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98
◈ 198. [자유탐사] 오합지졸
다음날 아침.
던전 안으로 2개 파티가 진입했다.
우리 메인 파티와, 쿠일란의 산적단 5인 파티였다.
“아니, 우리 일은 성벽 위에서 괴물이랑 싸우는 거 아니었수?!”
어두컴컴한 던전 안으로 끌려오자, 쿠일란은 단숨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습해! 어두워! 으스스해! 여긴 또 어디야!”
“던전이야, 던전. 괴물들 본거지.”
호수왕국 던전 3구역. [외성 북쪽].
나는 시커먼 어둠이 꿀렁거리는 던전 안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미리 다음 방어전 괴물들이랑 싸워 보는 거야.”
“이, 이런 데서 싸워야 한다는 말은 계약서에 없었다고!”
“에이~ 무슨 소리야. 여기 이렇게 잘 쓰여 있잖아.”
저 소리 할까 봐 계약서 미리 챙겨서 가져왔다. 나는 품에서 꺼내든 계약서를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
“여기 구석에, 조금 작은 글씨로. 분명히 쓰여 있잖아? 그리고 네 서명도 여기 있네? 보이지?”
“크…… 크윽?!”
쿠일란은 낭패한 안색으로 계약서를 살폈다. 나는 그 앞에서 음흉하게 웃었다. 그러게 잘 살폈어야지, 친구야. 켈켈켈.
“으…… 으으, 으으으……!”
쿠일란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던전 안쪽과 안전 거점을 번갈아 살폈다.
그런 쿠일란을 지켜보던 다른 산적들이 한숨을 내쉬며 내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저희 대장이 좀 쫄보라…….”
“보기보다 겁이 많아요. 이해 좀 해 주십쇼.”
“아니, 제국군 상대로는 무쌍찍고 활개치고 다니던 산적단 두목이 어떻게 겁쟁이야. 말이 안 되잖아.”
내 의문에 대한 답은 심플했다.
“저희 대장은 상대가 사람이라면 제국군 장군도 우습게 보지만…… 그, 귀신이나 괴물은 엄청 무서워하거든요.”
“아…….”
있지, 그런 타입. 유독 오컬트 쪽에 약한 사람.
“그리고 좁고 어두운 장소도 싫어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좁고 어두운 데다가, 괴물들 본거지라고 하니…….”
“저 2m가 넘어가는 근육질 덩치로 쫄아서 덜덜 떨게 됐다, 이거야?”
나는 혀를 끌끌 찼다.
우리 파티 최단신인 에반젤린도, 비쩍 마른 데미안도, 나이도 적고 신장도 작은데도 안 쫄고 잘 싸운다고. 덩치값 좀 해, 산적왕. 연봉값도 하고.
“걱정 마십쇼. 저희가 잘 살피겠습니다.”
다른 산적들이 비굴하게 웃으며 내게 굽실거렸다. 그리고는 쿠일란에게 달려가서 마구 타박하기 시작했다.
“정신 안 차려요, 대장?! 이게 무슨 망신이에요!”
“우리 형벌부대에 수습 기간이라고요! 여기서 제대로 못하면 다시 처형장으로 보내질지도 몰라요!”
“상대는 그 악명 높은 망나니 황자라니까!”
“반년만 버텨서 정규직 전환해야지! 쫄려면 그 뒤에 쫄아!”
부하들에게 돌아가며 타박 당하자, 쿠일란은 겨우겨우 용기를 냈는지 앞으로 나섰다. 여전히 얼굴은 허옇게 질린 채지만.
“조, 좋수다. 한 번 가 봅시다.”
“바로 그거예요, 대장!”
“우리가 보조할게요! 같이 해치웁시다!”
으쌰으쌰 서로를 북돋은 쿠일란과 산적들은 기세 좋게 선두에 서서 3구역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꿀렁꿀렁!
철벅! 철벅!
슬라임들이 굴러오기 시작했다.
