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32
◈ 232. [Evil Side] 충견 (2)
늑대왕 루나레드는 처참하게 짓이겨졌다.
마왕의 목덜미는커녕, 발끝에조차 닿지 못했다.
마왕이 뿜어낸 무형(無形)의 어둠 앞에서 늑대인간은 나름대로 분투했으나 끝내 무릎 꿇었다.
《내 생전에도…… 이곳에서 부활한 뒤에도…… 온갖 강자들과 맞붙어 봤지만.》
사지가 찢어지고 온몸이 처참하게 피로 젖은 채, 바닥에 짓눌러진 루나레드가 부러진 송곳니 사이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정말…… 강함의 궤가 다르군. 쿨럭! 젠장…….》
《너는 몸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를 못하는 타입이지, 루나레드.》
티끌 하나 다치지 않은 모습으로 늑대인간을 내려다보며 마왕이 웃었다.
시커먼 그림자로 뒤덮인 얼굴에서 하얀 공백(空白)같은 입가가 치켜 올라갔다.
《그래서 매번 귀찮지만, 그래도 나한테 덤빌 만큼 간 큰 놈도 너뿐이라.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
《용서하마. 나의 악몽이여.》
마왕이 손을 뻗어 늑대인간에게 갖다 대자, 처참하게 짓이겨졌던 루나레드의 온몸이 회복되었다.
부러졌던 뼈가 붙고 끊어졌던 근육이 연결되었다.
격전의 흔적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루나레드의 온몸이 깨끗하게 치유되었다.
루나레드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려 하자, 마왕은 씩 웃으며 손끝을 튕겼다.
《하지만, 본래 예정했던 ‘벌’은 받아야겠지?》
딱!
직후,
푸학-!
루나레드의 코와 입으로 거센 토혈이 쏟아졌다.
반쯤 일어났던 늑대인간의 거구가 바닥으로 무너졌다.
바닥에 무릎 꿇은 루나레드는 신음하며 자신의 왼쪽 가슴팍을 부여잡았다.
《크흑……?! 무슨 짓을…….》
《늑대인간의 심장은 두 개. 늑대의 것과 인간의 것이 하나씩 있지.》
마왕은 가볍게 손을 털어 보였다.
《그중 하나를 부수었다.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내게 덤비는 건 얼마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 루나레드. 하지만 내가 정한 규칙을 어기는 것은 용서 못한다.》
마왕은 어느새 입가의 미소를 지우고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룰’대로 ‘게임’을 하고 있다. 내 즐거움에 괜히 초 치지 말거라, 늑대여.》
토혈을 입에 머금은 채 루나레드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마왕을 노려다 보았다.
《초? 내가 초를 쳤다고? 나는 우리 군단의 승리를 위해 노력했을 뿐입니다!》
《…….》
《당신처럼 한가롭게 체스나 두면서 전황을 관망하는 취미는 내게 없단 말입니다!》
그렇기에, 왕이 금지했음에도 무리해서 부하들을 요르문간드와 함께 보냈다.
비록 실패했지만, 루나레드는 자신의 행동이 벌을 받을 만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끓는 목소리로 루나레드가 포효했다.
《왜! 어째서 놈들을 봐주고 있는 겁니까, 왕이여! 당신이 되살린 모든 악몽들이 한 번에 진군한다면, 인세 따위 단숨에 멸망할 것인데!》
《하하.》
그러자 마왕이 코웃음쳤다.
《루나레드. 나의 충견이여. 왜 이러느냐고 물었느냐?》
마왕은 그림자로 이뤄진 몸을 낮추어, 쓰러진 늑대인간의 앞에 앉아서는.
《……그야 당연히, 재밌기 때문이다.》
뱀처럼 속삭였다.
《그동안 이 세상을 몇 백 번, 몇 천 번이나 멸망시켰다. 하지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손에 넣지 못했다.》
말을 이해하지 못한 루나레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세상을 몇 백, 몇 천 번 멸망시켰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면 지금 세상은 무엇인가?
