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75
◈ 175. [Side Story] 파티 전야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세레나데의 박자에 맞추어, 우리 둘은 왈츠를 추었다.
더 이상 실수도 없고, 나도 꽤 그럴싸하게 리듬을 타게 되었다. 세레나데가 빙그레 웃었다.
“이제 정말 잘 추시는데요, 낭군님?”
“…….”
나는 그런 세레나데를 가만히 마주보았다.
페르난데스의 말이 귓가에서 계속 울리는 듯했다.
– 이번에는 제대로 된 고귀한 혈통의 아가씨야. 아리안 왕국의 공주인데, 너도 알다시피 아리안 왕국은 북부의 동맹국 중에서 가장 큰 곳이고…….
– 이번 혼담만 잘 받아 주면, 크로스로드를 지키기에 충분한 정예 병력을 데리고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내 어금니가 꽉 맞물렸다.
– 윈터실버와는 파혼할게. 그리고, 아리안 왕국의 공주와 만나 볼게.
나는 그때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당연히 이 선택이 맞다.
멸문 당하기 직전인 상단의 딸과, 북방 강국의 공주.
비교 자체가 민망하다. 어느 쪽이 더 괴수전선에 이득인지는 재어 볼 것도 없다.
윈터실버 상단이 아무리 규모가 크다고 해도 한 나라의 힘에 비교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아리안 왕국은 북방 국가 중 가장 전투력이 강한 나라다.
‘게임에서도 아리안 왕국 출신 용병들이 몇 있었지.’
혹한의 땅에서 온 친구들답게 하나같이 무지막지하게 억센 캐릭터들이었다.
빙결 저항은 기본에, SSR등급도 몇 있었고.
아리안 왕국의 공주와 정략결혼을 한다면, 이 억세고 강인한 북방의 군인들을 괴수전선에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인가? 황실에서 시키는 대로 정략결혼을 하면, 황실과 내 사이가 좋아질 터.
그러면 중앙에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당장 이번에 크로스로드로 귀환할 때 정예 병력을 지원해 준다지 않나.
그러나-
“…….”
꺼림칙하다.
무언가 말로 형언하기 힘든 꺼림칙함이 내 직감을 살살 건드리고 있었다.
가시나무.
수호자들.
또 다른 전선.
멸망의 운명…….
내가 망설이는 것은 지금 나와 손을 맞잡고 춤추고 있는 이 아가씨가 가여워서가 아니다.
742번의 공략으로 다져진 게이머로서의 감이었다.
저 루트에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그 무언가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공략은 감정이나 직감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데이터와 근거를 토대로 다져가는 외다리길이다.
그리고 데이터와 근거는 아리안 왕국의 공주 쪽에 설 것이 분명했다.
“…….”
고민하는 내 얼굴을 세레나데가 빤히 보는 게 느껴졌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춤을 이어가며 물었다.
“세레나데, 전에 시킨 일의 진척은?”
“아, 넵!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세레나데에게는 정보를 거래할 수 있도록 상단의 재정비를 지시해 놓았었다. 그 진척을 물은 것이다.
“상단 지점이 있는 도시마다 정보원들이 뿌려져 있습니다. 주로 현지 물가나 상품 가격, 날씨와 특산품 현황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 쓰고 있었습니다만.”
“그 친구들을 활용할 수 있겠나?”
“네. 이미 커넥션이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수집하는 정보의 종류만 바꾸면 됩니다.”
이미 전국 각지에 정보망은 완성되어 있는 상태고.
“그리고 가문에서 독자적으로 이용하던 암호문을 체계화해서 각 도시 상단 지점장에게 숙지하도록 했습니다.”
세레나데는 차근차근 말했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암호문 작성은 지점장 모두가 할 수 있지만, 해석은 저와 제 최측근밖에 하지 못합니다.”
암호화 방법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저희 상단의 자랑 아닌 자랑입니다만…… 지점마다 전서응(傳書鷹)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매를 이용해서 우편을 전달한다는 말이야?”
“네. 예전에 경쟁하던 상단에서 저희 상단 전서구를 의도적으로 잡아 죽이는 바람에, 화가 많이 난 아버지께서 도입하셨습니다. 테이밍 마법까지 써야 해서 돈은 엄청나게 많이 들었지만, 정확도나 속도, 안정성은 훨씬 낫습니다.”