[외성 북쪽 – Room 1]– 적을 전멸시켜라!
– Lv.12 노멀 슬라임 : 20체
레벨 12짜리의 특성 없는 슬라임. 숫자는 이십여.
이 정도면 쿠일란 파티가 몸을 풀기에 충분하다. 나는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으아아아악!”
“괴물이다아아!”
산적 넷이 일제히 뒤로 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혈압이 팍 솟구쳤다. 나도 모르게 뒷목을 잡고 꽥 소리쳤다.
“야 이 오합지졸 새끼들아! 뭐하는 짓거리야-!”
조금 전까지 자신만만하게 지껄이던 말들은 뭐였어! 잘 해낼 것처럼 서로 다독이더니!
“하, 하지만! 저런 괴물은 처음 보는걸요?!”
“듣도 보도 못했어! 늪지대에서 영혼을 흡수한다는 소울 드링커(Soul Drinker)인가?!”
“아니야! 틀림없이 희생자의 뇌를 빨아먹는다는 마귀!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이야!”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저놈들 그냥 슬라임이야, 슬라임! 레벨 12짜리! 너희 30레벨대니까 타격 무기로 툭 치기만 해도 펑 터뜨릴 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 보는 괴물들을 보고 혼비백산한 산적 놈들은 허겁지겁 우리 쪽으로 달려 도망쳐왔다.
“…….”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은 파티 리더, 쿠일란뿐이었다.
나는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제일 겁쟁이처럼 굴더니, 역시 산적왕이라는 위명은 헛된 게 아니었나?
“다…….”
그때 천천히 우리 쪽을 돌아본 쿠일란이 울상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리가…… 안 움직여…….”
“쫄아서 못 움직이는 거였냐고! 가지가지 하네 진짜!”
그때 쿠일란에게 가까이 다가온 슬라임 하나가 몰캉거리면서 쿠일란의 몸을 가볍게 쳤다.
퍽.
“크아아악-!”
그러자 쿠일란은 피를 토하며 이쪽까지 붕 나가떨어졌다. 아니 맷집 실화냐?!
내 앞까지 굴러서 나가떨어진 쿠일란은 피를 쿨럭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오, 오늘은 운이 없군…….”
“정신 차려, 이 개복치 같은 자식아! 그거 한 대 맞았다고 기절하지 마!”
하지만 쿠일란은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세상에. 이게 체력 스탯 5따리 유리몸인가?
“영입 전에는 그래도 나름 멋지게 싸우더니, 왜 영입하자마자 이 꼬라지인 거야……?”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주군. 근본도 없는 산적 놈들 따위를 영입하니까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 꼬락서니를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루카스가 혀를 끌끌 찼다.
“이번 영입은 실패인 것 같군요.”
“크, 크윽……!”
해마다 선수 스카우트 잘못했다고 욕 처먹는 프로스포츠단 프런트의 기분을 좀 알 것 같다.
아니 얘 퍼포먼스 좋았단 말이에요! 데이터도 나쁘지 않았고! 첫 경기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생각을 못했다. 산적 놈들, PVP에는 익숙하지만 오히려 PVE 숙련도는 없다시피 해!’
사람을 상대로 무기 휘두르고, 제국군과 악전고투를 벌이는 데에는 익숙할지 몰라도.
이렇게 본격적인 이형의 괴물들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대뜸 심도3 던전에 던져진 신병 5인 파티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을 거 같다.
그래, 이런 끈적거리는 어둠도 처음이고, 괴물도 처음 보면 이럴 수 있지. 이럴 수는 있는데…….
‘내가 기대했던 건 레벨대에 걸맞은 숙련 파티였는데…….’
가르쳐 나갈 길이 험난하다. 내심 한숨을 뱉는 내 앞으로 루카스와 에반젤린이 나섰다.
“일단 이 놈들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주군. 정비하고 계십시오.”
“그래, 부탁한다. 기사 듀오.”
둘은 크로스로드의 대장간에서 급히 둔기 장비를 공수해 온 상태였다.
