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29
◈ 129. [Evil Side] 셀렌디온
6일 뒤.
호수왕국 지하던전. 10구역.
흡혈귀 군단의 본거지인 ‘붉은 저택’. 가장 안쪽 ‘주인의 방’.
끼익……. 끼익…….
이곳의 주인인 셀렌디온은 목을 매단 채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
그런 셀렌디온을 시종인 알파와 베타가 뚱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알파와 베타는 셀렌디온과 같은 검푸른 머리칼을 가진 젊은 남녀였다.
각각 정갈한 집사복과 메이드복을 입고, 셀렌디온의 시중을 드는 최측근이었다.
둘은 셀렌디온의 자살 시도가 이제 익숙한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얼굴이었다.
천장에 매달린 셀렌디온도 기운 빠진 눈으로 그런 둘을 내려다보았다.
《또 자살을 시도하셨습니까, 로드?》
《그래.》
《성과는 있으셨는지?》
《늘 똑같지…….》
《내려드릴까요?》
《그래다오.》
둘은 조심스럽게 셀렌디온의 몸을 받치고 내려주었다.
셀렌디온은 아이의 외형이다 보니, 알파와 베타가 형과 누나 같았다.
실제로는 셀렌디온이 훨씬 더 까마득한 세월을 살아왔지만.
알파는 셀렌디온을 소파에 앉힌 뒤, 한숨을 옅게 내뱉었다.
《조금 더 참신한 자살 방법은 없으신가요? 매일 아침 내려드리는 것도 이제 지칩니다만…….》
《지난주에는 손목을 그었잖느냐.》
《그건 시트 빨아야 해서 번거롭습니다.》
《욕실에서 그으면?》
《욕실 청소해야 하잖습니까…….》
집사 남성 알파의 따박따박한 반박에, 옆에서 듣고 있던 메이드 여성 베타가 응응 고개를 끄덕였다.
베타의 가느다란 목에는 가로로 길게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잘라 냈다가 붙인 것처럼.
이 상처 때문에 베타는 말을 하지 못했다.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소통만 할 뿐.
그런 두 시종을 번갈아 본 셀렌디온이 창백한 스스로의 뺨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내 자살 시도 중 무엇이 너희에게 제일 편했느냐?》
《아사(餓死)를 시도하셨을 때가 가장 편하긴 했습니다.
뭐 더 치울 것도 없고 해서. 식사를 준비해드리지 않아도 되었고.》
덤덤하게 말하는 알파의 옆에서 베타가 격한 손짓을 해 보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화단을 마구 가리키며.
알파가 베타의 제스처를 번역해 주었다.
《베타의 말로는, 제일 번잡했던 건 매일 투신자살을 시도하실 때였다고 하는군요. 매일 화단을 청소해야 해서 곤혹이었다고.》
셀렌디온의 무감각하던 얼굴에 흐릿한 쓴웃음이 스쳤다.
셀렌디온은 매일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 자신의 막대한 재생력.
사지가 날아가도 금세 회복하는 재생력 때문에 어지간한 자살 방법으로는 죽음에 이르지조차 못했다.
둘째는, 군단에 파편화해서 뿌려둔 자신의 끝없는 생명.
아주 가끔 극단적인 수단과 기막힌 운이 겹쳐 죽음에 이르러도, 군단에 비축해둔 목숨이 그를 되살렸다.
《언제가 되어야 이 괴로운 삶이 끝날꼬.》
알파와 베타가 능숙하게 셀렌디온의 옷을 갈아입혔다.
두 시종이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는 동안, 셀렌디온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스스로 끝내지조차 못하는 삶이라니. 참으로 괴롭구나.》
《이곳 호수왕국의 인간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그 난리를 피우다가 결국 저런 꼴이 되었는데.》
셀렌디온에게 넥타이를 묶어 주며 알파가 피식 웃었다.
《정작 로드께서는 영생을 손에 넣으시고도 괴로워하시다니. 이 대비(對比)가 퍽 우습습니다.》
《그야 나는 영생을 바란 적이 없으니까.》
셀렌디온은 피곤한 두 눈을 쓸었다.
그의 소년 같은 어린 얼굴에서, 붉은 두 눈만은 노인의 그것처럼 깊고 우울했다.
《그 길고 너저분한 생을 겨우 끝마치고 잠에 들었다 생각했는데…… 왕중왕께서는 멋대로 이곳에서 나를 되살리시고. 그리고 벌써 오백년이 흘렀구나.》
옷 갈아입기가 끝났다.
몸에 딱 맞는 정장으로 환복한 셀렌디온은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번에는 죽을 수 있을까?》
《이번 출정 말씀이십니까?》
오늘은 혈족 군단의 출정일이었다.