생각보다 뭘 엄청 많이 갖췄네, 이 상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세레나데. 그럼 그 정보원들과 암호문, 그리고 매 친구들을 이용해서, 앞으로 남은 사흘간 내가 지시하는 정보를 수집하도록 해.”
나는 윈터실버 상단이 수집해야 할 정보들에 대해서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세레나데는 마른침을 삼키며 나를 보았다.
“괘, 괜찮을까요? 이런 정보는, 꽤 위험한 게…….”
나는 엄하게 말했다.
“너희 가문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이야. 제대로 수행해야 해.”
세레나데는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낭군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돈은 얼마를 써도 좋아.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정보라도 상관없어. 질보다는 양이라는 생각으로, 가능한 많은 정보를 모으는 거야.”
그렇게 춤을 추며 회의를 이어 가다가, 오늘의 댄스 연습이 끝났다.
나와 세레나데는 마주서서 서로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낭군님.”
“나도 즐거웠어, 세레나데.”
이제 서로 익숙해진 인사를 나누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몰아쉬는 세레나데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윈터실버 가문이 살아남을지, 멸문할지.
그것은 앞으로 온전히 윈터실버 가문이 수집해 오는 정보에 따라 달려 있다.
‘최선을 다해줘, 세레나데.’
데이터와 근거는 윈터실버를 떠났다.
그러나 내 직감은, 여전히 세레나데 옆에 서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내 직감이 맞기를 바란다. 그러나.
데이터와 근거가 너무도 확실하다면, 공략을 위해서…… 잔혹한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
승전기념축제가 가까워지자 황도는 점점 분주해지고 어수선해졌다.
도시의 골목마다 색색의 천에 감싸인 등(燈)이 내걸리고 만국기가 매달렸다.
만국기의 디자인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는데, 제국 국기와 함께 제국 동맹국들의 깃발, 특히 북부전선 동맹국들의 깃발이 강조되어 그려져 있었다.
뻔하지만 효과적이군.
시간은 금세 흘러서, 어느새 파티 전날이 되었다.
제발 오늘만은 별궁에 얌전히 계셔 달라는 알베르토의 눈물 어린 간청에 고개를 끄덕여준 나는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별궁 밖으로 나왔다.
이제 와서 네 말 듣기엔 내 짬이 너무 차버렸다, 알베르토.
‘축제 전야라 그런가, 난리도 아니네.’
별궁을 무사히 빠져나온 뒤, 망토를 벗어 인벤토리에 넣고.
왁자지껄한 도시의 골목을 살피며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온 사방이 가판에, 좌판에, 먹거리에, 놀거리다. 그리고 들뜬 채 쏟아져 나온 사람들 투성이다.
‘우리 파티원들 데리고 오면 재밌겠는데.’
시끌시끌한 거리를 지나면서, 나는 내 파티원들을 데리고 이곳을 거니는 상상을 잠깐 했다.
에반젤린은 얼마 전에 자기가 여기 졸업했다면서 길안내 하겠답시고 맨 앞에서 쫑쫑쫑 뛰어다니다가 [실수투성이] 특성 터져서 자빠지겠지.
데미안은 눈 동그랗게 뜨고 여기저기 살피면서 그 좋은 눈으로 ‘저기서는 닭꼬치 팔아요!’ ‘저기서는 튀긴 빵을 팔아요!’ 하면서 정찰병 노릇 해 줄 테고.
쥬니어는 저쪽의 폭죽상이나 마법풍선 따위를 파는 가게 앞을 기웃거리지 않으려나.
‘나도 장사나 해볼걸 그랬네요’ 같은 소리 하면서. 각혈은 그만 하면 좋을 텐데.
루카스는…… 내 뒤에 딱 붙어 있겠지.
근엄한 얼굴로 나를 지키니 뭐니 부산떨다가 내가 먹을 거 하나씩 집어주면 입에 쏙쏙 넣어 댈 것 같다.
그렇게 메인 파티원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축제 거리를 거닐고 있자니, 누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응?