《아무리 즐거운 일도 무수히 반복하면 질리기 마련이지. 그렇기에 룰을 도입하고, 나의 적수와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마왕의 손이 루나레드의 머리에 올라오더니, 피에 젖은 은적색 갈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개를 대하는 것처럼. 굴욕적인 손길이었다.
《이 무료하고 지루한 세상 죽이기에, 조금이라도 재미를 첨가하기 위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루나레드의 얼굴을 마주한 마왕이 피식, 하고 조소했다.
《처음부터 너희 같은 ‘피스’들의 이해 따위는 바란 적도 없다. 너희는 그저, 내가 명하는 대로 움직이면 그만이다.》
《…….》
《자, 출정을 준비해라, 루나레드. 이번 ‘대범람’은 네게 맡길 테니.》
마왕의 말에 루나레드는 왼쪽 가슴을 움켜쥔 채 몸을 일으켰다.
조각나 찌꺼기만 남은 심장에서 역류한 핏물이 계속해서 코와 입을 따라 흘러내렸지만, 고통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네 녀석이 바라마지 않던 침공 아니더냐? 어디 한 번 인세를 멸망시켜 보거라.》
《…….》
숨을 가다듬은 루나레드가 청했다.
《내가 성공하면, 왕이여.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어떤 소원이지?》
《당신의 목덜미.》
송곳니를 드러내며, 늑대인간이 으르렁댔다.
《……한 번만 물어뜯게 해 주십시오.》
《윤허한다.》
마왕은 즉답했다.
《내 몇 번이든 깨물려 줄 테니, 최선을 다해 보아라.》
《…….》
《부디 내게 즐거운 대국을 보여다오.》
루나레드는 생각했다.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인세를 끝장내리라고.
그래서 저 오만한 마왕의 ‘즐거움’을 자신의 손으로 부수어 버리겠다고.
일렁이는 그림자 같은 마왕을…… 자신을 이곳에 되살린 정체불명의 악마를 노려보며. 늑대인간은 그렇게 다짐했다.
***
“후아아아암.”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나를 포함해서, 기절하다시피 뻗었던 영웅 캐릭터들이 그럭저럭 정신을 차린 것은 하루를 더 잔 뒤의 일이었다.
점심까지 먹인 뒤에 다들 각자의 숙소로 돌려보냈다.
언제까지고 저택 손님방에 묵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대부분 그럭저럭 회복해서 돌아가는 지금까지도 끙끙 앓아누운 이가 하나 있었으니.
“켈리베이~”
손님방 침대에 엎어져 누운 채, 허리를 잡고 아파하는 드워프 노친네였다.
드워프 대장장이의 이름을 부르며 방 안으로 들어간 내가 히죽 웃었다.
“오늘은 좀 어때요?”
“으거거걱! 마, 말 걸지 마, 쉬부럴. 요단강 반쯤 건넌 거 같으니까…….”
“거 엄살하고는…….”
켈리베이는 요르문간드의 등짝 위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그만 허리를 삐끗, 했다는 모양이다.
나이도 있으신 분이 무리해서 플라잉 드워프로 진화할 때 말렸어야 했나.
아무튼 이런 연유로 호수왕국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제들의 극진한 치료를 받으며 요양 중인 상황이다.
“이참에 살림을 여기로 옮기시죠. 공방도 근사하게 차려드리고 자재랑 자금도 넉넉히 챙겨드릴게. 호수왕국으로는 출퇴근만 합시다. 어때요?”
“몇 번을 거절했는데 또 묻는 게야……?”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진다잖아. 이때 아니면 언제 장인님 영입 기회가 있겠어요?”
“드럽게 솔직하구나, 망할 애송이 같으니…….”
킬킬 웃던 켈리베이는 직후 허리가 아픈지 꾸에엑 하고 짧은 비명과 함께 침몰했다. 제대로 다치긴 한 모양이군.
“한동안 요양만 좀 도와주면 좋겠구나. 이 꼴로는 던전에 돌아가 봤자 아무 일도 못 할 테니, 다 낫고 돌아가는 게 낫겠어.”