루카스는 한손 철퇴, 에반젤린은 손잡이가 긴 전쟁망치였다. 등급은 높지 않지만, 슬라임을 상대로 충분한 위력을 발휘해 줄 것이다.
루카스는 어째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앞으로 나섰는데, 그 뒤를 따르는 에반젤린은 표정이 침울했다.
“우으…… 내 집 마련의 꿈은 언제…….”
어제 인테리어를 다 뜯어 버린 게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나 보군.
에반젤린의 방과 손님방 몇 개를 제외하면 모든 인테리어를 원상복구해 버렸다. 그 뒤로 계속 저렇게 의기소침해 있다.
‘……이따가 좀 달래 주긴 해야겠네.’
하지만 우울한 상태라고는 해도, 에반젤린의 PVE 숙련도는 이미 더없이 높은 상태. 루카스야 말할 것도 없고.
두 기사 듀오는 각자의 둔기를 휘두르며 슬라임들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퍽! 퍼억!
확실히 어제와는 전투 양상 자체가 다르다.
루카스의 철퇴가 슬라임을 으깨 버렸고, 에반젤린의 전쟁망치는 놈들을 납작하게 짓뭉갰다.
‘둘 다 장비 숙련도가 주무기에 쏠려 있어서 걱정했는데, 둔기도 잘 다루네.’
타격 속성 무기로 두들기자, 어제의 고전이 거짓말처럼 손쉽게 슬라임들이 터져 나갔다.
그 모습을 구경하며 산적들이 감탄했다.
“와…… 역시 기사님들은 차원이 다르네.”
“저 무서운 소울 드링커와 브레인 드레인을 저렇게 손쉽게…….”
“그야말로 신화 속의 결투를 보는 것만 같아……!”
“아니, 그냥 슬라임이라니까. 이 겁쟁이 허접 자식들아.”
한숨을 폭 내쉰 나는 품에서 포션을 한 병 꺼내서, 기절한 쿠일란의 얼굴에 들이부었다.
“일어나, 개복치.”
“커헉! 어푸어푸!”
쿠일란은 눈을 번쩍 떴다. HP바가 터무니없이 얇은 덕인가, 일반 포션 살짝 부었더니 바로 부활하네.
“야, 형벌부대. 차렷.”
내가 낮게 으르렁대자 쿠일란과 산적들이 즉시 내 앞에 재빠르게 도열했다.
“똑바로 들어. 여기는 유치원이 아니야. 괴수전선이다. 그리고 내가 너희한테 돈을 부은 이유는 즉시전력이 될 전투원이 필요해서야.”
“…….”
“갓 소집된 애새끼 신병처럼 굴 거면, 어? 내가 굳이 너네 같은 죄수 놈들 고용할 이유가 없지 않겠냐?”
처음부터 차근차근 A to Z 가르치면서 육성할 거면 그냥 신병 키우고 말지, 굳이 범법자였던 너희를 형벌부대라는 이름으로 데려올 이유도 없단 말이다.
“괴물 무서워서 벌벌 떨 거면 당장 짐 싸서 도로 감방 안으로 들어가. 제국의 법리대로 너희의 죗값을 정당하게 물어 줄 테니.”
“…….”
“하지만 감방이 싫고, 번듯하게 돈 받으면서 당당하게 감형 받고 싶으면, 똑바로 해. 산적왕과 그 친위대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 달란 말이다.”
나는 혀를 차며 저쪽에서 납작해진 슬라임들을 가리켰다.
“저 슬라임들, 너희가 상대해 왔던 제국군보다 훠-얼-씬 약한 괴물들이니까. 쫄지 말고 싸워. 알겠어?”
SR등급 격투가에, R등급 전사 둘. R등급 도적 둘.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으면 충분히 쓸 만한 파티가 될 거다. 첫 전투에서 삽질 좀 했다고 바로 내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래서야 언제쯤 쓸 만해질지…….’