왕이 지시한 침공시작일이 사흘 뒤이니, 오늘 출발해야 사흘 뒤 적의 성벽에 닿을 터였다.
알파와 베타가 동시에 조소를 머금었다.
《그깟 인간들이 저희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게다가 저희는 이번 ‘대범람’을 위해 오랫동안 힘을 비축해왔지 않습니까.》
《…….》
《죽음을 바라시는 로드께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번에도 힘드실 겁니다.》
알파와 베타가 동시에 셀렌디온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앞으로도 영원불멸 저희의 군주로 남아 주소서.》
《…….》
침묵하던 셀렌디온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번의 상대는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니다.》
셀렌디온은 며칠 전 조우했던 적장을 떠올렸다.
– 네놈의 부탁이 아니어도 당연히 쳐죽여 줄 테니까 걱정 마시지, 흡혈왕! 조만간 내 검에 뒈질 때 낼 비명소리나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거다!
분명히- 애쉬라는 이름의 인간이었지.
자신과 두 눈을 마주치고도 그렇게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증오를 흩뿌릴 수 있다니.
‘닮았다.’
아주 오래 전 자신을 죽였던 위대한 인간들과, 애쉬는 닮았다.
셀렌디온은 흐릿하게 고동하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
이렇게 가슴이 뛴 것이 얼마만의 일인가.
어쩌면, 정말로…….
– 목 깨끗하게 닦고 내 성벽으로 기어오기나 해. 그럼 내가 책임지고 네놈의 구차한 일생을 끝내 줄 테니까!
그 남자는, 자신을 죽여줄 수 있지 않을까.
《전군(全軍)이 대기 중입니다, 로드.》
알파와 베타가 침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집사와 메이드는 자신들의 군주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했다.
《자, 가시지요. 저희를 지휘해주셔야지요.》
《…….》
셀렌디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살아온 세월만큼의 막대한 피로도가 양 어깨를 짓눌렀지만, 가볍게 어깨를 털어 떨쳐냈다.
셀렌디온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그 뒤로 두 시종이 따라붙었다.
***
저택 바깥.
널따란 도로에는 이미 1천여의 흡혈귀와 구울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대기 중이었다.
전원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군주의 도래를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
셀렌디온은 그들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이곳 호수왕국에서 웅크린 채 지낸 것이 오백 년.
그동안 ‘악몽’을 재료로 사용해 군단의 크기를 부풀렸다.
악몽 속에 잠들어 있던 다른 로드 휘하의 흡혈귀 수백, 그리고 구울 수천이 가세했다.
군단은 끝없이 비대해졌다.
하지만, 결국 셀렌디온의 본대는 이들이었다.
최정예 1천.
셀렌디온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준 자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로드.》
가장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7인의 흡혈귀 중 하나가 내뱉었다.
《출진 명령을.》
《……지상으로 나가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군.》
자신의 병사들을 하나 하나 눈으로 훑던 셀렌디온이 물었다.
《출진 경로는 어떻게 되지? 호수왕국 정문을 통해 나서는 건가?》
《예. 다만 유의하셔야 할 점이…….》
알파가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이름 잃은 자’가 정문을 막고 있습니다.》
셀렌디온의 붉은 두 눈이 가늘어졌다.
무명(無名).
혼자서 이 지옥의 괴물들을 대부분 틀어막고 있는, 호수왕국 최후의 저항자.
《그 여자야말로 진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 중이지.》
셀렌디온은 끌끌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 긴 세월을…… 잘도 꺾이지 않고 싸워 오고 있구나. 그깟 책임이 뭐라고. 포기하고 남들처럼 편해지면 될 것을.》
《하지만 ‘이름 잃은 자’의 저항도 슬슬 한계입니다.》
알파는 북쪽을 힐긋 응시했다. 호수왕국 정문이 위치한 방향이었다.
《지난 오백 년간은 혼자서 범람 대부분을 막아냈지만, 근래 들어서는 힘에 부치기 시작했지요. 당장 이번에도 저희를 막지 못할 겁니다.》
알파는 손을 뻗어 출진 경로를 설명했다.
《본대 1천을 제외한 나머지 군단은 전원 북쪽 중앙광장에서 대기 중입니다. 잠시 뒤 이들이 미끼로서 정문으로 진격, ‘이름 잃은 자’와 전투에 돌입할 겁니다. 이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에…….》
《본대는 정문을 통과. 인세로 나아간다는 거군.》
셀렌디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동안 다른 군단들도 이렇게 출정했나?》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미끼가 될 군단을 ‘이름 잃은 자’에게 던져 주고, 미끼 군단이 시간을 끄는 사이 소규모 본대가 왕국 바깥으로 출정했습니다.》
알파는 이를 악물고 치를 떨었다.