해쓱해진 얼굴로 켈리베이가 말했다. 나는 반색했다.
“아, 요양 좋죠! 이 저택에서 한 몇 달 푹 쉬다가 가세요!”
“푹 쉬긴 할 건데, 이 저택은 아니야. 구-려.”
“아니, 이 도시에서 그나마 이 저택이 제일 지내기 편하다고요?”
하필이면 켈리베이가 머무르는 손님방이 에반젤린의 취향대로 마개조된 방이긴 하지만. 블링블링한 핑크-옐로우-프릴-레이스 콤보의 화사한 방이긴 하지만.
크로스로드에서 이만큼 쾌적한 손님방도 드물단 말이지.
“내 말은, 화기(火氣)가 부족하다고!”
손님 주제에 까다로운 켈리베이가 역정을 부렸다.
“드워프는 잘 때도 옆에 풀무와 화로가 있어야 한단 말이다!”
“뭔 한여름에 열탕 들어가는 영감님 같은 소리를…….”
여름도 끝자락이긴 하지만 아직 꽤 더운 편인데. 그런데도 불 옆에 있고 싶다니.
“벽난로에 장작 더 떼어 드려요?”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코딱지만 한 불 말고!”
켈리베이는 그제야 자신의 요구를 명확히 했다.
“이 도시 대장간에서 지내게 해 줘! 제일 큰 불을 쓰는 곳으로다가!”
***
그리하여, 크로스로드 대장간의 가장 큰 화로 옆에 켈리베이는 침대 째로 배달 왔다.
가장 큰 화로를 내어 달라고 하자 대장장이 조합장은 처음에는 기막혀하며 거절하려 했지만, 그 화로를 엘더 드워프 대장장이가 사용한다고 하자 거의 바닥에 엎드릴 기세로 제발 모셔와 달라고 내게 빌었다.
“엘더 드워프 대장장이님이라니! 어깨 너머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아니! 망치질을 구경만 할 수 있어도 좋습니다! 제일 큰 화로와 작업실을 비워 두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켈리베이는 규모가 꽤 큰 크로스로드 대장간에서도 제일 명당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껏 화력을 높인 화로 쪽으로 등을 대고 켈리베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어~ 따땃하다. 좀 낫는 거 같구먼.”
불기운을 쬐던 켈리베이가 좀 화색이 도는 얼굴을 내게 돌렸다.
“그리고 쓸 만한 조수도 한 명 구해 주면 좋겠는데.”
“이 대장간 온 사방에 널린 게 솜씨 좋은 대장장이들인뎁쇼.”
나는 주위를 가리켰다.
엘더 드워프 대장장이를 구경하는 인간 대장장이들의 뜨거운 시선이 온 사방에서 꽂히고 있었다.
“이 친구들은 안 돼. 인간의 방식에 너무 숙련됐잖아.”
하지만 켈리베이는 가차 없었다.
“인간의 방식도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드워프와 인간은 금속을 다루는 방법이 근원부터 달라. 서로 응용법은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조수로서는 몸에 밴 버릇이 다르니 나랑 충돌만 나겠지.”
“그럼 지금 말씀은…… 똘똘하되 대장장이 쪽 지식은 아예 없는 조수를 한 명 구해와 달라, 뭐 그런 말씀인가요?”
“그렇지! 군말 없이 내 지시를 따라올 튼튼하고 성실한 놈으로다가 한 명 말이야.”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대장간 밖으로 나섰다. 대기 중이던 루카스에게 턱짓했다.
“용병 길드로 가자.”
안 그래도 들려서 신규 용병 좀 뽑을 생각이었는데 잘 됐지. 그중 켈리베이가 말한 조건에 맞는 녀석을 찾아보자.
대장간을 나서기 직전, 얼굴이 잔뜩 상기된 대장장이 조합장에게 넌지시 귀띔했다.
