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02
◈ 202. [STAGE 8] 남의 나라
이번 스테이지의 다크 이벤트는 다음과 같다.
[발동한 다크 이벤트 : 보스 강화 I]> 보스 몬스터에게 임의의 강화 특성 하나가 부여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강화 특성이 부여되었는지 만나 봐야 알 거 아니야.
게다가 슬라임 군단의 몬스터 중 어떤 놈이 보스로 나선 것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슬라임 놈들도 어지간히 다종다양하단 말이야…….’
보스 몬스터로 어떤 놈이 당첨되었을까? 슬라임 킹? 슬라임 제너럴? 혹시 재수 없으면 슬라임 어보미네이션?
그래도 지금 상황이면 어지간해서는 대처가 될 것 같…….
쿵.
“?”
쿵.
“음?”
……뭔가 불길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쿵-!
우측 성벽 끝에서 정체불명의 육중한 굉음이 연속적으로 울려왔다. 나와 영웅들, 병사들은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쿠궁!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성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다.
우측 성벽의 철판이 거대한 무게에 짓이겨지듯 우그러뜨려지고 있다. 이게 무슨……?
‘슬라임 계열 몬스터 중에서 투명해지는 능력을 가진 놈은 없는데?’
그렇다면 설마- 다크 이벤트 강화로 보스 몬스터에게 ‘은신’이 부여된 건가!
“데미안! 저거 보여?”
다급히 데미안을 호출했지만, 데미안도 두 눈을 찌푸린 채 침음만 흘렸다.
“아, 아니요. 제 눈에도 포착이 안 돼요. 뭔가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천리안]으로도 파악이 안 된다는 말이야? 대체 얼마나 상위 레벨의 은신인 거야?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 나는 다급히 지시했다.
“일단 저쪽을 향해 쏴!”
데미안은 즉시 블랙 퀸을 뽑아들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조준했다.
“내 총끝은 빛나고…… 방아쇠는 심판을 내린다.”
아니 중2병 멘트는 됐고 일단 빨리 쏴!
투콰앙-!
블랙 퀸의 총구에서 쏘아진 마탄이 공간을 찢고 쇄도했다. 마탄은 오른쪽 성벽을 타고 올라오던 ‘무언가’를 정확히 맞췄다.
퍼억!
그러자 그 보이지 않던 ‘무언가’의 은신이 풀리며, 정체가 드러났다.
부오오오!
그것은 거대한…… 실로 거대한 슬라임이었다.
점액질의 거대한 유선형 몸통 안에 수백, 수천 가지 색깔이 휘몰아치고 있는. 거의 언덕 하나 정도 되는 크기의 슬라임.
그 거대한 몸통 위에는 마력으로 이뤄진 황금색 면류관이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황금색 면류관을 쓴 거대 슬라임?’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 이 괴물 자식은……!”
[적 정보 – STAGE 8]– Lv.35 슬라임 엠페러 : 1체
– Lv.30 산성 슬라임 : 26체
– Lv.25 삼색 슬라임 : 33체
“슬라임 엠페러잖아……?!”
를 플레이하면서도 몇 번 본 적 없는, 모든 슬라임 계열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최고 티어 괴물이다!
‘이런 놈한테 하필이면 다크 이벤트로 은신 특성 달아 줬다고? 미친 거 아니야?!’
게다가 아무리 은신을 부여받았다 한들, 일반적인 슬라임 몬스터라면 아군이랑 같이 몰려와야 정상이잖아.
은신 부여받았답시고 부하들 다 뒈질 동안 기도비닉(企圖秘匿) 유지하고 은밀기동해서 전장을 우회, 성벽을 기어올랐다고?
이게 슬라임류 몬스터가 할 수 있는 행동이긴 해?
“지랄도 정도껏이다, 시팔-!”
부오오오오!
코끼리가 울부짖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내며 슬라임 엠페러가 성벽 위로 펄쩍 튀어올랐다.
나는 목이 찢어져라 소리 쳤다.
“포병들! 전원 후퇴-!”
쿠과과광!
우측 성벽 위에 놓인 포대를 모조리 박살 내며 슬라임 엠페러가 성벽 위에 올라섰다.
포병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성벽 안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돌발사태에 당황해서 식은땀이 등줄기를 스쳤지만, 아직 방법은 있다.
“릴리! [처음부터 다시!]를 사용한다!”
“넵!”
내 지시에 아티팩트 팀 연금술사들이 낑낑거리며 사람 상반신 정도 되는 크기의 금속판을 꺼내들었다.
