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32
◈ 132. [STAGE 5] 시산혈해
아침 해가 눈부시게 밝아온다.
“…….”
성벽 위에 선 나는 환한 동쪽 하늘을 잠시 응시하다가, 내키지 않는 고개를 돌려 남쪽을 보았다.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괴물의 군대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혀를 찼다.
“구울 주제에 뭐냐고…….”
과연 흡혈왕의 친위대라고 할지.
놈들은 구울 주제에 잘 훈련된 군대처럼 오와 열을 딱 맞추어 진형을 이루고는,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에는 흡혈귀 10체.
일반 흡혈귀 일곱이 각자의 무장을 점검하고 있고, 흡혈귀 장군으로 보이는 둘은 흡혈귀 군주의 시종을 들고 있다.
그리고 흡혈귀 군주- 셀렌디온.
놈은 가마 위에 가만히 드러눕듯 앉아서, 이쪽 성벽을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고 있다.
생사결이 아니라 유희라도 준비하는 듯한 시선이다.
그때였다. 망원경을 통해 보는 나와 셀렌디온의 시선이 마주쳤다.
생긋.
붉은 눈을 달처럼 휘며, 소년 외양의 흡혈왕은 내게 작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 새끼가.
“넌 뒤졌다, 씹새야…….”
욕지거리를 내뱉은 나는 망원경을 눈에서 떼어 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인간의 군대 또한 그곳에 도열해 있었다.
영웅 캐릭터 풀 파티 4개.
나의 메인 파티, 그림자 부대, 디온 용병단, 올드 헌터스.
그 뒤의 예비대 파티 2개. 릴리와 마르헤리타의 파티.
좌우로 빽빽이 늘어선 대포와 발리스타. 그 뒤에 자리한 1200여 명의 용병들.
황혼병단 삼백 명. 스테이지1부터 함께 해온 용병 오백 명. 이후로 확충해온 용병 사백 명.
‘이쪽도 정예다.’
고작 몇 달의 시간 동안, 수천의 괴수를 죽이고 몇 층이나 되는 던전을 돌파했다.
수백 년 묵어 썩은 내가 풍기는 너희 불사의 괴물들보다 훨씬 싱싱하고 젊은, 살아 있는 인간의 정예들이다.
‘질 것 같으냐, 괴물 새끼들아……!’
척! 척! 척!
구울 군단의 진형이 일변했다.
최후열에 있던 구울 삼백여가 앞으로 나오면서 넓게 진형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옆을 보고 크게 소리쳤다.
“놈들이 공격을 준비한다! 전군! 방어전 태세를 갖춰라!”
바짝 긴장한 병사들이 각자의 수성병기에서 발사 준비를 마쳤다.
영웅 캐릭터들도 자신들의 장비를 움켜쥐고 마른침을 삼켰다.
“긴 말 않겠다.”
나는 짧게 외쳤다.
“이겨라!”
오오오오-!
내 외침을 들은 병사들이 고함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두두두두두-!
대지를 울리며 구울들이 내달려 오기 시작했다.
프로스트 구울 300체.
다짜고짜 300마리. 첫 번째 웨이브 치고는 다소 버겁다.
새파랗게 얼어붙은 시체들이 자로 잰 듯이 완벽한 진형을 유지하며 달려오는 광경은, 여러 의미로 공포스러웠다.
삽시간에 평야를 내질러 달려온 구울들은 이윽고 나무 울타리로 장애물을 쌓아 둔 킬존 영역에 도달했다.
일반적인 괴수 군단이라면 저곳에서 병목을 일으키며 오래 시간이 끌리겠지.
하지만 이들은 군단장이 직접 지휘하는 괴수들.
장애물을 쌓아 만든 킬존은 잠시의 시간벌이는 될지 몰라도, 영구히 놈들을 붙들어 둘 수는 없다.
콰직! 콰득!
아니나 다를까 구울들은 어렵잖게 나무 울타리를 부수어 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장애물을 이용한 경로 강제가 애초에 먹히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쏴라-!”
어쨌든 시간은 끌리고 있다. 그 틈에 공격을 먹여 주면 된다.
사거리 안에 놈들이 들어오자마자 내가 외쳤고, 일제히 대포가 불을 뿜었다.
퍼버버벙-!
귀청을 찢는 소리와 함께 포탄이 발사되었다.
피이잉-
공기를 파헤치며 쏟아진 수십 발의 포탄은 이윽고 지면에 착탄.
쿠과과과광!
시뻘건 불꽃과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에 휩쓸린 구울들이 단숨에 피곤죽이 되었다. 하지만 나도, 병사들도,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확실히 주지시켜 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공격으로는…… 놈들을 죽일 수 없다고.
그으으으…….
그아아아아!
피곤죽이 되었던 구울들은 잠시 후 하나 둘 몸을 재생하며 일으섰다.
