 실행했다. 검과 창을 놓고 베르나토에게서 재빨리 몸을 떼어 냈다.
“쥬니어!”
나는 급히 쥬니어에게 명령했다.
“벼락! 가능하냐?!”
“아하.”
쿠르릉…….
천둥 소리가 울렸고, 쥬니어는 배시시 웃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쿠과과광-!
다음 순간, 벼락이 내리쳤다.
베르나토의 배에 박힌 은제 무기로 유도된 벼락이 녀석의 몸을 안에서부터 불태웠다.
《크아아아아악-?!》
흡혈귀의 갈라지는 듯한 비명이 사방을 울렸다.
“앗.”
그때 데미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보였다.”
푸슛-!
데미안의 손에서 석궁이 발사되었다.
푹!
쏘아진 은제 화살은 정확하게 베르나토의 심장부를 관통했고, 작은 붉은 구슬이 그 화살촉 끝에 꿰여 있었다.
흡혈귀의 영핵이었다.
챙그랑-!
다음 순간 그 붉은 구슬이 산산조각 났다.
《키야아아…… 아아아…….》
그리고 베르나토는 몸의 끝에서부터 연기가 되어 천천히 사라졌다.
사라져 가는 붉은 연기를 내려다보며 파티원들은 모두 거친 호흡을 정돈했다.
첫 흡혈귀 사냥,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