스테이지 5 종료 후 상자깡에서 얻은 SSR등급 수성 아티팩트, [처음부터 다시!]다.
이 거대한 황금색 금속판 안에 적을 비추면, 놈들을 웨이브 시작지점으로 강제 텔레포트 시킬 수 있다.
스테이지당 한 번이라는 제한이 붙긴 했지만, 특정상황에서는 지극히 유용한 아티팩트다. 바로 지금 같은 상황!
“아티팩트, 기동합니다-!”
금속판으로 슬라임 엠페러를 겨눈 연금술사들이 아티팩트를 기동시켰다.
우우웅-!
금속판이 하얗게 빛났다. 이제 곧 ‘찰칵!’ 소리와 함께 상대 몬스터를 포착해서, 웨이브 시작지점으로 놈을 날려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꿀렁!
슬라임 엠페러의 몸이 물방울처럼 일렁이더니, 그 안에서 작은 슬라임들이 우르르 토해졌다.
슬라임 엠페러의 권능인 슬라임 소환이었다.
투포환처럼 쏘아진 작은 슬라임들은 아티팩트 팀을 향해 쏟아졌고,
찰칵-!
[처음부터 다시!]의 시야를 깨끗하게 막아 버렸다.아티팩트에 휩쓸린 작은 슬라임 떼는 단숨에 강제 텔레포트, 웨이브 시작 지점으로 날아갔지만- 슬라임 엠페러는 아무 일도 없이 그 자리에 건재.
나는 이를 악물었다.
별 수 없다. 여기서 죽여야 한다.
“제에에엔-자아아앙!”
부조리한 게임 난이도.
다크 이벤트 강화 특성 중에서 은신을 생각하지 못한 나 자신.
그리고, 눈앞의 괴물 새끼.
셋 모두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은 나는 앞으로 손을 홱 뻗었다.
“백병전 가능한 인원, 전부 둔기랑 방패 챙겨서 나와! 무슨 일이 있어도 성벽 위에서 놈을 저지한다!”
이미 에반젤린과 루카스는 앞으로 내달리고 있다.
백병전 가능한 전병력으로 놈을 붙들어둘 지시를 내린 뒤, 나는 마법사들을 보았다.
“먼저 말해두지. 슬라임 엠페러는 속성 마법에 면역이나 다름없다.”
슬라임 엠페러는 모든 종류의 슬라임이 가진 특성을 제 한 몸에 다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해서 여타 속성 슬라임들이 보유한 불, 물, 벼락, 바람, 얼음…… 등등의 속성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속성 마법으로 때리면 그때그때 스스로에게 부여된 속성을 바꿔서 대미지를 반감해 버린다.
무(無)속성, 혹은 광(光)이나 암(暗)속성 마법이 그나마 유효하지만, 이 자리에는 그런 마법사가 없으니.
이대로는 가장 강한 딜러인 마법사들이 아무런 역할도 못 하고 구경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래서야 놈을 죽일 대미지가 부족하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쥬니어. 궁극기 [원소 해체]를 사용할 준비를 해라.”
대상의 마력 스탯을 마이너스까지 갉아 버리는 쥬니어의 궁극기라면, 속성이 어떻게 바뀌든 무시하고 마법 대미지를 꽂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쥬니어의 궁극기로 슬라임 엠페러의 마력 스탯을 갈아 버리고, 레이나의 강력한 바람 마법으로 끝장낸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놈을 끝장낼 방법이었다.
그러자 쥬니어는 낭패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정말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전하…… 방금 마법 연사로 조금 무리한 탓에, 회복까지 시간이 필요해요.”
쥬니어의 안색은 창백하다. 몸도 안 좋은데 무리한 상태인 모양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게 아니지.
“레이나, 쥬니어를 보조해.”
내 말에 두 마법사 모두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엄한 얼굴로 엄포를 놓았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지금 상황 안 보여? 적 보스 몬스터가 성벽 위에 올라왔다고. 여기서 못 저지하면 이 도시는 끝장이야!”
이미 성벽 저쪽에서는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부오오오!
슬라임 엠페러의 거대한 몸에서 길쭉한 촉수가 뻗어 나와 인간들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휩쓸린 방패병들이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쥬니어, 가능한 빠르게 마법 캐스팅해. 지팡이에 모은 정수로 마력 회복하면서. 알겠지?”
“……알겠어요, 전하.”
“레이나. 전력으로 쥬니어를 보조해. 그리고 보조가 끝나고 쥬니어가 [원소 해체]를 사용하면, 지체하지 말고 슬라임 엠페러를 공격해.”