내 타박에도 괴물들 쪽을 보는 산적왕 파티의 눈에는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이 쫄보 새끼들을 어째야 할꼬……?
그때였다.
띠링! 띠링!
갑자기 시스템 알림음이 연속으로 울렸다. 응? 나는 의아해하며 시스템 창을 열었다.
[외성 북쪽 – Room 1]– 적을 전멸시켜라!
– Lv.14 노멀 슬라임 : 28체
– Lv.15 삼색 슬라임 : 16체
– Lv.15 산성 슬라임 : 24체
– Lv.20 노멀 슬라임 : 30체
갑자기 웨이브 2번부터 웨이브 5번까지가 한 번에 갱신되었다.
“뭐…….”
이곳 [외성 북쪽]은 길게 뻗은 던전룸 한 곳에서 몬스터 웨이브를 연속해서 막아 내는 던전. 차례로 웨이브가 하나씩 몰려오는 게 보통인데.
철벅! 철벅!
한 번에 네 개의 웨이브가 동시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근 100체에 가까운 엄청난 수의 슬라임들이 사방의 성벽을 넘어 쏟아져 들어왔다. 뭐야, 이건!
‘아무리 레벨이 낮은 슬라임이라고 해도, 이 숫자는……!’
내 양 옆에 서 있던 데미안과 쥬니어가 즉시 전투를 준비했다.
데미안은 케르베로스 중 두 자루를 양손에 뽑아들었고, 쥬니어는 마법을 영창했다.
탕! 탕! 타앙-!
번쩍-!
마탄이 슬라임들을 꿰어 쓰러뜨리고, 벼락 마법이 슬라임 떼를 강타했다.
하지만 슬라임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성벽 아래에서부터 놈들이 기어 올라오다 보니, 마총이나 마법의 사각(射角)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놈들의 접근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슬라임들의 우리를 둘러쌌다.
“주군!”
1번 웨이브를 정리하러 나갔던 루카스와 에반젤린이 헐레벌떡 돌아오려 하고 있었지만, 두 기사도 슬라임 떼에 포위당해 고립된 상황.
나는 이를 갈며 지팡이를 휘둘러 등 뒤에 마력의 칼날을 불러들였다. 젠장, 쉬운 곳이라고 나도 방심했…….
철퍽!
슬라임 떼가 일제히 우리를 향해 뛰어올랐다.
영혼이 흡수당하거나 뇌가 빨리지는 않아도, 저놈들에게 집어삼켜지면 끔찍한 꼴을 당하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이런 망할!
그때,
타앗-!
개복치가 날아올랐다.
펑!
퍼버버버벙!
공중으로 훌쩍 뛰어오른 쿠일란은 사방으로 주먹과 발을 질풍처럼 뿌렸다.
그의 권경(拳勁)이 닿을 때마다 슬라임들은 찰흙처럼 으깨졌고, 킥에 차인 슬라임들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눈 깜짝할 새에 십여 마리의 슬라임들을 터뜨려 버린 쿠일란이 빙글 돌며 가볍게 자리에 착지했다.
그의 붉은 댕기머리가 움직임을 따라 둥글게 회전하며 내려앉았다.
“쒸이……벌…….”
산적왕의 입에서 구수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아무리 무서워도, 우리 물주님은 지켜야지……!”
척!
한쪽 주먹은 가슴 앞에 두고, 한쪽 주먹은 앞으로 쭉 뻗고. 몸의 무게중심은 한껏 낮춘.
특유의 권법 자세를 취한 쿠일란이 부하들에게 꽥 소리쳤다.
“얘들아, 자세 잡아라! 돈 벌어야지! 우리 돈 많이 필요하잖아!”
파티 리더의 외침에 산적들이 눈에 독기를 희번득이며 각자의 둔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영 못 써먹을 머저리들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도 정규직 전환 좀 해보자아앗-!”
소리치며 산적왕 파티가 사방으로 달려 나갔고, 괴물 무리가 그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