《‘이름 잃은 자’만 아니었다면 매번 수만의 괴수들이 인세를 공격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인세는 진작 멸망했겠지요.》
《인세를 멸망시키는 데에 수만씩이나 되는 숫자는 필요 없지.》
흐릿하게 웃은 셀렌디온은 자신의 정예들을 쭉 둘러보았다.
《우리 1천으로 충분하다.》
그 말에 셀렌디온 휘하의 흡혈귀들이 일제히 미소했다.
그래, 세상을 멸망시키는 데에 수만씩이나 되는 괴수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흡혈귀 10체. 구울 1천.
이들이면 지상에 지옥도를 만드는 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다.
《출발하지.》
가볍게 발을 뗀 셀렌디온이 앞장섰다.
《오랜만에 지상 공기를 마시고 싶으니.》
그런 셀렌디온을 1천의 혈족 군단이 질서 정연히 뒤따랐다.
***
호수왕국 북쪽.
정문 앞. 중앙광장.
셀렌디온과 군단 본대 1천이 이곳에 다다랐을 때, 이미 전투가 진행 중이었다.
번쩍-!
쿠과과광!
거대한 빛줄기가 함포사격처럼 쏘아지고, 그 빛줄기에 스친 괴물들이 가루처럼 녹아내리며 사라졌다.
낡아빠진 로브와 하얗게 센 머리칼을 사방으로 휘날리며, 무명이 싸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반역자 자식!》
《죽여! 사지를 찢고 피를 뽑아내!》
수백의 흡혈귀들이 혈마법을 시전하며 달려들었고,
그어어어!
그아아아아-!
무수한 프로스트 구울들이 입에서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사방에서 포위를 좁혔다.
하지만,
번쩍! 번쩍-!
손에 들린 낡아빠진 검에서 빛줄기를 뿜어내며, 무명은 그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거대한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온통 캄캄한 어둠에 뒤덮인 이 호수왕국의 상공에 새파란 섬광이 스치며 찰나지간 도시를 밝혔다.
“네놈들은 이 나라가 저지른 과오(過誤)의 결과다.”
무명이 사납게 읊조렸다.
“어딜 바깥으로 새어나가려 하느냐. 악몽은 이 호수왕국 안에서만 꾸도록 해라, 괴물들아……!”
번쩍-!
쏘아진 빛줄기가 미끼 군단의 중앙을 강타했다.
빛에 휩쓸린 괴물들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멸했다.
셀렌디온은 그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
《내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기답군. 아름답구나.》
셀렌디온이 가장 많이 시도한 자살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무명과 맞붙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명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면, 반드시 왕이 되살려냈다.
왕은 다른 어떤 요소로 군단장이 죽음을 맞이하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무명에게 죽는 것만은 막았다.
그렇기에 여기서 충돌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무명과 미끼 군단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셀렌디온과 본대는 조용히 그 옆을 통과했다.
쿠구구궁-
출정을 감지한 것일까.
잔뜩 녹슨 북쪽 성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셀렌디온……!”
본대가 빠져나가는 것을 눈치챈 무명이 이쪽을 향해 고함을 쳤다.
“어디로 가려는 게냐, 이 흡혈귀 자식!”
《그야 당연히 지상이다. 고결한 폐위왕녀(廢位王女)여.》
“……!”
왕녀.
그 호칭에 무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얗게 센 머리칼 아래로 보이는 이가 악물렸다.
《언제까지고 이 지옥의 비극을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라.》
흐릿한 미소를 흘린 셀렌디온은 이제 완전히 열린 북쪽 성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섰다.
《결국 너도 세월에 마모되고 삼켜질 테니까.》
“기다려, 셀렌디온! 이……!”
무명은 필사적으로 본대를 막아서려 했지만, 미끼 군단이 온 사방에서 그녀를 덮쳐 왔다.
빛줄기와 핏방울이 휘몰아치는 전장을 뒤로하고, 셀렌디온과 본대는 북쪽 정문을 빠져나와 호수왕국 바깥으로 나섰다.
성문에서부터 호수 수면까지는 투명한 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쏴아아아!
따라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셀렌디온과 혈족 본대는 수면 바깥으로 나설 수 있었다.
《공기가 좋군.》
수백 년 만에 맛보는 바깥세상 공기를 가만히 들이마신 뒤, 셀렌디온은 똑바로 북쪽을 노려보았다.
《자. 세계를 멸망시키러 가자.》
저 길의 끝에 자신의 죽음이 있기를 빌며.
흡혈왕은 인간 세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