레이나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이 애송이의 마법이 대체 뭐길래, 저 괴물의 두터운 마법 방어를 뚫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겁니까?”
“그건 네가 직접 봐.”
레이나는 마지못해 쥬니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마법 캐스팅을 도왔다. 레이나의 파티에 소속된 다른 마법사들도 함께 보조했다.
“후우…… 갑니다!”
우우우웅!
쥬니어가 [원소 해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잔뜩 걸리는 마법이니, 그동안 슬라임 엠페러를 저지해 내야 한다.
“데미안!”
나는 저격수를 불렀다.
“놈의 영핵이 보이나?”
총을 들고 슬라임 엠페러를 조준 중이던 데미안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요, 황자님. 제 눈으로도 놈의 영핵이 보이질 않아요. 아니…… 영핵이 너무 많아요. 거의 온몸이 다 영핵으로 차 있어요. 어디를 노려야 할지…….”
슬라임 엠페러는 수천 마리 슬라임의 군집체가 하나의 개체로 합쳐진 괴물이다.
단일 개체의 영핵 저격에 특화된 데미안으로서는 노릴 수 있는 포인트가 많지 않다.
하지만 다른 역할은 맡길 수 있다.
“데미안. 오늘 네 역할은 놈을 죽이는 게 아니다. 아군을 살리는 거다.”
“네?”
“전황을 살피다가, 저 괴물에게 아군이 당할 위기에 처하면, 저격을 날려서 놈을 저지해라. 할 수 있겠나, 데미안?”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보던 데미안은 이윽고 썩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크큭…… 마음에 드는데요. 해볼게요.”
저 허세 그득한 웃음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지만, 적을 죽이는 역할이 아닌 아군을 지키는 역할을 맡기자 데미안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이 내츄럴 본 힐러 자식…….
그 외에도 릴리나 마르헤리타 등 후열 멤버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린 뒤, 나는 다급하게 달려서 전열에 합류했다.
쾅! 콰과광!
성벽 위에서, 인간으로 형성된 방어선은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아저씨! 우하단!”
“알고 있다! 너는 좌상단 막아!”
에반젤린과 루카스가 각자 방패를 들고 가장 앞에서 슬라임 엠페러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그 바로 뒤에 선 일반 병사들 또한 정연하게 방패를 들고 방진을 이루어, 동시에 서너 명씩 슬라임 엠페러의 촉수 공격을 방패로 받아 냈다.
“으아악!”
“크헉!”
그때마다 뒤로 우수수 나가떨어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돌아가면서 방어하자 어떻게 어떻게 밀리지 않고 방어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법사들이 놈을 죽일 마법을 준비 중이다! 그때까지만 버텨!”
나는 아군을 독려하며 방어선을 지휘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방어선이 유지되나 싶었지만.
“아야얏! 따가워!”
“크윽……!”
에반젤린과 루카스의 몸에 잔부상이 늘어났다.
슬라임 엠페러의 촉수는 아주 많았고, 막기만 할 수 없어 에반젤린과 루카스는 각자 망치와 철퇴를 휘둘렀는데. 그때마다 산성액이 튄 것이다.
“크허헉!”
“아으아악!”
일반 병사들도 계속해서 버티는 데에 한계를 보였다.
다 같이 촉수를 받아 내고 나가떨어지는 것도 몇 번이지, 반복되자 다들 힘겨워했다.
쾅! 콰앙!
전투가 계속되자, 물러나지 않고 버텨 내는 일반 병사들은 황도에서 보내 준 지원군 50인뿐이었다.
과연 황도에서 보내 준 최정예답게 이들은 일사분란하게 방패를 들어 슬라임 엠페러의 공격을 받아 냈다.
하지만 이들의 얼굴에마저 지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대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전황을 살피며 내가 이를 가는데,
움찔. 움찔.
방어부대 중 자꾸 뒤로 빠지려는 녀석들이 보였다.
새로 들어온 형벌부대.
오합지졸 산적 녀석들의 엉덩이가 자꾸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다른 방어부대에 부담이 심해지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형벌부대의 뒤로 달려간 나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뭣들 하나! 뒤로 빠지지 마! 방어선을 유지해!”
“하, 하지만…….”
산적들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무, 무, 무섭단 말입니다.”
“뭐?”
“남의 나라 전선에서 저런 괴물에게 죽고 싶지 않아요!”
남의 나라……?
할 말을 잃은 나는 우두망찰했다.
부오오오!
그런 우리의 머리 위로 슬라임 엠페러의 촉수가 연이어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