“몇 주에서 몇 달 정도 계실 테니까, 노하우 같은 거 아주 쫙쫙! 뽑아먹어. 사람 좋아서 거절을 못하니까 궁금한 거 다 물어보고.”
“물론입니다, 영주님!”
“깍듯하게 모시면서 술 좀 말아 바치면 좋아하실 테니까. 알아서 잘 해보도록.”
조합장의 어깨를 두들겨 준 뒤 나는 대장간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본 대장간 안에서는 엎드린 켈리베이에게 안마를 해드리겠다며 인간 대장장이들이 죄다 달려들고 있었다.
인기 폭발이네요, 할배…….
***
용병 길드.
그새 꽤 많은 숫자의 신규 용병들이 들어차 있었다.
나는 프로필을 받아들고 한 명 한 명 면담하며 그 자리에서 즉시 고용했다.
내 기조는 기본적으로 전원 고용이기에, 어지간히 흠결이 있지 않은 이상 휘하로 받아들인다.
‘SSR이나 SR은 안 보이는군.’
그 대부분이 일반 병사고, 영웅 캐릭터들도 거의 모두 R등급이나 N등급이다.
하지만 이들 중 누가 이후에 게임을 캐리해 줄지는 모르는 일이다.
백여 명 정도 되는 신입들을 장바구니 쓸어 담듯이 크로스로드 소속으로 옮겨 넣으며, 그렇게 신규 고용도 끝나가는데.
“……?”
눈에 띄는 용병이 둘 있었다.
하나는 오늘 이곳에서 만난 용병 중 가장 고등급인 SR등급의 영웅이었다.
SR등급의 컬러인 보라색을 등에서 뿜어내는, 미역 같은 짙은 갈색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40~50대 정도의 남성이다.
우수에 잠긴 눈빛에 어쩐지 슬퍼 보이는 인상이다.
“북부에서 왔다고?”
프로필을 훑으며 묻자, SR등급 전사인 ‘카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본래 군인이었다고.”
“옛적에 멸망한 왕국의 패잔병입니다…… 용병들의 과거란 대충 비슷하지 않습니까?”
뭐 그렇지. 절반 정도는 멸망한 왕국의 기사고 패잔병이니까.
아무튼 카뮈 이 남자는 게임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준수한 SR등급 전사 캐릭터로 잘 쓰면 훌륭한 전위가 되어 준다.
SR등급을 거절할 이유가 없지. 나는 즉시 카뮈를 고용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전하.”
카뮈가 음울하게 미소해 보였다. 인상만 좀 밝아지면 좋겠는데.
그리고 두번째로 눈에 들어온 용병은 회색 컬러를 등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N등급이라는 뜻이다.
어린 소년이다.
눈을 덮은 선명한 갈색 더벅머리에, 왜소한 키. 나이는 고작 열다섯 살.
이름은 한니발.
눈을 덮은 더벅머리 사이로 불현듯 보이는 두 눈은 흔들림 없이 곧았다.
오늘 본 모든 용병들 중에서 이렇게 시선이 흔들리지 않는 이는 처음이었다.
“남부전선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요.”
“소문?”
“돈 잘 쳐 주고, 용병을 군인으로 대우해 주신다 들었어요.”
한니발은 아직 변성기가 가시지 않은 앳된 목소리로 내뱉었다.
“저를 써 주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미안하지만, 너는 전선에 내보내기에는 너무 어려.”
남부전선에서는 열여섯 살 이상부터 전선에 내보낸다.
열여섯도 엄청 어리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열다섯 살인 이 꼬맹이는 도저히 전투에 내보낼 수 없다.
“그러면 잡일이라도 시켜 주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생일이 오면, 전선에 서겠습니다.”
한니발은 준비해 온 듯 능숙하게 말을 받았다. 호오, 작정하고 온 모양인데.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죽은 디온 녀석 생각도 나고.
“……좋아, 한니발.”
그래서 나는, 이 꼬마를 고용해 보기로 했다.
“그럼 엘더 드워프 조수라도 해 볼래?”