누군가 싶어서 돌아봤더니 엘리제다. 여전히 험악한 얼굴에 하녀복, 그리고 관을 짊어진 차림이다.
“여기 계셨군요, 전하.”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명색이 축제인데 얼굴이라도 좀 펴는 게 어때, 엘리제?”
“…….”
“하다못해 그 관이라도 좀 놓고 다니든가.”
축제에 뭔 관이야. 주위 사람들이 무서워하잖아. 그…… 내용물도 진짜 무섭고.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엘리제가 특유의 음산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주인님께서 시키셨습니다. 황자 전하께서 혼자 도시를 돌아다니실 게 분명하니, 옆에서 호위하라고.”
“그래서 나 기다리고 있었어?”
“별궁 주위에서 대기하다가, 뭔가 보이지 않는 투명한 기척이 느껴지기에 쫓았더니 황자 전하셨습니다.”
감지 마법 3레벨 이하로는 걸리지도 않는 투명 망토를 기척으로 따라 느끼고 쫓아왔다는 건가.
역시 SSR등급다운 개코…… 아니, 아무튼 감지능력이 좋구나.
“지금 황도에는 외국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중앙상비군이 경비태세를 높였지만, 축제의 들뜬 기운까지 겹쳐 평소보다 불순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엘리제가 감청색 눈동자로 날카롭게 주위를 살폈다.
“호위하겠습니다. 안전한 곳 위주로 이동하시지요.”
“따지고 보면 네가 제일 위험한 것 아냐?”
그 등 뒤의 관으로 내 목 따려고 했으면서 말이지.
“……당장은, 전하께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엘리제는 나를 흘깃 보았다.
“전하께서 바뀌시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도 무인입니다. 목숨을 빚진 상대의 뒤를 노릴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나는 어깨를 으쓱인 뒤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엘리제가 재빨리 내 뒤로 붙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십니까?”
“네 주인한테.”
내가 달리 갈 곳이 어디 있겠냐. 파티 전날에 마지막으로 춤이나 점검해야지.
“왜, 싫어?”
내가 묻자 엘리제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솔직히 저는 싫습니다만, 아가씨께서는 좋아하시니까요. 안 그래도 가능하면 아가씨께 모셔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레나데도 솔직하지 못하구만.”
뭔 호위는 호위야. 그냥 처음부터 ‘엘리제를 마중 보냈으니 저한테 오세요’ 이렇게 말 전하면 될 것을.
“……상단에 뭔가 이상은 없나?”
인산인해인 거리를 헤치고 부두로 향하다가 내가 엘리제에게 불쑥 물었다.
“황실의 압박이나, 암부의 공작이나…… 별다른 일 없어?”
“없습니다.”
냉정하게 대답한 엘리제가 조금 놀란 듯 내게 물었다.
“곧 그런 일이 생길까요?”
“모르지. 세상일이라는 게 어떻게 돌아갈지.”
황실에서는 아직까지 윈터실버 상단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바빠서 신경을 안 쓰는 것인지.
파혼도 공문을 내리지 않았고, 상단을 빼앗으려는 움직임도 없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있다.’
내일 파티만 잘 진행된다면…….
윈터실버 상단에는 아직 살아날 길이 남아 있다. 설혹 내가 세레나데와 파혼하고 아리안 왕국과 연결된다고 해도…….
“음?”
그때였다.
엘리제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왜 그래, 개코.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납니다만…….”
“응? 좌판에서 고기 굽는 냄새 아니야?”
“아닙니다, 이건…….”
엘리제가 감청색 두 눈을 부릅떴다.
“화재의 냄새입니다.”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스쳤다.
일순 눈을 마주친 나와 엘리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파를 헤치고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남쪽 하늘에 솟아오르는 매캐한 연기가 보였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헤치고 부두에 도착하자, 거대한 불길이 보였다.
화염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건물은…… 바로 어제까지 내가 사교댄스를 연습하던 그 건물.
윈터실버 상단의 건물이었다.
“……아가씨.”
엘리제가 처음 듣는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불길에 휩싸인 건물을 향해 달려 나갔다.
“세레나데 아가씨!”
이런 망할.
나도 급히 그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