조각조각 났던 살점이 서로 들러붙고, 사방으로 뿌려졌던 피가 빨려들며 모이더니, 뼈대를 이루고 다시 괴물의 형상으로 합쳐진다.
이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노려보고 있었다.
이들은 셀렌디온의 친위대.
셀렌디온 자신의 목숨을 나눠주어 부활시킨 괴물들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아무리 해치워도 소용이 없다.
개체가 사망한 즉시 ‘목숨’이 셀렌디온에게 반환되고, 셀렌디온은 다시 그 목숨을 부하에게 돌려주면서 재생시키기 때문.
1천의 괴물 모두가 셀렌디온과 ‘피’와 ‘생명’을 공유하는, 혈족 군단이기에 가능한 좀비 같은 짓거리다.
이것을 막으려면 결국 어째야 하느냐?
‘영핵을 부숴야 한다.’
이 세계에서 생명의, 영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핵. 영핵.
그것을 파괴하면 된다. 그러면 놈들은 영영 쓰러지고, 셀렌디온의 목숨 스톡도 하나씩 사라진다.
문제는 숫자.
1천에 달하는 이 괴물들의 영핵을, 어떻게 일일이 파괴하느냐?
‘내가 이거 해결하려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아냐, 이 핏덩이 새끼들아.’
한쪽 입가를 끌어올려 미소하며 나는 가까워져 오는 괴물들을 노려보았다.
쾅! 콰과광!
후두두두둑!
그아아아-!
쏟아지는 포탄과 발리스타의 비를 헤치고, 구울떼는 죽고 재생하기를 반복하며 순식간에 성벽으로 쇄도해 오고 있었다.
‘더 가까이 와라.’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가까이! 더!’
***
《오랜만의 인세 침공이라 조금은 기대했는데.》
순조롭게 성벽으로의 거리를 좁혀 가는 구울떼를 보며, 알파가 중얼거렸다.
《이거 너무 시시하군요. 이렇게 쉽게 거리를 내주다니. 예전에는 이리 쉽지 않았는데.》
《…….》
《저희가 저 아래 갇혀 지낼 동안, 인간의 전술은 퇴화한 것일까요? 아니. 어쩌면 그 긴 세월 동안 제대로 된 괴수 군단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었을지도요.》
알파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베타가 응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셀렌디온은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그런 셀렌디온의 의자 옆 탁자에 뜨거운 찻잔을 세팅하고 차를 따르며 알파가 빙긋 웃었다.
《어쩌면 저희가 나서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드.》
《…….》
《아, 로드께서는 이번에 직접 나서고 싶어 하셨지요. 이거 실망하시게 될지도 모르겠는걸요?》
만일 구울떼가 성벽에 접근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그 파멸적인 식욕을 앞세워 성벽 위의 인간들에게 이빨을 들이밀 것이다.
‘구울은 식인귀다. 식욕의 화신이야. 일정 거리 안에 싱싱한 피와 살이 있다면, 호전성은 배가된다.’
일단 접근한 구울들은 단숨에 인육을 탐하고 적의 생명을 취할 것이다.
혈족 군단에게 생명을 취(取)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진다’는 의미다.
적의 생명을 빼앗아 군단의 여분 생명으로 비축한다는 뜻이다.
《구울 군단이 접근에 성공한다면, 그 시점에서 인간들에게 승산은 없습니다.》
현재 혈족 군단의 생명 스톡은 1천 개.
하지만 적을 죽이고 그 피와 살을 취하면, 그만큼의 목숨이 추가된다.
이쪽은 목숨을 죽이면 그만큼 목숨을 얻는데. 인간 쪽은 오로지 잃기만 할 뿐이니.
그 시점에서 승패가 결정된다.
그렇기에 보통 구울 군단을 물리치는 것은 거리를 벌린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인간의 방어선은 속절없이 거리를 좁혀오는 구울 떼를 수수방관할 뿐 아닌가.
《이제 곧입니다. 성벽 바로 앞까지 갔군요. 이거, 인세의 첫 침공이 이리 시시하게 끝나서야.》
《…….》
침묵하던 셀렌디온의 입이 작게 열렸다.
《뭔가 이상하군.》
《예? 어떤 것이 말씀입니까?》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셀렌디온은 적장, 애쉬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향해 그토록 선명한 적의를 드러내던, 어린 인간의 얼굴을…….
《그 올롭을 죽인 남자가…… 이리 쉽게 당할 리가 있겠느냐?》
《로드께서 적을 과대평가하신 것이 아닐까요? 애초에 올롭은 대포에 맞아 죽었다지 않습니까? 평범한 인간이 운 좋게 그 거미를 죽인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
《뭐, 곧 결론이 나겠지요. 그것이 필부(匹夫)의 운이었는지, 아니면 위대한 인간의 전공이었는지는.》
그아아아아-!
구울 군단의 선두가 성벽 아래 해자에 닿았다.
해자에 가득 찬 성수에 빠진다면 구울 군단도 꽤나 대미지를 입겠지만, 이들은 프로스트 구울.
쩌저적-
입에서 뿜어낸 냉기로 단숨에 해자를 얼려 버린 뒤, 훌쩍 건너뛰었다.
이제 바로 성벽이었다. 여전히 성벽 위에서는 변변한 마법 공격도 없이, 대포와 화살만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로 끝이냐, 인간?’
셀렌디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성벽을 내준다고?’
셀렌디온은 유구한 세월 동안, 무수한 인간의 성벽을 상대했다.
고대의 위대한 인간들은 온갖 참신한 마법과 스킬을 조합해서 흡혈귀들을 막아 내곤 했다.
마법 수성병기와 월은(月銀)으로 이뤄진 성벽, 부정을 정화하던 푸른 불꽃 등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인간들의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성벽은?
‘고작 대포와 화살이 끝이냐? 정말로?’
그렇다면- 멸망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텐데.
턱!
최선두 구울의 손이 성벽에 닿았다.
쩌적! 쩌저적!
얼음을 얼려 손을 성벽에 붙이고, 이를 손발 모두에 반복하며 성벽에 들러붙어 기어오른다.
프로스트 구울 수십 체가 성벽 등반을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며 셀렌디온은 혀를 찼다.
어디까지나 정찰용으로 보낸 1진에 불과한데, 이 구울들이 성벽을 함락 시키게 생겼다.
《고작 이 정도였나…….》
셀렌디온이 내뱉은 그 순간,
쿵! 쿠구궁!
성벽 위에서 아래로 무언가를 우르르 떨어뜨렸다.
알파가 미간을 찌푸렸고, 베타는 자세히 보기 위해 디딤발을 했다. 셀렌디온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그것은…… 소와 돼지의 시체였다.
성벽 위에서 느닷없이 가축 시체를 수십 구나 떨어뜨린 것이다.
《어…….》
처음 접하는 광경에 알파가 얼떨떨해 했다.
《지금 저들이 뭘 하는 거죠?》
미리 칼집을 내어둔 가축 시체에서 혈향이 진득하게 퍼져 나왔다.
구울들의 시선이 일제히 가축 시체로 돌아갔다.
그어…….
그어어어!
그리고 구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가축 시체로 달려들었다.
성벽을 오르던 놈들까지 모조리.
삼백 마리의 구울들이 모두 땅에 고개를 처박고 가축 시체를 파먹기 시작했다. 알파가 이마를 탁 쳤다.
《이 멍청한 녀석들이……!》
혈족은 항상 허기가 져 있는 괴물들이다.
구울은 고기가. 흡혈귀는 피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나마 흡혈귀는 고위 존재가 될수록 스스로의 본능을 억제하고, 마력과 생명력 농도가 짙은 보다 고가치한 피를 선호하거나 하지만.
구울은 그런 것이 없다.
그저 눈앞의 피와 살에 미쳐 버리는, 식인귀이므로.
《……저희 군단의 약점을 제대로 찔렸군요.》
자신의 부하들의 몰골을 보며 쪽팔려 하던 알파가 혀를 찼다.
《하지만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이런 수는…….》
《옛날 전쟁은 좀 더 체통을 중시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셀렌디온이 차갑게 뇌까렸다.
《별로 의미가 없으니까.》
고작해야 가축들의 시체 따위. 구울들 앞에서 몇 십 초면 갉아 먹혀 사라진다.
실제로 수십 구의 소와 돼지 시체는 어느새 거의 뼈만 남은 상황이었다.
구울들의 식탐은 무지막지한 수준이었다.
《잔재주가 이것뿐이라면, 시간 끌기 이외의 용도는 안 될 텐데……?》
그때였다.
드르르륵!
성벽 위에서 거대한 대포들이 아래를 겨누었다.
가축 고기를 파먹느라 옹기종기 모인 구울 떼를 향해서였다.
《또 대포인가…… 안 통하는 걸 알면서도.》
셀렌디온이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퍼버버벙!
쿠과과광-!
일제히 대포가 쏘아졌고, 한데 모여 있던 구울들을 피곤죽으로 만들었다.
삽시간에 구울들이 산산조각 나 전멸했다.
셀렌디온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구울들의 목숨이 자신에게 회수되면 다시 재생시키려 했다.
《……?》
하지만.
《……회수되지 않는군.》
돌아오지 않았다.
목숨이…… 증발한 것이다.
《예? 그게 무슨…….》
의아하게 되묻던 알파는 화들짝 놀랐다.
셀렌디온이, 웃고 있었다.
선명하게 양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영핵이 모조리 파괴당했다. 삼백 마리 전부 다.》
정확히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이렇게 나와줘야 이쪽도 싸울 맛이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